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살 넘는 어르신만 8만, 못나서 살아 남아 걷고 싶은 숲길

[걷고 싶은 숲길]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숲

 

첩첩이 푸르락 붉으락…520살 할아버지도
활엽수와 야생화 ‘별미’…암반 계곡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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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잎 두툼하게 깔린 소나무 숲길이다. 여린 바람에도 진하게 엄습해 오는 송진 내음에 안겨 오솔길을 오른다. 전후좌우로 미끈하게 뻗은 아름드리 기둥들이 첩첩이다. 바르고 곧게 자란 금강소나무들이다. 전망대 쉼터의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둘러보면, 울울창창한 건너편 산자락이 푸르고도 붉다. 금강송 줄기들이 햇빛을 받아 노을에 물든 듯이 빛난다.

 

숲해설가 이정애(53)씨가 앞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소나무들이 여기서 보기엔 작아 보이지만, 실은 모두 지름 40㎝ 안팎의 노송들입니다."

 

소나무 중의 소나무로 꼽히는 금강소나무, 그 숲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 금강소나무숲이다.

 

삼척과 울진의 경계를 이루는 응봉산·삿갓재 남쪽 자락 1610㏊에 평균 나이 150살, 평균 높이 23m의 금강소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 있다. 520년 된 할아버지 소나무가 2그루에 200살이 넘는 소나무만 8만그루에 이른다. 지름 60㎝를 웃도는 아름드리 소나무도 1700그루나 있다.

 

조선 왕실이 키운 거목 일제가 강탈…7~10월에만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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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름다운 소나무숲이 7월 들어 다시 문을 열었다. 산림청은 이 숲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지난해부터 7~10월 4개월만 숲을 개방하고 있다. 주차장과 산책로, 숲안내판, 나무 표지판들을 설치하고 2명의 숲해설가도 배치했다. 이전까지는 금강소나무전시관 앞까지만 일반인 출입이 허용됐었다.

 

금강소나무는 줄기가 곧고 목질이 단단해 조선시대 궁궐용 목재나 왕실의 목관을 만드는 데 쓰였다. 황장목(黃腸木)이 금강송이다. 황장이란 소나무의 붉고 누런 속 부분(심재부)을 가리킨다. 금강소나무의 심재부는 일반 소나무에 비해 월등히 넓은데다, 단단해 잘 썩지 않는다. 자라는 속도가 느려 나이테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촘촘하다. 따라서 같은 굵기의 소나무라도 금강송과 일반소나무는 수령이 서너배까지 차이가 난다.

 

숲 안 금강소나무전시관에 일반소나무·금강소나무의 단면을 자른 통나무와 켜서 만든 내장재를 전시하고 있어, 두 나무의 차이를 공부할 수 있다.

 
5634_untitled-4_copy.jpg조선 왕실에선 황장목을 확보하기 위해 전국의 울창한 소나무 숲에 일반인의 벌목을 금하는 봉산(封山) 표석을 설치했다. 이곳에도 봉산 표석이 남아 있다. 숙종 6년(1680년) 숲 들머리 대광천 물가 바위에 황장봉계(黃腸封界) 표석을 설치하고 벌목을 금했다. 봉산의 경계로 정한 마을 이름들과 '길(吉)'이란 이를 산지기로 명한다는 글씨가 적혀 있다.

이 숲은 일본 강점기 때 대규모 목재 수탈의 수모를 당한 데 이어 한국전쟁 때는 일부가 불타기도 했다. 전쟁 뒤에도 이어지던 벌목은 1959년 정부에서 육종림으로 지정하면서 중단됐다. 82년엔 유전자원 보호림으로 지정해 본격적인 보호·보전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금강송은 춘양목으로도 불린다. 50년대까지 벌목된 금강송이 봉화 춘양역을 통해 각지로 실려 나갔기 때문이다.

이 숲의 수백년 묵은 노송들은 대개 줄기가 굽거나 굵은 곁가지가 많은 것들이다. 이정애씨가 말했다. "벌목할 때 곧게 뻗은 잘 생긴 나무들만 베어간 덕에 살아남은 못난이 나무들이죠."

