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어나고 묵직한 대한민국 한복판 길따라 삶따라

충북 영동 국악의 거리~옥계폭포, 노근리~월류봉 완행버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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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 월류봉(제1봉)에서 내려다본 초강천 물줄기와 원촌리 마을. 왼쪽에 한반도 지형이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 심하게 굽이쳐 흐르던 옛 물길(구하도) 흔적이 보인다. 감입곡류(嵌入曲流) 하천의 변화를 보여주는, 지리학적으로 중요한 지형이다.

영동군은 충청북도 남쪽 끝, 충남·전북·경북도 경계 지역의 고장이다. 충북도의 지자체들이 저마다 “남한의 중심 고장”임을 주장하듯, 영동군 주민들도 ‘중심지’ 자랑이라면 지지 않는다. “말함 뭐해, 여가 바로 전국의 한복판이지. 암, 어딜 가더라도 반나절권이여.”(영동읍 주민 이영준씨·68)


“복판 중 복판”, 민주지산·황악산 너른 산자락을 구석구석 금강 상류 물줄기가 감싸고 도는 곳, 영동군의 농어촌버스 2개 노선을 탔다. 국악체험촌인 ‘국악의 거리’를 둘러본 뒤 옥계폭포의 자태를 감상하는 서쪽 노선, 그리고 노근리 사건 현장을 거쳐 금강 상류 물길 어우러진 월류봉 산행을 즐기는 동쪽 노선이다. 전국 각지로 가기엔 좋은 고장인지 몰라도, 군의 각 지역을 버스로 여행하기엔 다소 불편했다. 여느 고장이 그렇듯 이용객이 줄면서 버스 배차 간격이 뜸해진 탓이다. 운행 노선과 정차 시각을 잘 확인해 두고, 탐방 시간 안배에 신경 써야 한다.


정류소 4곳 ‘승하차 도우미’


영동 시외버스 공용터미널. 관내 완행버스(농어촌버스)를 운행하는 ㈜동일버스 사무실에서 버스 노선·시각표를 받아들었다. ‘국악의 거리’와 옥계폭포 입구를 거치는 ‘날근이(날근리)행’ 노선은 오전 6시40분과 10시20분, 오후 3시50분 하루 3차례만 운행한다. 1~2시간 간격으로 출발하는 청주행 직행버스를 타도 국악의 거리와 옥계폭포 입구에서 내릴 수 있다. 10시20분 출발 완행버스를 탔다. 찻삯은 현금 1300원, 교통카드 1200원으로 관내 단일요금이다.

영동시장 버스정류소의 ‘승하차 도우미’.
영동시장 버스정류소의 ‘승하차 도우미’.

‘승하차 도우미’는 버스에 타고 내리는 어르신들을 부축하거나 짐을 들어 드리고, 버스 도착 시각도 알려준다.
‘승하차 도우미’는 버스에 타고 내리는 어르신들을 부축하거나 짐을 들어 드리고, 버스 도착 시각도 알려준다.

텅 빈 채 출발한 버스가 영동시장 앞 정류소에 도착했다. 짐을 이고 진 어르신들로 혼잡해졌다. 마침 영동장날(4일·9일)이다. “할머니, 짐은 이리 주시고요. 천천히 타세요.” 정류소에서 주황색 점퍼를 입은 50대 아주머니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짐을 받아 버스에 싣고, 힘겹게 오르는 어르신들을 부축해 드린다. ‘버스 승하차 도우미’다. 영동군은 버스에 승차해 어르신들을 돕는 ‘안내 도우미’ 대신, 장날마다 붐비는 정류소 4곳에 ‘승하차 도우미’를 배치해 운영한다.

어르신들로 빈자리가 드물어진 버스는 영동천을 건너 난계국악당 앞을 지나 4번 국도를 천천히 달린다. 차창 밖 풍경은 여전히 썰렁한 늦겨울 빛깔이지만, 논밭은 내리쬐는 햇살에 아지랑이라도 오를 듯 푸근해 보인다.


운전기사가 갑자기 몇 차례 경적을 울린다. 무슨 일인가 싶어 승객들은 기사와 창밖을 번갈아 바라본다. 차창 밖 멀리 밭에서 한 남자가 몸을 일으켜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든다. 기사는 씩 웃으며 한번 더 짧게 경적을 울려준다. “반가운 사람이 보여서요. 옛날에 기사로 같이 일하던 친구예요.” 농어촌 완행버스에서만 만날 수 있는 광경이다.


