몽환적 일몰, 외계인이 튀어나올 것같았다 황라연의 남미 배낭여행

<15화>아타카마 사막
돈 아끼려 사막도 걸어서 다녀왔는데 통장엔 ‘0원?’
꿈이던 파타고니아 포기, 여행도 인생도 그런 거지…
 
볼리비아의 끝과 칠레가 시작되는 곳은, 돌이 널브러져 있어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가 매끈하고 쭉 뻗은 아스팔트로 바뀌는 곳이었다. 남미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와 가장 부유한 나라의 끝과 시작. 똑같은 산을 바라보고 똑같은 흙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 두 나라 사이에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었다.

이미 흠뻑 정이 들어버린 볼리비아를 등지고 덜컹거림 없는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을 때, 기분이 떫었다. 서울에서 살아온 나에게 익숙한 도로는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가 아닌 매끈한 아스팔트 도로일 터인데 말이다. 콜롬비아에서부터 시작해서 볼리비아까지 제대로 멀미가 행차하시는 안데스의 구불구불한 길, 페루와 볼리비아의 너무나도 불편한 비포장도로가 끝난다고 생각하니 왜 이렇게 서글픈지 모르겠다. 모자를 눌러쓰고 만능 보따리를 목에 두른 원주민 여성도 칠레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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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도 놓치지 않는 아타카마 식물들의 ‘생존법‘ 

 
가늘고 긴 몸뚱이를 가진 칠레의 북부, 아타카마 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이다. 이 건조한 사막에도 생물은 살고 있는데, ‘아타카마 사막의 식물들은 습기를 머금은 구름이 이곳을 지나갈 때를 놓치지 않고 그 습기를 저장해 놓는다’고 친구가 다큐멘터리에서 봤다며 알려주었다.

얼마 전 33명 모두가 구출되어 세계에 감동을 선사한 칠레의 광부들이 갇혀 있던 곳도 아타카마 사막의 산호세 광산이었다. 또한 칠레 경제의 대들보인 구리의 대부분이 생산되는 곳도 이곳에 위치한 추키카마타 광산이다. 정식 명칭은 산 페드로데 아타카마. 19세기 말까지 볼리비아의 영토였던 이곳은 수많은 자원에 눈독을 들인 칠레가 1879년 미국과 유럽에 원조를 받아 남미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손에 넣은 곳이다. 이로 인해 볼리비아는 내륙국가가 되었다. 

어느 곳이나 역사의 때가 묻지 않은 곳은 없다지만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을 과거와는 달리, 마을은 너무나 조용했다. 높은 빌딩 하나 없는 아주 작고 조용한 시골마을이었는데, 길은 흙길이 많았고 좁은 길옆으로는 칠레 사람들만큼이나 키가 작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라파스 숙소에서 나에게 자주 말을 걸어주던 이탈리아 친구는 볼리비아 남부에서 다시 만나 동행이 되었다. 아타카마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라파스 숙소에서 같이 놀던 다른 일행을 우연히 만났다. 이탈리아 친구도 다시 만나고 다른 일행도 다시 만나는 우연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확인하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얼싸 안았고, 숙소를 함께 찾으러 나섰다. 하지만 볼리비아의 소금사막 우유니 투어를 마치고 내려오는 여행자와 투어를 떠나는 여행자들로 작은 마을은 항상 북적거렸고, 여행자들이 가득한 마을일수록 숙소 찾는 일은 힘들기 마련이다. 텐트라도 있으면 어디든 내 집이 되겠지만 굶더라도 잠자리는 편해야 하는 여행스타일 때문에 텐트는 처음부터 챙길 생각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텐트가 있으면 즐거움이 배가 된다는 걸 깨달은 뒤, 다음부터는 텐트를 가지고 여행 다니기로 했다)

겨우 찾은 숙소는 한 사람당 우리 돈으로 만원이 조금 넘었다. 국경을 넘으니 물가도 달라졌다. 그동안 남미에서 가장 물가가 싼 볼리비아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칠레의 물가는 거의 공포 수준이었다. 하지만 화장실에 휴지가 비치되어 있고 세면대에 비누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새삼스레 내가 이제는 볼리비아가 아닌 칠레에 있고, 조금 더 편리해진 만큼 돈을 더 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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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마다 체리만 먹는 야무진 꿈, 눈물만 먹었다
 
