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열어준 사하라 길 따라 하루 188㎞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모로코 시디악페닐~보즈도르/09.01.16~24
30~40m 절벽 낚싯대 드리웠지만 바람만 낚아
펑크 나고 부러지고 찢어지고…, 천마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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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피로를 풀기 위해 하루 쉬어야 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시디악페닐의 아틀라스호텔 레스토랑에서 싱싱한 생선들을 먹으며 하루를 보냈다. 모로코에서는 생선요리가 밀가루를 발라 기름에 튀겨 나왔다. 기름에 튀긴 생선은 고소하나 생선 고유한 맛을 잃어버렸다. 큰 생선 한 마리를 100디람에 사서 절반은 레스토랑에서 기름에 튀겨 먹고, 나머지는 호텔방으로 싸가지고 와서 매운탕을 끓여 2끼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그날 저녁 호텔 직원이 생선만 보면 좋아하는 나를 보고 낚시를 해보지 않겠냐고 의견을 물었다.
 
“낚시? 좋고말고!”
 
이곳으로 오면서 바닷가 절벽 위에 있는 작은 어부의 집들과 간혹 캠핑카를 세워두고 낚시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나는 하루 더 머물기로 하였고 다음날 낚시를 가기로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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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전 레스토랑 옆집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샤인(50세)과 함께 낚싯대를 들고 앞바다로 나갔다. 그곳은 평지나 다름없었는데 아래는 30~40m 높이의 절벽으로 파도가 부서지며 물보라가 일어났다. 정어리를 미끼로 릴낚시를 던졌으나 파도가 높고 바람이 불어 낚시는 되지 않았다.
 
“파도와 바람으로 고기가 안 잡힙니다.”
 
바닷가에서 살아온 샤인도 이런 날씨엔 속수무책이었다. 파도의 물보라가 종종 낚시하는 곳까지 튀어올랐다. 고기는 못 잡았어도 태양 아래서 바람을 쐬며 절벽 밑과 초록색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Korea!” 외친 꼬마, 알고보니 태권도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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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8일 오전 8시 반에 100km 거리의 타파야로 향했다. 순풍으로 바뀐 바람 덕분에 자전거는 잘 달렸다. 그런데 2시간 정도 지나자 바람이 강해지고 모래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가는 모래들이 얼굴을 때렸고 입안에서 모래가 씹혀 물을 마실 때는 먼저 입을 헹궈내야 했다. 고운 모래들이 바람을 타고 물결치듯 도로를 건너갔다. 차량이 옆으로 지나갈 때는 모래안개가 뽀얗게 일어났다. 간혹 도로가 모래로 덮여 있어, 자전거가 모래 위로 들어서는 순간 속도가 갑자기 줄면서 쓰러지곤 했다. 목이 칼칼해져서 나는 패니어 가방 속에 있던 머프를 꺼내 코와 귀를 덮었다. 사하라는 이맘때가 특히 바람이 많이 부는 시기라고 하였다. 길이 굽어져 바람의 방향과 달라질 때 천마는 힘겨워하다 순풍일 때는 신나게 달렸다.
 
Untitled-22 copy.jpg모래가 날리는 사막에서는 휴식을 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마침 도로 옆에 방치된 폐차가 있어서 그 안에 들어가 모래바람을 피하며 잠시 쉴 수가 있었다.
 
모래바람 구간을 지나 한참 달리고 있을 때, 차 한대가 따라와 내 옆에 서더니 차창 밖으로 가레트가 얼굴을 내밀었다.
 
“헤이, 정. 넌 줄 알았다.”
 
그는 프랑스인 친구 차를 탄 채 자전거는 차 뒤에 묶어 가고 있었다.
 
“너는 나를 항상 놀라게 하는구나.”
 
그는 모리타니아 국경까지 차를 타고 갈 것이라고 하였다.
 
“전에 먹은 따진에 며칠째 배탈이나 고생을 했다.”
“고생이 많았겠다.”
 
그와 또한번 작별을 하고 다시 고운 모래가 아스팔트 위를 낮게 흐르는 도로를 지나 오후 4시쯤 타파야로 들어섰다. 타파야 입구는 마치 폭설이 내린 것처럼 모래로 뒤덮여 있었다. 시내로 들어가자 한 꼬마가 “Korea!” 하고 외쳤다. 꼬마는 카메라가방에 부착된 태극기를 보았고, 겉옷을 벗더니 태극기가 그려진 그의 태권도 도복을 보여주었다.
 
