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좀약으로 AIDS를 치료한다고? + AIDS와 거대 제약회사 과감하게 뉴스보기
2013.09.27 20:24 과감 Edit
원문과 논문의 내용을 조금 더 살펴보자면, 이 약 사이클로파이록스(Ciclopyrox)는 분명 FDA 승인을 받았다. 다만 AIDS 치료제가 아닌 무좀 치료제로 받았다. 해당 기사의 편집진은 어쩌다 보니 여러 뜻으로 읽힐 수 있는 표현을 제목에 사용한 것일지도 모른다. AIDS 치료로 FDA 승인 받았다고 명시하진 않았으니까. 다만 기사 본문 중 “발에 연고를 바른 결과 에이즈 바이러스 추가 증식을 완전히 박멸시키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적은 부분은 오류가 있다. 논문에서 사용한 대상은 세포인데(쥐 실험도 포함되어 있으나 이는 정상세포와 인간 상피세포에 부작용이 없음을 본 것이지, AIDS 치료 효과를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세포에 발이 달렸고 거기에 연고를 발랐다니, 처음 듣는 개념이다. 아마 은유와 시적인 표현을 사용하려던 글쓴이의 센스가 지나쳤던 것은 아닐까?
“이런 설레발이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과학기술이 언론에 홍보용으로 소비되는 모습은 언제나 있었던 일이다. 새삼 지적하는 것이 우스울 수도 있다. 어쩌면 그들은 사소한(?) 오류를 범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론 사실을 나열하고 편집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때문에 진실이 왜곡되고 잘못된 정보가 전달돼, 의도했건 의도치 않았건 그 기사는 분명 환자에게 상처를 줬을 것이다. 제발 AIDS 감염자를 ‘희망 고문’하지 말라.
이제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앞에서 한 이야기와는 맥락이 다른, 의약품의 상업주의와 거대 제약회사의 제국주의 이야기이다. 사실 기사 원문과 논문을 읽는 내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사이클로파이록스가 모든 임상을 마치고 개발이 완료되어 시장에 나온다고 한들, 그 약이 AIDS를 치료할 수 있을까? 약의 성능이 기존의 것에 비해 뒤떨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포 수준에서의 실험만 생각하자면, 이 약은 AIDS 바이러스가 추가적으로 증식하는 것을 막기 때문에 획기적인 진전을 낳을지도 모른다.
우려되는 점은 그보다는 오히려, 이 약이 과연 AIDS를 치료하는 데 쓰일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약이 나온들 대다수의 사람들은 비싸서 써보지도 못할 것이 눈에 선하다. 너무 부정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2010년 현재 전세계에 HIV와 함께 살아가는 인구는 약 3,400만 명인 데 비해, 소득이 중간 이하인 국가만 따졌을 때 효과적인 치료(안티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받는 이들은 665만 명, 겨우 19.6%의 환자들만이 효과적인 치료를 받고 있다.[iv]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걸까? 최초의 AIDS 치료제인 AZT, 그리고 그보다 진일보한 퓨제온(Fuzeon)의 이야기는 잠깐 살펴보자.[v]
▶▶▶최초의 AIDS 치료제 AZT
AIDS는 1981년 뉴 잉글랜드 의학저널에 실린 세 편의 논문으로 인해 유명세를 타게 됐다. LA와 뉴욕에서 감염증이 매우 심각하게 진행되어 남성 동성연애자들이 사망하게 됐다는 내용의 논문이었다. 연구자들은 이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노력했고, 불과 2년 사이에 NIH와 파스퇴르 연구소의 연구진들이 AIDS의 원인이 레트로바이러스라는 것을 밝혀냈다.
원인을 확인하고나자 다음으로 AIDS를 치료할 약을 찾아내는 단계에 들어서게 됐다. 이 후보 중 하나였던 AZT는 원래 1946년 미시간 암재단에서 암 치료를 목적으로 합성한 뒤 연구했던 물질이었다. 그러나 암 치료에는 별 효용이 없었는지 잠잠했고, 1974년 독일 연구소에서 바이러스 감염에 효과가 확인된 뒤에도 별 재미를 못봤다. 그런데 1983년 이것이 극적으로 뒤바뀐다. NIH 산하 국림암연구소에서 AZT로 AIDS를 치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이 가능성은 또 2년 뒤인 1985년 시험관 수준에서 확인되었으며, 연구진은 초기 임상시험에서도 그 가능성을 입증하는 성과를 보였다. AZT를 개발한 기업 버로우즈웰컴(Burroughs Wellcome)은 그 결과를 확인한 뒤에야 개입하기 시작했다. 곧장 AZT를 AIDS 치료제로서 특허 출원한 것이다. AIDS의 유명세 때문이었을까? 이후 AZT는 겨우 몇 달 뒤인 1987년, FDA로부터 승인을 받는다. 1981년 알려진 뒤 고작 6년만에 질병의 원인을 밝히는 것부터 약물 승인까지 받게 되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인 셈이다.
이렇듯 수많은 국가의 정부 산하 연구기관 또는 기타 비영리 연구기관으로부터 모은 정보로 연구가 진행됐고, 거의 모든 것이 끝난 뒤에야 약품 개발•제조•배급 시스템 때문에 기업에 전해졌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과정은 대부분 막대한 양의 세금을 지원 받아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1년 약값은 자그마치 1만 달러, 약 1천만 원이었다. 결국 환자는 자신들의 세금으로 이뤄진 연구 성과를 도출할 때 한 번, 그리고 치료제를 살 때 또 한 번, 약값을 “두 번 지불”하게 되었다.