사막인지라 물이 귀해 호스텔에서는 밤 10시가 채 되기도 전에 물을 끊어버려 설거지는 항상 아침으로 미루게 되었다. 물이 끊기기 전에 빨래도 하고 샤워도 해야 하기에 샤워실은 늘 만원이었다. 어쨌든 칠레다. 칠레에 왔다. 사실 나는 여행을 계획할 때, 칠레에 가면 하루 종일 끼니마다 체리만 먹을 것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많은 여행자들의 블로그에 칠레는 체리가 엄청 싸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체리라면 환장하는데도 한국에서는 비싸서 못 사먹으니, 칠레에 가면 하루도 빠짐없이 체리를 먹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그 계획을 동행이 된 이탈리아 친구에게 말했다. 나 삼시 세 끼 체리만 먹을 거라고, 말리지 말라고. 잔뜩 기대에 부푼 내 면전에 대고 친구는 체리 철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웃긴데, 당시엔 정말이지 진지하게 눈물을 글썽였다.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체리를 못 먹는다니, 여행을 계획하면서부터 꿈에 부풀어있던 ‘칠레의 모든 체리 아작내기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남들이 보면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심각하게 울상을 짓자 친구는 당황했는지 꼭 체리가 있을 거라고, 찾아다니자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온 동네 슈퍼를 다 뒤지고 다녔는데, 엠빠나다(남미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만두같은 것. 빵보다는 바삭한 생지 안에 고기, 감자, 올리브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있다. 간단한 식사대용으로도 좋다)나 채소 등을 파는 가게에 체리가 있는 것이었다!

나름 어렵게 찾은 체리였지만 상태가 매우 글러먹었다. 군데군데 곰팡이가 피어있고 과실은 쭈글탱이가 되어있었다. 게다가 인터넷에서 본 가격과 다르게 비쌌다. 그 친구 말대로 그때는 체리 철이 아니었던 것이다. 산티아고로 가면 싱싱한 체리가 많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산티아고에서도 체리 사정은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체리 대신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칠레산 청포도를 잔뜩 사서 그걸로 위로했다.

여기서 잠깐 칠레에서 먹은 것을 말하자면, 칠레는 역시 해산물이라고들 한다. 우리나라보다 싼 가격에 전복, 바닷가재 등의 해산물을 잔뜩 먹을 수 있다고 하는데 정작 내가 먹은 것은 핫도그밖에 없다. 핫도그가 가장 싸기 때문이다. 핫도그 중에서도 꼼쁠레또 이딸리아노 라고 하는 아보카도가 잔뜩 들어간 핫도그를 주로 먹었다. 왜 이름이 이탈리아노인지는 진짜 이탈리아노도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내 친구 이딸리아노는 매일같이 꼼쁠레또 이딸리아노를 먹고는 만족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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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살사 댄스 삼매경, 이탈리아 친구는  ‘크큭’
 
아타카마 사막에서 여행자들이 주로 가는 곳은 달의 계곡, 타티오 간헐천 등이 있다. 이밖에도 샌드보딩, 우유니만큼 크지는 않지만 소금사막 투어 등 많은 투어들이 있다고 하는데 나도 그렇지만 이 새로운 동행이 된 친구, 무지하게 짜다. 일단 아끼는 게 몸에 밴 친구라 그런지 우리는 뭔가를 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돈을 아낄 수 있을까부터 고민했다. 우유니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겠지만 간헐천과 소금사막도 우유니에서 보고 왔으니 제껴두고(라기보다는 돈을 내고 투어를 할 엄두도 못 내) 자전거로 갈 수 있는 달의 계곡을 가기로 했다. 남미 각국에는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 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가장 유명한 곳으로는 라파스와 이곳이다. 마치 지구가 아닌 달에 있을 법한 풍경은 남미 땅에선 그렇게 보기 힘든 것만은 아닌가 보다.

자전거를 타고 달의 계곡에 가기 위해 대여료를 알아보고 다녔는데, 그 값도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 같은 숙소에 묵고 있던 한국인 그룹에게서 걸어서도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 우리는 이거다, 무릎을 쳤다. 그들은 걸어서 다녀오기엔 다리가 무진장 아프다고 겁을 줬지만 이미 각자 수많은 시련(?)을 이겨낸 사람들로서 그 정도쯤이야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단은 아끼고 봐야 하니까.

