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명소 예감, 미리 가본 ‘신해철 거리’ 길과 풍경

성남시, 수내동에 연말까지 ‘신해철 거리’ 조성
조형물 등 설치하고 유품·음악작업실도 공개
대구 ‘김광석 거리’ 이은 명소 가능성 주목 

‘마왕’ 신해철을 추억하며 그의 음악과 삶을 기릴 수 있는 ‘신해철 거리’가 올해 연말 선보인다. 경기 성남시가 12월 말까지 분당구 수내동에 160m 길이의 ‘신해철 거리’를 조성하고 내년 초 공식 개장할 예정이다. 이미 인기 관광지로 자리잡은 대구 ‘김광석 거리’에 이어, ‘신해철 거리’가 대중음악인을 기리는 또 하나의 명소로 떠오르게 될지 관심을 끈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신해철 거리를 미리 찾아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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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연필 초상.


11월16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3동 푸른숲전원마을 수내파출소 건너편 거리(분당구 발이봉로 3번길 2 일대). 빛바랜 잎들을 달고 있는 느티나무 가로수들이 이어진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 땅을 고르고 경계석을 설치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들머리엔 철제 조형물이 세워지고 있다. 성남시가 지난 5월부터 1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조성 중인 ‘신해철 거리’ 조성 공사 현장이다. 아직은 혼잡한 분위기지만, 네거리 입구부터 수내어린이공원까지 160m 구간에 조성될 보행로와 쉼터, 시설물 등을 더듬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신해철 거리에 설치될 주요 시설물은 기념 보도블록을 깐 보행로와 추모마당, 음악 작업실을 리모델링한 기념관, 그리고 상징물 들이다. 보행로에 깔리는 보도블록 일부엔 팬들과 연예인 등이 쓴 추모글을 새긴 추모 블록 80개와 신해철이 남긴 인상적인 말들을 새긴 어록 블록 12개가 설치된다. 거리 곳곳에 신해철의 노래 가사를 새긴 노랫말 표석 10개도 세워질 예정이다.

공사가 진행중인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신해철 거리’.
공사가 진행중인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신해철 거리’.

신해철 거리의 중간쯤에는 추모마당이 들어선다. 신해철의 사진을 중심으로 생애를 적은 빗돌과 노래 가사, 거리 조성에 참여한 팬들의 명단을 새긴 ‘가벽’이 세워진다. 가벽 앞에는 고인 몸집 크기의 동상(전신 좌상)이 설치된다. 좌상은 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모습으로 제작해, 탐방객들이 카리스마 넘치는 ‘마왕’ 곁에 앉아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또 입구에서 언덕길로 오르는 길목엔 신해철의 노래 선율이 흘러나오는 ‘멜로디 계단’을 설치해, 아치형 ‘상징 게이트’와 함께 명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작업실 한쪽에 쌓여 있는 악기와 소품들.
작업실 한쪽에 쌓여 있는 악기와 소품들.

신해철 거리 탐방의 거점이 되는 장소는, 그가 마지막까지 사용했던 음악 작업실이 될 듯하다. 조성중인 거리 한쪽 건물 지하에 그가 노래를 만들어 연습하고, 책 읽고 토론하며 동료·후배들과 함께하던 공간이 있다. 부동산중개업소 지하층이다. 신해철은 2012년부터 세상을 뜨기 전까지 2년간 이곳을 작업실로 썼다.

성남시 쪽과 관리인의 허락을 얻어 작업실로 들어가 봤다. 문을 열자,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러온다. 관리인은 고인이 사용하던 당시 모습 그대로라고 했다. 3년의 시간이 멈춘 듯, 벽 한쪽엔 악기와 소품들이 쌓여 있고 담배와 라이터, 술병과 술잔들도 그대로다. 잠겨 있는 연습실 안으로 피아노 등 악기들이 보인다. 응접실 겸 서재의 벽면엔 평소 책을 좋아하던 그답게 손때 묻은 책들을 빼곡하게 꽂아 놓았다. 마치 주인이 잠시 외출한 방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오토바이 헬멧도 커피 분쇄기도 와인 병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술이 반쯤 남은 술병도 보인다. 탁자에 놓인 시든 꽃다발과 누군가 유족에게 보내온 “힘내세요. 해철님께 못다 한 것…응원할게요”라고 적힌 쪽지 등이 주인의 부재를 알려준다.

신해철이 숨지기 전 2년간 사용했던 음악작업실 안의 서재 모습.
신해철이 숨지기 전 2년간 사용했던 음악작업실 안의 서재 모습.

작업실 안의 피아노.(성남시청 제공)
작업실 안의 피아노.(성남시청 제공)

작업실 안에 남아 있는 담배와 재떨이.
작업실 안에 남아 있는 담배와 재떨이.

작업실 안 탁자에 놓여 있는 와인병과 잔, 커피 분쇄기 등.
작업실 안 탁자에 놓여 있는 와인병과 잔, 커피 분쇄기 등.

