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객’ 초원수리, 기러기 잡으러 6000㎞ 날아 강화도 왔다 윤순영의 시선

사진가 등쌀에 전망 횃대 옮기고 부상 다리 불편해도
쇠기러기 이동통로 사냥기회, 사체 먹을 기회 놓칠라
3년째 목격…중앙아 초원 상징 맹금류 언제까지 볼까
초원수리는 겨울에 드물게 우리나라를 찾는 나그네새이다. 강화 교동도에서 만났다. 소나무 위는 교동도 고구 저수지와 화개산 자락의 평야가 훤히 보이는 초원수리의 지정석이었다.
초원수리는 겨울에 드물게 우리나라를 찾는 나그네새이다. 강화 교동도에서 만났다. 소나무 위는 교동도 고구 저수지와 화개산 자락의 평야가 훤히 보이는 초원수리의 지정석이었다.

카자흐스탄 국기에 모습을 올릴 만큼 중앙아시아 초원을 상징하는 맹금류 초원수리가 3년째 강화 교동도를 찾았다. 번식지로 북상하는 기러기떼를 사냥하기 위해서다.

중앙아시아에서 6000㎞를 날아온 초원수리는 수리 중 유일하게 땅 위에 둥지를 틀고 번식기에는 주로 땅다람쥐를 사냥한다. 그러나 인도나 아프리카의 월동지에서는 사냥 본능을 버리고 사체를 노리는가 하면 쓰레기장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중앙아시아에서 6000㎞를 날아온 초원수리는 수리 중 유일하게 땅 위에 둥지를 틀고 번식기에는 주로 땅다람쥐를 사냥한다. 그러나 인도나 아프리카의 월동지에서는 사냥 본능을 버리고 사체를 노리는가 하면 쓰레기장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12월 말께 초원수리가 교동도를 찾아왔다가 사람들의 지나친 간섭으로 인해 1달가량 보이지 않았으나 올해 2월 3일 다시 돌아왔다. 올해로 3년째다. 이미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커진 초원수리를 만나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려웠다.

사냥감을 찾기 위해 평야로 향하는 초원수리.
사냥감을 찾기 위해 평야로 향하는 초원수리.

조류는 방해를 받으면 지금까지 하던 행동을 중지하고 사람을 살펴보거나 소리를 높이는 등의 경계 행동을 한다. 거리를 유지하며 피하는 회피행동을 하며 거리를 두려고 자리에서 멀리 날아가는 도피 행동을 한다. 조류가 인간의 모습을 보고도 도망치거나 경계하지 않고 먹이를 먹거나 휴식을 계속하는 거리를 비간섭 거리라고 한다.

초원수리는 항상 신중하게 행동한다.
초원수리는 항상 신중하게 행동한다.

비간섭 거리를 유지하지 않고 맹금류의 지정석인 잠자리나 전망대, 휴식처를 침범하는 것은 독립적이고 엄격한 사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맹금류들에게 치명적인 방해요인이다. 특히 초원수리나 흰죽지수리, 검독수리는 더욱 민감하다. 두루미도 마찬가지다. 비간섭 거리를 유지하며 탐조와 사진 촬영을 하는 것은 사진 인의 기본 덕목이다.

7년 동안 선월산에 터를 잡았던 흰죽지수리도 사람들이 전망대와 잠자리를 침범하자 자리를 옮겼다.
7년 동안 선월산에 터를 잡았던 흰죽지수리도 사람들이 전망대와 잠자리를 침범하자 자리를 옮겼다.

초원수리를 교동도에서 처음 목격한 것은 2020년 12월 15일이었다. 이후 2021년 1월 29일과 12월 24일에 이어 올해로 만남이 이어졌다. 사람들의 간섭을 무릅쓰고 교동도를 월동지로 삼은 모양이지만 초원수리와 흰죽지수리는 선호하던 잠자리와 전망대를 아예 바꿨다.

교동도를 찾은 초원수리의 다리 부상은 완치된 것 같지만 허벅지가 유난히 굵고 날 때 왼쪽 다리가 처진다.
교동도를 찾은 초원수리의 다리 부상은 완치된 것 같지만 허벅지가 유난히 굵고 날 때 왼쪽 다리가 처진다.

