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이 기른 자연의 맛 그대로 ‘걸쭉’ 우리땅 이맛

[우리땅 이맛] 철원 민통선 메기매운탕

 

그날그날 손질해 쓰고 떨어지면 문 닫아
평야 가로지르는 길은 철따라 이색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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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 토종 먹을거리들 중에, 냇물 강물에 깃들어 살아온 민물고기처럼 토속적인 재료도 드물 터이다.

 

까마득한 옛날 땅덩어리들이 뭉치고 갈라지고 가라앉고 솟아나기를 되풀이 한 끝에 오늘날의 땅 모양이 만들어졌다. 강줄기들 또한 그 변화에 따라 끊어지고 이어지며 새로 흐르기를 거듭한 뒤 오늘의 물줄기들이 형성됐다. 그 결과 대륙마다 나라마다 강물마다 다른 방식으로 진화해온 민물고기들이 오늘날 우리들의 식탁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중국·일본 등 옛날 같은 땅덩어리에 속했던 지역들에선 같은 종의 물고기들이 많이 살고 있기는 하나, 지역 환경에 따라 주류를 이루는 종이 다르고 특산종들도 무수하다. 우리나라만 해도 동해안쪽 물줄기와 서남해안쪽 물줄기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의 종이 다른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학자들은 한 지역 물고기를 다른 지역으로 옮겨 방류해 뒤섞는 일을 반대한다. 강들을 서로 잇는 이른바 운하 건설이라는 것도 환경생태를 파괴하는 것이어서 반대한다. 이렇듯 나라마다 지역마다 재료가 다르고 그 재료를 다루는 양식 또한 다를 것이니 그 맛이야말로 토속적이지 않을 수 없다.

 

나라·지역마다 다르고 요리 또한 다르니 토속적일 수밖에

 

이런 가운데 요즘은 세계경제가 하나로 엮이고, 양식 기술이 발달하면서 민물고기들에서도 토속성이 많이 줄어드는 추세다. 수요가 많고 값이 나가는 것들은 어지간하면 다 수입산이고 양식한 것들이다. 일부 물고기는 양식 과정에 들어가는 항생제나 인위적인 먹이 탓 등으로 발암물질이 검출돼 사회문제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중국 등에서 들여오는 수입 물고기류는 더욱 믿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민물매운탕거리 중 하나인 메기만 해도 시중에 팔리는 수량의 절대다수가 양식된 것이다. 그렇게 굵직굵직하게 자란 메기들이 그렇게 많은 매운탕집에서 수도 없이 팔려나가고 있으니, 양식산이 아니면 물량을 당해낼 수 없으리라. 물론 수입되고 양식된 물고기라 해서 무조건 해로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맛에서는 자연산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게 애호가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같은 자연산이라도 생물과 냉동보관한 것의 맛 차이 또한 크다.

 

그래서 어릴 적 맛보던 매운탕을 잊지 못하는 민물고기 애호가들은 이따금씩, 어부들이 직접 고기를 그물질을 해 잡는 호숫가마을이나 강마을로 차를 모는 것이다. 이렇게 찾은 매운탕집들도 인파가 들끓게 되면 물량이 달려 양식산을 쓰게 마련인데, 애호가들이 이런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할 리 없다. 이럴 경우 애호가들은 미리 연락해 자연산이 있는지 확인한 뒤에 그 집을 찾게 된다. 주인들도 맛에 정통한 단골들을 배려해 자연산과 양식산을 구분해 내놓는 집들이 많다.

 

본디는 군인들만이 이용하던 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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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 최상류, 철원군 동송읍 정연리의 전선휴게소도 자연산 메기만을 쓴다고 내세우는  집이다. 자연산이냐 양식이냐는 별개로 치더라도 이 집이 정말 '만나보기 어려운 집'임은 지리적 환경적 조건과 영업방식으로 볼 때 확실하다. 이 식당이 지닌 남다른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민간인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는 민통선 안에 있다. 둘째, 본디 군인들이 이용하던 휴게소였는데 매운탕 맛이 알려지면서 민간인들이 가세하게 됐다. 셋째, 아직도 군인들의 회식장소 등으로 자주 이용되고, 저녁 이후엔 출입이 금지돼 저녁식사는 할 수 없다. 넷째, 분단의 상처를 보여주는 옛 철길과 철교, 훼손되지 않은 한탄강 최상류 자연경치를 만날 수 있다는 점 들이다.

 

본디 지역 주민들이 모처럼 모임을 겸해 별식 먹으러 찾아가던 '숨어 있던' 집인데, 이젠 애호가들 사이에 꽤 알려져 전국 각지에서 메기매운탕을 먹기 위해 일부러 들르는 곳이 되었다.

