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고 헤메는 검은뺨딱새…희귀새들이 보여주는 ‘전조’ 윤순영의 시선

기후변화로 남해안 여름 철새가 중부로 ‘이주’
기상이변에 길 잃은 희귀 새 목격 부쩍 잦아져
동백숲에 살아 그런 이름을 얻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동박새는 이제 남해안이 아니라 중부 지방에서도 번식한다. ​2018년 6월 경기도 포천시 국립수목원의 동박새.
동백숲에 살아 그런 이름을 얻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동박새는 이제 남해안이 아니라 중부 지방에서도 번식한다. ​2018년 6월 경기도 포천시 국립수목원의 동박새.

새들은 자연의 리듬에 민감하다. 추위를 피해 이동하고 번식지로 날아와 새끼를 기르는 일은 생태계의 변화와 시기가 딱 들어맞아야 가능하다. 그렇게 수천∼수만 년을 살아온 새들이 흔들린다. 기후변화로 먹이터와 쉼터와 번식터가 달라지고 기상이변이 빈발하면서 먼 이동길이 예측불가능하게 바뀌었다. 그 바람에 낯선 새들과 길을 잃고 헤매는 새들도 종종 눈에 띈다.

이소한 동박새의 빈 둥지. 2018년 8월 경기도 가평군 경반계곡에서 찍었다.
이소한 동박새의 빈 둥지. 2018년 8월 경기도 가평군 경반계곡에서 찍었다.

새들의 움직임에서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기후변화를 느낄 수 있다. 남해안과 서해안 도서지방 해안지대에서 흔히 번식하는 텃새인 동박새가 2018년 6월 경기도 포천시 국립수목원에서 관찰되었다.

어미가 물고 온 먹이를 받아먹는 동박새 새끼, 2018년 8월 경기도 가평군 경반계곡.
어미가 물고 온 먹이를 받아먹는 동박새 새끼, 2018년 8월 경기도 가평군 경반계곡.

2021년 3월 강원도 고성군 건봉사에서 관찰한 동박새.
2021년 3월 강원도 고성군 건봉사에서 관찰한 동박새.

그동안 중부 내륙에서 동박새를 보았다는 목격담도 잇따라 들려왔다. 경기도 양주시 송추계곡, 하남시 검단산, 포천 국립수목원, 가평군 일대, 서울 북한산 등에서다. 지나가는 길에 머문 것인지 남부에서 잠시 이동한 개체인지 불확실했으나 2018년 8월 경기도 가평군 경반계곡 한석봉 마을에서 번식을 확인하였다. 2021년 3월 강원도 고성군 건봉사에서도 관찰되었다.

상록수림이 우거진 제주도나 남해안 깊은 계곡에서나 보이던 팔색조도 중부 지방에서 종종 관찰된다. 2015년 7월 경기도 가평군 율길리의 팔색조.
상록수림이 우거진 제주도나 남해안 깊은 계곡에서나 보이던 팔색조도 중부 지방에서 종종 관찰된다. 2015년 7월 경기도 가평군 율길리의 팔색조.

2015년 7월 경기도 가평군 율길리에서 번식 중인 팔색조.
2015년 7월 경기도 가평군 율길리에서 번식 중인 팔색조.

2015년 7월 경기도 가평군 율길리에서 새끼에게 먹이를 나르는 팔색조 어미.
2015년 7월 경기도 가평군 율길리에서 새끼에게 먹이를 나르는 팔색조 어미.

‘숲의 보석’으로 불리는 팔색조는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여름 철새로 제주도와 남해에서 번식하는 새다. 경기도 지역에서는 통과 시기(봄과 가을)에 가끔 관찰된 사례가 있었다. 2014년 7월 3일 남양주시 오남읍 팔현리에서 번식을 포기한 팔색조의 빈 둥지를 발견했고 김응성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남양주시지회장이 2015년 7월 7일 경기도 가평군 율길리 야산에서 번식하는 팔색조를 처음 발견한 이후 수원, 남양주, 가평, 연천, 철원 등에서 번식이 확인되고 있다.

2019년 4월 전북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에서 목격된 검은뺨딱새.
2019년 4월 전북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에서 목격된 검은뺨딱새.