국악체험·와인시음 뒤 옥계폭포 감상


심천면 약목리 지나 고당1리 정류소에서 내려 국악의 거리를 둘러봤다. ‘국악의 아버지’ 난계 박연(1378~1458)을 기려 조성한 거리다. 박연은 조선 초기 음악 정비에 크게 공헌한 영동 출신 음악가다. 국악의 역사와 박연 일대기, 편종·비파·가야금·거문고 등 국악기들을 전시한 난계국악박물관, 국악기 연주·제작 체험을 할 수 있는 국악체험촌 그리고 사당인 난계사 등이 이곳에 모여 있다. 체험촌 공연장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무료 국악공연이 벌어진다.


‘국악의 거리’ 난계국악박물관.
‘국악의 거리’ 난계국악박물관.

‘국악의 거리’ 영동와인 홍보판매장. 와인 무료 시음을 할 수 있다.
‘국악의 거리’ 영동와인 홍보판매장. 와인 무료 시음을 할 수 있다.

영동의 또 다른 자랑거리 영동와인을 거저 맛볼 수 있는 ‘영동와인 홍보판매장’도 있다. 주로 캠벨 품종을 이용해 농가 42곳에서 와인 100여종을 생산한다고 한다. 향도 맛도 외국 유명 와인 못지않다는 술 두어 잔을 비우고 나니, 몸도 마음도 봄날처럼 푸근해졌다.


박연 찾던 옥계폭포 등 멋진 풍광

‘현대사 아픔’ 노근리서 역사 되새겨

국악거리선 매주 토요일 무료공연

노선·시각 확인하고 시간안배 잘해야


정류소에서 20~30분을 기다려 옥천·청주행 직행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 뒤인 옥계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요금은 역시 1300원. 여기서 찻길 건너 20여분, 사찰 고당사(천국사)를 지나 산길을 걸어오르면 월이산(달이산) 자락 옥계폭포에 닿는다.


옥계폭포는 높이 30m쯤 되는 아름다운 폭포다. 양쪽으로 활짝 펼쳐진 거대한 암벽 한가운데에 수직 폭포가 걸려 있다. 한겨울엔 빙벽등반 장소로도 이용된다고 한다. 아직 일부가 얼어붙은 모습이지만, 수량이 늘고 주변에 녹음이 우거진다면 폭포 경관은 더 도드라질 게 틀림없다. 난계 박연도 이 폭포를 자주 찾아 경관을 즐겼다고 한다. 월이산 능선을 한바퀴 돌아 내려오는 3시간짜리 산행코스도 있다.


고당리 월이산(달이산) 자락 옥계폭포.
고당리 월이산(달이산) 자락 옥계폭포.

폭포와 찻길 중간인 폭포 들머리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4번 국도로 내려왔다. ‘날근이’에서 돌아 나와 옥계마을 정류소에 오후 4시40분에 도착하는 완행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돌아왔다. 영동터미널로 가는 직행버스를 타도 된다.


노근리 아픔 되새기며 월류봉으로


노근리 거쳐 황간면소재지까지 오가는 완행버스는 20~40분 간격으로 있다. 읍내 중앙사거리 농협은행 건너편, 중앙소공원 정류소에서 황간행 동일버스를 타면 된다. 터미널을 출발한 버스가 이곳을 거쳐 간다.


4번 국도 따라 주곡리·조현마을·가리 지나면 목화실마을 입구에 ‘노근리 평화공원’이 나타난다. 한국전쟁 초기, 후퇴하던 미군이 노근리 경부선 철도 쌍굴다리 일대에서 공군기 폭격과 기관총 사격으로 주민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조성한 기념관·공원이다. 1950년 7월25일부터 닷새 동안 영유아를 포함해 300~400명의 피란민이 철길과 굴다리 일대에서 희생됐다고 한다. 굴다리 주변에 남은 무수한 총탄 자국이 당시 참상을 말해준다.


노근리 학살사건 현장인 쌍굴다리.
노근리 학살사건 현장인 쌍굴다리.

노근리 쌍굴다리의 총탄자국들.
노근리 쌍굴다리의 총탄자국들.

