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까지 곤 진국에, 간도 ‘어~시원타!’ 우리땅 이맛

[우리땅 이맛] 전주 ‘국일떡갈비’ 다슬기수제비탕

 

음력 20일~다음달 5일까지 잡은 섬진강산

꽃게장 등 20가지 밑반찬에 상다리 ‘휘~청’

 

 

Untitled-3 copy.jpg


◈ 맛 포인트

 

▷다슬기수제비탕 : 전주 '국일떡갈비' 

 

▷특징 : 섬진강 중상류에서 잡은 다슬기 쓴다. 매일 직접 삶아 속을 빼내어 끓인다. 껍데기까지 푹 고아 만든 육수를 섞어 쓴다. 다슬기탕에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 주인 식당 경력 30년.

 

▷위치 : 전주시 완산구 교동 181번지. 강암서예관~전통문화센터 사이 전주천변. (063)282-3330. 오전 9시30분~오후 10시 영업. 180명 수용.

 

▷가격 : 다슬기수제비탕 7천원, 떡갈비 1인분 1만원.

 

▷쉬는날 : 매달 첫째 월요일. 한가위·설 연휴 각 3일.

 

▷주차 : 식당 앞 전주천변길. 
  

 

 

지친 간을 다스리는 데 특효라는 다슬기. 숙취 해소와 술로 찌든 간을 해독하는 데 뛰어난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식재료다. 지역에 따라 올갱이·올뱅이·고둥·고디·대사리 등으로도 불린다.

 

우리 땅 강바닥·논바닥에 흔하게 깔려 있는 게 다슬기지만, 소비가 늘면서 다슬기도 중국산·북한산 등 수입산이 대량 유통되고 있다. 다슬기는 식탁에 올리기까지 손이 많이 가는 식재료다. 손질돼 냉동상태로 유통되는, 값싼 수입산 다슬기를 쓰는 식당들이 부쩍 늘었다.

 

중국산 등은 삶아서 속을 뺀 알맹이들만 비닐에 담아 냉동상태로 유통되는 게 대부분이다. 다슬기탕(국)의 맛과 영양의 핵심은 다슬기를 삶았을 때 우러난 파르스름한 국물에 있다. 오만가지 음식을 다 다루는 백화점식 식당들에서 내는 다슬기탕의 대부분은 된장 아욱·시금치국에다 진액이 다 빠진 다슬기 알맹이를 소량 얹어 내는, 조미료 맛 다슬기탕이다.

 

중·하류 것은 노르스름, 상류 것은 푸르스름

 

Untitled-4 copy 2.jpg

다슬기탕 애호가들은 그래서 강변에 자리잡은, 그곳 다슬기를 쓰는 다슬기 전문식당을 찾고, 그 중에서도 주인이 직접 삶은 육수에 직접 알맹이를 빼서 끓여내는 집을 찾아내 단골을 삼는다. 

 

전주시 완산구 교동 전주천변의 '국일떡갈비'도 그런 식당 중 하나다. 전주는 우리 전통 맛의 본향이다. 맛깔스런 비빔밥에 푸짐한 한정식, 국물맛 깊은 콩나물국밥, 순두부 등 전통음식의 보물창고로 불리는 전주에서, 그것도 하필 떡갈비집에서 차려내는 다슬기탕 이야기인가? 내용을 들여다 보자.

 

이 집은 다슬기 손질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애초 주메뉴로 내걸었던 떡갈비보다도 다슬기수제비탕 맛으로 단골을 거느리며 성가를 올리고 있는 집이다.

 

"하루 종일 다슬기 삶고 핀으로 알맹이 빼내고 껍데기 고는 게 일이에요. 일이 고되니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몇 달 일하다 두 손 들고 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돈 더 준다 해도 싫대요."

 

주인 유양옥(63)씨가 다슬기 속을 빼기 위해 다슬기가 가득 든 양푼을 옮기며 말했다. "직접 하는 게 힘이 들어도 중국산은 못쓰겠습디다. 맛도 영양도 국내산을 직접 손질해 삶아낸 것과 천지 차이가 나요."

 

유씨는 몇년 전 아는 사람으로부터 "수입산이 값도 싸니 한번 써보라"는 얘기를 듣고 중국산 다슬기를 얻어다 끓여먹어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국물 맛도 씹는 맛도 향기도 영 아니어서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유씨는 섬진강 중상류 물줄기에서 주민들이 잡아온 다슬기를 받아 쓴다. 척 보면 품질까지 알아챈다.

 

"섬진강 중·하류에서 잡은 다슬기는 껍데기가 두껍고 노르스름한 국물이 깊은 맛을 내지요. 반면 임실 관촌·신평 등 섬진강 상류지역에서 잡아온 건 껍데기가 얇고 맛이 쌈박해요. 삶은 물이 파랗기로는 상류 것이 제대로죠."

 

유씨는 두 지역의 다슬기를 받아 섞어서 쓴다고 했다. 가까이 있는 완주 고산에서 잡은 것을 쓰기도 한다.

 

유씨는 강마을 주민들이 잡아온 다슬기라고 해서 아무 때나 다 받지는 않는다. 주로 음력 보름을 넘긴 뒤 20일 무렵부터 다음달 5일 무렵까지 잡은 다슬기를 받아 쓴다. 그 이유는 달이 커지기 시작하는 음력 7·8일부터 보름 지날 무렵까지는 다슬기 속이 부실해지기 때문이다.

