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굴속 멀리 밥알 만한 빛 한 점 길에서 찰칵

[길에서 찰칵] 정선 신동읍 고성터널

동강 물줄기 감상 여행 길목 ‘이색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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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 입구 같기도 하고, 폐선된 옛 기찻길 터널 같기도 하다.

 

고성터널. 강원 정선군 신동읍 유문동에서 고성리로 넘어가는 구래기재(구러기재·굴어귀재·고성리재)에 뚫린 비좁은 터널이다. 

 

어둠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터널 입구로 다가서니, 캄캄한 굴속 멀리 밥알만한 빛 한 점이 보인다. 희망의 불빛 같기도 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구멍 같기도 하다. 일직선으로 이어진 완만한 내리막길 끝에 뚫린 터널 반대편 출입구다.

 

길이 596m, 폭 3.5m의 좁고 긴 이 시멘트 동굴은 신동읍과 고성리·덕천리·운치리를 오가는 차량들엔 아주 요긴한 지름길이다. 구래기재 굽잇길을 돌아 넘는 것보다 2㎞가 단축된다.

 

길이 596m 폭 3.5m, 조명도 신호등도 없는 위험천만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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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날 정도의 이 어두운 구멍은 마치 블랙홀처럼 다가오는 것들을 빨아들였다간 반대편으로 토해낸다. 소형 트럭도 들어가고 소형 마을버스도 들어간다. 우편배달 오토바이도, 주민들의 경운기·사륜오토바이도, 동강 물줄기를 보러 온 여행자들의 승용차도 들락거린다. 

 

조명시설도 신호등도 없는 이 비좁은 시멘트 굴을 주민들은 "자율적으로, 양보를 우선으로 하면서" 지나다닌다. 조심스럽게 입구에 들어선 뒤 반대편 쪽에 차량 불빛이 보이면 후진해 입구 옆에서 기다린다. 굴 안에 두 곳의 대피공간이 있으나 실제 이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굴 속은 늘 축축하게 젖어 있고 바닥 일부엔 물이 고여 있다. 겨울에 터널은 원칙적으로 폐쇄된다. 경사진 터널 바닥이 얼어붙어 위험하기 때문이다.  

 

간혹 이 암흑의 굴을 걸어서 통과하려는 주민도 있다. 저물녘, 고성리 쪽에서 신동읍으로 넘어가는 길에 굴 입구로 다가가던 한 아주머니(신동읍 예미리)가 손을 들어 차를 세웠다.

 

"좀 태워달래두 안 세워주는구만유. 아, 마을버스 막차는 버얼써 지나갔지유." 마을버스는 운치리까지 하루 다섯 차례 오간다.

 

차량도 곡예 운전하듯 조심스럽게 빠져나가야 하는 이 좁은 굴 속을, 중년 여성이 홀로 차량들 곁을 스쳐 무사히 통과한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조명도 없는 차량용 터널 속으로 사람이 걸어가리라고 예상할 수 있는 운전자도 거의 없을 듯하다. 터널 고성리 쪽 입구엔 누군가가 큼직한 페인트 글씨로 '확장하라'고 써놓았다.

 

상수도관 묻으며 덤으로…안전시설만 하면 ‘명물’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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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이 터널은 1991년 수도관을 묻을 때 덤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고성리 주민 이상규(48)씨가 말했다.

 

"터널 1m 밑에는 300㎜ 상수도관이 묻혀 있죠. 동강 물을 퍼올려 취수장을 통해 신동읍 쪽으로 보내는 물길입니다."

 

수도관 공사 때 주민들이 "기왕이면 물만 말고 사람도 좀 다니게 해 다오" 해서 터널공사도 함께 이뤄지게 됐다고 한다.

 

이 지역은 말썽 많았던 동강댐 건설이 백지화된 뒤, 동강유역 생태계 보전지역이자 자연휴식지로 지정된 곳이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 곳이다. 굽이치는 동강 물길을 감상할 수 있는 빼어난 전망대로 꼽히는 백운산과 칠족령, 고성산성 그리고 동강 드라이브길이 이어지는 가수리·귤암리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차량 통행이 늘게 되면 그만큼 사고 위험도 커진다. 터널을 당장 확장할 순 없더라도 신호등을 달고, 속도를 제한하고, 도보 통행을 철저히 막는 일이 급해 보인다.

 

안전성만 확보된다면 이 가늘고 긴 고성터널이, 동강 물줄기 감상 여행 길목의 '이색 관문'으로 떠오르는 것도 시간문제다.

 

정선/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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