다음날 오전부터 우리는 신발끈을 동여매고 각자 큰 병으로 물을 사고 점심거리를 사서 길을 떠났다. 지도도 없이 그냥 무조건 달의 계곡이 있을 법한 방향으로 아스팔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마을 밖으로 난 도로를 15분쯤 걸어가자 표지판이 나왔다. 맞게 온 것이다. 표지판의 화살표 방향을 따라 하염없이 걸어가는 중에 자전거를 타고 마을 쪽으로 가는 여행자들이 보여 안심하고 걸었다. 한국에서도 평소에 이렇게 걸으면 다이어트 걱정은 없을 텐데. 나는 주특기(?)인 살사를 추며 걸었는데,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는지 친구는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개인기가 하나 더 는 것같은 기분이 들어 뭔가 만족스러웠다.
  
아예 지도 접고 동물적 감으로 ‘소금 모래’에 발 ‘푹푹’
 
한 시간 좀 더 걸으니 매표소가 나왔다. 표를 사고 간단한 지도를 받아 또 걷기 시작했다. 잔뜩 기대를 하고 왔지만 같은 표정의 사막만 계속 보일 뿐이었다. 딱히 사막에 관심이 없어서 뜨겁기만 하고 별다른 재미가 없는 사막 걷기에 조금 싫증이 나기 시작해서 아예 지도를 접어버리고 걷고 싶은 대로 걷기 시작했다.

수많은 차가 지나갔을 도로를 벗어나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곳의 뒤쪽으로 돌아가니 사막의 강한 흙바람 때문에 소금이 섞인 모래가 뽀글뽀글한 모습으로 거대한 벽을 이루고 있었다. 먼 옛날 볼리비아의 우유니와 이곳은 바다였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까지 땅에 소금이 남아 있는 것인데, 이곳에는 군데군데 흙모래에 섞인 소금이 작은 틈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걷다 지친 우리는 누군가가 쉴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동굴에서 싸온 빵에 캬라멜과 바나나를 발라서 신나게 먹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직 반도 안 왔을 텐데 물은 벌써 한 병을 다 마셔버렸다. 길도 없는 곳을 모래에 푹푹 빠지며 걷다 보니 점점 힘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태양은 어찌나 강렬한지, 반팔 반바지를 입은 내 살은 빨갛게 익어버리고 말았다. 아마존에서 통째로 구이가 된 이후 오랜만에 겪는 현상이었다.

그래도 어찌됐건 달의 계곡은 가야할 것 같아서 발이 푹푹 꺼지는 작은 모래산을 오르고 또 올랐다. 도대체 어떤 길로 온 건지 비슷비슷한 풍경이라 감도 안 잡히지만 어려서부터 길러온 동물적 감각으로 원래 길을 찾는 데 성공했다. 지도에 의하자면 뷰포인트가 적어도 네댓 개는 되었는데, 그다지 열정적 여행자가 아닌 우리 둘은 사막의 석양만 보고 돌아가자고 합의를 봤다.

여행에서 의견이 맞는다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다. 혼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하다 보면 보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달라 사이가 틀어지고 여행이 불편해지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이 악의를 가지고 파트너의 여권을 훔쳐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정말이지 후덜덜이다.

포기하니 참 편해졌다. 서둘러서 다른 곳까지 가지 않아도 되고 그늘에 누워 낮잠이나 때려주며 해가 지길 기다리기로 했다. 기왕 먼 곳까지 온 거, 많이 보고 가면 좋겠지만 여행한 지 4개월이 넘다 보니 권태기가 왔나 보다. 이런 마인드로, 시험 기간에도 포기할 수 있다면 마음이라도 편해질 텐데. 물론 그 이후가 불편해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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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 ‘광팬’ 독일 아저씨 차 히치하이킹
 
