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게 문 닫아걸고 밤새 광란의 춤바람 황라연의 남미 배낭여행

<10> 선거일 풍경
부통령도 광장 합세…원주민 대통령 재선 환호
싫어해도 무조건 비난하지는 않는 풍토 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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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스에 처음 도착한 2009년 12월4일, 온 거리가 선거 물결로 물들어 있었다. 바로 이틀 뒤에 대통령 선거가 있기 때문이었다. 볼리비아를 여행하다 보면, 길거리에 온통 도배된 “evo mas“ ”evo de nuevo“ ”si evo“ 등의 문구를 보기 싫어도 보게 된다. 이 evo 라는 게 무엇이던가, 바로 남미 역사상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를 가리키는 것이다. 정식 이름은 후안 에보 모랄레스 아이마이다. 흔히 에보 모랄레스, 혹은 에보 라고 불린다. 특별히 남미의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굉장히 생소한 이름이다. 
 
까맣고 숱이 많은 머리, 인디오(이 인디오라는 말은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생겨난 단어이기 때문에 어감이 좋지 않다. 이후로는 원주민이라는 단어로 대체 하겠다.) 특유의 검갈색 피부, 툭 튀어나온 광대, 넙데데한 얼굴. 아무리 봐도 소위 말하는 ‘간지’ 가 안 난다. 하지만 옆집 아저씨처럼 인상이 푸근하다. 언제든지 만나자면 만날 수 있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권위적이지 않은 대통령인 것 같았다. 2009년 12월6일에 치르는 선거는, 거의 에보의 재선이 확실시 되어 있었던 것 같다.
 
 
밤새도록 놀겠다고 다짐한 클럽까지…
 
12월 5일, 잠시 동행이 된 오스트리아 친구에게 라파스의 한국 식당에 가서 비빔밥을 먹여주고는 친구의 제안으로 맥주 마실 곳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다음날 있을 선거 때문에 거리는 다 통제가 되었다. 라파스에 가면 밤새도록 놀겠다고 다짐한 클럽까지 문 닫아 우리는 계속 씩씩대며 “망할 볼리비아!!” 라고 울부짖었다. 게다가 길은 어찌나 그렇게 막아뒀는지, 숙소까지 올라가는 길을 빙빙 돌아가게 만들었다. 군인과 경찰들만이 지키고 있는 거리는 썰렁했다. 밤 12시부터는 통행금지라고 했다. 다음날 선거 때문에 전날부터 거리를 통제하고 가게 문을 닫는다니! 선거 전날 밤 죽어라 술 마시는 한국의 풍경(아니, 적어도 학교 앞 풍경)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당일엔 정말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숙소 마당에 나와 보니 숙소에 묵고 있던 모든 여행자가 기어 나와 있었다. 어느 한군데도 연 곳이 없으니 나가봤자 할 것도 없었다. 다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고는 바닥이나 소파에 앉아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는 연주 패거리들과는 등을 돌려 앉은 채로 팔찌를 땋으면서 계속 음악을 듣고 있었다. 불현듯 Eagle-eye cherry의 “Save tonight” 이라는 곡이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내 마음이 읽혔는지 놀랍게도 그들이 다음에 연주한 곡은 Save tonight이었다!! 너무 신기하고 신나서 쪼르르 그쪽으로 달려가 같이 노래를 불렀다. 그들이 Imagine을 연주하자 다들 어깨동무를 하고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신나게 숙소에서 놀다가 오후 5시쯤 밖의 상황이 어떤지 둘러보기로 했다. 에보의 당선은 거의 확실한 것 같았고, 부모님께 메일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어슬렁어슬렁 숙소에서 기어 나와 대통령궁이 있는 무리요 광장으로 향했다. 무슨 일인지 광장에는 대통령궁을 바라보고 사람들이 벌떼같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Que pasa?“(무슨일이에요?)
안 되는 스페인어로 물어보니 글쎄, 에보가 이리로 온다고 한다! (이 부분은 의미는 알아들었으나 정확한 스페인어를 모르니 표기하지 않도록 하겠다. 음, 이런 약한 모습.) 언제쯤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이따가 (mas tarde-이 말은 굉장히 무서운 말이다. 도대체 언제가 될지 모르고 올지 안 올지도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그를 보고 싶으면 기다려야 되기 때문이다.) 에보가 이쪽으로 와서 연설을 할 것이라고 한다.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 “남미 인권기행” (하영식 저) 을 읽지 않았더라면 난 에보 모랄레스라는 사람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에는 관심이 있어도 아직 세계, 그것도 남미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직까지 보편화 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원주민들의 영웅인 것도 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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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가 이어준 인연, 단번에 한국인 알아봐

