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셋의 ‘울릉 명물’로 기립박수 받는 꼴등 길에서 만난 사람

울릉 도동항 상호 아저씨
부둣가 궂은 일 도맡는 정신지체 장애인
1천원 2천원 꼬깃꼬깃, 장가 가는 게 꿈
 
 
Untitled-2 copy.jpg매년 5월, 울릉군 울릉읍 도동 울릉초등학교에선 군민체육대회가 열린다. 울릉군민축제의 한 행사다. 달리기 순서가 오면 주민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받는 사람이 있다. 주민들이 가장 반가워하는 손님이자 선수다.
 
‘상호 아저씨’. 올해 일흔 셋의 이상호 할아버지다. 날랜 선수들이 순식간에 결승점을 통과한 뒤에도 ‘상호 아저씨’는 느릿느릿 운동장을 돈다. 모두 이분이 결승점에 도착할 때까지 기립박수를 보낸다. 본부석엔 푸짐한 선물을 따로 마련해 둔다.
 
‘상호 아저씨’는 정신지체 장애인이면서 주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존재다. 도동항 부둣가에서 명성이 자자한 일꾼이자 청소원이다.
 
“상호 아저씨 없으모 클난다. 도동항 일이 안 돌아간다.” “그 사람 모리모 울릉도 사람 아이다.” “일을 원캉 좋아해야지. 일거리 안 주모 몇날 메칠을 삐져분다.”
 
평생을 도동항 부둣가에서, 배에서 짐 내리고 나르고, 청소하고 잔심부름하며 궂은일을 도맡아 해왔다. 부둣가에서 오징어를 파는 하경자(55)씨가 오징어 뒤집어주기 작업을 하던 ‘상호 아저씨’에게 다가가 묻는다.
 
“오늘 일 마이 했어예?” “마이 했지.” “말라꼬 그래 일을 마이 할라 합니꺼?” “집 사야지.”
 
청소하고 심부름하고 수레 끌고 짐 나르며 1천원도 받고 2천원도 받고 1만원도 받는다. 받는 즉시, 수협 입금 창구로 달려간다. 한 아저씨가 말했다. “저 양반은 옇는 것만 알지, 빼는 건 모리는 분이라.”
 
상호 아저씨의 낡은 점퍼 윗주머니엔 손때 묻은 통장이 하나 들어 있다. 1천~2천원씩의 입금 기록이 이어지는 통장엔 이미 거액(?)이 들어 있다. 숫자를 잘 모르시는 ‘상호 아저씨’에게 이웃들은 금액을 과장해서 칭찬하곤 한다. “아저씨, 인자 10만원만 모으면 1억원 되겠네예. 참 마이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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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항 한 식당 아주머니는 “그 아저씨 오시면 그냥 식사 한끼 내주는 식당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지나가다 아저씨를 만나면 호떡 사 건네고 커피 빼 건네는 이도 많다. ‘상호 아저씨’의 꿈은 집 사서 장가드는 것이다. 하경자씨가 “저 양반이 연세가 많애도 늘 보믄 맨 장가가는 기 소원”이라고 귀띔했다.
 
울릉군청 자치행정과 군민체육담당 이종택씨는 “‘상호 아저씨’가 5월 체육대회에 빠지면 재미가 없다”며 “도동항의 대표일꾼이자 대표선수”라고 말했다.
 
상호 아저씨’가 도동항 한편에 머물고 있는 한, 주민들의 가슴은 언제나 훈훈하고 넉넉하고 또 든든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울릉/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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