검은뺨딱새는 우리나라를 통과하는 매우 희귀한 길 잃은 새다. 1987년 5월 대청도에서 1개체가 처음으로 확인된 이후 1988년 대청도, 2004년 어청도, 2005년 소청도, 2006년 전남 홍도 등에서 관찰되고 있다.

2019년 4월 13일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리에서 다시 관찰되었다. 생김새가 검은딱새 암컷과 비슷하기도 하다. 히말라야, 인도 동북부, 방글라데시, 미얀마, 티베트 동남부, 중국 서부, 중부, 남부, 인도차이나반도 북부에서 번식하고, 인도 북부, 인도차이나반도, 중국 남부에서 월동한다.

2020년 4월 어청도에 찾아온 희귀한 나그네새 분홍찌르레기.
2020년 4월 어청도에 찾아온 희귀한 나그네새 분홍찌르레기.

2021년 2월 양도면 건평리에서 다시 만난 분홍찌르레기.
2021년 2월 양도면 건평리에서 다시 만난 분홍찌르레기.

분홍찌르레기의 번식지는 중앙아시아와 유럽 남동부의 초원지대와 반 사막 지대이다. 몽골 북서부에서 중국 신장,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남부 러시아,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에서도 볼 수 있다. 월동지는 인도와 열대 아시아다.

국내에서는 2000년 5월 27일 경기 양평 양수리에서 성조 2개체가 처음 관찰된 이후 2002년 9월 전북 군산 어청도에서 관찰되었으며 전남 신안 홍도, 충북 충주, 제주도에 이어 2020년 4월 어청도, 2021년 2월 인천시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에서 관찰되었다.

2021년 1월 경기도 안산시 호수공원에서 목격된 붉은가슴흰꼬리딱새.
2021년 1월 경기도 안산시 호수공원에서 목격된 붉은가슴흰꼬리딱새.

2020년 11월부터 2021년 3월까지 매우 보기 힘든 붉은가슴흰꼬리딱새가 안산시 호수공원에서 월동했다. 이 새는 안산 호수공원 귀퉁이 약 1300㎡ 넓이의 숲에 이동 동선과 횃대를 정해놓고 온종일 바쁘게 움직였다.

원래 봄·가을에 우리나라 중부 이북을 지나가는 새이지만 매우 드물게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보냈다. 어떤 이유로 이곳에 남아 추운 겨울나기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시베리아, 알타이, 몽골 북부, 우수리 등에서 번식하고 중국 남부, 하이난 섬, 인도차이나 등에서 월동한다.

2001년 5월 어청도를 찾은 까치딱새.
2001년 5월 어청도를 찾은 까치딱새.

2001년 5월 10일 전북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리에서 우리나라에서 이제까지 관찰 기록이 없는 미기록종인 까치딱새를 만났다. 까치딱새(학명 Copsychus saularis, 영명 Oriental magpie-robin)는 네팔, 방글라데시, 인도, 스리랑카 및 동부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동부, 태국, 중국 남부, 말레이시아 및 싱가포르 등 열대 남아시아에 서식하는 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국조로 여긴다.

2021년 5월 어청도에 온 바람까마귀.
2021년 5월 어청도에 온 바람까마귀.

바람까마귀는 길을 잃고 한반도를 찾아오는 매우 드물게 관찰되는 새다. 1959년 11월 11일 경남 고성에서 처음 한 마리가 채집된 이후 제주도, 전남 신안 홍도, 전북 군산, 인천 옹진 백령도, 소청도, 굴업도 등지에서 가끔 관찰된 기록이 있다. 2021년 5월 16일 전북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에서 관찰한 바람까마귀 한 쌍은 4일간 머물다 떠났다.

대형 바닷새인 푸른얼굴얼가니새. 2021년 7월 경남 양산시 남부동에서 발견됐다.
대형 바닷새인 푸른얼굴얼가니새. 2021년 7월 경남 양산시 남부동에서 발견됐다.