 
볼리비아에 왔고, 또 그 나라의 대통령이 이곳을 찾는다니, ‘꼭 한번 보고 가야지’라고 생각해, 시내에서 거의 딱 하나 열려 있는 것으로 보이는 피시방에 가서 메일을 보내고 광장으로 돌아왔다. 해가 진 광장에 사람들이 한데 모여 에보를 외치고 있었다. 하루 종일 먹을 걸 안 팔아서 배를 쫄쫄 굶고 있었는데, 광장 주변에는 노점상들이 빼곡히 들어서 그야말로 먹을거리 천지였다. 에보가 언제 올지 몰라 배는 일단 나중에 채우기로 하고, 수많은 인파 속 한 명이 되어 에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기다리면서 광장 계단에 앉아있는데, 옆에 앉은 볼리비아 사람이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왔다. 보통 동양인을 보면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냐고 묻는데 바로 한국을 이야기해서 반가웠다. 알고 보니 5년 전에 한국에 와서 태권도를 배웠단다. 서로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는 즉석에서 럼콕을 만들어주었다. 게다가 작은 조각케이크같은 걸 파는 아저씨가 앞을 지나가자 그 아저씨를 불러 세워다가 케이크도 사줬다. 계속 넙죽넙죽 잘 받아먹고는 에보의 선거 포스터까지 선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에보를 지지하지 않는 산타크루즈 출신이라, 에보의 당선에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처럼 썩 기쁜 마음은 아닌 것 같았다. 
 
밤 9시쯤 되었나, 어마어마한 함성소리와 함께 당선자인 에보가 대통령궁의 2층 창문에 나타났다. 멀어서 잘 안보이기는 했지만, 거리의 포스터에서 계속 봐왔던 그가 맞다. 그는 함성소리가 잦아들자 재선기념 연설을 하기 시작했고, 청중들은 그가 힘 있게 주장하는 부분을 함께 따라 하기도, 열렬한 갈채를 보내기도 했다. 스페인어를 잘 몰라서 제대로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주요 내용이 “볼리비아는 하나다” 이었던 것 같다. 
 
에보의 연설이 끝나고, 부대통령과 의원들이 광장 앞쪽에 설치되어 있는 무대에 올라가 연설을 했다. 연설이 끝나자 가수와 악단이 안데스 음악을 연주하며 흥을 돋웠다. 그때부터 광장은 광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외국인이든, 현지인이든 모두가 하나가 되어 에보를 외치며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며 광장에서 축제를 즐겼다. 무대 위 정치인들도, 오늘은 밤새 즐기자며 사람들을 부추겼다. 음악은 쉴 새 없이 연주되고, 술장수, 과자장수들도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춤을 췄다. 참 재미있던 게 부통령이 무대에 올라서 신나게 춤을 추는 광경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무총리가 무대 위에서 몸을 흔들어 제끼는 것인데.
 
나도 현지인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그들이 주는 맥주를 덥석덥석 잘도 받아마셨다. 대통령 선거 뒤의 밤을 이렇게 광장에서 원주민 복장을 한 이들, 현대식 복장을 한 현지인들, 여행 온 외국인들이 한데 모여 즐길 수 있다는 것에 ‘역시 남미구나!’라고 생각했다. 연주되는 노래에선 간간히 에보의 이름이 들렸고, 경쾌하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민중가요 느낌이 나는 안데스 음악이었다. 
 
축제는 계속되고 있었지만, 친구와 함께 노점에서 소 심장구이 꼬치와 파스텔이라 불리는 튀김음식을 먹고는 숙소로 돌아갔다. 이날 밤의 기억은 너무나도 특별한 것이었다. 마침 카메라가 고장이 나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던 것이 너무나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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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나라 아르헨티나 친구도 열렬한 팬

 
이날 이후로 또 한 번 그를 볼 기회가 있었다. 볼리비아의 남쪽에 있는 은광으로 유명한 도시 포토시를 여행할 때였다. 포토시는 전통적으로 에보를 지지하는 지역이다. 은광 투어를 마치고 그곳에서 알게 된 아르헨티나 친구들과 함께 다음날 수크레로 떠나야 하는 일정이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수크레로 떠나기로 했지만, 당일 에보가 포토시에 온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침 9시에 떠나기로 했던 것을 에보를 보고 나서 떠나기로 결정했다.
 
포토시 시내의 중앙광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에보를 기다린 지 2시간 정도 되었을까, 까만 차 몇 대가 도착했고, 나는 앞에서 2번째 줄에 서서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는 에보를 거의 1m 정도 되는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그때 찍은 사진은 무슨 일인지 현상이 되지 않았다. 정말 아쉽고 슬프다. 맨 앞줄에 있던 사람은 에보와 악수도 하고, 에보는 자신을 보기 위해 기다린 사람들을 얼싸안기도 했다. 
 
