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마지막 기착지, 검은 파도가 밀려왔다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스페인 가루차~에스테포나/08.12.08~14)
유럽에서의 80일간 하루 평균 63㎞ 달려
좁은 골목 피카소박물관 입구부터 ‘삼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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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8일 해변도시 가루차에서 나올 때 하늘엔 회색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요즘 유럽 날씨는 구름 낀 날이 많아 출발을 미룰 이유는 없었다. 출발하자마자 길은 가파른 언덕으로 이어졌다. 얼마 안가 마치, 깊은 산속으로 난 길인 듯한 숲길과 제법 웅장한 산 경치가 나타났다. 2시간쯤 지나자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침 산속에 캠핑장이 있어서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엔 캠핑카가 서너 대 머물고 있었다. 한 건물 앞으로 다가가자 주인이 나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잠시 비 좀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세요. 건물 아래쪽에 비를 피할 데가 있습니다.”
 
건물 내부는 아직 공사중으로 시멘트 냄새가 많이 났다. 건물 아래쪽의 공사 자재 등을 쌓아둔 곳은 피로티 식으로 되어 있어서 비를 피할 수 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그 곳으로 가져가 나무판대기 위에 앉아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추워져서 옷을 꺼내 입고 낙숫물 소리를 들으며 잠시 졸았다.
 
졸면서도 판단해야 한다, 갈 것인가 머물 것인가
 
졸면서도 판단을 해야 한다. 갈 것인가, 아니면 머물 것인가? 비가 많이 오면 결정이 쉽다. 이 정도의 비는 자전거 타기에는 지장이 없으나, 중간에 큰 비로 변할 수 있기에 결정을 미루며 꾸벅꾸벅 졸았다. 그러다 잠에서 깨어나 애매하게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하늘만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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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자! 가까운 도시를 만날 때까지 상황판단을 미루기로 했다. 카메라 가방에 방수 커버를 씌우고 빗속으로 들어섰다. 잠시 뒤 해변가에 있는, 하얀집의 도시 모자카를 지나자 다시 언덕길이 이어졌다. 비는 주춤하여 이슬비로 변했고 언덕을 오를 때 오히려 시원함을 느끼게 했다. 고도 180m의 언덕에 올라서자 저 멀리 부서지는 하얀 파도가 밀려오는 해안에서부터 산허리를 돌아 이곳으로 올라오는 도로 모습이 한눈에 펼쳐졌다. 이런 멋진 경치를 접할 때는 뿌듯해진다.
 
언덕 밑의 도시 카르보네라스로 들어선 뒤 도로가의 한 호스탈로 들어갔다. 시간은 오후 2시로 그날의 주행거리는 불과 30㎞였다. 그날 저녁엔 많은 비가 내렸다.
 
다음날은 청명했다. 나는 다시 지중해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길을 떠났다. 도로는 N340 국도로 이 도로는 가끔 끊어지고 고속도로로 이어졌다가 다시 N340 도로가 나타나곤 하였다. 역시 고속도로로 올라타면 자전거가 한층 더 잘 달렸다. 고속도로와 N340 도로가 이어지는 부분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조금 지나쳤을 때, 경찰차 한대가 전방 갓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중입니까?”
“알메리아로 갑니다.”
“이 도로는 ‘Autovia(고속도로)’로 자전거는 가지 못합니다. 300m를 되돌아 걸어가서 인터체인지로 나가면 그곳으로 가는 도로가 있습니다.”
 
나는 경찰의 말대로 300m를 걸어가서 N340 도로로 들어섰다. 유럽의 고속도로 경찰들은 친절했다. 한번은 이탈리아에서, 갓길도 없는 고속도로로 들어섰을 때 오토바이를 탄 경찰이 내 옆에 다가오더니, 내가 인터체인지로 빠져나갈 때까지 왼쪽에 바짝 붙어 안전하게 에스코트해 준적도 있었다. 도로법을 어겼다고 추궁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렇게 하라’고 방향을 제시해주거나 먼저 안전을 생각해 주었다.
 
알메리아를 지나자 오후 4시가 넘었다. 숙소를 찾기 위해 거리 간판을 주시하며 페달을 밟는데 자전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앞바퀴가 펑크난 것이었다. 나중 일이지만, 그 다음날엔 뒷바퀴도 펑크가 났다. 유럽에서 벌써 7~8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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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덜 쓰고 잘 달릴 수 있는 팁 몇 가지
 
펑크 얘기가 나온 김에 자전거 주행에 대해 잠깐 얘기해 보자.
 
자전거에 25~30㎏의 짐을 싣고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는 얼마나 될까? 유럽에서의 80일간(2008년 8월29일부터 12월11일까지)의 주행 통계를 보면 하루 평균 기록은 93㎞였다. 여기에 휴식일을 포함하면 104일로, 하루 평균 63㎞의 기록이 나왔다.
 
유럽은 도로환경이 좋아 비교적 많은 거리가 나온 것 같았다. 자전거여행에서 주행 기록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고 힘을 덜 쓰고 달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처음 자전거를 접하는 분들이나 자전거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라고 참고가 되었으면 싶다.
 
