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짓 것 뭐가 문제야? 내가 간다는데”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정종호의 자전거 세계일주] ① 떠나기까지

 

나이 오십, 아직도 꿈꾸고 시작할 일들이 많다

3년간 40개국 5만4천㎞, '몸짓 대화'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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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세계일주 여행을 하고 있는 여행가 정종호씨의 여행기를 싣습니다. 지난 5월1일 경기 남양주시청을 출발한 정씨는 중국, 카자흐스탄, 러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미, 중미, 북미, 일본 등 40개국 5만4천㎞를 달려 2011년 4월 남양주로 돌아올 계획입니다. 정씨가 자전거길에서 마주친 세계 곳곳의 풍경과 사람살이의 모습을 기록한 글과 사진을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20년 전 결혼할 때 아내에게 말했다. "10년 뒤엔 만사 제쳐놓고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자." 그 약속은 '당연히' 이 일 저 일 얽히고 설키며 지켜지지 못했다. 결국 몇 나라 패키지 여행으로 대체했다.

 

20년이 지나서 다시 세계일주 여행을 꿈꾸게 됐다. 내 나이 오십. 아직 꿈꾸고 시작할 일들이 많은 젊은 나이임을 확인하고 싶었다. 

 

여러 여건상 아내와 함께 떠날 수 없어 홀로 떠날 계획을 세웠다. 지난 해 말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야심찬 계획을 털어놨다. 세계일주, 그것도 자전거로 혼자 지구를 한 바퀴 돌겠다는 말에 아내는 펄쩍 뛰며 반대하고 나섰다. '무모한 짓'이라는 거였다. 아내의 동의를 얻는 데 두 달이 걸렸다. 아내는 이제 '세상의 모든 길에 도전하라'고 격려해 주는 후원자가 됐다.

 

인터넷 샅샅이 뒤져 6대륙 길 완성…자전거 ‘천마’도 조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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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세계일주 도전'을 선언하자, 역시 예상했던 말들이 쏟아졌다. "너 제정신이냐?" "농담 그만 하고 술이나 따라라." "한두 달 여행이나 하고 와라."

 

주변의 반대 분위기 말고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여행 코스 확정, 기간, 예산, 자전거, 언어, 비자, 통신, 사무실, 집안 일……. 그런데, 이상하게도 걱정은커녕 갈수록 마음은 평온해졌다. "까짓 것 뭐가 문제야? 내가 간다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복잡하게 얽혔던 걸림돌들이 하나씩 풀려나갔다.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다. 세계 여행자들을 찾아내어 그들의 경로와 일정들을 조사하고 각국의 지도를 프린트하여 가보고 싶었던 곳을 도로를 따라 선을 그었다. 다시 고치고 다듬어 길을 선택한 이유와 목적을 확실히 했다. 나의 길은 관광이 아니다. 사람들을 만나 몸짓으로 대화하고 왜 사는가를 거듭 되물으며 페달을 밟는 나그네의 길이다. 만남과 헤어짐, 꿈과 현실, 그리고 너와 나의 삶을 확인하는 길이다. 굽은 길들을 곧게 펴 직선으로 이었다. 그렇게 6대륙을 통과하는 자전거길 경로가 완성되었다.

 

이제 그어진 선 위로 날 태우고 달려줄 멋진 자전거를 만들어야 했다. 수소문 끝에 자전거 전문가인 한 청년을 만났다. 여행 계획을 듣고는 그는 선뜻 자전거 한 대를 조립해 줬다. 나는 이 자전거에 천마(Flying Horse: 세계일주의 꿈을 천마산 자락에서 살며 구체화시켰으므로)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장 일 넘기고 부동산중개업 사무실도 처분


 

그동안 맡아오던 오남리 이장 일은 다른 분에게 넘기고, 나의 생계의 터전인 부동산중개업 사무실도 처분했다.

 

<자전거 타고 지구 한바퀴>란 제목을 붙인 여행계획서 초안도 만들었다. 3년간 자전거로 약 54,000Km를 달려 지구 한 바퀴를 도는 일정이다. 기왕에 세계일주를 할 바엔 여러 곳에 알리고 떠나라는 한 선배의 충고를 받아들여 몇몇 지인과 언론사 등에 이메일로 계획서를 보냈다.

 

자전거여행기(<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를 연재했던 한겨레신문사, 내가 거주하는 남양주시와 오남읍, 예전에 안나푸르나 트레킹 때 인연을 맺었던 혜초여행사, 그리고 세계자전거여행동호회 카페 운영자 등 생각나는 대로 보냈다. 

 

얼마 뒤 한겨레신문사에서 여행기를 써보라는 연락이 왔다. 오남읍장님은 주민이 훌륭한 계획을 세웠다며 남양주 시장님과 면담 일정을 잡아줬다. 시장님은 여행 계획을 듣고는 세계일주 출발일에 나를 '남양주시 홍보대사'로 임명한 뒤 인천 부두까지 에스코트 차량을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혜초여행사는 비자 및 여행 자문을 선뜻 맡아줬다. 동호회 카페 운영자도 일정, 장비 등 몇 가지 계획서상의 문제점을 지적해 주며 큰 도움을 줬다.

 

3개월만에 준비 끝…달마다 드는 경비 100만원으로

 

5월1일 출발일이 다가오니, 여행 예산에 대해 묻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자전거 여행에는 많은 돈이 들지 않는다. 버스나 기차를 타지 않으니 연료비가 들지 않고, 앞바퀴, 뒷바퀴 옆에 생존에 필요한 살림살이를 넣는 페니어란 이름의 가방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며 숙식도 웬만큼 해결하니 돈 쓸 일이 별로 없다.

 

그래도 자전거 바퀴를 끊임없이 굴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투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집에서 쓰는 생활비 정도로 경비를 책정했다. 한 달에 드는 총경비를 100만원으로 잡았다. 너무 많은 돈인가? 적은 돈인가? 아니면 적당한가? 아마 정답은 없을 것이다. 맞춰서 쓰면 된다. 

 

이제 모든 준비 과정이 마무리됐다. 세계일주 도전 선언 뒤 3개월이 걸렸다. 간절히 원하면 '꿈'은 이루어진다. 나는 내가 평생 꿈꿔온 것을 이루기 위한 도전을 시작한다. 3년 뒤 이 자리로 돌아와 한층 성장해 있을 나를 생각하며 '천마'를 다시 한번 만져 본다.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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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정종호
    


<정종호씨 약력>


굿 럭 ! 정종호씨 - 01 copy 2.jpg1959 년생. 여행가. 산 오르기, 달리기, 자전거 타기, 아침 6시에 약수터 가기, 잡어회에 소주 한병 먹기 따위를 좋아한다. 2001년 백두대간 대관령~설악산 단독 종주를 시작으로, 안나푸르나 및 랑탕 트레킹, 인도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2006년, 2007년 춘천마라톤, 2008년 동아마라톤대회에서 완주했다. 데이콤에서 18년 근무한 뒤 퇴직하고 공인중개사로 4년, 남양주시 오남리 이장으로 2년을 일했다.

메일 jung-jongho@hanmail.net,
블로그 http://cafe.daum.net/bicycle.world.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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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