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0년 오롯한 자연의 숨이 내 몸 깊숙이 걷고 싶은 숲길

[걷고 싶은 숲길] 포천 국립수목원(광릉숲)

 

맑으면 맑은 대로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흠뻑

백두산 호랑이 반달가슴곰도 ‘어슬렁 어슬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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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광릉 숲에 가서 젖었다. 흠뻑 젖은 숲 안으로 이어진 향기로운 흙길. 우산 쓴 연인들도 비옷 입은 부부들도 촉촉이 젖어 숲길을 걷고 또 걸었다. 삼색의 물봉선, 흰 쑥부쟁이, 말라가는 서어나무 열매들은 저마다 빗방울을 달고 반짝이며 숲길을 밝혔다.

 

안개비 자욱한 숲으로 들어가던 20대 한 쌍이 마주보며 말했다. "비 오면 어때. 기분만 더 좋은데." "그래. 분위기 너무 좋다." 바짝 붙어 팔짱을 낀 그들은 우산을 하나만 준비했다.

 

국립수목원 숲해설가 이연규(67)씨가 말했다. "숲에서 방출되는 음이온은 혈액순환을 촉진시키고 머리를 맑게 해주죠. 기분이 좋아지는 게 당연합니다."

 


 

7월부터 토요일에도 개방…산불 한번 안 겪어

 

맑으면 맑은 대로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들입다 걷고 싶은 숲길이다. 지친 분들, 울화 치미는 분들, 덜 익은 사랑 만지작거리는 분들, 이 숲길에서 한나절쯤 쉬어갈 만하다. 곳곳으로 뻗은 숲길마다 이미 나뭇잎들이 황망히 굴러다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게 한다.

 

국립수목원 쪽은 지난 7월부터 주말(토요일)에도 수목원을 개방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숲 훼손을 우려해 평일에만 예약자에 한해 숲 탐방을 허용했었다.

 

광릉숲이란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의 국립수목원(옛이름 광릉수목원)을 포함한 광릉(남양주시 진접읍) 주변의 천연림을 말한다. 국내에서 가장 잘 보전돼 온 온대림으로 꼽힌다. 굴참나무·졸참나무·갈참나무 등 참나무류와 서어나무·오리나무·까치박달나무 등 활엽수들이 '극상림'(다양한 식생이 안정된 상태를 이룬 산림)을 이루고 있다. 1468년부터 나라에서 관리해 온 아름다운 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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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8 년은 조선의 7대 왕 세조가 세상을 뜬 해다. 세조가 이 곳에 묻힌 뒤 왕실에선 능 주변 숲의 벌목을 금하는 등 엄격하게 관리해 왔다. 세조와 왕비 정희왕후의 능이 바로 광릉이다.

 

광릉 주변과 맞은편 소리봉(537m)·물푸레봉(478m) 자락에 걸친 2240㏊의 천연림 중에서 500㏊에 이르는 국립수목원 지역을 개방하고 있다.

 

숲해설가 이씨가 말했다. "오백년 동안 산불 한번 겪지 않은 자연림입니다. 일제도 이 숲의 가치를 인정해 임업시험림으로 지정했고, 육이오 때도 폭격을 모면해 숲이 살아남을 수 있었죠. 재선충 침입도 아직 없습니다."

 

이 아름다운 숲은 자연을 배우고 즐기며 쉬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한, 국내 최고의 활력 재충전소라 할 만하다. 자연 그대로의 숲을 활용해 탐방로를 내고, 호수를 들이고, 습지를 조성하고, 최소한의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쉬엄쉬엄 걷다보면 세 시간은 후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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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을 중심으로 관상수를 모아 놓은 관상수원, 한반도 모습을 본뜬 수생식물원, 시각장애인을 위해 냄새나 촉감으로 구분하기 쉬운 수목을 모아 놓은 '손으로 보는 식물원', 습지식물원, 난대식물원(온실), 양치식물원, 덩굴식물원, 향료식물원 등 11개의 전문 전시원에서도 다양한 식물을 만날 수 있다. 국내외 산림 관련 자료를 전시한 산림박물관, 세 마리의 백두산 호랑이, 반달가슴곰 등 18종의 야생동물을 볼 수 있는 산림동물원, 산림생물표본관(연구시설)도 들어서 있다.