이후 버로우즈웰컴은 곧장 마케팅에 들어가 AZT가 자신들의 성과임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걸 지켜보던 국립암연구소의 소장과 듀크 대학 연구진은 어찌나 화가 났는지 이렇게 설명했다. “그들은 AZT와 같은 약물이 인간 세포에서 살아있는 AIDS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는지 가려내는 데 적용된 기술을 개발하지도, 알려주지도 않았고, 억제 효과를 일으키는 약물 농도를 알아내는 기술을 개발한 것도 아닙니다. AZT를 처음으로 AIDS 환자에게 투여한 것도 아니고, 첫 번째 임상약리학적 연구를 수행한 것도 아닙니다. 약물 작용 기전을 알아내는 데 필요한 면역학적, 세균학적 연구 역시 수행한 바 없습니다. …… 모든 것은 NCI[국립암연구소]와 듀크 대학 연구자들이 이루어 낸 것입니다. …… 솔직히 말해서 AZT 개발을 위한 연구에서 최대 걸림돌은 버로우즈웰컴 측에서 살아 있는 AIDS 바이러스를 다루려고 하질 않는데다 심지어 AIDS 환자로부터 채취한 검체를 수령하기조차 꺼려했던 것입니다.”
▶▶▶다국적기업 의약품 상업주의의 다른 사례: 퓨제온
AZT만 이랬던 건 아닐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다. 2003년 FDA 승인을 받은, AIDS 치료에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평가되는 로슈(Roche)의 AIDS 치료제 퓨제온도 마찬가지다. 듀크대학에서 최초로 발견한 물질인 퓨제온은 이후 지방의 작은 생명공학 기업에서 개발한 뒤 로슈가 이를 사들여 소유권이 넘어갔다. 로슈는 실질적으로 초기 연구개발에 기여한 것이 거의 없었지만, 그런데도 1년 약값은 대부분의 기존 치료제 가격의 세 배인 2만 달러, 약 2000만 원이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연방 AIDS 치료제 보조 프로그램을 통해 AIDS 치료제 중 20%를 구매했는데, 치솟는 약값은 기존 예산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치료제를 받는 대신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했고, 프로그램에서 약을 지원하는 투여 기준은 점차 강화됐으며, 결국 새로운 환자에게 퓨제온 공급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린 주도 13개가 되었다. 약을 구하지 못해 먹지 못하는 일은 제3세계에서나 일어날 법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미국 본토까지 확대된 셈이다.
턱없이 비싼 치료제 값 때문에 골머리를 썩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제3세계에서 가장 심각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인 WTO가 출범한 이후, 당시는 많은 국가에서 약에 특허를 낸다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지만, 회원국은 의약품에 20년 동안 특허를 이행하도록 요구 받았다. 위급한 상황에서만 예외가 인정되었고, 경제적으로 열악한 국가는 2005년까지 유예 기간을 두기로 했다. 그런데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다국적기업의 상업주의에 대한 아프리카의 반격
사건은 1990년대 후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AIDS가 유행하면서 벌어졌다.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자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는 제네릭을 수입하거나 치료제를 생산하겠다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거대 제약회사의 반발에 밀린 클린턴 행정부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경제 제재를 가하겠다고 외쳤다. 클린턴 행정부의 이러한 퇴행적 행동에 반발한 사람들 덕분에 제약회사는 한 발 물러서 약값을 인하하겠다는 발표를 하지만, 실제로 내려간 비율은 선언했던 것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깎인 약값조차 이미 인도에서 생산하던 제네릭에 비해 비쌌으며 이마저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에 들어서서 미국은 WTO 회원국 143개 중 유일하게 제3세계에 대한 특허권 보호 완화 조치에 반대하는 국가가 되었다. 수입은 허가할 수 없으며 몇몇 질병에 대해서만 제네릭을 만드는 것을 허가하겠다고 하였으나, 정말 제네릭을 필요로 하는 국가들은 제조 설비를 갖출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있으나마나한 공표였다. 심지어 제네릭 제조 설비를 갖춘 국가들은 미국의 경제제재 조치가 겁이 나 수출하지 않았고 상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다. 2004년, 미국은 제3세계 국가의 AIDS 치료에 쏟을 제네릭 치료제 구입으로 잡아둔 연방 기금 150억 달러도 승인시키지 않음으로써 마침표를 찍었다.
결국 2003년 말, 남아프리카 공정거래위원회는 터무니없이 비싼 약값과 함께 로열티를 제공함에도 제네릭 제조 기업에 특허 양도를 거부했다는 점 등의 이유를 들어 몇몇 제약회사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 판결을 내린다. 드디어 아프리카의 제네릭 제조 기업 4개에서 세 종류의 AIDS 치료제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이는 사하라 이남 47개 국가에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AIDS 치료제에 소요되는 1년 약값은 300달러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안타깝게도 미국의 연간 약값은 1만 달러였다). 이 때문일까? 이 무렵 효과적인 치료를 받게 된 환자의 수는 2003년 약 40만 명에서 불과 3년 뒤인 2006년에는 약 203만 명, 또 3년 뒤인 2009년에는 약 525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v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