그렇게 두 시간 정도를 버티다가 석양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투어차량을 타고 온 다른 여행객들도 카메라를 들고 삼삼오오 언덕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언덕 위에는 강풍이 불어서 점프를 하면 날아갈 지경이었다. 언덕 위에서 본 풍경은 그런 바람에 대한 생각을 날려버릴 정도로 인상 깊은 풍경이었다. 칼로 베어버린 듯한 사구를 경계로, 언덕 밑에서는 보지 못한, 그야말로 달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멋대로 울툭불툭 솟은 크고 작은 유에프오 형상의 바위들이 산맥을 이루고 있어 금방이라도 외계인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항상 현실과 꿈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현실감이라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더더욱 현실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누군가가 대충 빚어 던져버린 것 같은 풍경,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붉은 태양빛, 컴퓨터 그래픽 같은 사구의 단면. 어느 하나도 현실감이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남미의 자연이란 그런 것이다. 그 웅장함에 현실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해주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하는 것, 인간의 상상력을 무한대로 자극해 주는 것. 물속에 잠겨있는 듯, 그 풍경을 보면서 현실의 모호함 속에 빠져 있는 사이에 벌써 많은 관광객들이 명당을 차지하고는 석양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빨갛게 타오르는 태양빛이 달의 표면을 수놓았다. 사람들은 다투어 카메라를 꺼내 그 모습을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름다운 석양을 보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도 내 기분은 계속 꿈 속을 헤매고 있었다.

일몰은 꽤나 빨리 진행되었다. 사막에 어둠이 깔리자 사람들은 다시 차를 타고 마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왔던 길을 또 걸어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친구는 자기에게 맡기라며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참 재주도 좋은 친구다. 마음씨 좋은 독일 아저씨의 차를 히치하이킹 해서 우리는 공짜로 편하게 마을까지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 독일 아저씨는 휴가를 얻어 남미로 혼자 여행 왔다고 한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아저씨는 김기덕의 팬이라며 한국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보다 한국 영화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김기덕 감독의 <빈 집> 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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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베 거리공연으로 생활비 벌려고 했는데…
 
마음씨 좋은 아저씨는 우리를 마을에 신속하고 안전하게 데려다 주었고, 우리는 다른 일행들과 만나 길거리에 주저앉아 엠빠나다로 간단한 식사를 했다. 식사라고 하기에도 뭣 하지만. 그날 그 친구들은 잠베(아프리카 북)로 거리에서 공연을 하고 돈을 벌 것이라고 했다. 스페인에서 온 그 친구들은 잠베를 치거나 팔찌를 땋아서 생활비를 벌며 여행을 다녔다. 그들에게는 북이 두 개밖에 없었기 때문에 내 북도 빌려주었다.

하지만 터를 잡고 워밍업을 하고 있자니, 경찰이 와서 시끄럽다며 쫒아냈다. 성깔 있는 친구들은 경찰에게 항의했지만 경찰은 들은 체 만 체, 그저 쫓아내기에 급급했다. 결국 우리는 그냥 또 길바닥에 주저앉아 맥주 한 병씩 손에 들고 다른 여행자들과 어울려 이따금씩 노래도 부르며 놀았다.

아타카마에서 이탈리아 친구는 히치하이킹으로 아르헨티나 북부에 위치한 살타에 갈 계획이었고, 나는 바로 산티아고로 가서 파타고니아로 내려갈 계획이었다. 그리고 다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2월 초에 만나기로 했다. 각자 짐을 싸들고 나와 버스시간이 남은 나는 친구의 가는 길을 배웅해 주기 위해 히치하이킹 포인트로 갔다.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히치하이킹하기 좋은 나라로 여행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많은 여행자들이 히치하이킹으로 이 두 나라를 여행하고 있다. 하지만 공급보다 수요가 너무 많았던 걸까, 이미 아타카마의 히치하이킹 포인트에는 수많은 여행자들이 짐을 내려놓고 나른한 듯이 그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친구는 안 되겠다 싶었나 보다. 그곳에서 대기 중인 여행자에게 물어보니, 그 사람도 여기서 두 시간 이상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차가와도 언제 자신을 태워줄 차가 올지는 모르는 상태라고 한다.

담배 한 대 태우면서 계획을 바꿨는지, 친구는 일단 나와 함께 산티아고로 가서, 그곳에서 아르헨티나 북부로 가는 버스를 탈 것이라고 했다. 서둘러 버스회사로 가서 좌석을 예약하고 산티아고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가 마을 입구를 지나 고속도로 비슷한 도로에 진입할 때, 우리는 스페인 친구 둘이 역시 짐을 바닥에 내려놓고 차가 오길 기다리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 모습을 보고는 짓궂지만 웃음을 참지 못했다. 결국 그녀들도 포기하고 버스를 타게 될 텐데 말이다. 혹은 운이 좋아 히치하이킹에 성공했을지도 모르지만.
 
