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객 흰죽지수리의 쇠기러기 사냥과 ‘공중전’ 윤순영의 시선

교동도 출현한 최강 맹금류, 흰꼬리수리와 치열한 먹이 다툼

[크기변환]YS3_0178.jpg » 대표적인 대형 맹금류인 흰죽지수리(오른쪽)와 흰꼬리수리가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공중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12월 3일 강화군 교동도에서 희귀 조류인 어린 흰죽지수리를 만났다. 얼굴 보기 참 힘든 새다. 20여 일 동안 생태를 관찰해 보았다. 강화도 주변의 섬은 크게 교동도, 석모도, 볼음도로 나눌 수 있다. 교동도에는 드넓은 농경지가 있어 많은 철새가 찾는다.

한강과 예성강 등 여러 하천에서 밀려 내려오는 많은 토사와 거센 조수에 의한 퇴적작용으로 넓은 연안 평야가 펼쳐져 있다. 특히 예성강 서쪽에 북한의 연백평야가 자리 잡고 있어 철새들이 5km 거리의 남북한을 자유롭게 오간다. 이 철새들에 낙원에는 겨울이면 쇠기러기가 들판을 수놓는다. 맹금류도 이들을 따라서 온다.

[크기변환]YS3_1447.jpg »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흰죽지수리.

[크기변환]YS3_1451_01.jpg » 성조가 되려면 2년쯤 더 자라야 하는 어린 개체이다. 흰죽지수리는 다 자라면 몸길이 90㎝, 날개 편 길이 2.2m에 이르는 대형 맹금류이다.

[크기변환]YS3_1561.jpg » 흰죽지수리가 농경지에 앉아 주변을 살펴본다.

교동도는 적당한 큰 산과 숲, 저수지 그리고  평야가 개방적이고 비교적 평탄한 지형을 이룬다. 특히 무학리  난정저수지 앞 드넓은 평야는 흰죽지수리가 선호하는 장소다. 오전 7시 30분, 동틀 무렵이면 쇠기러기가 먼저 무리를 지어 농경지를 찾는다. 흰죽지수리는 이때 병들거나, 아프거나, 허약한 새를 구분하여 사냥표적으로 삼는다.

[크기변환]YS2_9330.jpg » 이른 아침 농경지로 날아드는 쇠기러기.

흰죽지수리는 미리 정해둔 횃대나 동선에 따라 규칙적으로 오가며 오전에 빈번하게 활동한다. 흰죽지수리는 필요 이상의 행동을 하지 않아 하루 종일 관찰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신중하게 사냥을 한다는 의미도 된다.  사냥터 사방  2km 이내의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린 흰죽지수리는 어린 흰꼬리수리와 함께 다니면 분간하기가 쉽지 않고 얼핏 큰말똥가리가 흰죽지수리로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 흰죽지수리는 앉을 때 올빼미처럼 직립 자세로 종종 앉는다. 사람 앞에서 크게 경계하지 않고 대담한 모습을 보인다.

[크기변환]YS3_9804.jpg » 야산에 높은 나무꼭대기는 흰죽지수리가 몸을 숨기고 은밀하게 사냥감을 살피는 은신처이자 잠자리다.

[크기변환]YS3_1863.jpg » 농경지의 전봇대는 사냥감을 찾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흰죽지수리가는 사냥터에 나가 사냥감을 살필 때는 노출이 심한 낮은 봉우리, 전봇대, 바위, 건초 더미에 앉는다. 그 외에는 수목이 우거진 높은 나무 꼭대기에 앉아 휴식하거나 깃털 손질을 하고 사냥 준비를 하며 사냥 장소를 살핀다.
흰죽지수리는 주로 작은 포유동물를  먹이로 선택하지만 월동지인 교동에서는 쇠기러기를 사냥한다. 사냥할 먹잇감을 발견하면 몸을 굽신거리고 땅으로 맹렬히 곤두박질치며 사냥감을 잡는다. 어떤 먹이는 걸어서 포획하는 경우도 있으며 포유류의 굴 입구 옆에서 기다리다 사냥을 하기도 한다. 하루 평균 먹이 섭취량은 540g으로 알려져 있다.