 

수목원을 한 바퀴 둘러보는 데 두 시간 가량 걸리지만, 숲과 나무·꽃의 자태를 감상하며 쉬엄쉬엄 걷다 보면 서너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탐방객들이 빼놓지 않고 찾는 곳은 460여m에 이르는 숲 생태 관찰로와, 숲으로 둘러싸인 호수 육림호 주변 산책로다. 생태 관찰로는 울창한 자연림 사이로 나무판을 깔아 만든 매혹적인 길이다. 숲 향기에 젖어 나무와 꽃들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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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숲을 즐길 줄 아는 이들에게 더 가치있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해설가 이씨는 "아직도 이곳을 유원지로 알고 찾아오는 분들이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런 분들은 "왜 개방을 제한하느냐", "왜 좀더 여기저기 멋진 꽃들을 심어 가꾸지 않느냐"며 불만을 털어놓는다고 한다.

 

이씨는 개인적인 의견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오히려 개방을 더 엄격하게 제한해야 합니다. 토요일 개방 이후 벌써 숲길 주변과 일부 나무들이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어요."

 

숲을 본질적으로 위협하는 것은 지구 온난화다. 한반도가 아열대기후 지대로 바뀌어가면서 광릉숲도 일부 변화 낌새가 보인다고 한다. 이씨는 "야생화들의 개화 시기나 단풍 시기가 크게 앞당겨지거나 늦어지는 등 들쭉날쭉해진 것이 그런 변화 중 하나"라고 말했다.

 

국립수목원뿐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는 광릉 들머리 숲길도 걸어볼 만하다. 능에 이르는 300여m의 짧은 숲길이지만, 수백년 된 키다리 전나무·소나무들과 활엽수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평일 하루 3회(11시·2시·4시, 토요일엔 4회)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 설명을 들으며 왕릉과 왕후릉을 둘러볼 수 있다.

 

국립수목원엔, 정문 옆 '방문자의 집'에 작은 매점이 하나 있을 뿐 식당도 카페도 없다. 도시락을 준비하면 육림호 앞 휴게광장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포천·남양주/글·사진 이병학 한겨레 여행전문기자 leebh99@hani.co.kr, 동영상 이규호 피디

   
◈ 국립수목원 숲 두 배 즐기기

자동해설기는 필수…요일별로 체험·공예 교실

 

Untitled-11 copy.jpg<무료 숲 해설가를 찾아라>

수목원을 자유롭게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숲도 알고 나서 보면 더 멋지고 뜻있게 다가온다. 국립수목원 정문 옆 해설·봉사센터엔 10명의 숲 생태 해설가들이 대기하고 있다. 매시 정각 정문을 출발해 수목원(1시간)과 산림박물관(30분)을 둘러보며 설명을 해준다. 1회 20명 안팎으로 제한한다.   

 

<무료 자동 숲 해설기도 있다>

해설가를 따라다니지 않고 개별적으로 숲을 공부하며 둘러볼 수도 있다. 수목원 정문 '방문자의 집' 안내소에선 수목원 자동해설기를 거저 빌려준다. 신분증을 맡기면, 휴대폰만 한 해설기와 이어폰, 숲 해설 포인트 목록을 준다. 1~99번의 수목원 단지별 목록을 보고 해당 번호를 누르면 음악과 함께 해설이 시작된다. 모두 40대의 해설기 중 20대는 영어·한국어 겸용이다.

 

 

<백두산호랑이 보려면 무료 산림동물원 관람 신청을>

수목원 안엔 100㏊ 넓이의 산림동물원이 있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내리며 백두산호랑이, 반달가슴곰, 독수리, 수리부엉이, 늑대 등 18종의 야생동물을 만나볼 수 있다. 하루 세 번(오전 10시30분, 오후 1시30분, 3시) 해설가의 안내로 둘러본다. 방문자의 집 안내소에서 별도 무료 입장권을 받아야 한다. 1회 100명 제한. 1시간 정도 소요. 길이 다소 험해 노약자·유아·임신부·휠체어·유모차는 입장 불가.
  
<산림문화 체험 교실>

산림박물관 부근 온실 마당에선 날마다 산림문화 체험·공예 교실이 열린다. 화요일엔 꽃누르미(압화·1천~3천원), 수요일엔 닥종이인형 만들기(1쌍 1만원)와 한지 뜨기(2천원), 목요일엔 비누 만들기(3천원)와 한지 뜨기, 금요일엔 목공예(5천원부터), 토요일엔 비누·인형 만들기가 진행된다.