언젠가인지 모를 다음이라는 기회에 꼬리 남겨
 
산티아고에 내리자 후끈한 바닷바람이 몸에 착착 달라붙었다. 잘 사는 나라의 수도답게 버스 터미널은 무척이나 크고, 터미널도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각자 갈 길을 가야 했다. 북부 파타고니아의 바릴로체까지 가는 버스를 미리 예약해 놓기 위해 돈을 뽑는데, 어라? 돈이 안 뽑힌다. 설마, 고장난 걸까 아니면 돈이 다 떨어진 걸까. 에콰도르에서 깡그리 다 털려버린 뒤로 부모님께 송금을 받았는데,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통장에 잔고가 없었다. 그것도 그 친구가 서류를 보고 도와주기 전까진 인터넷으로 잔고를 확인해 보는 방법도 몰라서 되도록 아껴 쓰고 대략 돈이 얼마 정도 남았는지 만 염두에 두고 돈을 뽑는 식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꼼꼼하지 못한데다가 돈 계산이라면 머리부터 아파지는, 여행하기엔 너무 대책 없는 성격이다. 연락을 해서 송금을 받는데 걸리는 시간은 4일 정도. 주말이 끼면 6일, 내게 남은 시간은 고작 일주일 하고도 반이다. 그 시간 안에 산티아고를 비롯한 파타고니아의 명소를 다 둘러보기엔 여유가 없었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남미 여행의 동기가 되었던 파타고니아를 포기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여행의 동기가 되었던 만큼 적어도 이 주 정도에 걸쳐서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시간에 쫓겨 대충 봐야 한다면 이번에는 포기하고 다음에 와서 천천히 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다음이란 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다음에 꼭 다시 남미에 와야 하는 이유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원래 계획도 포기하고 당장 그날 방값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렇게 되자 친구는 내가 돈을 받을 때까지 쓸 수 있을 만큼 돈을 빌려주었고, 계획이 없어진 나에게 아르헨티나는 여기보다 물가도 싸다며 같이 아르헨티나로 가자고 꼬드겼다. 여행에는 어쩌면 계획이라는 것은 불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다가, 내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리 멋진 계획을 세워도 좀처럼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은 것이 또 여행이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마음 닿는 대로 어떤 장소가 됐든 초조해 하지 말고 그곳을 즐기면 그게 바로 행복한 여행이다. 계획과는 어긋나도 일단 내 마음을 다스리고 다른 길을 찾으면 된다. 인생도 여행과 마찬가지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모든 여행에는 길이 있듯, 모든 문제에는 해결방안이 있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 친구를 따라 아르헨티나의 멘도사로 가는 버스표를 샀다.
 
글 사진 황라연

 
P2.jpg ◈ 황라연=호랑이띠. 이름인 라연을 굴려서 발음하면 Lion. 온순하나 속은 맹수와도 같은지는 잘 모르겠음. 혼자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함. 한국에서는 주기적으로 섬에 청승 떨러 감. 좋아하는 섬은 관매도. 중고등학교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고 한국에 돌아와 중앙대학교에 거저 먹기라는 특례로 입학.(그래도 나름 공부 열심히 했음)

 새내기 때 “학고 한번 맞아줘야 간지”, “시험기간에 먹는 술은 꿀맛” 등의 고학번 선배들의 유혹에 넘어가 평점 0.15를 기록. 그 뒤론 정신 차리고 공부하다 촛불집회 때 미친듯이 시위하느라 성적 말아먹고 정치에 눈뜨게 됨. 2007년엔 인도로 떠났고 2009년엔 남미로 떠났음. 2010년 여름방학에는 유럽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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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왜 떠났나
2.
콜롬비아-남미에서의 첫 식사
3.에콰도르-거지가 된 사연
4.
페루①-가방은 털렸어도
5.
페루②-첫 히치하이킹
6.페루③-드디어 아마존
7.
페루④-정글속 대도시
8.페루⑤-숙제같은 마추피추
9.볼리비아①-무지개가 떴다
10.볼리비아②-에보 모랄레스(선거일 풍경)
11.볼리비아③-사하마의 트럭운전수
12.볼리비아④-체 게바라와 고양이
13.볼리비아⑤-크리스마스,그리고 새해
14.볼리비아⑥-신음하는 은광
15.칠레-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16.아르헨티나①-죽음보다 더 한 더위
17.아르헨티나②-그냥 가서 보시라
18.아르헨티나③-어, 민가협이?
19.아르헨티나④-여기에도 스위스가?
20.버스는 구름을 타고
21. 혼자, 진짜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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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