자전거가 잘 달리게 하려면 다음 몇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자전거여행자는 보통 여러 도로 상태에 적응 가능한 1과3/8~1.95인치 타이어를 주로 사용한다. 그렇지 않아도 자전거에 실은 짐이 무거운데 두꺼운 타이어를 장착해 힘을 쓸 이유는 없다. 가는 타이어를 선택하라! 나는 세계일주 출발 때 1.95인치를 장착했다가 터키에서 1.75인치짜리로 바꾸었고 이탈리아에서 다시 1과1/2인치로 바꾸었다. 타이어 두께 하나로 도로에서 힘의 손실이 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타이어의 공기압은 규정의 최대치 가까이 주입하라. 계측기가 없는 에어펌프를 쓰면 타이어를 손으로 눌러보며 감만으로 공기를 주입하게 된다. 필자도 그렇게 하다가, 최근 계측기가 달린 펌프를 구입했다. 계측기를 보며 공기를 주입했더니 전에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공기를 집어넣어야 알맞은 공기압이 나왔다. 1과1/2인치 타이어의 경우 공기를 주입하면 딱딱함을 느낄 정도였다. 가능하면 계측기가 달린 펌프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튜브의 밸브 타입은 두껍고 검정색인 미국 식보다는 프랑스 식의 가늘고 긴 밸브가 공기 주입이 수월하고 공기압이 잘 계측되었다.
 
둘째, 주행중 자전거가 무거워질 때가 있다. 자전거가 무거워지는 건 타이어 안의 튜브 펑크이거나 브레이크 패드가 림에 닿아 그럴 수 있다. 튜브 펑크는 바로 바퀴가 주저앉는 펑크도 있으나 펑크난 구멍이 미세하여 며칠이 지나서야 타이어 공기가 일부 빠지는 펑크도 있었다. 공기 주입 후 2~3일 뒤에 공기가 조금이라도 빠진 듯한 느낌이 오면 펑크가 난 것으로 봐야 한다. 펑크 난 자전거를 타면 힘이 많이 소진될 뿐 아니라 자전거 제어가 용이하지 않으므로 즉시 예비 튜브로 교체한 뒤 깨끗한 장소나 숙소에서 펑크 난 튜브를 땜질하는 것이 좋다.
 
간혹, 브레이크 패드가 닿는 경우가 있었다. 림이 조금 휘었다거나 바퀴를 장착할 때 바퀴를 수직으로 맞추지 못한 경우였다. 림이 휜 경우 휘어진 부분을 스포크와 이어진 곳에 니플로 조금씩(1/8~1/4바퀴) 돌려보고 바퀴를 돌려서 정상적으로 되었는지 확인하며 조정해야 한다. 한번은 휘어진 부분이 크다고 생각해 몇 바퀴씩 돌려서 조정을 한 적이 있었으나 몇 달 뒤에 보았더니 림과 스포크가 이어지는 부분에 균열이 생겨 림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바퀴가 수직으로 장착이 안된 경우에도 한쪽 브레이크 패드에 닿을 수 있다. 필자는 그것을 모르고 한쪽 패드가 림에 닿아서 브레이크 암에 있는 와셔 한 개를 빼내어 임시로 조치한 적이 있었다. 그럴 경우 브레이크가 느슨해지는 문제가 있었다. 기가 막힌 것은, 프랑스의 한 자전거상점에서 뒷바퀴의 림을 교체할 때 위의 문제를 그대로 두고 림만 교체해줬던 일이다. 자전거상점의 기술자라면 림을 교체할 때 브레이크도 같이 점검해야 옳다. 그는 브레이크 패드가 림에 닿자 한쪽 브레이크 나사를 느슨하게 조인 뒤 자전거를 넘겨주었고, 림을 교체하고 주행한 다음날 뒷바퀴의 한쪽 브레이크 암이 떨어져 분실되었다. 그날 저녁 또 다른 자전거상점에 들러 브레이크 암을 구입해 설치했으나, 거기서도 한쪽 브레이크 패드가 림에 닿자 느슨하게 나사를 조인 뒤 자전거를 건네주었다. 나는 뒤에 브레이크를 다시 점검하다가 바퀴가 수직으로 장착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뒷바퀴를 끼울 때 어느 정도 위에서 힘을 주어 직각으로 장착해야 브레이크 암은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제대로 작동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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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본 방법 효과 못 봐…시행착오 겪으면서 해결
 
셋째, 안장이 주행감을 높여주었다. 유럽에서 사이클을 타는 사람들을 보면, 언덕을 올라갈 때 서서 타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서서 타는 모습이 매우 부드럽고 능숙했다. 나는 서서 타려면 손과 발에 유난히 힘이 많이 들었다. 안장을 앞으로 당겨보니 서서 타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설 때의 각도와 거리가 단축되기 때문이었다. 또한 앉아서 탈 때도 페달링이 가벼워졌다.
 