 

"몇 년 전만 해두 거기 드갈래면 출발하기 전에 군부대에다 미리 연락하구 이름 적구 허락을 받아야 됐다니까요. 요즘이야 알려질 만큼 알려져노니 연락 없이 차 몰구 가두 아, 매운탕 먹으러 왔습니다 하면 기양 신분증 받고 들여보내 주지만서두."

 

철원군 동송읍 주민 김명호(54)씨의 말이다. 김씨 또한 매운탕 애호가여서 어디서 손님이 오면 차에 태우고 전선휴게소로 향한다고 했다.

 

곳곳 검문소 지나 '끊어진 철길! 금강산 90km' 보이면 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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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휴게소를 찾아가는 길은, 매운탕 맛도 맛이지만, 이색적인 체험을 맛보는 데 손색없는 여정이다.

 

메기매운탕을 맛보기 전에 가는 길부터 즐겨 보자. 예로부터 기름진 땅으로, 군웅이 할거해 격전을 벌였던 한반도 중앙의 그 철원평야다. 동송읍에서 빠져나와 동북쪽으로 곧게 뻗은 2차선 지방도를 30분 가까이 달려야 한다. 군부대 차량과 주민들이 모는 경운기 말고는 오가는 차도 드물고 인적도 드문 2차선 시골길이다. 봄이라면 널찍하게 펼쳐진 논밭 사이를 달리며 온갖 풀꽃 내음과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에 젖어들고, 가을이라면 누렇게 익어가는 곡식과 차창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가을 향기를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가을 겨울에 만나는 볼거리들 중 하나는 논밭과 하늘을 가득 메우며 날아오르고 내려앉기를 거듭하는 철새들의 떼춤이다. 옛 경원선 철길(금강산 가던 철길) 흔적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찻길과 동행하는 이 곧고 평화로운 아스팔트 포장길은 해마다 열리는 `DMZ 평화 마라톤' 코스이기도 하다.

 

김명호씨는 "얼마 전까지 비포장 흙길이어서 쉽게 오갈 수 없는 길이었다"며 "지금은 포장이 돼 오히려 찾아가는 길맛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군부대 검문소가 있는 네거리가 자주 나타나고, 마침내 '끊어진 철길! 금강산 90km'라고 쓰인 철교가 오른쪽에 보인다면, 전선휴게소에 거의 다 온 것이다. 길은 바리케이드로 막히고 검문소 군인들의 제지를 받는다. 이길리 검문소에 신분증을 맡기고 노란색 출입증을 받아 차 앞유리 쪽에 놓은 뒤 정연리 쪽으로 차를 몰면, 철교가 보이는 다리를 건너 다시 검문소를 만난다. 군인 아저씨에게 '매운탕 먹으러 왔습니다'하고 목적을 밝히면 들여보내 준다. 여기서 한굽이 돌아 올라가면 전선교회 옆에 자리 잡은 전선휴게소 식당이 나온다.

 

돌고기, 매자, 모래무지, 피라미 등 잡고기는 원할 때만

 
untitled-10_copy.jpg김영범(60), 김순희(54)씨 부부가 운영하는 메기매운탕 전문식당이다. 어린 시절 부모 따라 전방에 들어와 줄곧 살고 있다는 안주인 김씨는 남편 김영범씨와 함께 15년 전부터 이곳에서 매운탕집을 꾸리고 있다.

 

남편은 농삿일을 주로 하면서 식당일을 돕고, 부인은 식당일을 도맡아 하며 농삿일을 도와준다. 김순희씨의 말을 종합하면 이 식당의 특징은 "한탄강에서 나오는 메기로 매운탕을 끓이고, 오직 메기매운탕 한 가지만 하며, 주변에서 재배한 야채들로 반찬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메기는 김영범씨가 직접 잡기도 하지만 주로 토성리, 동막리 등의 주민들이 한탄강 상류 지역에서 잡은 것을 받아와 쓴다. 한탄강 주변 마을엔 오래 전부터 어로작업을 해오며 어업권을 확보한 어부들이 몇 집씩 있다. 김순희씨는 "정연리 주변 등 한탄강 최상류 지역은 민간인 통제지역이어서 민물고기 어획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고 말했다. 그날 받아온 물량이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 장마철엔 물량이 너무 많이 들어와 다 받지 못하는 날도 있다고 한다. 

김순희씨가 말했다. "우린 그날그날 손질해 쓰기 때문에 냉동시킨 건 아예 내놓지 않아요. 냉동해 두면 언제든 쓸 수 있겠지만, 얼린 메기는 절대 안 씁니다. 맛 차이가 크기 때문이죠. 메기 맛을 아는 분들은 얼린 건지 아닌지 다 알거든요."

