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잡이 새 메카, ‘황금빛 마술’ 출렁출렁 강제윤 시인의 섬 기행

   서해의 황금시대, 파시 ③ 추자도
 수호신 따라 금기 달라…지금은 레이다가 신
 씨알 말리는 마구잡이로 연평 눈물 되밟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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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1월1일, 상추자도 대서리. 추자항 주변 물량장에서는 조기 따는 작업이 한창이다. 연안유자망 어선 해창호(7.03톤)도 부두에 정박 작업 중이다. 오늘 해창호는 추자에서 제주 사이의 바다에서 조업했다. 해창호는 조기가 걸린 그물을 그대로 싣고 입항했다. 품팔이를 나온 마을 여자들과 선원들 12명이 일렬로 서서 배에 실린 그물을 뭍으로 끌어당기며 조기를 딴다. 조기들이 과일처럼 주렁주렁 매달렸다. 추자도 역시 올해 조기는 잘다.
 오늘 해창호의 어획량은 200여 상자. 잡어들은 추려내고 조기들만 한 곳으로 모은다. 모든 작업을 마치려면 7~8시간은 족히 걸린다. 그물에서 따낸 조기들은 깨끗이 세척한 뒤 얼음물에 한 시간 남짓 재워둔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 뒤에는 다시 꺼내 나무 상자에 넣고 얼음을 채운다. 하루 정도 지나면 조기의 몸이 더욱 노란 빛깔로 변한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해창호 선주 부인의 대답이 걸작이다.
 “조기가 마술을 부리나 보죠.”
 
 연평도 신은 임경업 장군, 추자도는 최영 장군
 
 낚싯줄 재료인 경심 줄로 만든 그물은 그 자체로 바늘 없는 낚시다. 조기들은 낚시가 아니라 그물에 낚인다. 그물코에 머리가 걸린 조기들은 오도 가도 못하고 발버둥 치다 바다 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조기 따는 작업장 옆에서 선주 부인이 저녁상을 차린다. 삼치와 조기 찜, 김치찌개, 방어전, 고등어 회까지 한상 가득 푸짐하다. 선주 부인이 나그네에게도 저녁을 권한다. 허기진 나그네는 염치없이 합석한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인도네시아 출신 무슬림 어부를 위해 선주 부인은 해물 된장찌개를 따로 끓였다.
 해창호 선장 겸 선주 지의석(55살)씨는 30년 동안 배를 탔다. 96년 4월, 배를 새로 지으면서 횡간도의 박수무당을 모셔다 뱃고사를 지내고 배서낭을 모셨다. 연평도 어업의 신은 임경업 장군이지만 추자도의 신은 최영 장군이다. 최영 장군 사당에도 일 년에 한 번씩 제를 올린다. 그때는 한 해 동안 부정한 일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 중에 제주를 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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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에는 수호신인 배서낭을 모셨다. 지금은 금기들이 거의 없어졌으나 옛날에는 배에 모시는 서낭에 따라 금기도 많았다. 대부분은 여신을 서낭으로 모시지만 다른 동물들을 서낭으로 모시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테면 뱀을 서낭으로 모신 배의 경우 제사를 지낼 때 돼지고기 대신 명태나 계란 등을 제물로 올렸다. 뱀과 돼지는 상극인 까닭이다. 뱀과 생김이 비슷한 장어를 먹는 것도 금기시 됐다. 배에서는 닭고기를 먹으면 안됐다. 계란도 실을 수 없었다. 깨지는 것은 어떤 것도 실을 수 없었다. 유감주술, 깨진다는 것은 파선을 의미한다. 난파에 대한 불안이 그런 금기를 만든 것이리라. 하지만 지금은 배에서 닭도리탕도 먹고 계란말이도 해먹는다. 풍어를 예측하고 조난을 피해갈 수 있는 GPS와 레이다, 어군탐지기 등의 첨단 장비들이 갖춰지면서 자연스럽게 금기가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배서낭을 정성껏 모시는 풍습만은 여전하다. 배를 새로 짓게 되면 기존의 배에서 모시던 배서낭을 내려 불살라 버리고 다시 모신다. 뱃고사는 첫출어 때 한번 지내는 것이 보통이지만 어장이 잘 안 되는 경우 몇 차례 더 지내기도 한다. 처음 잡힌 생선은 배서낭께 바친다. 배에 사고가 나면 무엇보다 먼저 배서낭을 바다로 던진다. 그래야 인명 피해가 없다고 믿는다. 배를 지켜내지 못한 배서낭은 언제든지 버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신도 제 역할을 제대로 할 때만 신이다. 섬 사 람들은 신에 대해서도 주체적이다. 우리의 토속 신앙은 고통을 주는 신까지도 신으로 떠받들어야 하는 서양의 종교에 비해 얼마나 합리적인가.
 