살아남은 주민들의 고통과 분노를 짚어보며, 다시 버스를 타고 황간면소재지로 향한다. 면소재지 못미처 마산리 에넥스 황간공장 입구에서 내려, ‘달도 머물다 갈 정도로 아름답다’는 월류봉(400m)에 올랐다. 월류봉은 금강 상류인 초강천이 물길 옆에 솟은 바위산으로, 굽이치는 물길과 정자 월류정 등이 어우러져 멋진 경치가 한눈에 펼쳐지는 곳이다. 하마산리 표석 왼쪽 길로 오르면 된다. 가파른 산길을 30여분 올라 만나는 월류1봉(365m)에서, 발밑으로 굽이쳐 흐르는 초강천 물길을 감상할 수 있다. 물길이 빚어낸 한반도 지형과, 오래전 물 흐름이 바뀌며 경작지로 변한 옛 물길(구 하천 지형) 모습을 관찰할 수 있어 지리학도들도 많이 찾는 산이다.


월류봉 자락 초강천 물가의 정자 월류정. 왼쪽 봉우리가 월류봉이다.
월류봉 자락 초강천 물가의 정자 월류정. 왼쪽 봉우리가 월류봉이다.

산에서 내려와 에넥스 공장 옆길을 따라 걸으며 물가에서 작은 빗돌 ‘회도석’(回導石)을 만났다. 황간 지역을 빠져나가려는 배 형상 바위산의 뱃머리를 돌리려고 세웠다는 빗돌이다. 원촌리 서원마을로 들어섰다. 월류봉에서 내려다봤던 한반도 지형 옆 물길 앞 마을이다. 월류봉에서 흘러내린 바위능선 끝에 올라앉은 월류정의 자태가 볼만하다. 월류봉과 정자 등 일대의 빼어난 경관 8곳을 ‘한천팔경’으로 부른다. 서원마을이란 이름은 한천서원이 있었던 데서 나왔다. 한때 이곳에 머물며 후학을 가르친 조선 중기 학자 우암 송시열을 배향한 곳이다. 지금은 서원 자리에 건립한 한천정사와 송우암 유허비가 남아 있다.


여기서 영동버스터미널로 돌아가는 방법은 2가지다. 찻길로 나가 하루 세 차례 지나는 완행버스(영동터미널~황간~월류봉~상주 모서~용산~영동터미널)를 타거나, 30분가량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다.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타더라도 1시간30분 이상 걸려 먼 길을 돌아가야 하니 걷는 편이 낫다.


영동/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영동 완행버스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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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동서울터미널에서 영동 시외버스공용터미널까지 하루 3회(오전 10시, 오후 2시, 6시) 고속버스가 다닌다. 1만5900원. 2시간40분 걸림. 서울역~영동역을 무궁화호 열차는 2시간35분 걸리며, 약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2시간25분 걸리는 새마을호는 하루 3회 운행. 영동버스터미널 동일버스 사무실에서 완행버스 노선·시각표를 얻을 수 있다. 왕복·순환 등 노선이 복잡하다. 운전기사에게 갈 때와 올 때 정류소 위치와 시각 등을 확인해 두는 게 좋다.


먹을 곳

 ‘올뱅이(다슬기)국밥’을 내는 식당이 많다. 다슬기 삶은 물에 된장을 푼 육수는 비슷하지만, 넣는 채소는 다르다. 영동시장 부근의 7년 된 진미식당은 아욱을 넣고, 21년 된 일미식당은 근대를 넣는다. 36년 전통의 뒷골식당은 어린배춧잎·시금치·파를 함께 넣는다. 황간면 마산리의 40년 전통 인터식당은 아욱·근대·시금치·부추·파를 넣고 끓여낸다. 황간면 황간소방서와 회도석 사이 월류봉민물식당의 민물매운탕·생선국수(어탕국수), 옥계폭포 들머리 폭포가든의 우렁쌈밥·황태요리, 영동시장 맞은편 골목 사랑채의 백반 등도 있다.


묵을 곳 

영동시장 맞은편 골목에 스탕달모텔 등 모텔이 모여 있다. 황간면소재지에도 모텔이 있다.


여행문의 

영동군청 (043)740-3114, 영동 관광안내소 (043)745-7741, 영동 시외버스공용터미널 (041)1688-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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