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기다려지는 이유

“우와! 합격이래.” 합격이라는 표현이 맞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말이 튀어 나왔다. 출근 일은 다가오는데 어린이집을 못 구해서 노심초사하고 있던 차였는데, 이런 연락을 받으니 너무 기뻤다. 마침 우리집에 놀러 와있던 친구 가족들까지 환호성을 지르며 축하해주었다. 이렇게 좋을 수가… 보육비가 저렴한 국공립 어린이집 당첨된 것도 아니고, 겨우 1명 티오에 5명이 지원해, 5:1의 경쟁률(!)을 뚫고 어린이집에 가게 된 것이다. 우리 아이가 가게 될 어린이집은 우리 동네에 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다. 원래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국공립 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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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가 수상하다

아기를 낳는 순간, 덤덤했다. 처음에 든 생각은 ‘아, 이제 끝났구나’, 그 다음은 ‘후~, 시원하다’ 그게 다였다. 옆에 분만을 도왔던 남편은 아기를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갑자기 진통이 진행되는 바람에 받아만 놓고 못 먹게 된 아침 밥상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미안하다, 아가야…ㅋ) 그리고 밤새 진통하느라 잠을 못 자서 그런지 스르르 잠이 오기까지 했다. 아, 잠들기 전에 한 가지는 궁금했다. “딸이야, 아들이야?” “응, 딸이야. 딸” 우리는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 성별에 대한 아무 지식이 없었다. 임신 초기에 2~3번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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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애를 그냥 놔두라?

잔병치레가 거의 없었던 우리 애가 설을 쇤 후 구토와 설사 때문에 크게 혼이 났다.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건 고기였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거의 풀 뜯어먹는 수준인 우리 밥상의 특징상 평소 고기를 많이 먹지 않았던 우리 애가 명절이라고 고기 맛을 너무 많이 보았던 게 잘못된 것이다. 특히 지난 밤엔 유난히 고기 만두를 많이 먹었던 게 걸렸다. 태어나고 처음으로 토했다. 젖을 먹을 때도 토한 적이 없던 아이였다. 자다가 토하는 걸 보니, 웬만한 일에 끄떡 안 하는 나도 적잖이 당황했다. 그런데, 한 번 토하고 나더니 금새 편하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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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수고가 많다

초등학교 교실에 아기가 등장한다. 엄마가 담요 위에 아기를 내려 놓으면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아기가 하는 행동을 지켜본다. 그리고 아이들은 질문을 한다. 첫 이가 났는지, 안 보이는 사이 얼마나 자랐는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질문하면, 동행한 엄마가 답해준다. 뒤집기나 장난감을 찾아내는 새로운 성취를 보일 때마다 진심으로 기뻐해준다. 캐나다에서 시작한 ‘공감의 뿌리(Roots of Empathy)라는 프로그램의 풍경이다. 이 프로그램은 생후 1년 미만의 갓난 아기를 학교에 초대하여 아이들의 공감 능력을 키워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놀랍게도 이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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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했으니, 버리라고?

나는 처녀적부터 엄마라고 불렸다. 함께 살던 반려견 봉순이 때문이다. 봉순이와의 인연은 10년 전, 내가 아름다운가게에서 일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헌 물건을 기부 받아 파는 것을 업으로 하는 아름다운가게가 문을 열자, 별의별 물건이란 물건은 다 들어왔다. 그 중에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물건(?)이 바로 6개월된 슈나우저 한 마리였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후 기부라는 이름으로 버린 건 아닌지, 아름다운가게에서 동물을 사고 팔아도 되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그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강아지를 사무실에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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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싸움 이제 그만

머리 하러 갈 때마다, 늘 미안하다. 머리 숱이 너무 많아서, 많아도 너무 많아서 자르던 볶던 시간과 힘이 배로 들기 때문이다. 한 때 머리가 길었을 때는 비용을 두 배로 치르면서 파마를 하곤 했다. 머리 숱에 관한 한 남편도 남부럽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무슨 조화 속인지, 내 뱃속에서 나온 딸의 머리 숱은 정말로 빈약하다. 태어날 때도 머리털 한 올 걸치지 않고, 진짜 맨몸으로 세상에 나왔다. 돌이 될 때까지 거의 빡빡이 수준이었다. 머리털이 없으니, 머리 감을 일 없어서 편하긴 했다. 반면, 대외적으로는 성별인식에 많은 혼란을 야기하곤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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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없는 이유

예전엔 무조건 외식이 좋았다. 워낙 외식을 하지 않는 집안에서 자라서 그런가? 외식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좀 있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좀 달라졌다. '가능한 외식주의자'에서 '가능한 집밥주의자'로 변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너무 힘들어서 그렇다. 밖에 나가서 아이랑 밥을 먹으려면, 꼭 돌발상황이 발생한다. 갑자기 빽빽 울어대기도 하고, 밥상머리에서 똥을 싸기도 하고, 밥 먹다 잠이 들기도 한다. 그릇을 뒤엎는 건 예삿일이고, 심지어 우리 애는 얼마 전에 짬뽕그릇에 빠진 적도 있었다. 자는 애를 누일 때가 마땅치 않아 어깨에 매고 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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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년

연말이다. 연말이 되면 안팎으로 분주하다. 송년회, 후원의 밤이 주당 1건씩은 잡혀있고, 친정 아버지에서 시작하여 큰 어머니, 동생, 예수님 생일에 이어 올해부터 조카 생일까지 추가됨으로써 12월 한 달은 아예 ‘특별 파티주간’을 선포해야 할 판이다. 게다가 그동안 벌려만 놓고 수습하지 못한 일들이 12월 달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내 딱한 사정을 우리 딸이 헤아려 적극 협력해준다면 얼마나 고마울까마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낮잠도 서너 시간씩 길게 자고, 내가 집중해서 할 일이 있을 때는 옆에서 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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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계속 ‘떼는’ 과정이다. 제일 먼저 탯줄을 뗀다. 엄마와 아기를 연결하던 탯줄을 떼고 나면 10개월 동안 한 몸이었던 엄마와 아기는 물리적으로 분리된다. 1차 분리다. 태아에게 탯줄은 밥줄이었다. 밥줄이 끊어졌으니 아기는 필사적으로 가까운 밥줄인 젖을 찾아 문다. 엄마와 아기는 물리적으로 분리되었을지언정 생리적으로는 아직 연결되어 있다. 아기가 젖이 필요할 때 엄마 젖은 핑 돌기 시작한다. 아기는 젖을 빨면서 필요한 양분을 공급받을 뿐만 아니라, 1차 분리를 겪으면서 생긴 불안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젖을 충분히 먹어야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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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이별이다

내년 봄이면 세 돌이 되는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육아휴직 끝나고, 젖을 못 떼서 직장까지 그만두면서 끼고 있던 아이를 이제 보내기로 한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가 친구가 필요하다는 게 남편의 오랜 주장이었고, 아직은 서로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유보태세를 취하던 나도 이제 막 전향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린이집을 선택하는 일이 난제다. 다른 건 모르겠고, 빡세게 프로그램을 돌리지 말고, 태평하게 아이들을 잘 놀릴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가까웠으면 좋겠다는 게 내가 생각하는 어린이집의 조건이다. 수소문하여 집 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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