 

못나서 살아남은 소나무들은 숲에 고인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거목으로 자랐다. 탐방객의 탄성을 받으며 숲의 산 역사로 우뚝 서 있다. 이씨가 덧붙였다. "하지만 요즘엔 후계목 조성사업을 위해 못난이들은 베어버리고 곧게 뻗은 나무들만 가려 키웁니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서로 붙어 ‘남녀 상열지사’ 연출

 
untitled-3_copy.jpg소광리 숲이 금강소나무들로만 이뤄진 건 아니다. 금강소나무 생육을 위해 수많은 활엽수들이 희생됐지만, 지금도 산책로 주변으론 참나무·서어나무·사시나무·산딸나무·돌배나무·박달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가을이면 색색의 단풍으로 물들어 또 다른 볼거리를 안겨주는 나무들이다.

 

숲 안내소에서 신청하면 숲해설가의 안내를 받아 1시간30분~2시간 코스의 금강송숲 탐방로를 산책할 수 있다. 할아버지나무·못난이나무·미인송·공생목 등 재미있는 이름이 붙은 금강소나무들뿐 아니라, 다양한 활엽수들과 야생화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진다.

 

미인송은 350년 된 매끈하게 뻗은 소나무다. 높이 35m, 가슴높이 지름이 82㎝에 이른다. 공생목은 120살 소나무와 80살 참나무의 줄기 일부가 붙어 있는 희귀한 모습이다. 남녀가 껴안고 입 맞추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널찍한 임도를 따라가며 우람하게 또는 미끈하게 솟은 금강송 줄기를 감상하는 것도 즐겁지만, 임도를 벗어나 숲으로 들어서면 솔숲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빽빽한 소나무 사이로 이어진 솔잎 쌓인 길을 오르내리는 동안 피부에 스며 마음속까지 핥아주는 듯한 피톤치드와 음이온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경기 화성에서 온 이충건(63·사회복지사)씨는 "벼르고 별러 찾아왔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훌륭하고 아름다운 숲"이라며 "잘 보전해 후손들에게 물려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숲에는 60년대까지도 일부 주민들이 밭을 일구거나 송이버섯을 채취하며 살았었다. 산길 곳곳에 집터 흔적이 남아 있다. 이정애씨는 "산 위쪽과 아래쪽엔 더 오래전에 봉화 석포 쪽으로 오가던 옛길의 흔적도 또렷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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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숲을 감상하려면 봉화~울진간 36번 국도에서 벗어나 30분 이상 포장·비포장길을 따라 들어가야 한다. 길은 험하고 멀어도, 멋진 암반을 타고 흘러내리는 소광천·대광천 물줄기와 산비탈에 우거진 소나무숲이 지루함을 덜어 준다. 먼 길을 찾아들어와 숲을 감상한 탐방객들의 반응은 두 가지라고 이씨는 말했다.

 

"한 부류는 왜 이 좋은 숲을 쉽게 둘러보게 하기 위해 진입로를 포장하지 않느냐며 화를 내는 이들이고, 또 한 부류는 이 좋은 숲을 대대로 보전하기 위해 절대 포장하면 안된다며 기뻐하는 이들이죠."

 

이씨는 이 숲이 오래 보전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본다고 말했다. 두 부류의 비율이 3대 7로, 포장에 반대하는 이들이 월등하게 많기 때문이다.

 

봉화·울진·영양·영덕 낙동정맥 곳곳 ‘빽빽’

 

우리나라는 소나무의 나라다. 마을마다 솔바람이 불고, 봄마다 송홧가루가 날린다. 선조들은 소나무숲 아래서 태어나 소나무와 함께 살다 소나무 숲으로 돌아갔다. 기개와 충절의 상징, 십장생의 하나로 꼽히며 우리 역사·문화,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뿌리내린 나무다.

