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논병아리 부부의 데칼코마니 같은 사랑 윤순영의 시선

왕관 같은 장식 깃과 우아한 구애 춤, 선물 공세
겨울 철새이다 2000년대 이후 텃새로 자리 잡아
사랑이 무르익었다.
사랑이 무르익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잉어가 알을 낳고 여름 철새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새들의 짝짓기도 어김없이 시작된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지역에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물의 정원’에서 뿔논병아리의 번식이 시작되었다. 새 조(鳥)와 편안할 안(安)을 쓰는 조안면은 산과 물이 잘 어우러져 새들이 좋아하는 환경을 두루 갖췄다.
번식깃으로 장식한 뿔논병아리의 모습이 중세 유럽의 둥글게 목에 두른 옷깃을 떠오르게 한다.
번식깃으로 장식한 뿔논병아리의 모습이 중세 유럽의 둥글게 목에 두른 옷깃을 떠오르게 한다.

북한강 수변 공간의 얕은 물골은 먹잇감과 갈대, 줄풀이 무성해 뿔논병아리가 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북한강 수변 공간의 얕은 물골은 먹잇감과 갈대, 줄풀이 무성해 뿔논병아리가 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수면 위에 서서 머리를 좌우로 돌리는 행동은 뿔논병아리의 독특한 구애의식이다.
수면 위에 서서 머리를 좌우로 돌리는 행동은 뿔논병아리의 독특한 구애의식이다.

뿔논병아리는 번식할 때 이례적으로 엄격한 의식을 벌인다. 정열적인 구애와 매우 복잡한 의식 행동이 펼쳐진다. 머리 깃과 뺨에서 목덜미까지 난 긴 깃털을 세우고 마주 보고 수영하며 머리를 흔들고, 몸을 들어 올려 좌우로 절도 있게 움직이고, 하늘을 향해 목을 들고, 마주 보며 수면에 떠 있는 묵은 수생 식물을 부리에 물고 수직으로 가슴을 치켜들어 올린다. 사랑의 마음을 우아하게 표현하는 의식이다.

애정 행동을 잠시 미루고 평온한 모습인 뿔논병아리 부부.
애정 행동을 잠시 미루고 평온한 모습인 뿔논병아리 부부.

만족감과 자신감이 넘치는 뿔논병아리의 과시.
만족감과 자신감이 넘치는 뿔논병아리의 과시.

특히 뿔논병아리가 물속으로 잠수하여 가지고 나온 수생 식물 묶음을 입에 물고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상체를 들어 올려 마치 펭귄처럼 수직으로 일어서 배를 맞부닥치면서 선물을 건넨다.

뿔논병아리 암컷과 수컷이 물속에서 수초를 물고 나와 달려들며 배치기를 한다.
뿔논병아리 암컷과 수컷이 물속에서 수초를 물고 나와 달려들며 배치기를 한다.

수초를 선물하는 것은 최고의 애정 표현이다.
수초를 선물하는 것은 최고의 애정 표현이다.

상대의 움직임을 똑같이 복제하듯 모방하는 특이한 습성도 눈에 띈다. 종일 둥지 짓기와 짝짓기를 10회 이상 하며 모방 행동을 반복한다. 뿔논병아리는 방해요인이 없는 곳을 최상의 장소로 선택해 물 위에 떠다니는 둥지를 만든다. 둥지의 재료는 주로 갈대와 줄풀, 부들 등의 죽은 잎과 줄기다.

둥지 짓기는 뿔논병아리 부부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이뤄진다. 짝짓기 전 꼭 둥지에 재료를 가져다 놓는다.
둥지 짓기는 뿔논병아리 부부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이뤄진다. 짝짓기 전 꼭 둥지에 재료를 가져다 놓는다.

뿔논병아리 암컷이 둥지로 올라가 엎드린다.
뿔논병아리 암컷이 둥지로 올라가 엎드린다.

둥지를 확정하기 전 임시 둥지를 두세 개 지으며 그 위에 암수가 잎줄기를 서너 번 가져다 놓고 암컷이 바짝 엎드리면 수컷이 다가와 짝짓기를 한다. 둥지의 크기를 재는 듯도 하고 둥지가 물에 가라앉는지 확인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짝짓기 후 모방 행동이 끝나면 다시 둥지를 짓기 시작한다.

뿔논병아리 수컷이 다가와 교미한다.
뿔논병아리 수컷이 다가와 교미한다.

짝짓기 뒷모습.
짝짓기 뒷모습.

수컷 뿔논병아리가 짝짓기를 끝내고 암컷 앞으로 뛰어내린다.
수컷 뿔논병아리가 짝짓기를 끝내고 암컷 앞으로 뛰어내린다.