 

유씨는 "무게를 달아 비교해 보면 달이 밝을 때 잡은 다슬기가 확실히 덜 나간다"고 말했다. 이는 꽃게·대게 등 일부 해산물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4차에 걸쳐 육수 완성…직접 담근 된장 살짝

 

Untitled-2 copy.jpg


이 집 다슬기수제비탕 만드는 방법을 알아보자. 다슬기를 들여오면 먼저 해감(다슬기가 머금고 있는 펄흙 등을 말한다)을 배출시킨다. 한번에 60㎏ 정도씩 세척기에 넣고 40분 가량 돌려 1차로 해감을 뺀다. 물에 담가 두고 한동안 진정시킨 뒤 2차로 다시 40분간 세척기에 넣어 돌리면 해감이 다 빠진다.

 

다음엔 다슬기를 살짝 삶아, 파란 물이 우러나는 초벌 육수를 만든다. 다슬기는 건져 커튼용 핀을 사용해 다슬기 알맹이를 빼내는 작업을 한다. 빼낸 알맹이를 모아 다시 삶아 2차 육수를 만든다. 3차 육수는 껍데기를 곤 육수다. 껍데기를 모아 은근한 불로 20시간 이상 달여 3차 육수를 만든다. 유씨가 다슬기 껍데기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처음엔 나도 몰랐는데, 사람들이 찾아와 다슬기 껍데기를 찾는 거예요. 뭣에 쓰려 하냐고 물으니, 위장병에 다슬기 껍데기가 특효라는 겁니다. 한약방에서도 껍데기가 위장·간장에 다 좋다고 하데요. 그때부터 아, 이걸 버려선 안되겠구나 해서 모아두고 한꺼번에 고아서 육수에 섞어 쓰게 됐죠. 껍데기 육수를 섞어 쓰니 한층 깊은 맛이 납디다."       

 

이렇게 만들어진 세 가지 육수를 섞어서 4차로 다시 끓이면 최종적인 육수가 완성된다. 처음부터 한꺼번에 끓이지 않는 이유는 다슬기 살의 탄력있는 육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빼낸 다슬기 살을 보관할 때도 1차로 살짝 데친 뒤 냉동시켜 보관한다.

 

주문이 들어오면 뚝배기에 육수를 담고 직접 담근 된장을 살짝 푼 뒤 다진마늘을 조금 넣는다. 여기에 다슬기 두 숟가락, 호박과 부추 파를 곁들여 끓인다. 수제비는 미리 따로 익혀 뒀다가 끓을 때 넣는다. 간은 간장으로 하고 조미료는 쓰지 않는다. 시원한 맛을 살리는 비결은 된장·마늘을 적게 넣고 한소끔만 끓인 뒤 불을 끄는 것이다. 수제비도 원하지 않으면 빼 준다. 끓으면 뚝배기째 나무판에 얹어 손님상에 공기밥과 함께 낸다. 기호에 따라 잘게 썬 매운고추를 곁들여 먹는다.

 

시내 국일관 시절엔 전주백반 찾는 발길 날마다 1천여명 

 

Untitled-1 copy.jpg뜨겁고도 시원한 국물은 맑은 편이어서 다슬기 육수의 푸르스름한 기운과 다슬기 특유의 향이 느껴진다. 다슬기도 푸짐하게 들어간다. 다슬기는 씹을 때 해감이 전혀 씹히지 않아 뒷맛이 개운하다(일부에선 자근자근 씹히는 가는 모래를 다슬기 알로 잘못 알고 있기도 하다). 큼직큼직한 수제비가 곁들여져 밥이 아니더라도 한 끼 식사가 될 정도다. 맑은 국을 선호하는 이라면 주문할 때 수제비를 넣지 말라고 하면 된다(사실 다슬기탕을 좋아하는 사람 중엔 수제비는 물론, 된장도 아욱도 넣지 않고, 다슬기에 아무 것도 입히지 않은 채로 다슬기만을 재첩국처럼 맑게 끓여낸 것을 선호한다).  

 

술 마신 다음날 속풀이하러 자주 들른다는 전주시청 문화관광과 조영호 팀장은 "술을 좋아해 평소에도 다슬기탕을 즐기는 편"이라며 "간 해독에 특효라는 옛말 그대로 다슬기탕을 자주 먹으면 피로가 정말 빨리 풀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조기찜·고등어찜·들깨버섯탕·꽃게장·원추리볶음·고구마줄거리무침 등 곁들여지는 20가지 가까운 반찬들도 맛있다. 된장·간장도 직접 담근 것을 쓴다.

 

유씨의 음식솜씨는 전주시내 고사동의 국일관 시절(1980~1994년) 전주식 백반으로 이미 이름을 날렸었다. 매일 하루 1천여명의 손님을 받았다고 한다. 남편 사별 뒤 우여곡절 끝에 문을 닫고 2년간 쉬다 지금의 자리에서 떡갈비집을 시작했다. 떡갈비로 시작했지만, 먼저 세들었던 식당이 다슬기탕 집이어서, 그 노하우를 고스란히 전수받고 개발해 12년째 다슬기수제비탕을 만들어오고 있다. 국일관 이전엔 경기도 시흥에서 3년여 동안 한정식집을 하며 식재료 다루는 솜씨를 닦았다고 한다.

 

유씨가 말했다. "국일관 시절에 비하면 소꿉장난 같지만, 다슬기 까는 게 보통 일이 아녜요. 틈만 나면 까야 하니까요. 나도 까고 메누리도 까고 일꾼들도 까고 다 고생이 많죠."

 

전주천변 길가의 국일떡갈비집은 겉보기에도 허름하고 속도 허름하다. 다 허름해도 주인의 정성과 다슬기탕 맛은 진국이다.

 

전주/글·사진 이병학 한겨레 여행전문기자 leebh99@hani.co.kr

 

Leave Comments


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