[크기변환]YS3_0136.jpg » 사냥을 위해 비상하는 흰죽지수리.

1km 이상의 높은 하늘에서 흰죽지수리가 하늘을 맴돈다. 별안간 급강하한다. 놀란 천여 마리의 쇠기러기 무리가 일제히 떠오른다. 흰죽지수리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쇠기러기를 순식간에 낚아채 논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대형 수리가 육중한 몸으로 하늘에서 사냥감 쇠기러기를 낚아채는 모습은 처음 본다. 비행 모습이 스텔스 전투기와 닮았다. 하늘과 땅 그리고 물까지 지배하는 뛰어난 사냥술을 가지고 있다.

[크기변환]YS3_4903.jpg » 사냥감을 향해 하강하는 흰죽지수리.

[크기변환]YS3_4910.jpg » 날개를 접고 쏜살같이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 전투기 같다.
흰죽지수리가 사냥 후 내려앉은 곳으로 갔다. 흰죽지수리가 사냥한 먹잇감을 독수리, 흰꼬리수리가 곁에서 노리며 쟁탈전이 벌어졌다. 힘과 서열로 결정되는 먹이 쟁탈전은 필사적이다. 물론 사냥을 한 뒤 몰래 숨어 포식을 하는 경우도 있다. 다부진 몸매와 대담성을 가진 흰죽지수리는 흰꼬리수리에 결코 밀리지 않는다.

[크기변환]YS3_1253.jpg » 흰죽지수리가 사냥감 쇠기러기를 움켜쥐고 주변을 살핀다.

독수리의 몸집에 밀려날 뿐이다. 그러나 먹이를 지키려는 어린 흰죽지수리의 모습은 용맹스럽고 비범하다. 먹이 쟁탈전 판이 지저분해지면 흰죽지수리는 점잖게 물러선다. 죽은 사체가 있거나 사냥을 할 경우 혼자서 먹기 힘들다. 다른 맹금류들이 높은 자리에 앉아 훤히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싸움은 불가피하다.

[크기변환]YS3_1201.jpg » 갑자기 흰꼬리수리가 달려들지만 큼직한 쇠기러기를 움켜쥐고 물러설 흰죽지수리가 아니다.

[크기변환]YS3_1324.jpg » 사냥감 먹이를 내려놓고 흰꼬리수리 한테 맞서는 흰죽지수리.

[크기변환]YS3_1336.jpg » 독수리도 나타났다. 용맹스럽게 맞서는 흰죽지수리.

교동도 월동지에서는 전망 좋은 야산에 맹금류들이 각자의 지정석을 가지고 있다. 종종 영역 싸움이 일어나는데, 흰죽지수리 혼자서 대여섯 마리의 흰꼬리수리를 상대하려니 신경이 쓰인다. 자기 지정석 근처에 오는 흰꼬리수리에게 굵고 긴 목을 내밀며 ‘웍, 웍, 웍’ 소리 내어 경고를 보낸다.  그 와중에 터줏대감인 까치와 까마귀마저 텃세를 부린다.

[크기변환]YS3_1572.jpg » 먹이쟁탈전 터가 난장판이되면 흰죽지수리는 자리를 뜬다.

[크기변환]YS3_1478_02.jpg » 흰죽지수리는 수평 비행을 한다.

흰죽지수리는 나무 위에서 뛰어내릴 때 점프 스키선수가 활공하는 모양이다. 하강을 한 다음  날개를 저어 양 날개를 수평으로 펼쳐 그대로 하늘로 솟아오른다. 그래서인지 제일 높은 나뭇가지를 차지하고 있다. 뛰어난 비행술로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흰죽지수리는 다른 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목이 굵고 길다. 머리는 크고 길쭉한 꼬리 끝은 모난 형이다.

[크기변환]YS3_1681.jpg » 흰죽지수리는 다른 맹금류에 비해 굵은 목을 가졌다.