둥지가 확정되면 뿔논병아리의 몸길이 48~51㎝보다 다소 큰 지름 60㎝, 높이 80㎝의 둥지에 3~4개의 알을 낳는다. 28일 정도 지나 알에서 깨어난 새끼는 태어날 때부터 수영하지만 처음에는 부모의 등 위에 올라타거나 날개 깃털 아래에 숨는다. 수컷은 부성애가 지극하여 새끼를 등에 업고, 먹이를 먹일 때는 깃털을 같이 먹여 소화를 돕는다.

짝짓기 뒤 간단한 의식이 남았다. 뒤에서 본 머리 깃이 왕관처럼 이채롭다.
짝짓기 뒤 간단한 의식이 남았다. 뒤에서 본 머리 깃이 왕관처럼 이채롭다.

수컷 뿔논병아리가 암컷 가슴에 꼬리를 접촉하고 지속적으로 모방 행동을 한다.
수컷 뿔논병아리가 암컷 가슴에 꼬리를 접촉하고 지속적으로 모방 행동을 한다.

마주 보는 것도 짝짓기가 끝나면 하는 의식의 하나다.
마주 보는 것도 짝짓기가 끝나면 하는 의식의 하나다.

줄풀을 물고 지속해서 애정을 표현하는 뿔논병아리.
줄풀을 물고 지속해서 애정을 표현하는 뿔논병아리.

애써 만들어 놓은 둥지를 순식간에 잃어 다시 보수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뿔논병아리의 둥지 건축을 방해하는 잉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3월 중순에서 4월 사이에 산란 철을 맞이하는 암컷 잉어는 수초가 있거나 수초 더미가 쌓여있는 곳을 찾아가 알을 낳고 수컷 잉어는 뒤따라가 몸부림치며 수정을 하는 통에 둥지가 초토화하기 일쑤다.

잉어가 산란을 위해 수초를 헤집고 다닌다.
잉어가 산란을 위해 수초를 헤집고 다닌다.

암컷 잉어를 뒤따르던 수컷 잉어가 몸부림치면서 정액을 방사하는 과정에 애써 만들어 놓은 둥지가 한순간에 파괴된다.
암컷 잉어를 뒤따르던 수컷 잉어가 몸부림치면서 정액을 방사하는 과정에 애써 만들어 놓은 둥지가 한순간에 파괴된다.

뿔논병아리는 번식기에 머리의 깃이 길게 돌출하고 왕관을 쓴 모양처럼 세우기도 한다. 뺨 깃과 목덜미 깃털이 적갈색으로 변하며 그 아래쪽은 검은색 목도리를 두른 것처럼 장식한다. 암컷과 수컷의 깃털 색이 똑같아 구별이 쉽지 않다. 겨울에는 눈 주위와 얼굴, 목이 흰색이고 머리는 검은색이다. 긴 목을 곧게 세우고 수영하는 모습이 도도하게 보인다.

주변의 다른 뿔논병아리 부부도 둥지를 마련하려 줄풀 더미에 관심을 보인다.
주변의 다른 뿔논병아리 부부도 둥지를 마련하려 줄풀 더미에 관심을 보인다.

뿔논병아리가 하늘을 바라보며 머리를 치켜든다.
뿔논병아리가 하늘을 바라보며 머리를 치켜든다.

곁에 있는 뿔논병아리도 바로 따라서 머리를 치켜들어 애정을 보인다.
곁에 있는 뿔논병아리도 바로 따라서 머리를 치켜들어 애정을 보인다.

뿔논병아리는 겨울 철새로 전국 각지에 찾아오다가 1996년 충남 대호방조제 주변에서 번식이 확인되었고 양수리(2001년), 경안천(2005년), 시화호(2010년), 수원 일월 저수지 등 전국 각지에서 뒤따라 번식이 확인되어 텃새로 자리 잡았다.

한가롭게 깃털을 고르는 뿔논병아리.
한가롭게 깃털을 고르는 뿔논병아리.

곁에 있는 뿔논병아리가 깃털을 고르는 것조차 따라 한다.
곁에 있는 뿔논병아리가 깃털을 고르는 것조차 따라 한다.

뿔논병아리는 겨울철에 해안 앞바다와 내륙의 호수에서 여러 마리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잠수해 어류를 잡아먹지만 번식기엔 호수와 석호, 저수지 등 숲이 우거지고 습지 식물이 사는 곳에서 생활한다. 유라시아대륙 중부,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 분포하고 유라시아 번식집단은 겨울에 남쪽으로 이동한다.

뿔논병아리가 마련한 둥지를 지나가던 물닭이 슬쩍 넘본다.
뿔논병아리가 마련한 둥지를 지나가던 물닭이 슬쩍 넘본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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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윤순영 입니다. 어린 시절 한강하구와 홍도 평에서 뛰놀며 자연을 벗 삼아 자랐습니다. 보고 느낀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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