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재 옥수수 밭 5층 원두막, 뭣에 쓰는 물건? 길에서 찰칵

[길에서 찰칵]

 

 

Untitled-2 copy.jpg물레재. 물레 돌듯이 돌고 돌아서 넘어야 한다는 고개다. 정선 신동읍 고성리에서 동강변의 오지마을 연포로 넘어가는 고개가 물레재다. 얼마나 길이 좁고 험한지, 마을 들머리인 고성리 삼거리엔 '대형 트럭·버스 회차로 없음'이란 팻말을 붙여 놓았다.

 

이 고개를 넘어가다 보니 이상한 '원두막'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비탈진 옥수수 밭 밭머리에 삐딱하게 나무로 엮어 세운, 무려 5층짜리 원두막이다. 맨 위층엔 파라솔까지 펴 놓았다. 밭 주인이 좀더 높은 곳의 경치를 즐기기 위해 세웠을까.

 

"헤헤, 그게 원두막이라구?"

 

고개 넘어 소사마을 동강변에서 만난 한 주민(동강 감시요원·동강 지역 주민들은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동강 지킴이로 근무하고 있다)이 '살다 보니 별 한가한 소리 다 듣네' 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요새 촌사람들 멧돼지 때매 골머리 썩는다는 거 모르슈? 그게 바로 멧돼지 감시탑이유."

 

쫓아도 쫓아도 끊임없이 떼 지어 몰려와 옥수수밭·감자밭을 쑥대밭으로 둔갑시키는 야생 멧돼지의 침입을 감시하기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높게" 세운 탑이었다.

 

"거기 올라앉아 있다가 멧돼지가 나타나면 돌도 던지고 소리도 지르고 법석을 떨지. 그래봤자 끄떡없는 놈들이 많아."

 

물레재 밑 원덕천 마을 부근 밭에도 멧돼지의 공격에 '저항'하기 위한 도구가 있었다. 나무에 긴 막대기를 묶고 그 끝에 양철통을 매달아 놓았다. 하루 근무를 마친 '동강 감시요원' 어르신을 차에 태우고 고개를 넘어오면서, 양철통의 쓰임새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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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가 나타나면 그걸 냅다 두드리며 법석을 떨지"

 

멧돼지나 노루·고라니 등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커지면서, 이들을 쫓기 위한 방법들이 무수히 동원되고 있으나 대부분 소용이 없다고 한다.

 

밭에 개를 매어 두고, 밤새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켜 두고, 울타리를 치고, 폭발음이 나는 일명 '대포'를 설치하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는 호랑이 똥을 구해 뿌리고, 목초액을 살포해도, 멧돼지 기피식물인 더덕·마늘·들깨 따위를 써 봐도 별무소용이라고 한다.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 조상들도 야생동물을 물리치기 위해 여러 도구를 사용해 왔다.

 

Untitled-3 copy 2.jpg짚이나 피나무 껍질을 꼬아 만든 띠를 부딪쳐 큰 소리를 내는 '태'도 이런 종류다. 몇 년 전 횡성 삽교리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소나무를 원통형으로 깎아 만든 커다란 나팔로 동물을 쫓고 있었다. 좁은 구멍을 힘차게 불면 엄청나게 큰 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이런 전통 도구들이 다 사라진 것을 보면, 멧돼지 등 야생동물들의 학습효과 능력, 식욕과 번식력이 한 수 위인 게 틀림없는 듯하다. 

 

지금까지 가장 효과를 본 게 전기울타리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설치와 관리에 손이 많이 가는 까닭에 농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농작물을 지키면서 야생동물도 보호하는 기발한 방법은 없는 것일까.

 

글·사진 이병학 한겨레 여행전문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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