다리는 굵고 단단하며 발목까지 깃털이로 덮여있어 묵직하게 보인다. 튼튼한 발을 가지고 있고 몸 전체가 굳세다. 비행하는 모습을 보면 돌출된 목과 큰 머리, 긴 날개가 다른 맹금류들과 비교할 때 무겁게 느껴지지만 날개를 강력한 힘으로 조절하여 평평하게 펴고 날아오른다. 활공하는 동안 가속하면서 날개를 뒤로 젖힐 수도 있다. 대형수리 답지 않게 매가 비행하듯이 멋진 비행술이 특징적이다.

[크기변환]YS3_0177.jpg » 공중전을 벌이는 흰죽지수리(오른쪽)와 흰꼬리수리. 둘 다 최상위 포식자여서 먹이와 영역을 놓고 다툰다.

흰죽지수리의 성조 깃털은 대체로 흑갈색이지만, 머리와 후두부, 목 부분에 갈색과 노란색의 색이 황금빛으로 잘 표현되어 있고 양 날갯죽지에 하얀 반점이 특징이다. 어린 흰죽지수리는 대부분 옅은 갈색 반점이 가슴, 배에 있고 날개덮깃에 밝은 갈색 반점이 많다. 첫 번째 날개깃 안쪽으로 갈색, 검은색의 날개깃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다리 깃털은 황토색이다.

[크기변환]YS3_0178.jpg » 흰죽지수리는 흰꼬리수리보다 뛰어난 비행술을 가지고 있다.

[크기변환]YS3_0180.jpg » 먹이쟁탈전에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다.

[크기변환]YS3_0182.jpg »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크기변환]YS3_0183.jpg » 공중전은 2~3분 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성조의 몸길이는 68~90cm이고 날개 길이는 1.76~2.2m로 암컷이 최대 10% 정도 더 크며 체중도 40% 정도 더 무겁다. 평균 무게는 수컷 2.62kg, 암컷 3.9kg이다. 성인 깃털은 5~6세 가되면 완성되지만 4년차에 이미 번식할 수 있다. 흰죽지수리의 둥지는 평균 가로 1.2~1.5m, 세로 60~70cm 크기로 나뭇가지, 풀, 털, 등 다양한 재료가 쓰인다.

 [크기변환]YS3_0337.jpg » 휴식과 다음 사냥을 위해 숲으로 돌아오는 흰죽지수리.

2일 또는 그 이상의 간격으로 2-3개의 알을 낳는다. 흰죽지수리의 알은 전체적으로 탁한 흰색이며 회색, 청록색 또는 가끔 갈색 반점이 드문드문 나타난다. 평균 알 크기는 73.3mm×56.5mm이며 알 무게는 136.8g이다. 43일의 알을 품는 기간을 거쳐 생후 14일이 되면 깃털이 나기 시작하며 55일에 깃털이 다 자라고 첫 비행은 60일 후에 한다. 암컷과 수컷이 함께 먹이를 잡아 키운다.

[크기변환]YS3_1232.jpg » 자리를 이동하는 흰죽지수리는 걷는데 능숙하다.

[크기변환]YS3_1237.jpg » 늠름한 흰죽지수리.

흰죽지수리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며, 1994년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자료 목록에 취약종으로 분류된 국제보호조다. 강력한 발톱과 예리한 눈, 강한 힘을 가져 서양에서 권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영어로 'Emperial Eagle', 황제수리다. 유럽과 중앙아시아를 통해 광범위하게 번식하는 맹금류이며 대부분 아프리카 북동부, 중동, 남부 및 동아시아의 겨울철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강하구, 파주 대성동, 화성 화홍호, 시흥 시화호, 강화 교동도, 강원도 철원, 낙동강, 주남저수지, 해남, 천수만 등에서 관찰이 된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TAG

Leave Comments


profile안녕하세요?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윤순영 입니다. 어린 시절 한강하구와 홍도 평에서 뛰놀며 자연을 벗 삼아 자랐습니다. 보고 느낀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Recent Track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