성남시 쪽은 30평 넓이의 이 작업실을 최소한의 손질만 한 뒤 그대로 보전해, 유품들과 함께 시민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김태협 성남시 관광개발팀장은 “유품 등 현장을 보전해, 방문객들이 고인의 숨결을 느끼면서 그의 음악과 공연 영상 등을 감상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해철 거리 조성에 대한 현지 주민들 반응은 어떨까. 기대 반 걱정 반이다. 기대하는 쪽은 주로 상인들이다. 한 편의점 주인은 “기념 거리가 만들어지면 아무래도 방문객이 많아지고 거리도 활성화되지 않겠느냐”며 “관광 명소가 되면 마을 전체가 활기를 띠게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 생활소품 가게 주인도 “관광 명소가 되면 좋겠다”며 “벌써 가게 나온 것 없느냐고 물어오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그러나 한 카페에서 만난 주민은 “여기가 주택가인데,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면 소란스럽고 번잡스러워지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조용히 앉아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고인을 기억하는 공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남시 쪽은 주민들의 뜻을 수용해, 소음을 최소화한 추모의 거리를 조성할 예정이다. 애초의 거리 스피커 설치 계획을 수정하고, 음악 감상은 작업실 공간에서만 이뤄지도록 할 방침이다.

작업실 안에 펼쳐져 있는 신해철 관련 기사 스크랩북.
작업실 안에 펼쳐져 있는 신해철 관련 기사 스크랩북.

‘신해철 거리’는 대중문화 예술인의 이름을 딴 또 하나의 명소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유럽 등지엔 한 시대를 풍미한 문인·예술가 등 유명인들 이름을 붙인 거리가 수두룩하다. 대부분 관광 명소로 떠올라 탐방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국내엔 이런 곳이 매우 적지만, 최근 들어 유명인 이름을 딴 거리가 하나 둘씩 늘어나는 추세다. 대구에 대중가수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하 김광석 거리)이 있고, 제주 서귀포엔 화가 ‘이중섭 거리’, 수원에는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거리’가 조성돼 있다. 드물게 생존 인물의 이름을 따서 지은 목포의 ‘남진 야시장’도 있다.

이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이 대구의 ‘김광석 거리’다. 김광석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 옆에 조성됐다. 2009년 방천시장 살리기 사업의 하나로 김광석 관련 벽화 작업 등이 이뤄지면서다. 이후 총 길이 350m의 거리와 골목에 벽화 43점, 김광석 동상 2점, 골목방송 스튜디오, 야외공연장, 김광석의 홀로그램 영상을 볼 수 있는 스토리하우스 등이 설치됐다. 김광석을 기리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쇠락해가던 골목은 개성적인 카페·음식점 거리로 거듭났다. 지난해에만 무려 100만여명이 방문해, 명실공히 대구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김광석 거리로 들어서면 숱한 볼거리·체험거리와 함께 여기저기에서 김광석의 노래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서민적이고 정감 있는 김광석의 노래 분위기가 서민들이 많이 찾는 소란스러운 방천시장과 잘 어우러져 한결 분위기를 돋운다.

신해철 음악작업실 안에서 만난 신해철 초상화와 사진들.
신해철 음악작업실 안에서 만난 신해철 초상화와 사진들.

이런 김광석 거리와 이제 막 조성되고 있는 신해철 거리를 비교하는 건 무리지만, 신해철 거리엔 제한적 요소가 많은 게 사실이다. 주택가에 자리한데다 길이도 짧다. 방문객이 급증할 경우 소음 발생 민원이 우려되기도 한다. 김광석 거리는 도시철도역이 2곳이나 인접해 있고, 대구 중구 골목투어 코스의 일부로 탐방객들이 자연스럽게 유도된다. 신해철 거리는 이에 비해 접근성(수내역에서 내려 버스로 5~6분 거리)이 다소 떨어지고, 신생 아파트촌이어서 연계 투어 코스 마련도 마땅치 않다. 카리스마 넘치는 신해철의 이미지와 개성적인 노래들이 주택가의 ‘조용한 추모 거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신해철 거리가 김광석 거리와 같아야 할 이유는 없다. 특별한 것은 신해철이 생애 마지막 시기에 음악 작업을 하던, 고인의 체취가 밴 기념 공간이 있다는 점이다. 주택가 공원이 도시적인 분위기의 고인과 잘 어울린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신해철 거리’ 추모마당에 세울 동상 등 조형물 조감도.
‘신해철 거리’ 추모마당에 세울 동상 등 조형물 조감도.

신해철의 삶과 음악을 그리워하고 기리고 싶은 이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이에 호응하는 거리 시설과 행사가 주민과의 협조 아래 자리를 잡아간다면, 신해철 거리의 영역은 좌우 골목들까지로 크게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성남시 김태협 팀장은 “중심거리가 자리잡으면, 자연스럽게 좌우로 이어진 골목들도 활성화될 것으로 본다”며 “지속적인 시설 확충과 보완, 그리고 주민·음악인·팬들과의 협의 아래 신해철 거리를 김광석 거리 버금가는 명소로 키워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Shin hae chul(신해철)

1968년 서울 출생. 뮤지션, 음악 프로듀서, 라디오 디제이, 방송인 그리고 독설가. 별명은 ‘마왕’.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밴드 무한궤도 리더로 대상을 받으며 데뷔. 솔로, 밴드(넥스트 등), 영화음악 등 총 35장의 앨범 발표. 대표곡으로는 ‘그대에게’,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민물장어의 꿈’ 등이 있음. 2014년 불의의 의료사고로 사망.

성남/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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