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과 아이돌이 남편을 `육아의 달인'으로 태평육아

남편은 텔레비전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텔레비전이 없으면 아예 못산다. 텔레비전을 최고의 여가활동으로 알고 자란  TV 세대라 그렇다. 나는 같은 이유로 텔레비전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보지도 않으면서 텔레비전을 켜두고 생활하는  TV 중독 경험하고는 텔레비전을 딱 끊었고, 텔레비전 근처에도 안 갔다.



그런 둘이 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 처음엔 내 입김이 센 탓에 텔레비전이 없었는데, 어느 날 남편이 (의도적으로) 사고를 쳤다. 텔레비전도 없는데 인터넷을 신청하면서 3년짜리 케이블 약정을 떡하니 한 거다. 이쯤에서 나는 백기를 들었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못 이기고 텔레비전을 샀다.



그렇게 들여놓은 텔레비전은 본격적인 ‘장미의 전쟁’을 불러왔다. 특히 주말이면 남편은 텔레비전과 함께 하루를 시작해서 텔레비전과 함께 하루를 마감했다. 텔레비전과 떼어 놓으려고 무조건 밖으로 끌고 나가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남편이 텔레비전과 붙어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나의 혈압은 고속상승 중이었고, 급기야는 분노 게이지 폭발로 텔레비전을 깨부수고 싶었던 적도 있다.



어쩌면 우리의 이혼 사유는 ‘TV’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진짜 텔레비전을 깨부수거나, 남편이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참지 못해 어느 순간 이혼 선언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절박감으로 서로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1. 적어도 주말 오전에는 텔레비전을 켜지 않는다.



2. 주말에 되도록 밖에서 시간을 보낸다.



3. 저녁 시간에 보고 싶은 프로그램만 보고 끈다.



4.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들지 않는다.



남편은 한다면 하는 내 성격에 혹시라도 진짜 텔레비전을 부서버릴까봐 무서웠는지(ㅋ) 이 약속들을 그런대로 잘 지켰다. 한동안 나와 남편, 그리고 텔레비전과의 조화로운 삶이 유지됐다.



아기가 태어나자 남편의 텔레비전 의존도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텔레비전 보는 것보다 아기를 보는 것이 더 재밌어진 거다. 무한도전 등 예능 한두 개, 그리고 아기를 재우고 나서 프리미어리그를 보는 정도로 정리됐다. 그런데 아기를 낳고 집에 있으면서 오히려 내가 텔레비전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나는 몇 개의 프로그램에 관한 한 본방을 사수하는 열렬한 팬이 되었다.



e13429fd3e444dd7c276583b9bbd1a4a.불과 얼마 전까지 텔레비전을 깨부수네, 어쩌네 날뛰던 내가 텔레비전 앞에  어쩜...이렇게도 전향적인 자세로 순한 양이 된 이유는 두 가지다. 첫번째는 육아로 지쳐있는 우리 부부 사이에 값싼(!) 활력을 제공한 공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극장에서 영화 한 편도 제대로 볼 수가 없고, 부부 사이의 대화는 아이 얘기로만 가득 차게 된다. 어떤 때는 아이 얘기를 빼면 둘이 공통적으로 해야 할 이야기가 없어지는 순간도 있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같이 보면서는 서로 이렇게 애틋할 수가 없다.서로 공감을 하고, 공분도 하면서... 그냥 가십거리나 시시콜콜한 얘기들일 때가 많지만, 가끔은 의미 있는 대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김수현 작가의 주말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서는 새삼 ‘가족의 의미’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집안의 장남인 송창의가 부모에게 동성애 커밍아웃하는 장면에서는 둘이 부여잡고 꺼이꺼이 울었더랬다. SBS 스페셜이나 EBS 다큐멘터리를 볼 때는 그 주제를 놓고 격렬한 토론(좋은 말로!^^)도 하고, 케이블채널의 <슈퍼스타 K>를 보면서는 노래방에라도 온 것처럼 목청을 높여 노래를 따라부른다음, 재빨리 평론가 모드로 들어갔다. <무한도전>이나 <개그콘서트> 같은 오락프로그램을 보면서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실컷 웃어본다.(최근 발레리노때문에 한참 즐거웠다는;;^^) 갓난아기 수발에 지친 우리 부부에게 텔레비전만큼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여가생활도 없었다.