볼리비아를 여행하면서 길거리에 페인팅 된 (심지어는 버스가 다니는 안데스의 구불구불한 산골에도 페인팅이 되어있다.) “evo mas”(이 mas는 more의 의미도 되지만, 에보가 이끄는 사회주의 운동당-movimiento al sosialismo의 약자이기도 하다.) “evo de nuevo” “si evo” 등의 문구를 보며 ‘에보가 정말 인기가 많을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그래서 만나는 현지인들마다 에보를 좋아하냐고 물어보게 되었다. 주로 만나는 현지인들은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현지인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에보는 좋은 대통령이고, 자신은 에보를 좋아하며 지지한다고 했다. 질문을 던졌을 때 에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사람은 10명 중 2,3명 꼴이었던 것 같다. 한 명은 산타크루즈 출신의 기술자, 한 명은 고급 카페의 주인, 또 한 명은 정치에 관심이 많다는 학생이었다. 사실 에보의 지지기반이 “campesino“ 라 불리는 노동자 계급, 원주민들이기 때문에 부유층이 그를 반기라는 법은 없다. 사회주의운동당은 우리나라로 치면 민주노동당 정도가 되지 않을까. 
 
두 번째로 라파스에 갔을 때 알게 된 아르헨티나 친구는 에보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녀는 매일 숙소 테라스에 앉아 에보 모랄레스의 자서전을 읽곤 했다. 또한 영화관에서는 에보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에보 모랄레스란 나의 볼리비아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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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피격·추방에도 살아남아…빈부 따라 동-서 갈등

 
그렇다면 도대체 이 에보 모랄레스는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가. 그는 순수 원주민인 아이마라족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양치기, 낙타농장 잡부, 공장 잡부, 빵장수, 순회악단 단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이때부터 현실정치에 강한 반감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코카농장에 취직해 일을 하면서 미군이 단지 코카농장에서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농부들을 고문하고 산 채로 불태워 죽이는 것을 목격한다. 그 사건으로 인해 평생을 힘없는 노동자들 편에 서서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코카농장의 노동자 대표로 선출 된 뒤, 미국이 선포한 마약과의 전쟁 때문에 감옥에도 수없이 들락거렸다고 한다. (현재 그는 20년째 코카재배 협회장을 연임하고 있다.) 감옥에서 고문에 기절해있는 걸 죽은 줄 알고 숲 속에 버려졌는데, 농부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남았고, 미국이 그를 향해 헬기에서 총탄을 갈겼지만 총탄은 그를 빗겨갔다고 한다. 아니 무슨 불사신인가? 추방도 당하고 온갖 우여곡절 끝에 그는 2006년 1월, 남미 대륙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에보는 남미의 종속이론을 바탕으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며, 볼리비아의 체 게바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별명을 갖기엔 체가 너무 잘생겨서 나는 인정하기가 싫다!
 
찬성이 있으면 항상 반대도 있는 법, 볼리비아 동부의 산타크루즈 주는 볼리비아의 경제적 수도라고 불리는 곳이다. 고산지대인 라파스와는 달리, 산타크루즈에 도착했을 때, 너무 더워서 입고 있던 니트를 훌렁훌렁 벗어 제꼈던 기억이 있다. 사람들의 생김새도 혼혈인 메스티조가 많고, 백인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원주민 일색인 라파스 일대와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부의 도시라 불리는 산타크루즈는, 볼리비아가 1985년 광업 위기로 수출이 급감하고 외화에 굶주리게 되면서, 발달된 농산업을 중심으로 볼리비아의 경제적 우위를 점하게 된다. 이러한 동-서간의 차이점은 정치적으로도 많은 충돌을 불러 일으켰다. 모랄레스 정부는 부의 재분배 정책을 실시하여, 부유한 산타크루즈 주로부터 막대한 세금을 걷었다. 또한 반미, 반 제국주의정책은 외국인 투자자들을 환영하는 산타크루즈 주의 분위기와도 맞지 않았다. 에보의 정치기반인 라파스와 산타크루즈 간에 가열된 정치적 대립의 가장 결정적인 것은 토지개혁문제라고 보는 사람도 많다. 에보가 당수로 있는 MAS당이 개정한 신헌법에서는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토지 면적의 한계를 1헥타르로 제한하고 있다. 구 헌법에는 토지 소유의 제한이 없기 때문에 산타크루즈를 중심으로 한 동부 지역의 대지주들은 엄청난 면적의 토지를 소유해 오면서 각종 이익을 누려왔다는 것이 MAS 쪽의 주장이다. 
 