카메라를 꺼내들자 주위의 태권도 소년들이 모여들어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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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파야에는 호텔이 두 곳 있었고 나는 허름하지만 발코니가 있는 호텔 방에 40디람에 들었다. 호텔에는 손님이 나 혼자뿐이었다. 40디람에 도미 3마리를 사가지고 와서 주인에게 냄비를 빌려달라고 했다. 주방으로 들어가자 기름때에 찌든 냄비를 꺼내어 가루비누로 닦아서 주었다. 그 냄비로 매운탕을 끓였더니 기름냄새가 배어나와 맛이 찜찜하였다.
 
창고에 맡겨둔 자전거, 예기치않은 펑크에 짜증
 
1월19일 오전 8시 반 타파야에서의 출발은 순풍에 돛을 단 길이었다. 103㎞ 거리의 웨스턴 사하라의 라요네까지 불과 5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라요네에 들어가는 입구에서 군인과 경찰의 검문이 따로 2번 있었고, 나는 오후 2시에 라요네로 들어섰다. 웨스턴 사하라는 모로코에서 독립한 지 얼마 안된 나라로, 시내에는 군인들 모습이 많이 보였다. 모로코 입국비자로 통용되었으며 화폐도 모로코의 디람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라요네에서 앞으로의 장거리 구간에 대비해 생존에 필요한 물품인 빵과 치즈, 간식(스니커즈·아몬드·건포도), 커피, 휴지, 물(1.5ℓ 2병), 주스 한 병 등을 준비했다.
 
다음 도시는 110㎞ 떨어진 렘시드와 렘시드에서 다시 78㎞ 떨어진 보즈도르였다. 오전 8시 반, 자고 있는 호텔 직원을 깨워 출발을 서둘렀다. 직원이 자전거를 가져왔는데, 자전거 바퀴가 펑크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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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주행거리로 100㎞가 넘는 구간은 일찍 출발해야 어둡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이 가능하므로 출발부터 예기치 않은 펑크는 좀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창고에 둔 자기 자전거도 펑크가 났다며 창고 바닥이 문제라는 뜻으로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튜브를 교체한 후 30분 뒤 세찬 바람이 부는 사하라를 향해 출발하였다. 5㎞ 정도 횡풍 구간을 지나자 순풍의 길로 들어서 자전거는 잘 달리기 시작하였다.
 
렘시드로 가는 사막 중간에 허름한 집이 한 채 보여서 들렀다. 몇가지 안 되는 물건을 선반 위에 두고 팔거나 차량들에 물을 제공하는 허름한 가게였다. 나는 그곳에서 바람을 피해 점심으로 가져온 빵과 치즈 그리고 따끈한 커피를 먹을 수 있었다. 가게 주인은 커피값으로 1디람을 받았다. 카페에서는 보통 5~7디람을 받는데 그는 1회용 네스카페 값만 받았다.
 
바람을 타고 달려서 110㎞ 거리의 렘시드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3시 정도였다. 그러나 그 곳에는 하루 저녁 묵어갈 호텔이 없었다. 렘시드에서 다음 도시인 보즈도르까지는 78㎞로 먼 거리였으나 지금의 순풍을 받고 달린다면 저녁 때에는 도착이 가능하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다시 안장 위에 올랐다. 보즈도르까지 188㎞의 거리를 하루에 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바람이 열어준 사하라의 길을 달리기 시작하였다. 시속 25㎞에서 가끔 일어서서 페달링을 하면 30㎞로 달릴 수 있었다. 페트병 물병이 자전거에서 튕겨나가며 도로에 떨어져 퉁퉁거리며 굴렀다. 물통 뚜껑이 튀어나가 물이 절반쯤 빠져나갔다. 나는 잠바로 물통을 싸서 뒷짐 위에 다시 갈무리하고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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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이 길을 지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맞바람이 분다면 자전거 이동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바람 부는 사막에서의 노숙은 날리는 모래를 호흡하게 되어 건강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어쨌건 이곳에서 바람은 내 편이었다.
 
자전거 탈 때는 졸리지 않았는데 차를 타니 졸음 쏟아져
 
시속 30㎞로 달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뻥!” 하는 소리와 함께 자전거가 흔들렸다. 마치 자동차 타이어 펑크 소리 같았다. 나는 비틀거리는 천마를 간신히 멈춰 세웠다.
 
“거참, 펑크소리 한번 요란하네” 하며 뒷바퀴를 살펴보니 타이어가 찢어져 있었다. 튜브만 펑크 난 게 아니었다. 이제 더 이상 자전거는 달릴 수 없었다. 현재시간 오후 4시. 지금까지 GPS 거리로 121㎞를 왔으니 남은 거리는 67㎞였다. 오늘따라 주행 중에 가끔 GPS도 전원이 꺼지며 말썽을 부렸다. 사하라사막에서 힘차게 달리다 부상당한 천마를 안아 짐과 함께 길가에 가지런히 눕혔다. 그리고 지나는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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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 차량 한대가 내 앞을 지나 50m 앞에서 정차하였다. 차량을 향해 뛰어갔다.
 
