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에 달려든 매의 꿰뚫는 눈…10초가 길었다 윤순영의 시선

[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

난공불락 벼랑 위 둥지, 5대가 물려 받아

풀숲 등 '지정석'에 먹이 감추고

쉬기도 경계심 없이 접근한 매, 강렬한 여운 남아

크기변환_YSY_7013-1.jpg »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매, 어청도에 뿌리를 내려 하늘과 바다를 지배하는 최고의 새다.

지인으로부터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리 어청도에 매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군산항에서 어청도는 72km 떨어진 곳으로 여객선을 타고 2시간30분이 소요된다. 지난 4월과 6월 2차례 방문하였다.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어청도에서 산행을 하며 매를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높은 곳에서 벼랑을 올려보고 바다를 내려다보며 매 둥지를 찾는 일은 계속해서 어지럼증을 유발해 서있기도 힘들었다. 탐조하는 내내 자칫하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크기변환_DSC_5991.jpg » 깎아지른 듯 높이 서 있는 절벽 위가 매의 보금자리다.

크기변환_YSY_3679.jpg » 벼랑 나뭇가지에 앉은 매.

크기변환_YSY_3810.jpg » 사냥을 위해 급강하 하는 매는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한다.

다음날 매를 찾아 나섰다. 몸이 지쳐갈 무렵, 절벽 위에 날쌔고 사나운 매가 늠름하게 앉아 있었다. 피곤함이 몽땅 날아가 버리는 듯 했다. 관찰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매의 행동이 하나둘씩 새롭게 펼쳐진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짝짓기를 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지인은 어청도의 매가 새끼를 기르는 시기라고해,  시기적으로는 늦었지만 무슨 이유론지 2차 번식을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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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_포맷변환_YSY_3581.jpg » 바다는 매의 사냥터다.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날쌔게 나는 매.

크기변환_YSY_3471.jpg » 매는 지정석을 여러 개 가지고 있다. 이곳은 먹이를 감추고, 짝짓기를 하고 바다를 날다 편안히 앉을 수 있는 곳이다.

크기변환_YSY_2406.jpg » 짝짓기를 하는 매. 번식기외에는 단독 생활을 한다.

일반적으로 4월 말 ~ 5월 초에는 부화된 매의 새끼를 볼 수 있는 시기다. 이 시기에 이동조류가 많아 새끼에게 먹일 사냥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매는 사람의 손길을 허용하지 않는 난공불락의 벼랑 위에 둥지를 틀어 둥지를 발견하고도 관찰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다. 4월 27일 어청도 토박이 어부 이길덕 씨를 만났다.

약 70여 년 전에 매 새끼를 절벽에서 꺼내다 키운 이야기를 한다. 이길덕씨의 배를 타고 새끼를 꺼내왔던 곳에 가보았다. 매가 절벽에서 날아오른다.

기변환_포맷변환_YSY_6407_01.jpg » 둥지주변을 날며 경계하는 매. 빠른 속도만큼 매우 절제된 행동이 눈에 띈다.

크기변환_YSY_7306.jpg » 어른 매는 가슴, 배, 옆구리 무늬가 가로이며 어린 매는 세로다.

크기변환_YSY_7164.jpg » 오밀조밀한 매의 가로깃털 무늬. 사냥감을 추적하며 빠른 비행술을 보일 때 사냥감들은 무늬로 인해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다.

매의 수명을 15년으로 추정했을 때 이길덕씨가 어린 시절 보았던 둥지 터를 5대가 물려받으며 살아온 격이다. 매는 수천 년 전부터 이곳에 대대로 터를 잡아 번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배가 접안을 할 수 없고 여러 가지 여건상 관찰이 힘든 곳이었다. 별다른 성과 없이 5박 6일 탐조를 마치고 다음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크기변환_포맷변환_YSY_5915.jpg » 이른 아침 해무가 낀 절벽위에서 매는 사냥감을 살피고 둥지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

크기변환_YSY_5814.jpg » 절벽 지정석에 앉아 주변을 경계한다. 필요이상의 행동을 하지 않으며 온종일 벼랑에 앉아 있는 경우도 있다.

크기변환_YSY_6647.jpg » 전망 좋은 고사목도 매에게 매우 유용한 장소다.

