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아 놀자, 따뜻하게 눈부시게 제철여행

‘추위취약자’를 위한 겨울여행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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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에서 옛 대관령휴게소로 가는 길에 만난 설경. 지난 2012년 폭설 때 찍은 사진이다.

봄날 같은 날씨가 이어지더니, 이윽고 매서운 동장군이 싸늘한 본색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추위에도 즐거운 여행이 가능할까요. 추위를 그저 피부처럼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이야 추워질수록 다채로워지는 즐길거리, 볼거리에 화색이 돌 테죠. 하지만 40대 가장 김현배(서울 상계동)씨의 경우는 다릅니다.

“아우, 추운 거 정말 싫어요. 추운 날 휴일엔 집에서 티브이 보는 게 최고죠. 외식하자고 하면 배달시켜 먹고요.” 이런 남편 때문에 아내 신소영씨는, 겨울에 가족이 야외로 나가본 일이 드물다고 털어놨습니다. “그 흔한 스키장, 눈축제장에도 못 가봤어요. 아이들하고 얼음낚시도 하고 싶고 멋진 설경도 보고 싶은데, 남편이 질색을 하거든요.”

김씨처럼 유독 추위를 타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체질적인 ‘추위 취약 계층’이죠. 겨울철이 여행의 휴지기·비수기로 인식돼온 건 사실 추위 영향이 큽니다. 어린 자녀나 노약자를 동반한 장거리 여행에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한국관광공사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그동안 봄가을에만 진행했던 ‘관광주간’을 올해부턴 1월(14~30일)에도 신설해 운영하더군요. 비수기로 인식된 겨울철 여행을 활성화시키자는 취지입니다. 

겨울 여행 확산을 위해 스키장이나 겨울축제장을 찾는 상품, 겨울 먹거리 투어 같은 상품을 내놓는답니다. 주요 관광지의 입장료·숙박업소·음식점 할인행사도 벌이고요(‘겨울여행주간’ 누리집 winter.visitkorea.or.kr 참조). 하지만 추위라면 질색을 하는 이들에게 여행의 적기니 할인행사니 하는 구호들이 소름 돋은 피부에 와 닿을까요.

횡계리 황태덕장. 지난 2012년 폭설 때 찍은 사진이다.
횡계리 황태덕장. 지난 2012년 폭설 때 찍은 사진이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춥지 않게, 아니 추위 덜 느끼면서 칼바람 부는 겨울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입니다. 눈 오고 바람 부는 창밖만 내다봐도 소름이 돋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눈 경치 등 겨울 풍경을 즐길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분들에게 약간의 도움이 될 게 틀림없습니다.

평소 눈을 만지기 싫어해 눈사람 한번 못 만들어본 분, 눈물이 자주 말라 칼바람 맞고라도 눈물 왕창 쏟아내보고 싶은 분, 눈밭·얼음판 위에서 후끈 달아오르고 싶은 분, 따뜻한 차 안에서 탁 트인 설경 만나고 싶은 분, 잠시 걸어서 장쾌한 설산 파노라마를 감상하고 싶은 분, 그리고 연인 손 꼭 잡아 녹여주고 녹으며 눈부신 겨울 별밤을 누리고 싶은 분….

물론, 어느 정도 추위는 감내해야 하겠지요. 그러나 고통스러울 정도는 아니니 안심해도 좋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추워진다면 난로 옆이든 차량이든 곧바로 몸을 녹일 수 있을 정도의 여건이 되는 곳이니까요. 단, 최소한의 준비는 필요합니다. 눈길 체인 등 차량용 월동장구, 미끄러짐 방지용 아이젠, 핫팩과 열량 많은 비상용 간식 등을 갖추는 게 좋고요. 두꺼운 외투와 모자·장갑·등산화는 필수지요.

자, 춥고 바람 부는 겨울이 싫었던 분들, 내일은 이불 걷어차고 나와 문을 활짝 열어젖혀 볼까요. 꽤 괜찮은 설경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준비됐다면, 훈훈한 겨울 속으로 출발! 차량 히터를 미리 최고온으로 켜놓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발썰매부터 얼음낚시까지 ‘이 맛에 겨울’


추위 잊게 해주는 체험거리들
‘죽도록 움직여라. 그러면 산다.’ 군대에서 배운 ‘얼어죽지 않는 법’ 중 하나다. 스스로 열을 내 견디는 방법이다. 몸을 부단히 움직이면 눈밭을 뒹굴어도 즐겁고, ‘얼음 위에 댓잎 자리’ 깔고 놀아도 끄떡없다. 추위 타는 이들도 신나게 열나게 즐길 수 있는 체험거리가 마련된 곳으로 간다.