“한국에서 온 정이라고 합니다. 타이어 펑크가 나서 그러니 차 좀 태워주세요.”
 
운전자는 나와 자전거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리오넬이라는 프랑스인으로 3개월 휴가를 얻어 말리까지 간다고 하였다. 
 
‘차를 세울 거면 좀 가까이 세울 것이지 왜 멀리 세워서 고생시키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자전거와 짐을 날랐다. 그 덕분에 다음 도시인 보즈도르까지 갈 수 있었다. 자전거 탈 때는 졸리지 않았는데 차를 타니 졸음이 쏟아졌다. 운전자가 나에게 껌을 씹으라고 하나 주었다. 보즈도르에 도착하여 차를 태워준 그에게 큰 도미와 숭어 두 마리를 100디람에 사서 맥주 한 캔을 곁들여 저녁식사 대접을 하였다. 그는 식사 후 오히려 내게 고맙다며 나와 모로코식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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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자전거 점포를 찾아 나섰다. 이 도시에는 2군데가 있었고 먼저 들른 곳에는 두꺼운 MTB 타이어밖에 없었다. 이곳의 자전거 점포는 자전거 수리방 정도로 생각하면 되었다. 전시한 물품도 몇개 없거니와 더욱이 맘에 드는 물건을 고르기는 힘들었다. 자전거 점포를 나오면서 다음 점포에도 마땅한 것이 없으면 앞타이어는 1.5인치, 뒷타이어는 2.0인치로 달리는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펑크난 타이어를 들고 다른 점포를 찾았다. 점포 천장에 7~8개 정도의, 먼지가 뽀얗게 쌓인 타이어가 걸려 있었다. 점포 주인은 다행히 내가 가져간 타이어에 찍힌 26X1.50 크기와 같은 것이 있다고 하였다. 그는 천장에 매달린 타이어를 꺼내 내게 보여 주었다. 브랜드가 카멜이었다.
 
“얼마입니까?”
“70디람입니다.”
 
나는 50디람에 달라고 해보았으나 그는 5디람만 깎아주었다.
 
“이 타이어는 아주 좋은 타이어입니다. 다른 타이어는 50디람이지만 이것은 안됩니다.”
 
나는 속으로 같은 사이즈의 타이어를 살 수 있어서 다행으로 여기며 그에게 65디람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어디까지 갑니까?”
“세네갈까지 갑니다.”
 
그는 엄지를 보여주며 행운을 빌어주었다.
 
고생한 학습효과 때문에 출발 미뤄
 
다음날 아침 출발준비를 하다가 새로 장착한 뒷타이어의 튜브가 펑크나 있는 것을 알았다. 서둘러 튜브를 교체하던 중에 이번에는 타이어레버 2개가 부러졌다. 타이어가 너무 딱딱하여 플라스틱 레버가 힘을 받지 못하고 부러져나갔다. 아침 8시 2군데 자전거점으로 가보았으나 모두 문이 잠겨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출발을 하루 미룰 수밖에 없었다. 보통 상가들은 오전 10시가 되어야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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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부러진 타이어레버를 들고 나는 다시 자전거 점포로 가서 점포 주인에게 타이어레버를 보여주었다.
 
“이런 거 주세요.”
 
그는 쇠로 만든 타이어레버를 보여 주었다. 2개를 10디람에 사가지고 와 호텔방에서 다시 튜브를 장착하는데 이번에는 튜브가 타이어레버에 찍혀 찢어졌다. 두번째 튜브를 장착할 때도 마무리 순간에 튜브가 찢어졌다. 쇠로 된 길죽한 타이어레버에 튜브가 살짝 걸리기만 해도 튜브는 찢겨져나갔다. 한번 더 조심스럽게 시도하여 튜브를 장착하는데 성공하였다.
 
1월24일 아침 드디어 145㎞ 거리의 다음 도시를 향하여 출발하려고 짐을 싸면서 밝아오는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가득 끼어 있었다. 자고 있는 호텔 주인을 깨워 오늘의 날씨를 물어봤다.
 
“날씨요? 모르겠습니다.”
“전화라도 해서 알아봐 줄 수 없나요?”
“전화로 알려주는 데는 없습니다. 시빌(사이버)카페에서 알아보세요.”
 
되돌아서며 오늘도 출발을 미룰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시빌 카페는 오전 10시가 되어야 문을 열었고, 이런 구름 낀 날씨에 출발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며칠 전 비바람으로 고생한 학습효과인지도 모르겠다.
 
글·사진 정종호(http://cafe.daum.net/bicycle.world.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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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