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텅구리’가 아닙니다 길에서 찰칵

[길에서 찰칵] 양구 장평 명통구리 상점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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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양구군 방산면 장평리 잡화점에 걸린 고색창연한 한자 간판이다. 한 자릿수인 전화번호의 국번, 번호 앞의 수화기 표시가 오래된 간판임을 짐작케 한다. 이(利)의 한 획이 세월의 무게를 못 견디고 떨어져 나갔고, 밑의 전화번호도 숫자가 하나 사라졌다.

 

멍텅구리가 아니라 명통구리(明通求利)다. ‘두루 밝게 통해 이익을 구한다’ 또는 ‘밝게 꿰뚫으면 이익을 얻는다’ 는 뜻으로 읽힌다.

 

이 간판은 함남 출신 김춘호(작고)·정영자(73)씨 부부가 한국전쟁 때 피난 내려와 가게를 차리면서 내건 것이라고 한다. ‘밝게 양심적으로 장사를 하는 상점’이라는 뜻에서 붙였다고 한다. 본디 ‘상점’이란 글자도 있었으나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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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통구리’는 사실 일제 때부터 50~60년대까지 유행하던 상점 이름이었다. 미련하고 모자라는 이를 뜻하는 ‘멍텅구리’에 발음이 비슷한 한자를 갖다 붙여 만든 것이다. 애초 영리한 장사꾼이 물건을 싸게 파는 어수룩한 집이라는 느낌을 주어, 사람들을 꾀려는 의도에서 쓴 것이라고 한다(<아이한자 새소식>의 한의학박사 변정환 글 ‘멍청과 명석’ 참조). 지금도 드물기는 하지만 전국 곳곳에 명통구리란 간판을 단 가게들이 남아 있다.

 

장평리의 이 가게는 지금 아들 김철웅·김원회씨 부부가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가게 전화번호는 국번만 두 자릿수를 거쳐 세 자릿수로 바뀌었을 뿐, 뒷 번호 5037은 그대로 쓰인다.

 

정영자씨는 “우린 관심도 두지 않았던 간판인데, 언제부턴가 지나가다 말고 차에서 내려 내용을 묻고 사진 찍어가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며 “떼어내지도 않고 고치지도 않고 그대로 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소한 것이라도, 소중히 오래 지키면 전통이 되고 가치 있는 내력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간판이다.  

 

양구/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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