 

 

◈ 국립수목원 여행 쪽지

 

포천 국립수목원 탐방

 

숲 보전을 위해 일요일·공휴일·월요일엔 문을 닫는다. 평일과 토요일에도 탐방일 닷새 전 인터넷(www.kna.go.kr)과 전화 예약을 통해 하루 입장객을 5천명(평일)·3천명(토요일)까지만 받는다. 예약이 많지 않을 땐 당일 예약도 가능하다. 입장료 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65살 이상 어르신, 6살 이하 어린이 무료). 수목원 정문 주차장 주차료 3000원(경차 1500원). 오전 9시~오후 6시 개장(입장은 오후 5시까지). 11월~3월엔 관람시간이 1시간 당겨진다. 토요일엔 정문 주차장을 노약자·장애인들에게만 허용한다. 일반인은 광릉 앞 주차장(하루 2000원)을 이용한다. (031)540-2000.

 

가는 길

동서울터미널(11번)·천호역(23번)·석계역(7-3번, 73번)·청량리(707번, 88번)에서 광릉내(진접읍 부평리)행 버스 이용. 광릉내에서 21번 버스(의정부행)로 갈아타고 광릉수목원에서 하차한다. 또는 의정부행 버스나 전철을 이용해 의정부역에서 내린 뒤 제2청사 방향으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옛 시내버스터미널에서 21번 버스(포천·광릉내행)를 타고 수목원으로 간다. 20여분 소요. 자가운전의 경우 의정부로 간 뒤 포천 방향 43번 국도를 타고 축석고개 정상 축석검문소에서 우회전해 수목원 팻말 따라 10㎞쯤 가면 오른쪽에 정문이 나온다. 퇴계원 쪽에서 47번 국도 타고 가다 광릉내에서 빠져나가 좌회전해서 가도 된다.

 

먹을거리

수목원길 들머리인 소흘읍 직동리·고모리, 진접읍 부평리 일대에 식당·찻집·라이브카페들이 무수히 깔려 있다. 국립수목원 숲 해설가들은 자주 가는 집 세 곳을 추천했다. 쇠고기·돼지고기 숯불구이집인 광릉내의 광릉불고기(031-527-6631), 생선구이 쌈밥을 하는 직동리의 대청마루(031-541-2289), 평양식 김치말이국수를 하는 부평리의 함병현 김치말이국수(031-533-6377)다.

 

부평리 '함병현 김치말이국수' 집은 포천 내면 47번 국도변 골목 안에서 '함병현 김치말이국수'(옛이름 곰터먹촌)를 운영하고 있는 함병현씨의 세째아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본점과 똑같은 맛과 형식으로 평양식 시원새콤한 국수를 말아낸다.

 

광릉내의 광릉불고기 집은, 최근 대부분의 식당들이 먹다 남은 음식·반찬을 모아 다시 내놓는 '돼지우리식 상차림'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와중에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집이다. 이미 9년 전부터 음식·반찬들이 남으면 전량 폐기해 왔다는 식당이다.

 

식당 주인 주덕현(49)씨가 한켠에 진열된 뷔페식 반찬 진열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숯불구이집을 시작할 때부터 손님들이 원하는 반찬을 원하는 양만큼 갖다 먹을 수 있도록 해왔다. 음식 주문을 하면 소량의 반찬을 기본으로 제공하고 더 원할 때만 직접 갖다 먹게 하는 방식이다."

 

숯불구이 집인데도 여느 고깃집과 달리, 식당 안에서 자욱한 연기나 고기 타는 냄새를 맡을 수 없다. 모두 조리실에서 직접 구워다 주기 때문이다. 1인분에 돼지불고기 7천원, 소불고기(호주산) 1만원인데 돼지불고기가 더 인기를 끈다. 반찬도 깔끔한 편이다. 손님이 몰리면서, 손님 순환을 위해 추가 주문은 받지 않고, 술은 반주용으로 식탁당 1~2병씩만 판다. 오전 11시30분~저녁 8시30분 영업. 주차는 식당앞 길가에 해야 한다. 매주 월요일에 쉰다.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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