어린 초원수리의 행동을 살펴보니 다리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지난해에 관찰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날 때 왼쪽 다리가 배에 바짝 밀착되지 않고 아래로 처지며 허벅지가 유난히 굵다. 날거나 앉을 때는 지장이 없어 보이지만 불편할 것이다.

초원수리가 지정석에선 보이지 않고 다른 곳에서 불현듯 나타나 선회비행을 자주 하며 매우 예민해진 반응을 보인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매우 은밀하게 행동하고 방해요인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다른 장소를 차선책으로 마련해 둔 것 같다.

자취를 감춘 지 한 달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초원수리. 자리를 옮겨 다른 나무에 앉아 사냥감을 찾는다.
자취를 감춘 지 한 달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초원수리. 자리를 옮겨 다른 나무에 앉아 사냥감을 찾는다.

12월 말 자취를 감춘 뒤 한 달 만에 다시 나타난 초원수리는 자리를 옮겼다. 지난해는 한파로 인해 예년과 다르게 쇠기러기 개체 수가 크게 줄어 맹금류들의 월동이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2월이 오면 북상하는 쇠기러기들이 교동 평야로 몰려들 것이다.

먹잇감을 발견한 초원수리가 횃대를 박차고 나간다.
먹잇감을 발견한 초원수리가 횃대를 박차고 나간다.

목표는 정해졌다.
목표는 정해졌다.

드넓게 펼쳐진 평야가 야산과 적당한 조화를 이루는 강화 교동도는 겨울 철새 쇠기러기가 예성강과 한강하구를 오가며 월동하기 적합한 곳이다. 쇠기러기는 맹금류들에게 좋은 사냥감인데, 이곳에는 수만 마리의 쇠기러기가 있으니 직접 사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사하는 사체도 먹이가 된다. 대형 맹금류들이 생존을 위한 치열한 먹이 경쟁이 이곳에서 펼쳐진다.

흔들림 없이 먹잇감을 향해 나는 초원수리.
흔들림 없이 먹잇감을 향해 나는 초원수리.

독수리가 초원수리 뒤를 따른다. 먹이를 찾는 유력한 단서는 경쟁자의 움직임이다.
독수리가 초원수리 뒤를 따른다. 먹이를 찾는 유력한 단서는 경쟁자의 움직임이다.

먹잇감을 발견하면 하늘에서 사체를 찾아 맴돌던 독수리가 가장 먼저 달려들고 그다음엔 먹이 탐욕이 강한 어린 흰꼬리수리가 독수리의 눈치를 살피다 먹잇감을 잽싸게 탈취해 간다. 어린 맹금류가 자랄 때 탐식이 강하고 늘 배고픈 것은 성장 과정에 필수적인, 살기 위한 방편인 것 같다. 어른 맹금류는 먹이 경쟁에는 잘 나타나지 않고 노련한 사냥술로 단독사냥을 한다.

초원수리가 용맹스런 눈빛으로 먹잇감을 향해 돌진한다.
초원수리가 용맹스런 눈빛으로 먹잇감을 향해 돌진한다.

독수리가 이미 먹잇감을 차지하고 있다. 왼쪽 흰꼬리수리가 먹이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오른쪽에 몸집이 작은 초원수리도 기회를 노린다. 그 오른쪽 다른 독수리도 마찬가지다.
독수리가 이미 먹잇감을 차지하고 있다. 왼쪽 흰꼬리수리가 먹이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오른쪽에 몸집이 작은 초원수리도 기회를 노린다. 그 오른쪽 다른 독수리도 마찬가지다.

초원수리가 조용히 나타나 독수리의 먹이 경쟁을 살피며 먹잇감을 뺏을 기회를 노린다. 곁에서 집요하게 기다리는 이유는 독수리가 먹이를 먹다 보면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이때 기회를 엿보다 결정적인 순간에 과감히 급습해 먹이를 가로챈다.

초원수리가 독수리 틈바구니에서 조각난 먹잇감을 재빨리 차지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초원수리가 독수리 틈바구니에서 조각난 먹잇감을 재빨리 차지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흰꼬리수리(왼쪽)가 먹잇감을 노리자 강력한 경고를 보내는 초원수리.
흰꼬리수리(왼쪽)가 먹잇감을 노리자 강력한 경고를 보내는 초원수리.