 

남편 김씨가 주민들에게서 메기를 받아오면 주방을 맡은 안주인 김씨는 즉각 손질하고 토막을 내 냉장 보관해 둔다. 손님이 오면 주문한 양만큼 꺼내, 직접 농사지은 고추를 말려 빻아 만든 고춧가루와 고추장, 마늘 양념을 해 끓인다. 들어가는 메기의 수는 일정하지 않다. 메기 크기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돌고기, 매자, 모래무지, 피라미 등 잡고기도 소량씩 얼려 놓고 있지만, 따로 잡고기를 원하는 손님들에게만 낸다.

 

저녁은 안 팔아…미리 전화연락은 필수

 

untitled-11_copy.jpg메기가 익으면 직접 반죽해 만든 수제비를 뜯어 넣고 깻잎과 파, 미나리 등 야채를 얹어 손님상에 낸다. 봄철엔 그때그때 나오는 산나물들을 추가로 넣기도 한다. 조미료는 "맛을 내기 위해 적은 양을 쓴다." 그러나 손님 중엔 조미료를 싫어하는 경우가 있다. "조미료 싫어하는 손님들은 먼저 조미료 넣지 말라고 말씀들을 하시죠." 김씨는 메기 맛을 제대로 아는 이들은 절대 조미료를 넣지 말라고 주문한다고 말했다.

 

다 끓은 매운탕을 보면 물의 양을 넉넉히 잡아 메기 살이 무르녹은 국물이 아주 걸쭉하고 진하면서도 시원하다. 부드럽게 씹히는 메기 살에서도 흙내가 나지 않고 순한 자연의 향이 느껴지는 듯하다. 손님상에서 한 번 더 끓이게 되는데, 수제비를 미리 넣어오므로 국물이 다소 뻑뻑해져 더 맑은 탕을 즐기는 이들에겐 아쉬울 수 있다. 밑반찬은 평범하다. 고추절임·오이무침·콩장·취나물·미나리무침 등이 나온다.

 

이 오지의 군인 휴게소도 이제 알음알음으로 어지간히 알려져, 이름깨나 알려진 높은 분들도 많이 찾아온다고 김씨는 귀띔했다. 오전 10시부터 영업을 시작해 5시 넘으면 문을 닫는다. 물론 준비해둔 물량이 떨어지면 영업하지 않으므로 미리 연락해 보고 떠나는 게 좋다.

식당 옆은 한탄강 최상류 지역이다. 강을 가로지르는 철교(근대문화유산)가 옆에 있어 가볼 만하다. '끊어진 철길, 금강산 90㎞'라 옆에 적혀 있는 옛 철길이다. 예전엔 이 철교에 철조망을 쳐놓아 출입을 금지시켰는데, 얼마 전부터 철조망을 걷어내 다리 위로 올라가 볼 수 있게 했다. 분단의 아픔을 다시 새겨볼 수 있는 현장이다.

 

 

< 철원 전선휴게소>

메기매운탕 소(2~3인분) 중(4~5인분) 대(5~6인분)가 각각 3만, 4만, 5만원. 예약하면 토종닭 백숙(3만5천원)도 먹을 수 있다. 삼지구엽초와 꿀도 판다. (033)458-6068. 김영범씨 휴대전화 017-211-6068.

 

< 가는 길>

수도권에서 43번 국도를 타고 가다 포천에서 87번 국도로 갈아타고 철원 동송으로 간다. 동송읍에서 대마리 쪽으로, 도피안사 입구 지나 직진, 월하삼거리에서 464번 지방도 만나 양지리 쪽으로 우회전한다. 여기서부터 곧장 직진이다. 몇 번 네거리를 만나 직진하면 양지리와 이길리를 지나 정연리가 나온다. 앞서 이길리 검문소에서 방문 목적을 말하고 신분증을 맡긴 뒤 노란색 출입증(파란색은 단순히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출입증)을 받는다. 인적사항을 적어내야 한다. 정연리에서 유곡 쪽으로 직진하면 정연교 지나 부대초소가 나온다. 방문 목적을 다시 밝힌 뒤 한굽이 돌아오르면 전선교회와 전선휴게소가 나온다.


< 주변 볼거리>

노동당사, 제3땅굴, 월정리역, 고석정, 매월동계곡, 매월대폭포, 삼부연폭포, 직탕폭포, 도피안사.

 

 

이병학 한겨레 여행전문기자 leebh99@hani.co.kr 

 

* 이 기사는 지난해 말 한국관광공사가 진행하는 '구석구석 맛탐험' 코너에 게재했던 글을 바탕으로, 최근 다시 현장을 찾아가 그 사이 달라진 내용 등을 손보고 추가한 것입니다. 사진은 이번에 새로 촬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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