 
영화 ‘축구의 신 마라도나’ 보다 왈칵
 
하지만 지난 2008년 5월 4일에 시행된 산타크루즈 자치주 실행에 대한 주민투표에서, 80% 이상이 자치주를 찬성하는 결과가 나왔다. 당일 산타크루즈에서는 주민투표를 주최하는 주 정부 쪽과 에보를 지지하는 농민들 간의 무력충돌이 발생해 한 명이 사망하고 20여 명이 부상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산타크루즈 주에 이어 베니 주와 푼도 주, 최남단의 타리하 주까지 자치주 투표를 행해, 높은 찬성률로 통과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에보는 2008년 8월 10일, 정부의 신임을 묻는 투표를 거행하기로 하고, 정부를 신임하는 투표수가 과반수에 미달할 경우, 자진해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결과는 과반수를 넘긴 63%의 지지율 (라파스-81% 오루로-81% 포토시-79% 코챠밤바-71% 산타크루즈-39% 베니-43% 푼도-49% 타리하-47%) 로 재신임을 얻는 데 성공했다.
 
현재 정치보복 논란에 휩싸이고 있고 이런저런 정책에 대한 반감과 차베스의 개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그지만, 지난해 남미의 다른 국가들은 GDP가 다 감소했는데 비해 남미대륙에서 가장 높은 3%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하는 등의 실적을 냈다. 절대적 다수인 원주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그가 물러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 본다. 뭐 내가 에보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남미를 여행하는 동안 볼리비아만큼 시장의 상인들, 길거리에서 품을 파는 빈곤층까지도 대통령을 알고 자신 있게 좋아한다 말하는 나라는 없었다. 충분한 정보가 없어서 그를 지지한다 하더라도 과반수가 훨씬 넘는 득표율로 재선한 대통령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가 싫다고 해서 무조건 비난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한국의 현 정치 상황과 비교해 보면 꽤나 부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여행 내내 들었다.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떠나서, 다수가 지지하는 대통령이 있고 그 대통령은 민족과 역사, 전통을 중요시하며, (표면적으로라도) 다수 약자의 편을 들어주고 자신의 혈통을 자랑스러워한다. 어떻게 보면 한 나라의 수장으로서 당연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어버린 사회이다. 
 
얼마 전 “축구의 신 마라도나”라는 영화를 봤는데, 그 영화에 에보가 몇 번이고 등장했다. 괜스레 반가워져서 그를 가까이 보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망할 카메라는 주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진을 남겨주지 않았지만. 내 방 구석에는 원주민을 대표하는 동시에 그를 대표하는 왈리팔라(원주민의 깃발)가 있다. 그 깃발을 보면서 오늘도 추억에 잠긴다. 곧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유럽이고 자시고 확 그냥 볼리비아로 떠나고픈 심정이다.
 
글·사진 황라연
 
※참고자료
남미 인권기행 (하영식 저, 레디앙)
남미를 말하다 (김영길 저, 프레시안 북)
빼앗긴 대지의 꿈 (장 지글러 저, 갈라파고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4월호
위키피디아
트랜스 라틴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 연구소)


 
P2.jpg ◈ 황라연=호랑이띠. 이름인 라연을 굴려서 발음하면 Lion. 온순하나 속은 맹수와도 같은지는 잘 모르겠음. 혼자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함. 한국에서는 주기적으로 섬에 청승 떨러 감. 좋아하는 섬은 관매도. 중고등학교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고 한국에 돌아와 중앙대학교에 거저 먹기라는 특례로 입학.(그래도 나름 공부 열심히 했음)

 새내기 때 “학고 한번 맞아줘야 간지”, “시험기간에 먹는 술은 꿀맛” 등의 고학번 선배들의 유혹에 넘어가 평점 0.15를 기록. 그 뒤론 정신 차리고 공부하다 촛불집회 때 미친듯이 시위하느라 성적 말아먹고 정치에 눈뜨게 됨. 2007년엔 인도로 떠났고 2009년엔 남미로 떠났음. 다음은 아프리카로 갈 예정이지만 일단 졸업은 해야겠다는 현실에 타협하여 방학동안 유럽이나 다녀올 생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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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왜 떠났나
2.
콜롬비아-남미에서의 첫 식사
3.에콰도르-거지가 된 사연
4.
페루①-가방은 털렸어도
5.
페루②-첫 히치하이킹
6.페루③-드디어 아마존
7.
페루④-정글속 대도시
8.페루⑤-숙제같은 마추피추
9.볼리비아①-무지개가 떴다
10.볼리비아②-에보 모랄레스(선거일 풍경)
11.볼리비아③-사하마의 트럭운전수
12.볼리비아④-체 게바라와 고양이
13.볼리비아⑤-크리스마스,그리고 새해
14.볼리비아⑥-신음하는 은광
15.칠레-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16.아르헨티나①-죽음보다 더 한 더위
17.아르헨티나②-그냥 가서 보시라
18.아르헨티나③-어, 민가협이?
19.아르헨티나④-여기에도 스위스가?
20.버스는 구름을 타고
21. 혼자, 진짜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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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