■ 전통 스키 타며 사냥 체험 강원 평창군 차항2리(눈꽃마을). 나뭇가지를 휘어 엮은 설피(눈 신발)나, 고로쇠나무를 얇게 깎아 만든 발썰매(전통 스키) 체험, 그리고 이런 눈길 이동수단을 바탕으로 행해진 사냥(황병산 사냥놀이) 체험까지 할 수 있는 곳이다.

발썰매는 양발에 차는 건 스키와 비슷하지만 스틱 구실을 하는 막대기(쇠창)가 하나인 게 다르다. 설피가 눈에 빠지지 않고 걸을 수 있는 도구라면, 발썰매는 평지와 내리막을 빠르게 이동하는 수단이다. 강환문 차항2리 이장은 “옛날엔 이걸 타고 물건도 나르고 토끼·노루·멧돼지 사냥도 했다”고 말했다. 이 마을의 민속놀이 황병산사냥놀이(강원도무형문화재 19호)엔 설피와 발썰매, 스틱 구실을 하는 쇠창이 모두 동원된다. 봅슬레이 눈썰매, 소코뚜레 만들기 등도 즐길 거리다. 눈썰매장 옆에 어묵·떡볶이 등을 파는 대형 비닐집이 마련돼 있다.

청양 ‘칠갑산얼음분수축제’의 밤 구워먹기 체험장.
청양 ‘칠갑산얼음분수축제’의 밤 구워먹기 체험장.

■ 장작불 에워싸고 밤 구워 먹기 충남 청양군 천장리는 ‘칠갑산얼음분수축제’(2월12일까지)로 이름난 마을이다. 얼음조각·눈조각 등이 볼거리인데, 인파가 가장 몰리는 곳은 농산물 구워 먹기 체험장이다. 특히 압도적 인기를 누리는 것이 밤 구워 먹기다.

생밤을 한 보따리 사면, 끝에 큼직한 뜰채 철망이 달린 긴 막대기와 장갑을 나눠 준다. 곳곳에 마련된, 벌겋게 달아오른 장작불을 에워싸고 남녀노소가 뜰채 철망에 밤을 담아 내밀어, 타지 않도록 흔들며 밤을 굽는다. 군밤 맛도 맛이지만, 떼 지어 군밤 굽는 모습 자체가 색다른 볼거리다. 불 곁에서 즐기는 먹거리 체험이니 추운 날에도 부담이 없다. 주말엔 진입로를 메울 정도로 차가 몰린다. 평일 오전을 노리는 게 좋다.

평창 송어축제의 얼음낚시터.
평창 송어축제의 얼음낚시터.

■ 텐트 안에서 맛보는 묵직한 손맛 따뜻한 날씨로 유명무실해지던 강원도 곳곳의 얼음낚시 축제들이 이번주부터 제구실을 할 모양이다. 화천 산천어축제(화천읍 화천천 일대. 얼음낚시 예약 필수)가 1월14일~2월5일, 평창 송어축제(진부면 오대천 일대)가 1월30일까지 열린다. 길이 20~30㎝급 민물고기의 묵직한 손맛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추위가 걱정이라면, 얼음 위에 줄지어 설치된 텐트를 하나 빌리는 게 좋다. 텐트마다 앞에 얼음구멍을 뚫어놓아 텐트 안에서 낚싯대를 드리울 수 있다. 핫팩을 준비해 주머니에 넣거나 신발 안에 붙여야 장시간 추위를 견디는 데 유리하다. 고기가 아무 때나 잘 나오는 건 아니다. 하루 두세 차례 주최 쪽이 고기를 푸는 시간이 있다. 현장에서 시간을 알려주니 그때를 집중공략하는 게 좋다. 잡은 고기를 지정 장소로 가져가면 회나 탕으로 요리해 먹을 수 있다. 얼음낚시 축제장엔 인파가 몰리므로 주말을 피해 평일 오전에 찾는 게 좋다.

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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