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다 태평육아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계속 떼는과정이다. 제일 먼저 탯줄을 뗀다. 엄마와 아기를 연결하던 탯줄을 떼고 나면 10개월 동안 한 몸이었던 엄마와 아기는 물리적으로 분리된다. 1차 분리다. 태아에게 탯줄은 밥줄이었다. 밥줄이 끊어졌으니 아기는 필사적으로 가까운 밥줄인 젖을 찾아 문다. 엄마와 아기는 물리적으로 분리되었을지언정 생리적으로는 아직 연결되어 있다. 아기가 젖이 필요할 때 엄마 젖은 핑 돌기 시작한다. 아기는 젖을 빨면서 필요한 양분을 공급받을 뿐만 아니라, 1차 분리를 겪으면서 생긴 불안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젖을 충분히 먹어야 하는 이유다. 그렇게 충분히 젖을 빨다 보면 아이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해진다. 동시에 불안은 줄고, 애착이 형성되면서 스스로 젖을 떼는 시기가 온다. 2차 분리다. 역시 밥줄이던 젖이 떨어졌으니, 또 다른 밥줄을 찾아야 한다. 이제는 식구들과 함께 밥을 먹기 시작한다. 그렇게 물고 빨던 젖은 쳐다도 안 본다. 그 사이에 첫걸음도 떼고, 말도 뗀다. 이렇게 하나 둘씩 뗄 걸 다 떼고 나면, 이제는 24시간 꼭 엄마가 붙어있지 않아도 된다. 특히 애착과 신뢰가 잘 형성되면 엄마와 떨어져도 크게 불안해하지 않으며, 이별이 자연스럽다. 나도 이런 수순을 밟으며 3년 동안 충분한 애착과 신뢰가 형성되었다고 판단되어 이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3차 분리를 앞두고 있다. 재미있는 건, 이 분리과정을 겪으면서 아이보다 오히려 어른들이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다는 거다. 그렇게 마음을 다독이는 과정에서 엄마도 서서히 정을 떼기 시작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탯줄을 떼고, 젖을 떼고, 엄마와 떨어질 준비도 하고 있는 우리 딸이 아직 떼지 못한 게 하나 있다. 바로 기저귀다. 내년 봄이면 만 세 돌인데, 이제 어린이집에도 보낼 건데, 아직도 기저귀를 달고 다닌다. 두 돌이 되자 또래 아이들의 기저귀는 다 떨어져나갔는데, 우리 아이는 아직 기저귀를 달랑달랑 달고 다니는 신세다. 우리 아이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뭐든지 늦는 편이다. 걷는 것도 그랬고, 말도 그랬다. 지금까지 해온 대로 나는 기저귀 역시 태평하게 기다려줄 셈이었다. ‘때가 되면 뗀다는 게 나의 철학이므로. 그런데, 기저귀를 계기로 태평철학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다.

 

우선, 기저귀 값이 아깝다. 몇 달 전부터 오줌의 양이 많아져 더 이상 천 기저귀가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뒤늦게 1회용 기저귀 신세를 지고 있다. 이제는 1회용 기저귀도 용량초과다. 오줌을 누면 기저귀가 축 처지고, 심지어 기저귀에 미처 흡수되지 못한 오줌이 새어 나와 옷을 적시는 일도 다반사다. 그럴 때마다  엄마 ~’해야지 라고 가르쳐보지만, 들은 체 만 체다. 가끔 변의를 느끼는 것 같을 때 변기로 안내해보지만, 역시 본 체 만 체다.

 

더 큰 문제는 똥이다. 이제까지 똥으로 효도하더니 이제부터 똥으로 속을 썩힐 셈인가? 지금까지 똥은 정말 깔끔했다. 백일이 지나자, 무른 똥을 눌 때도 별로 없었다. 늘 덩어리로 똑똑 떨어지는 똥이어서 기저귀 빨래도 쉬웠고, 치우기도 쉬웠다. 가끔 며칠 거르는 때도 있었지만, 사과즙이나 요구르트를 먹으면 금새 해결되곤 했다. 꼭 이상한 것만 닮는다고 물 많이 안 먹는 것과 그로 인한 변비기를 닮은 것 같았다. 그러다가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똥이 마려우면 그 자리에 서서 똥을 누기 시작하는데, 아무래도 된똥이다 보니 미간을 찌푸리고, 눈 주위가 붉어지고는 했다. 그게 너무 웃겨서 아이가 똥을 눌 때마다 우리는 배꼽을 잡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 슬그머니 나나 남편의 등 뒤로 가서 서서 똥을 누기 시작했다. 숨기도 하고, 힘을 주기 위한 지지대로 등짝을 이용하는 거였다. 우리가 아는 체를 하면 너무 싫어했다. 지금은 이마저도 보호가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이제는 으슥한 곳을 찾아 똥을 누기 시작했다. 우리가 거실에 있으면 혼자 슬그머니 방에 들어가 똥을 누는 식이었다. 오롯이 큰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함을 의미했다. 그런 변 스타일 때문에 누가 우리 집에 오거나, 밖에 나가서는 똥을 누는 일이 없었다.

 

지난 일주일간 친정 부모님이 다니러 오셔서 일주일간 계셨는데, 그 사이에 똥을 누지 않았다. 그렇게 참고 있다가 부모님이 가시기가 무섭게 방 안에 들어가 똥을 누기 시작했다. 문제는 똥을 치우지 못하게 하는 거다. 살짝 엉덩이를 까보니 역사상 최대 크기와 냄새였다. 그렇게 큰 일을 하느라 지쳤던지 똥을 누고는 그 자리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씻고 재우려고 해도 막무가내로 꼼짝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잠이 들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남편과 나는 반성회를 가졌다. 괜한 스트레스 받지 않게 하려고 배변훈련을 시키지 않으면서 오히려 다른 스트레스를 준 거 아닌가? 생각해보니 우리가 한 모든 행동이 아이에게는 놀림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자기는 이렇게 고통스럽고, 애를 쓰고 있는데, 우리는 키득키득거렸으니 얼마나 화가 났을까? 그게 하나둘씩 쌓여 상처가 되어, 등 뒤로, 방으로 숨어서 일을 보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많으면 더 큰 놀림을 당할까봐 참기도 하고 했던 것 같다. 무심코 던진 돌에 괴로워했을 개구리를 생각하니 미안했다. 남편과 나는 약속했다. 이제는 똥 이야기는 삼가자고. 똥 누러 갈 때도 아는 척 하지 말고, 똥 누고 나서도 치워달라고 할 때까지 그냥 내비 두자고.

 

IMG_9319.jpg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