한편, 너무 앞쪽에서만 탈 경우 허리와 손에 부담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안장의 높이를 중국에서부터 조금씩(3mm 정도씩) 높여 왔다. 안장이 높은 것이 페달링을 가볍게 하지만 한번에 많이 높이면 자전거를 제어하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해 그렇게 했다. 어쨌건 페달을 밟았을 때 무릎이 약간 구부러짐이 있는 정도까지 안장을 올리는 것이 좋다. 자전거를 타면서 조금씩 안장을 올려보며 자기에게 맞는 위치를 찾아보는 게 좋을 것같다.
 
기분 좋은 주행을 위한 몇 가지 요점을 적어 봤으나, 이밖에 자전거는 늘 잘 정비돼 있어야 한다. 기어가 부드럽게 작동돼야 하고 체인 오일도 가끔 발라줘야 한다. 그 동안 가파른 언덕을 오를 때 앞 기어를 1단으로 낮추면 체인이 빠지는 현상이 자주 일어났다. 책에서 본, ‘로/하이’ 나사를 돌려서 조정하는 방법은 별 효과가 없었고, 앞의 기어를 1단으로 놓고 뒷기어를 고단(9단)으로 놓은 후 케이지와 체인의 간격을 1.5mm 정도로 드레일러를 조정하였더니 개선되었다. 처음에 0.5mm로 맞췄더니 주행 때 간혹 체인에서 소음이 났고, 2mm로 맞췄더니 체인이 빠지는 현상이 별로 개선되지 않았었다.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언제부터인가 핸들이 심하게 흔들렸다. 특히 패니어 가방을 장착하지 않고 자전거를 탈 때 더욱 그랬다. 카멜바이크 사장에게 이 현상에 대해 문의했더니, 그는 ‘헤드셋의 나사가 헐거워졌으니 헤드셋 옆의 두 나사를 풀고 위의 나사를 적당히 조인 뒤 옆의 두 나사를 다시 조인 다음 타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했더니 흔들림 현상이 없어졌다.
 
자전거가 잘 달리면 기분이 좋다. 그 동안 자전거가 잘 달리지 못해 애먹었던 몇 가지 상황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해결했던 사례를 적어보았다. 앞으로 또 새로운 상황의 문제점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천마(자전거 이름)의 상태는 매우 좋다. 펑크만 안 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검은 하늘에 갈매기 한 마리가 환상처럼 하얀 날갯짓
 
12월12일 네르자 도심의 한 호스탈에 들어섰더니 여주인이 반갑게 맞아줬다. 숙박비가 18유로로, 스페인에서 묵었던 숙소 가운데 가장 쌌고, 아담한 발코니까지 있는 깔끔한 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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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편도 자전거 트레이너입니다.”
 
그때 연로한 시아버지가 방에서 나왔다. 여주인은 시아버지에게 내가 한국에서 여기까지 온 자전거 여행자란 것을 얘기했다.
 
다음날 아침 출발 준비를 할 때 여주인의 남편인 페페가 나와서 인사를 했다.
 
“자전거 트레이너라고 들었습니다.”
 
그는 나의 주행기록을 물어보더니, 자신의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방으로 가서 자전거를 구경했다.
 
“가벼운 걸 보니 카본 자전거군요. 꽤 비싸 보입니다.”
 
지금까지 나의 무거운 자전거만 만지다가 그의 자전거를 들어보니 솜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6,000유로(1유로=약 1.2달러)짜리입니다.”
“이번 12월20일에 멤버들과 자전거를 타고 매사냥을 갈 겁니다.”
 
자전거는 이미 이동수단을 넘어 생활스포츠이며 레저였다. 내가 자전거 안장 위에 오를 때 주인 부부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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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50㎞ 거리에 있는, 피카소가 살았던 말라가에 도착해 파카소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은 좁은 골목 3층짜리 건물에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경비가 삼엄했다. 입구에서는 적외선 카메라로 짐을 조사했고, 전시실과 복도마다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림 한 점 가격이 천문학적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곳엔 피카소가 그린 155점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초기의 섬세하고 사실적인 그림에서부터 빛과 그림자로 이뤄진 3차원적인 그림, 물체와 인물이 혼합된 만화경같은 그림들을 볼 수 있었다. 이런 그림들은 과거 수세기 동안 이어져 오던 전통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싸움을 통해서 얻어진 결과물들이었다. 박물관 팸플릿에는 “어린이처럼 그리기를 배운다”란 문구가 있었다. 그는 천재 화가답게 기존 시각을 버리고 어린이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봤던 것이다. 피카소가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건 그만의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날 파카소의 체취가 남아 있는 말라가를 출발해,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에스테포나에 도착했다. 이곳은 유럽 여행의 마지막 기착지다. 여기서 30㎞만 더 가면, 지브롤터에서 아프리카 모로코의 탕제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다. 그날 저녁엔 많은 비가 내렸고 바람 또한 세찼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파도들이 먼 어둠 속에서 밀려왔다. 검은 하늘에 갈매기 한 마리가 환상처럼 하얀 날갯짓을 하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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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정종호(http://cafe.daum.net/bicycle.world.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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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