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빼닮은 '대한민국 명승지 1호' 길따라 삶따라
2008.07.31 11:06 너브내 Edit
[길따라 삶따라] 오대산 소금강 계곡
13㎞ 물길 숲길 걸음걸음 폭포에 더위 ‘풍덩’
산 너머 바다가 발밑…피서 ‘종합 선물 세트’
| |
작은 금강산 계곡이라 일컫기에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골짜기다. 구르다 멈춘 바위들은 다 집채만 하고 널찍한 암반을 후벼파며 굽이치는 물줄기는 맑고 거침없다. 크고 작은 폭포들이 즐비한데, 물살에 파이고 물 고인 웅덩이는 깊어서 검은빛이다. 이 경치를 보러 오르는 울창한 숲길은 거닐기에 적당하고, 물가의 길과 다리는 잘 정비돼 있다. 1970년 정부는 이곳을 대한민국 명승 1호로 지정했다.
야영장 앞부터 계곡…올라갈수록 폭포와 깊은 소 즐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의 소금강 계곡은 오대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오대산 국립공원은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과 강릉시 연곡면, 홍천군 내면에 걸쳐 있다. 비로봉(1563m)·호령봉(1561m)·상왕봉(1491m)·두로봉(1421m) 등 오대산 줄기와 동대산(1433m)·황병산(1407m)·노인봉(1338m) 등의 고봉들이 솟았다.
소금강 계곡의 물줄기는 노인봉 동쪽 밑에서 발원해 흘러내리다가 연곡천과 합류해 동해로 빠져나간다. 노인봉이란 흰 산봉우리가 백발노인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물줄기의 멋진 경치는 6번 국도에서 소금강으로 드는 초입부터 드러나지만, 본격적인 바위계곡은 식당과 민박집이 즐비한 삼산2리 내동마을 주변에서부터 시작된다. 야영장 앞에서부터 암반을 휘돌아 흐르는 물길이 인상적인데, 상류로 오를수록 계곡은 거대한 바위들과 폭포와 깊은 소들이 줄을 잇는다.
멋진 폭포와 소, 암반 들엔 무릉계, 십자소, 연화담, 식당암, 구룡폭포, 만물상, 선녀탕, 백운대 등 각각 내력과 전설이 깃든 이름들이 붙어 있다. 구룡폭포, 만물상, 선녀탕 등 일부는 금강산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골짜기 마을 이름은 본디 청학동이었다. 노인봉도 청학산이었다. 400여 년 전 율곡이 이곳에 들렀다가 소금강이란 이름을 붙였다. 율곡이 청학동을 탐방하고 쓴 '청학산기'에 그런 내용이 전한다고 한다. 골짜기마다 율곡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신라 마의태자 흔적 엿볼 수 있는 식당암과 피골
금강사 지나 잠시 오르면 나타나는 식당암은 물가에 깎은 듯이 반듯하게 앉은 거대한 암반이다. 식당암이란 이름은 마의태자가 군사를 훈련시키면서 이곳에서 밥을 먹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이 골짜기를 탐방하던 율곡 선생도 여기서 밥을 지어먹었다고 한다.
흔히 널찍한 바위의 규모를 설명할 때 '몇 명이 앉을 수 있느냐'로 크기를 가늠하곤 한다. 오대산국립공원 소금강 분소의 김동섭(29)씨는 "식당암은 장정 100명이 동시에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는 바위"라고 말했다. 만물상 상류 쪽에는 "장정 50명이 동시에 앉아 쉴 수 있는" 백운대 바위가 있다. 만물상 절벽엔 장정 대여섯명이 동시에 통과할 만큼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데, 해와 달이 넘나들던 구멍이라 하여 일월암으로 불린다. 소금강 주차장 옆엔 나무 굵기가 장정 두 명이 마주 안고 손을 잡을 만한 커다란 소나무가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령 450년의 금강송으로 마을 당산나무다.
소금강 골짜기의 진경은 본류 중간의 왼쪽 지류인 구룡폭포 줄기다. 옛날 이 골짜기를 피골이라 했는데, 신라말 마의태자의 군사들이 고려 군대와 싸울 때 크게 패하면서 흘린 피가 내를 이뤘다 해서 나온 이름이다.
이 골짜기로 아홉개의 볼 만한 폭포가 상류 쪽으로 이어진다. 맨 위쪽에 암반을 따라 깊은 소가 줄지어 있는 상팔담이 있다. 물살에 파인 깊은 소들의 빛깔은 모두 검은색이다. 구룡연에서 아홉마리의 용이 나와 폭포를 하나씩 차지했다고 한다. 상팔담 위쪽 능선엔 마의태자가 쌓았다는 아미산성 흔적이 남아 있다.
선인들이 바위에 새긴 글씨들 볼 만
골짜기 바위마다 선인들이 새긴 크고 작은 글씨들이 남아 있다. 구룡연 옆 바위자락엔 조선 중기 삼척 부사를 지낸 성리학자 미수 허목이 쓴 독특한 전서체의 '구룡연(九龍淵)'이란 글씨가 있다. 6번 국도 옆 소금강 들머리 다리 옆 바위에 '선녀가 도취될 정도로 아름답다'는 뜻의 취선암(醉仙岩), 그 밑 바위에는 지기대(知己臺)란 글씨가 있다.
커다란 바위와 폭포가 어우러진 무릉계 반석엔 '무릉계'란 글씨가 있다 하나 찾을 수 없다. 금강사 앞 이능암이라 불리는 거대한 둥근 바위에 쓰인 '소금강'이란 글씨가 율곡의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신빙성이 없다는 게 향토사학자들의 견해다. 이능계원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삼산2리 산자락엔 청학사 터가 있다. 규모가 큰 절이었으나 일제 때 불탔다고 알려진다. 절터 들머리 길 오른쪽 산비탈 밭가에 다섯개의 크고 작은 부도들이 기울어지고 쓰러진 채 방치돼 있다.
소금강 오가는 길에 진고개 밑 송천약수터에 들러 톡 쏘는 물맛을 즐겨볼 만하다. 연곡천 상류 물줄기 옆에 있다.
강릉/글·사진 이병학 한겨레 여행전문기자 leebh99@hani.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