푸른얼굴얼가니새가 국내에서 관찰된 첫 기록은 1970년 9월 15일 부산에서 동북쪽으로 19㎞ 떨어진 곳에서 성조 암컷이 포획된 것이었다. 놀랍게도 이 새의 다리에는 태평양 피닉스섬 서북쪽에 있는 매킨섬에서 부착한 가락지가 달려 있었다. 부착 시점은 1964년 7월 19일이었으며 발견지로부터 무려 7320㎞나 떨어진 곳이었다.

이후 관찰 기록이 없다가 2004년 9월 23일 부산시 남구 감만동 624번지 민가에서 탈진한 2년생 수컷이 포획된 기록이 있다. 세 번째 기록은 김봉옥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양산지회장이 2021년 7월 10일 경남 양산시 남부고등학교에서 탈진해 쓰러진 푸른얼굴얼가니새 한 마리를 구조해 보호하다 울산야생동물치료센터로 인계한 것이다. 17년 만이었다. 탐조인 조명자 씨는 2021년 12월 12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들머리 근처에서 수컷 파랑딱새를 만났다.


파랑딱새는 동남아 일대와 히말라야 저지대, 중국 남부, 인도, 인도네시아 등에 사는 새다. 우리나라에서 파랑딱새가 처음 관찰된 곳은 2001년 10월 12일 전남 신안 가거도였다.국립생물자원관 박진영 박사가 수컷 1개체를 관찰했다. 이어 2003년 11월에는 나이얼 무어스 새와 생명의 터 대표가 인천 소청도에서, 이듬해 11월에는 박종길 씨가 소청도에서 1마리를 보았다. 목격은 이후에도 제주 성산 일출봉, 전남 홍도, 전남 가거도, 흑산도, 전북 어청도 등에서 이어졌다.

2018년 9월에는 전남 홍도에서 죽은 파랑딱새 한 마리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처럼 지금까지 모두 14번에 이르는 관찰은 모두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서 이뤄졌다. 원래 서식지에서 길을 잃고 멀리 떠밀려와 섬에 기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어린이대공원처럼 육지에서 이 새가 관찰된 것은 처음이므로 그 배경에 궁금증이 인다.

2022년 4월 어청도에서 목격된 회색바람까마귀.
2022년 4월 어청도에서 목격된 회색바람까마귀.

2022년 4월 23일에는 희귀조류인 회색바람까마귀를 어청도에서 관찰했다. 회색바람까마귀는 아프가니스탄 동부에서 중국 남부, 일본 남부, 대만, 하이난, 안다만제도, 대순다 열도, 팔라완에 서식하는 새다. 국내에서는 1961년 10월 11일 평북 용천시 신도에서 암컷 1개체가 잡힌 기록이 최초이며, 이후 오랫동안 기록이 없다가 2000년 5월 21일 전남 신안 가거도에서 1개체가 관찰되었다. 최근 전남 신안 홍도, 전북 군산 어청도, 충남 태안, 인천 옹진 소청도, 문갑도 등지에서 관찰되고 있는 희귀한 길잃은 새다.

노랑배진박새 암컷. 2005년 10월 옹진군 소청도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전국에 걸쳐 관찰 기록이 증가하고 있다. 2018년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에서 촬영했다.
노랑배진박새 암컷. 2005년 10월 옹진군 소청도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전국에 걸쳐 관찰 기록이 증가하고 있다. 2018년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에서 촬영했다.

예기치 않게 한반도를 찾아오는 새들을 기후변화의 지표로 삼을 만하다. 길잃은 새가 우리나라에서 자주 관찰되는 것은 해마다 한반도를 정거장으로 삼아 주기적으로 쉬어가는 나그네새와는 달리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일시적인 환경 변화로 길을 잃고 잠시 머문 것인지, 기후변화의 전조현상인지 살펴야 한다. 길잃은 새들이 자주 관찰되는 것은 어쩌면 위기에 처한 자연의 경고일지도 모른다.

노랑배진박새 수컷, 2021년 4월 어청도에서 촬영했다.
노랑배진박새 수컷, 2021년 4월 어청도에서 촬영했다.

새들은 사람보다 환경 변화에 더 민감하다. 새들이 보여주는 전조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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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윤순영 입니다. 어린 시절 한강하구와 홍도 평에서 뛰놀며 자연을 벗 삼아 자랐습니다. 보고 느낀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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