두번째, 남편은 주위에서 ‘애 잘 보는 아빠’로 통한다.  그런데 알고보면 별 거 없다.  본인이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많은 부분을 텔레비전, 더 정확히는 아이돌 그룹과 개그콘서트 개그맨들한테 빚지고 있다.  물론 남편이 원래 세심하고 자상한 성격인지라 육아가 체질에 맞는 희귀종이기도 하지만, 나는 남편의 다이나믹한 표정과 몸짓(바디랭귀지)가 한 몫 한 거라고 자신있게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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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아이돌 그룹의 춤과 개그맨 흉내를 잘 낸다. 팬티 바람으로 브라운아이즈걸즈의 ‘아브라카다브라’ 노래에 맞춰서는 시건방 춤을, 카라의 ‘미스터’ 노래에 맞춰서는 엉덩이 춤을 춘다. 짧은 다리로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 각선미 춤과 2PM의 셔플 춤을 따라한다. 물론 배불둑이 남편이 2PM춤을 추면 셔플 춤이 아니라 추억의 (망가진) 토끼 춤이 되는데, 그게 너무 웃겨서 나는 땅이 꺼져라 하고 웃게 된다. 내가 웃으니 우리 아기도 배꼽을 잡고 따라 웃는다. 심지어 이 춤의 위력은 내가 화가 났을 때도 통하고, 명절날 처갓집 일가친척들을 까무라치게 만든 적도 있다(물론 맨정신 아닌 술김에...^^ 동영상이라도 찍어놨어야하는건데...;;;)우리집에 빅 재미를 안겨준 아이돌 그룹에 마음 같아서는 공로상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다. 남편에게 이 춤은 그 뜻대로 아브라카다브라(수리수리마수리, 소원을 비는 주술)일거다. 개콘 개그 역시 잘 통한다. 평소 사용하지 않는 안면근육까지 동원해서 한껏 오버한 표정 연기와 말 자체가 묘한 재미를 가지는 중독성 있는 유행어는 이맘 때 아기에게 제대로 먹혀주는 거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아기도 잘 웃고, 표정이 다이나믹한 편이다.



26c457e41f21387085f2eab268a5df06.혹시 육아가 힘들거나, 아이 보는 게 힘든 분(특히, 남편)들은 자신의 크리에이티브가 딸리면 최신 아이돌 춤과 개그콘서트의 슬랩스틱 개그와 최소한 개콘에서 유행하는 유행어라도 따라해보기를 권한다. 처음엔 유행어부터 소심하게, 자신감이 붙으면 춤까지 가보는 거다! 썰렁하다고 주변에서 타박해도 굴하지 말자! 하다 보면 재밌고, 하다 보면 실력이 는다. 그리고 하다 보면 신기하게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묘한 에너지가 샘솟는다.(사이비 약장사 아님ㅋㅋ) 믿거나 말거나? 밑져야 본전!이다.



밖에서 고급 지식(두뇌) 노동자에 나름 인텔리로 살다가 모양 빠져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권위가 떨어지고, 얼굴 팔려서 못하겠다고? 그럴수록 더 권한다. 권위는 별개의 문제요, 가족을 위해서 얼굴 좀 팔려도 괜찮다. 어설플수록, 발연기일수록 효과는 더 크다. 남편도 집에서는 그렇게 ‘유치빤스’면서 밖에만 나가면 점잖을 뺀다.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자랐고, 아직도 우리 사회는 관료적 문화와 엄숙한 사회 분위기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책상에 앉아 두뇌 노동을 하고, 점잖은 문화인으로 살면서 몸의 언어는 잊혀져 갔고, 안밖으로 소통부재의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런데 어쩌나? 밖에서는 몰라도 육아는 진정한 몸 노동이요, 보디랭귀지와 몸 개그가 절실히 필요하다. 아이가 어릴수록 더 그렇다. 아이들은 언어보다 원시적 소통, 즉 몸과 표정, 전체적인 분위기로 소통하기 때문이다.



핑계가 얼마나 좋은가? 핑계 김에 미친 척(우리 가끔 미치고 싶지 않나? 나만 그런가?^^) 하고 해보는 거다. 알코올 힘을 살짝 빌려도 좋다. 밖에서 스마트한 척 하고 사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나? 집에서는 그냥 영구로 살자. 스스로 무장해제되고, 많이 망가지는 만큼 몸이 깨어나고, 소통이 원할하며, 웃음이 만발하여, 아드레날린을 대방출시킨다. 단, 텔레비전을 소비만 하지 않고 재생산하는 자만이, 텔레비전에 중독되지 않는다. 또 텔레비전을 선별이용하는 자만이,  텔레비전의 순기능을 누린다는 점에 밑줄 쫘악~ 별 표 세 개 빵빵!!!  이번주 역시 우리 부부는 최신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위대한 탄생>과 <나는 가수다>, <무한도전>과 <개그콘서트>를 기다린다.



김연희 http://ecoblo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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