 인구 3천명이 못되는 작은 섬 어획고는 연간 400억 원
 
 조기 중에서도 유자망 어선으로 잡은 조기들이 최상품의 굴비가 된다. 자루그물에 함께 잡히는 저인망이나 안강망 조기들은 서로 부딪치면서 비늘이 벗겨져 버린다. 조기는 비늘을 먹을 수 있는 물고기다. 비늘이 있어야 제사상에도 오른다. 비늘이 살아 있는 유자망 조기는 황금 비늘로 인해 황금 굴비로 변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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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자수협의 김금충 상무는 추자도 조기잡이 역사가 시작 된 것을 옆에서 지켜봤다.
 추자도 조기 유자망 어업이 시작 된 것은 20년 전. 추자 수협에서는 그 무렵 삼치잡이를 하던 삼치 유자망어선들을 모두 조기 유자망어선으로 바꿨다. 지금 전국에서 조기 유자망 어선이 가장 많은 곳이 추자도다. 추자에 60척, 목포에 50여척, 군산이나 여수에는 10여척, 법성포는 4~5척 정도의 유자망 어선들이 조기를 잡는다. 안강망이나 저인망 어선들의 감축 덕을 가장 많이 본 것이 유자망 어선들이다. 인구 3천명이 못되는 작은 섬 추자도에서 조기잡이로 올리는 어획고는 연간 400억 원. 추자도는 가히 조기의 섬이다. 추자 수협에서는 추자도에서 위판 되는 조기의 70% 가량을 직접 구매해 굴비로 가공한다. 하지만 굴비는 옛날처럼 마른 굴비가 아니다. 요즈음 나오는 작은 조기들을 과거처럼 겨우내 해풍에 말리는 방식으로는 수지를 맞출 수 없는 까닭이다. 냉풍 건조기로 말리거나 한 두 시간 햇볕에 널어 물기를 뺀 뒤 급랭시켜 보관한다. 도시 소비자들이 마른 굴비를 선호하지 않는 것도 재래식으로 굴비를 제조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실상 굴비라기보다는 반 건조 조기에 가깝다. 현재는 영광 굴비를 만드는 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추자도 유자망 어선들은 조기잡이가 끝나면 ‘잡어짓기’를 한다. 5월에는 옥돔을 잡고 6~ 7월은 고등어를 잡는다. 경비 부담에 비해 어획고가 적은 잡어 짓기에는 어선들의 30% 정도만 참가한다.
 아직 추자도에는 조기잡이 금어기가 없다. 조기의 씨알이 작아지면서 위기감을 느낀 선주들이 그물코의 크기도 제한하고 자체 금어기도 설정하자고 논의 중이지만 여전히 크든 작든 많이만 잡겠다는 선주들이 있어서 결정이 쉽지 않다. 작은 조기들이 일시에 많이 잡히면 제대로 처리 못해 썩히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값이 싼 작은 조기들은 수지가 맞지 않아 그대로 방치하기 때문이다. 현명한 선주들은 수입도 못 올리면서 조기의 씨알을 말리는 어리석은 어로가 결국 제 발등을 찍게 될 거라는 사실을 잘 아는지라 걱정이 크다.
 
 필요엔 풍족하지만 욕망엔 언제나 모자란 곳, 그것이 세상
 
 금년은 작년(2007년)보다 조기의 씨알이 더 작아졌다. 작년만 해도 상자 당 130마리짜리가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했지만 올해는 130마리 상자가 30% 이하로 줄고 150~180마리 상자가 대부분이다. 조기 풍어가 추자도 경제에 활기를 주고 있지만 어린 조기의 씨를 말리는 이런 무분별한 조기잡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바다에서 멸치가 잡히지 않는 것도 불길한 징조다. 멸치와 함께 먹이사슬의 맨 아래에 있는 자하(작은 새우)도 거의 잡히지 않는다. 조기나 방어들이 예년에 비해 살이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어업의 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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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산전문가들도 흑산도와 제주 근해 참조기 풍어는 참조기의 자원량 증가와는 무관한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고 진단한다. 1974년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조기는 9만4천톤이 잡혔지만 그 후 급격히 줄기 시작해 1984년부터는 1만톤 미만으로 떨어졌다. 2007년에는 7천여톤에 불과했다. 올해는 조기 어획고가 다시 1만5천톤까지 늘 것으로 예상 되지만 이러한 추세가 언제까지나 계속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흑산도나 제주 근해에서 잡히는 조기의 90% 이상이 2살 미만이며 평균 몸길이는 14~16cm에 불과하다. 과거에 비해 시기가 당겨졌다 해도 조기들이 산란하기 위해서는 최소 2년(몸길이21.7cm) 이상은 성장해야 한다. 지금처럼 어린 새끼들에 대한 남획이 계속 된다면 흑산이나 추자 어장에서 조기가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조기를 따는 작업장의 불빛으로 추자도의 가을밤은 환하다. 추자 어화가 부둣가에 피었다. 기관 돌아가는 소리, 수천 촉 백열등 아래 어부들은 그물을 당겨 조기를 딴다. 밤 10시, 이제 추자도의 조기 따는 일도 끝이 났다. 일꾼들은 돌아가고 선주와 선원들이 남아 그물을 세척하고 다시 배안으로 끌어 올린다. 내일의 출어 준비를 마친 다음에야 선원들의 고단한 하루도 마감 될 것이다. 이 조기잡이 풍경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 연평도와 칠산 어장에서 조기가 멸족한 길을 흑산도와 추자도가 그대로 밟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은 불편하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미래에 눈 감는 선주들의 욕심이 줄지 않는 한 희망은 없다. 세상은 인간의 필요를 위해서는 충분히 풍족한 곳이지만 인간의 욕망을 위해서는 언제나 모자란 곳이다.
 
  강제윤(시인·<섬을 걷다> 저자) 블로그 http://blog.naver.com/bogil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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