한 달 뒤  6월 5일에 어청도를 방문했다. 육로를 통해 관찰했던 곳에 다시 들렀다. 매의 행동을 살펴보고 매 새끼가 태어났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매 부부가 둥지로 추정되는 곳 근처에 앉아있다.

필자와 200m가량 떨어진 곳이다. 하늘의 지배자 매는 가장 높고 시야가 넓게 트인 벼랑 위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바다를 앞마당 삼아 경계를 선다. 새끼를 관찰할 수 없는 환경이기에 둥지를 예측해서 볼 뿐이다.

크기변환_YSY_6420.jpg » 절벽 둥지 근처로 향하는 매, 둥지를 평생 동안 사용한다.

크기변환_YSY_4590.jpg » 바다를 앞마당 삼아 날고 있는 매.

크기변환_포맷변환_YSY_3675.jpg » 높은 자리에서는 사냥을 비롯해 주변의 환경을 언제든지 볼 수 있어 매는 모든 정보를 수집하여 신중한 행동을 한다.

다른 새와 다르게 매 새끼는 먹이를 달라고 보채며 울어대는 일이 없어 직접 보고 확인해야 한다. 매 부부의 행동만 관찰할 수 있을 뿐 새끼의 존재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새끼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둥지 쪽 벼랑으로 들락거린다. 매가 숨겨놓은 먹이를 점검한다. 하루에 한두 번 정도 하늘을 선회하고 벼랑 위에 앉아있다.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크기변환_YSY_7151.jpg » 급강하해 먹이를 숨겨둔 벼랑으로 향한다.

크기변환_포맷변환_YSY_7144.jpg » 먹이를 저장한 벼랑 풀숲으로 날아드는 매.

포맷변환_크기변환_YSY_6245.jpg » 벼랑 풀숲에 숨겨둔 먹이를 찾아 물고 가는 매, 매는 먹이를 적당히 먹고 남은 사냥감을 다시 저장하는 습성이 있다.

6월 8일 온종일 매를 기다리던 오후 6시 30분, 갑자기 나타난 매가 필자가 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달려든다. 그러더니 필자와 15미터 정도 떨어진 고사목에 태연하게 앉는게 아닌가.  설레는 마음에 카메라를 설치해둔 곳으로 빠르게 다가가면서도 행동을 자제하려 노력했다.

동물사진은 마음이 흔들려 우왕좌왕하면 촬영 기회를 놓치기 십상이다. 평정심은 동물과의 교감 할 때 필수 덕목이다. 스스로 다짐하면서도, 매와 이렇게 가까이 만나는 일은 처음이라 심장이 콩닥거렸다.

기변환_YSY_4689.jpg » 필자 앞으로 달려드는 매.

카메라를 추적모드로 두었더니 고사목과 매의 색이 비슷해 초점이 잘 맞지 않고 오작동을 한다. 단초점 모드로 바꾸는 짧은 순간에도 날아가지 않을까 마음을 졸였다.

매가 나무에 앉아 고개를 돌려 필자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매의 영역을 침범한 경고였을까? 대범한 매의 행동에 묘한 감정을 느꼈다. 필자가 바라본 매의 모습에는 경계심이 없었다.

수차례 관찰하는 동안에도 매는 경계하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매가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온 것처럼 보였다.   어쨋든 자신의 영역을 허락하는 듯 했다.

크기변환_YSY_7013-1.jpg » 쏜살같이 날아와 태연하게 고사목에 앉은 매.

크기변환_YSY_7021.jpg » 필자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크기변환_YSY_7031.jpg » 바로 자리를 뜨는 매.

날렵하게 빠진 몸매에 옹골차게 보이는 매의 위상이 너무도 당차 그가 어청도를 지배하는 최고의 새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매와 잠시나마 교감했던 감정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매가 자리를 뜨는 순간보다 마주했던 순간이 뇌리 속에 강하게 남았다. 10여 초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오랜 시간 정지된 것 같았다. 만남의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 같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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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윤순영 입니다. 어린 시절 한강하구와 홍도 평에서 뛰놀며 자연을 벗 삼아 자랐습니다. 보고 느낀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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