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했으니, 버리라고? 태평육아

나는 처녀적부터 엄마라고 불렸다. 함께 살던 반려견 봉순이 때문이다. 봉순이와의 인연은 10년 전, 내가 아름다운가게에서 일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헌 물건을 기부 받아 파는 것을 업으로 하는 아름다운가게가 문을 열자, 별의별 물건이란 물건은 다 들어왔다. 그 중에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물건(?)이 바로 6개월된 슈나우저 한 마리였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후 기부라는 이름으로 버린 건 아닌지, 아름다운가게에서 동물을 사고 팔아도 되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그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강아지를 사무실에서 지내고 있었고, 당시 사무실 죽돌이 신세였던 내가 자연스럽게 임시보호인이 되었다.

그때까지 나는 강아지를 키워본 적도 없고, 만져본 적도 없었다. 오히려 살짝 무서워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 정이 무섭다고, 며칠 밤(!)을 같이 보내자 우리는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아름다운가게에서는 동물은 사고팔면 안 된다, 잘 키울 수 있는 사람에게 입양을 시켜야 한다는 결론이 났고, 자연스럽게 임시 보호인이었던 내가 진짜 엄마가 되었다. 우리는 주로 사무실에서 지냈는데, 비닐봉지를 가지고 논다고 해서 봉달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순간의 실수로 봉달이가 행방불명되었다. 한 달 밤낮을 울며, 찾아 헤맸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눈물이 말라갈 무렵, 우리 사무실 앞에 또 한 마리의 슈나우저가 나타났다. 같은 슈나우저였지만, 봉달이가 아니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봤다. 등에 있는 털이 듬성듬성 빠져있고, 피부에는 부스럼 같은 것도 덕지덕지 붙어있는 병든 유기견이었다. 병들어서 버려졌거나, 길을 잃었거나. 어쨌든 상처받은 우리는 새로운 인연을 맺었다. 현재 서울시장이 된 당시 상임이사님은 내가 너무 울어서 하늘이 보내준 인연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정말 그런 거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10여년의 세월을 동고동락하며 같이 살아왔다. 중간 중간에 여러 가지 사건사고들도 많았지만, 가장 큰 위기는 내가 임신하면서부터다. 임신을 하자, 주위에서 다들 난리였다. 빨리 어디로 보내든지 팔든지, 어쨌든 없애라는 거였다. 강아지를 키우는 게 태아나 신생아에게 얼마나 위험한지 귀가 따갑게 들었다. 하지만 나는 차마 그런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한 생명을 위해서, 또 한 생명을 버린다? 내가 엄청난 철학이나 의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모순된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우리 아이에게 너를 위해서 10년간 같이 살아온 반려견을 버렸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자신 없었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우리는 한번 상처받은 봉순이를 또 상처 받게 할 수 없어서 주위의 편견과 핍박 속에서 봉순이와 함께 하기로 했다. 만삭이 될 무렵, 온가족 이민으로 버려지게 된 강아지 한 마리를 더 맡게 되었다. 주인집 할아버지의 반대로 친정에 맡긴 적이 있는데, 사람이 참 간사한 게 없으니까 참 편하고 좋았다. 그때 내 얄팍한 이기심을 마주하면서, 사람들이 온갖 핑계를 덮어씌우면서 반려동물을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의사인 권지형씨가 쓴 <임신하면 왜 개, 고양이를 버릴까?>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이 이론적 근거가 되어 마음 한 켠에 남아있던 불안감이 해소되고,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임신했다고 반려견을 버리는 일은 유독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사회현상이라고 한다. 개와 고양이에 대한 잘못된 정보, 편견과 오해, 반려견에 대한 책임감, 함께 살아가는 존재에 대한 인식 부족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조금 더 일찍 읽었더라면 마음 고생이 덜 했을 이 책에는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임신, 반려동물과 임신에 대한 오해, 그리고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즐거운 육아, 반려동물 관련 안전사고 예방과 대처법에 대한 의학적 조언들이 담겨있다. 반려동물과 육아는 몇 가지 조심만 하면 얼마든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고, 심지어 장점도 많다. , 어떤 사람들에게 장점이 아닐 수 있지만, 내 기준으로는 장점, 몇 가지만 들어보겠다.

첫 번째, 한참 동안 우리 애 개인기는 강아지 성대모사였다. 강아지 소리를 멍멍이라고 하지 않고, 정말로 비슷하게 강아지 소리를 내곤 했다. (굳이 발음기호를 쓰면 워워에 가까운데, 이 발음기호로는 설명이 안되는 소리로 목청을 울리고 입안에서 큰 공명을 통해서 나오는 소리다) 이건 필시 학습의 산물이 아니라 관찰과 흉내의 산물이었고, 나는 우리 아이의 차별화된 개인기가 정말로 자랑스러웠다.

두 번째, 우리 애는 동물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 고양이, 비둘기, 참새, 나비, 잠자리, 개구리, 개미, 지렁이 등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모든 동물을 좋아한다. , 예외적으로 모기는 질색한다. 한 번은 친구들과 양떼목장에 간 적이 있었다. 양에게 먹이를 주는 체험장에서 단연 두각을 드러냈던 인물이 우리 딸이다, 먹이를 줄 때 양이 손바닥을 핥기도 해서 큰 아이들도 먹이 주는 걸 꺼려했는데 우리 애는 아무 거리낌 없이 양들에게 다가가서 먹이를 주면서 양치기 소녀 같은 면모를 마음껏 과시했다.

세 번째, 우리 애는 봉순이를 동생으로 생각한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자기보다 서열이 아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봉순이에게 말할 때는 톤부터가 다르다. 내가 자기한테 하는 그 말투를 그대로 따라 한다. 나쁜 말로 하면 하대하고, 조금 좋은 말로 훈계하는 게 느껴진다. ‘앉아에서부터, 짖으면, ‘시끄러워. 조용히 해야지라고 타이르기까지, 베란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둘간의 교감이 활발하다. 그리고 봉순이 밥도 간식도 챙겨줄 줄 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헤어지지 않고 잘 살고 있다. , 안타깝게도 봉순이가 베란다에서 지내다 보니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가는 게 꿈이다. 아이가 있다보니 산책도 못 시켜줘서 미안하다. 10살이 넘은 봉순이가 더 늙기 전에, 우리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  

강아지.jpg » 참고로 사진 속 강아지는 봉순이가 아니라 남의 집 강아지^^ 강아지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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