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매 번식 둥지 가린다고 아름드리 나무 고사시켜 윤순영의 시선



경기 남양주서 낙엽송 표피 돌려 베어, “조류 사진가 소행”

20200611500066.jpg » 주변 나무들과 달리 참매가 둥지를 튼 낙엽송만 누렇게 죽어있다. 오른쪽은 수피를 빙둘러 베어낸 나무 밑동 부근의 모습. 주변에서 사진 촬영 흔적이 발견된다.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팔현리 야산의 낙엽송 조림지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참매가 번식하는 곳이다. 올해 참매가 둥지를 틀어 번식 중인 한 낙엽송이 누렇게 죽어 푸른 주변의 낙엽송과 대조를 이룬다.

유독 이 나무만 죽은 것도 이상하지만, 참매가 하필 죽은 나무에 둥지를 튼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 비밀은 나무의 밑동을 보면 드러난다. 수피를 빙둘러 누군가 베어냈고, 물과 양분 이동이 차단된 낙엽송은 꼭대기 부근의 참매 둥지를 훤히 드러낸 채 말라죽었다.

이 숲에는 긴꼬리딱새, 팔색조 등 희귀종을 비롯해 다양한 새들이 서식한다. 특히 참매는 이 숲에서 15년 전부터 번식하고 있다. 참매는 둥지를 수리해 가면서 여러해 동안 사용하기도 하고, 높게 뻗은 낙엽송을 옮겨가며 새로운 둥지를 틀기도 한다.

3년 전쯤부터 이곳 참매 번식지가 알려지면서 사진인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대형 망원렌즈를 설치해 참매의 번식과정을 촬영한다.

자연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지역 주민은 “올 봄 참매가 번식에 들어간 뒤 나뭇가지가 둥지를 가리자 촬영이 어려워진 사진가들이 밑동을 돌려 베어 말라죽게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삼각대를 고정하고 촬영자의 자리를 마련한 흔적이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죽은 나무는 약 40년 생 큰 나무로 주변의 다른 나무와 같은 시기에 조림한 것으로 자연적인 이유로 이 나무만 죽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크기변환]YSY_6124.jpg » 경기도 광주의 정상적인 참매 둥지. 살아있는 나뭇가지의 은폐와 편이성, 기동성을 두루 고려해 둥지를 짓는다. 윤순영

참매는 죽은 나무에 둥지를 틀지 않는다. 건강하고 무성한 나뭇가지가 안정감을 주며 위협요인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어느 방향으로 날아들지, 어느 가지를 횃대로 삼을지, 재빨리 달아날 때는 어디로 날지 등을 고려해 적합한 낙엽송을 골라 둥지를 짓는다.

그러나 죽은 나무는 이런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이미 알을 낳았기 때문에 번식에는 매우 불리하지만 어쩔 수 없이 둥지에서 새끼를 기를 것이다. 하지만 올해 번식을 끝내면 다른 곳으로 옮겨갈 것이 분명하다.

일부의 일이겠지만, 최근 자연 사진가들의 무분별한 훼손 행동이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다. 자연을 사랑하는 다른 많은 선의의 사진인들에 피해를 주고 생명경시 풍조를 조장한다. 나무를 말려죽이고 찍은 참매 사진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참매에게는 동물 학대이다. 법정 보호종의 번식지를 훼손한만큼 당국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20200611500063.jpg » 2018년 7월 대전의 한 호반새 번식지에서 느티나무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는 호반새를 촬영하기 위해 200여 명의 사진가가 대형 망원렌즈를 장착한 사진기를 설치한 모습.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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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윤순영 입니다. 어린 시절 한강하구와 홍도 평에서 뛰놀며 자연을 벗 삼아 자랐습니다. 보고 느낀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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