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왔나? 한강하구 도착한 겨울 철새 큰기러기 윤순영의 시선

겨울 철새 도래의 신호탄, 든든한 몸집에 포식자 맹금류도 따라와
아직 푸른 기 도는 논, 추수 끝난 논에 몰려 낱알 먹고 목욕도
달 위에 떠가는 새, 가을 새 등 이름도 많아, 백년해로의 상징
첫 겨울 철새인 큰기러기 무리가 한강하구에 내려앉고 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의 보호동물이다.
첫 겨울 철새인 큰기러기 무리가 한강하구에 내려앉고 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의 보호동물이다.

9월23일 한강하구에 큰기러기가 도착했다. 큰기러기가 앞장서면 다른 겨울 철새들도 월동을 위해 한반도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특히 맹금류들은 듬직한 먹잇감인 큰기러기를 따라온다.

큰기러기는 월동을 위해 먼 길을 왔지만 월동에 필요한 농경지는 지속해서 매립되어 갈수록 터전이 줄어들고 있다. 벼 이삭에 아직 푸른 기운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큰기러기의 도착이 조금 이른 감도 있다. 이 시기에는 농경지에서 먹고 쉬기가 쉽지 않지만, 그나마 추수가 끝난 논이 있어 그리로 몰려든다.

일찍 추수가 끝난 인가 근처에 주저 없이 내려앉는 큰기러기. 아직 벼 베기가 시작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경계를 풀고 이곳을 찾았다.
일찍 추수가 끝난 인가 근처에 주저 없이 내려앉는 큰기러기. 아직 벼 베기가 시작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경계를 풀고 이곳을 찾았다.

큰기러기는 월동 기간에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유대관계를 유지하며 안전을 도모한다.
큰기러기는 월동 기간에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유대관계를 유지하며 안전을 도모한다.

언제 봐도 화려하지 않은 깃털과 온순하게 생긴 얼굴이다. 흔한 것 같지만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큰기러기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새, 더러운 땅에 앉지 않는 새다.

경망스럽지 않고 진중함과 여유로움을 갖췄으며 가족애가 강해 가족 구성원이 사고를 당하면 좀처럼 그 자리를 뜨지 못한다. 다친 가족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사례가 종종 관찰되곤 한다. 한 번 짝을 맺으면 다른 짝을 찾지 않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옛 혼례식에는 목각 기러기를 부부의 백년해로를 기약하는 데에 사용했다.

논에 물이 고여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자리는 없다.
논에 물이 고여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자리는 없다.

먼 길을 날아온 여독을 목욕으로 푸는 큰기러기.
먼 길을 날아온 여독을 목욕으로 푸는 큰기러기.

달 위에 떠가는 새라는 뜻의 ‘삭금(朔禽)’이라고 불리고, 가을 새라는 의미에서 ‘추금(秋禽)’이라고도 한다. 계절이 변하는 소식을 전해주는 새로 여겨져 사람의 편지를 안서(雁書)라고도 했다. 기러기만큼 이름이 많은 새도 없을 것이다.

큰기러기는 외롭고 쓸쓸한 가을을 알림과 동시에 가을의 풍요를 채워 주는 가을맞이 전령사로서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밤하늘을 떠가며 ‘과안~ 과안~’ 울어대는 소리는 깊어가는 가을을 얘기하는 듯하고, 농경지에 날아드는 모습은 황금 벼 이삭, 갈대와 함께 어우러져 넉넉함을 안겨 준다. 큰기러기는 단풍이 들 무렵 우리나라를 찾아오고 얼음이 풀리면 러시아로 돌아간다.

동료들이 앉아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함께하는 큰기러기.
동료들이 앉아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함께하는 큰기러기.

추수할 때 논바닥에 떨어진 낱알을 주워 먹는 모습이 여유롭다.
추수할 때 논바닥에 떨어진 낱알을 주워 먹는 모습이 여유롭다.

큰기러기는 오리과 기러기류 중 거위의 원종인 개리에 버금가는 묵직한 4㎏의 몸집에 몸길이는 85~90㎝에 이르는 대형 기러기다. 커다란 덩치에도 나는 속도가 빠르고 바람을 가르며 오르내리는 모습과 날개 치는 소리가 ‘쉬익~ 쉬익~’ 힘차게 들린다. 큰기러기는 한강하구에서 월동하며 한강을 거쳐 천수만, 금강, 영산강, 우포, 주남저수지 등으로 이동해 겨울을 난다. 한강하구는 큰기러기에게 중요한 정거장인 셈이다.

논둑에 심어 놓은 호박을 따러 동네 주민이 접근하자 놀라 자리를 뜨는 큰기러기.
논둑에 심어 놓은 호박을 따러 동네 주민이 접근하자 놀라 자리를 뜨는 큰기러기.

아파트 사이로 큰기러기가 떠나간 논이 허전해 보인다.
아파트 사이로 큰기러기가 떠나간 논이 허전해 보인다.

하늘을 선회하다 방해요인이 없으면 논으로 다시 내려앉을 것이다.
하늘을 선회하다 방해요인이 없으면 논으로 다시 내려앉을 것이다.

암컷과 수컷이 어두운 갈색과 흰색, 주황색 3가지 색으로 멋을 부리지 않은 단순한 색이 조화로워 지루하지 않고 무게감과 사색적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몸 전체가 회갈색이고 등을 비롯한 위쪽이 진하다. 부리는 검은색이나 끝에는 황색 띠가 있다. 날개 끝과 꽁지는 검은색이고 꽁지깃의 가장자리에는 흰색의 띠가 있다. 위아래 꼬리덮깃은 흰색이며 다리는 주황색을 띤다. 유라시아 대륙 북부의 개방된 툰드라 저지대에서 번식하고, 유럽 중·남부, 중앙아시아, 한국, 중국의 황하, 양쯔강 유역, 일본에서 월동한다.

논에 다시 내려앉는 큰기러기.
논에 다시 내려앉는 큰기러기.

글·사진 윤순영/ (사)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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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윤순영 입니다. 어린 시절 한강하구와 홍도 평에서 뛰놀며 자연을 벗 삼아 자랐습니다. 보고 느낀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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