초원수리는 알타이산맥 서부에서 몽골 대초원까지 번식하고 중동, 아라비아, 아프리카 동부와 남부, 인도, 남아시아에서 월동한다. 2020년 국립생물자원관이 시화호에서 탈진상태로 발견된 초원수리 한 마리에 위치추적장치를 달아 3월 6일 날려 보냈더니 4월 7일 중국 내몽골까지 이동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지리적으로 2개의 아종으로 나뉜다. 산림지대와 덤불 지역을 피하며 반사막, 초지, 넓은 농경지 등을 선호한다. 이동 시기에는 히말라야 산맥과 같은 고지대에서도 관찰된다.

허겁지겁 먹이의 깃털을 뽑는 초원수리.
허겁지겁 먹이의 깃털을 뽑는 초원수리.

먹이는 썩은 사체부터 땅 위의 작은 조류나 포유류까지 다양하게 사냥한다. 얼핏 항라머리검독수리와 비슷해 보이나 콧구멍이 타원형이어서 원형인 항라머리검독수리와 구별된다. 날 때는 날개가 거의 수평에 가까우며, 간혹 날개 끝이 아래로 처지기도 한다. 날개가 약간 긴 편이다. 하강 비행에서 최대 시속 300㎞까지 낼 수 있고 수평 비행 때도 시속 60㎞로 빠르게 날 수 있다.

먹이에서 뽑은 깃털을 물고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먹이에서 뽑은 깃털을 물고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깃털이 발목까지 토시를 찬 듯 감싸고 있어 위용 있어 보인다. 흰꼬리수리보다 조금 작지만 군더더기 없이 미끈하게 잘 균형 잡힌 몸매다. 눈두덩이가 튀어나와 있어 눈빛이 깊어 보인다. 초원수리 성조는 갈색 눈을 띤 검은 홍채를 지녔다. 정면에서 볼 때 둥근 머리와 코가 있는 기부 주변의 노란띠가 명확하고 얼굴로 향하는 부리의 노란 입술선이 쭉 길게 찢어진 듯 선명하게 보인다.

먹이를 먹을 때 방심을 하면 먹잇감을 빼앗기기 일쑤다. 흰꼬리수리가초원수리 앞에서 딴청을 하며 먹이를 노린다. 까치들이 작은 먹이 부스러기를 먹기 위해 모여든다.
먹이를 먹을 때 방심을 하면 먹잇감을 빼앗기기 일쑤다. 흰꼬리수리가초원수리 앞에서 딴청을 하며 먹이를 노린다. 까치들이 작은 먹이 부스러기를 먹기 위해 모여든다.

대부분 뒷목에 탈색된 듯한 담황색 반점이 있으며, 턱밑과 멱은 색이 엷다. 몸 윗면은 어두운 갈색으로 날개깃과 날개덮깃 간에 색 차이가 심하지 않다. 위꼬리덮깃은 폭 좁은 연한 흰색으로 꼬리 기부에 유(U) 자 형을 이룬다. 날 때 날개깃에 가느다란 어두운 띠가 많이 보이며, 깃 끝을 따라 검은 띠를 이룬다. 몸길이는 62~81㎝이며 날개 길이는 1.65~2.15m이다. 암컷의 무게는 2.3~4.9㎏으로 수컷 2~3.5㎏보다 조금 더 무거운 편이다. 수명은 약 30~40년이고 1~3개의 알을 낳는다.

초원수리가 해마다 교동도를 찾아와 안전하게 커가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초원수리가 해마다 교동도를 찾아와 안전하게 커가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초원수리는 카자흐스탄의 국기에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이집트의 국조이자 국기에 문양이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의 ‘멸종 위기’ 등급에 올라 있다. 2021년 1월 17일 부천 오정구 대장동과 2022년 1월 23일 파주시 교하동 송촌리에서도 관찰되었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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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윤순영 입니다. 어린 시절 한강하구와 홍도 평에서 뛰놀며 자연을 벗 삼아 자랐습니다. 보고 느낀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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