이랬던 소나무가 점차 한반도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 탓이다. 소나무는 한때 우리나라 수림의 65%를 차지했었다고 한다. 지금은 벌목과 산불, 병충해, 온난화에 따른 꾸준한 감소로 25% 정도에 그친다. 이대로 가면 100년 뒤엔 소나무가 우리나라에서 대부분 자취를 감출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금강소나무는 강원지역과 경북지역에 걸쳐 분포한다. 해송(곰솔)과 육송(적송)의 교잡종으로 알려진다. 벌목 등으로 많은 금강소나무숲이 훼손됐으나, 봉화·울진·영양·영덕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 주변에선 지금도 빽빽한 금강송 숲이 곳곳에 남아 있다.

 
untitled-4_copy.jpg소나무 중의 소나무 금강소나무를 보전하려는 노력도 가속화하고 있다. 현재 울진 소광리 등의 금강소나무들은 대부분 수령 수십년 이상의 나무들이다. 중간 단계의 어린 나무들이 드문 것이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진 숲에서 자연적으로 싹이 터 자라기에 적합한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산림청에서 활엽수 제거작업 등을 통한 금강소나무 후계목 조성사업에 나서고 있는 이유다. 일반인 출입이 금지돼오던 금강송숲을 제한적으로 개방한 것도 금강소나무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한 조처다.

 

산림청에선 지난해 울진 소광리와 함께 봉화 고선·대현리의 금강소나무숲(2157㏊), 영양 본신리의 금강소나무숲(3461㏊) 등 세 곳의 생태경영림을 시범림으로 동시에 일반에 개방했다. 소광리의 할아버지 소나무처럼 500년 이상 된 노송을 만날 수는 없지만, 역시 빽빽하게 우거진 키다리 금강소나무들의 자태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각각 2~3명씩의 숲해설가들이 배치돼 있다.

 

봉화 고선·대현리 소나무숲에선 깨끗한 고선리 구마계곡의 물줄기와 함께 금강송과 활엽수들이 함께 어우러진 울창한 숲을 만날 수 있다. 야생화 군락지와 에코투어 탐방코스가 있고, 왜정 때의 목재 수탈의 흔적인 조선임업개발 주재소 터도 남아 있다. 봉화 춘양면 서벽리엔 문화재용 목재 생산림(80㏊)이 있다. 영주국유림관리소 (054)635-4253.

 

영양 본신리 숲에도 금강소나무·활엽수 탐방코스와 야생화 군락지, 누치·금강모치 등이 사는 계곡 등이 있다. 30~40년전 소나무 밑동에 홈을 새기고 송진을 채취하던 흔적들도 볼 수 있다. 영덕국유림관리소 (054)730-8130.    

 

울진/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여행쪽지>

 

불영계곡, 성류굴, 민물고기생태체험관, 덕구온천 들러볼 만

 

춘천~대구를 잇는 중앙고속도로 풍기나들목을 나가 36번 국도를 탄다. 영주~봉화~현동 거쳐 울진 쪽으로 간다. 통고산 자연휴양림 들머리 지나면 왼쪽으로 소광리 금강소나무숲 팻말이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해 포장·비포장길이 이어지는 917번 지방도 따라 13㎞ 들어가면 금강소나무숲 관리소에 닿는다.

 

관리소에 숲해설가 2명이 상주한다. 약 2시간 가량 걸리는 숲탐방로와 산책로를 돌며 금강소나무와 숲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숲해설은 매일 오전 10시, 오후 2시에 진행한다. 방문객이 뜸할 경우엔 즉석에서 안내받을 수 있다.  남부지방산림청 울진국유림관리소 (054)783-7074.

 

소나무숲 관리소 못 미쳐 소광2리 마을의 가정집에서 닭백숙(3만5천원·4인분)·산채정식(1만원)·된장찌개(5천원) 등을 먹을 수 있다.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054)782-1164. 식당 이름은 없고 길옆에 차림표 간판만 세워져 있다. 민박(2만원)도 가능하다.

 

소광1리에 하늘채펜션(054-782-9939)이 있다. 1박에 4만원(4평), 6만원(6평), 15만원(10평). 한끼 5천원. 36번 국도변 새점마을(울진 방향)에 민박집과 식당이 많다.

 

멀지 않은 곳에 통고산자연휴양림, 불영계곡, 성류굴, 민물고기생태체험관, 덕구온천, 덕구계곡 등이 있어 들러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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