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어로 완전무장 태평육아

우리 딸은 늘 하의실종이다. 내년 3월이면 세 돌이지만, 아직도 위풍당당 기저귀를 차는 신세다보니 옷을 안 입는 게 저나 나나 편한 까닭이다. 빨간 다리를 내놓고 다녀도 집안이니까 괜찮은가보다 하고 그냥 나둔다. 문제는 외출할 때다. 집에서 워낙 시원하게 지내서 그런가 옷을 겹겹이 입히면 참지 못한다. 게다가 요즘 폭풍식사로 살이 붙을 대로 붙은 상황인지라 두꺼운 옷이 불편할 만도 하다. 그런 걸 이해한다고 쳐도 한겨울에 홑겹으로 입혀서 나가면 아동학대로 손가락질 받을 게 뻔한 노릇. 현관 앞에서 입히려는 자와 입기 싫다는 자의 실랑이가 벌어진다. 결국 물리적 힘으로 누르다보면 우리 딸 결국 팔다리 버둥거리며 저항하는 소리.

그만, ~그~만~

요즘 우리 딸이 푹 빠져 있는 애니메이션 구름빵. 또래 아이들이 뽀로로에 빠져 있는 것에 반해, 우리 딸은 구름빵 매니아이다. 구름빵은 꼭 종이인형마냥 인물들이 평면적이고 전체적인 색감이나 동작이 차분한 편인데도 그렇게 재미있게 본다. 특히, 구름빵의 핵심 컨셉인 구름빵을 먹고 몸이 부웅떠올라 하늘을 나는 장면에서는 세 살 짜리 아이에게 나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비명이 나온다. '까악~' 물론 좋아서 지르는 소리다. 그렇게 좋아하다 보니 헤어지기가 너무 힘들다. 끄자고 하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대성통곡을 하곤 한다.

안돼~, 안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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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는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나도 일이 생기고, 애도 친구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 같아서 내년엔 보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바로 가까이에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있어서 거기부터 가봤다. 우리에겐 비용적인 부담이 크지만, 바로 가까이 있고, 아이들을 자유로이 놀리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철학이 마음에 들어 갈등하고 있다. 남편과 내가 상담을 하는 동안, 아이는 2층 집으로 되어 있는 어린이집을 돌아다니며 흥미를 보였다. 간혹 아는 얼굴도 있어 친구네 집에 놀러 온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에게 가끔 물어본다. ‘너 도토리(공동육아 어린이집 이름)에 갈래?’ 그러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하는 말.

아니야, 아니야~”

요즘 이게 우리 대화다. 아주 부정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 '그래도 아직 싫어라는 소리는 안 하네'라고 했더니, 세상에 그걸 놓치지 않고 '싫어'라는 말을 딱 픽업했다. 기껏해야 두어 번 그런 이야기를 한 거 같은데, 귀신이다. 이렇게 ‘싫어’라는 카드도 쓰기 시작하면서, 우리 아이는 부정어로 완전무장한 상태다. 누굴 탓하겠나? 그래서 애 앞에서는 찬물도 안 마신다고 했나 보다.

그만, 안돼, 아니야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나는 뭐가 그만이야, 뭐가 안돼, 뭐가 아니야라고 응수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애를 나무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말들은 내가 최근 자주 한 말들로, 그냥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정어가 는다는 것은 자기 생각, 자기 의지, 곧 자아가 강해진다는 의미인데, 나는 위험하거나 급한 상황에서 조심시키거나 저지하는 입장이 되다보니 서로 부정어가 오고갈 수 밖에 없다. 하긴 자기도 밥 먹고 싶을 때가 있고, 자기도 하고 싶은 게 있고, 자기도 모르게 싫은 때가 있는 거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대로만 하려고 하니 당연히 부정으로 몸부림 치는 수 밖에... 이 맘때 아이들의 부정어와 긍정어의 비율이 14 1이라고 어디서 주워들은 기억이 있다. 아직 자기 생각을 제대로 말하거나 내 설명이나 설득을 들을 준비도 안 되어 있으니까 한동안 저 부정어들로 대화를 이어갈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옆에서 남편이 불안불안해한다. 머지않아 한 고집과 한 고집의 빅매치가 벌어질 거 같다며...흐흐흐...나도 긴장이 느껴지긴 마찬가지다. 심호흡을 하며 하루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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