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혹사로 망가지는 시·청각…이것도 진화의 과정일까 생명건강

Faces-of-the-Future-4.jpg » 10만년후 인간의 얼굴은 이런 모습일까? 니콜라이 램  

 

진화론의 숙명적 질문 "우리는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가"

 

"눈은 커지고 피부는 까무잡잡해지며, 눈꺼풀은 두꺼워지고 눈썹은 진해진다." 인류가 우주를 무대로 살아갈 먼 미래를 가정해 그려본 미래 인간의 얼굴 모습이다. 지구보다 빛이 희미하고 우주방사선이 강력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인간의 신체가 이렇게 변한다는 것이다. 몇년 전 영국의 한 그래픽디자이너가 유전학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상상해낸 것이다. 한 업체의 행사용으로 기획된 것이었지만, 예측의 과학적 근거와 상관없이 인간 문명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킬지를 생각하게 해주면서 적잖은 사람들의 인구에 회자됐다.

 인간은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진화해가고 있는가? 진화론이 우리에게 던지는 숙명같은 질문이다. 

700만년전 유인원에서 분리된 뒤 현생인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신체 변화, 즉 진화를 이끌어온 동력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문명이 탄생하고 나서부턴 환경의 영향력 대신 인간 스스로 구축한 문명의 영향력이 커졌다. 진화생물학자 대니얼 리버먼은 "오늘날에는 문화적 진화가 자연선택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빠른 힘"이라고 주장한다(<우리 몸 연대기>). 그 시작점은 집단 정착생활을 가능하게 한 농경이었다. 문명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인간의 변화도 빨라졌다. 1만년 전 농업혁명이 물꼬를 텄고, 250년 전 산업혁명이 봇물을 일으켰다. 물산이 풍부해지면서 체구는 커지고 수명은 급증했다. 지난 150년 사이에 인류의 평균 신장은 10cm 이상 커졌다. 수명은 1세기만에 30~40살에서 70살로 거의 두배나 늘어났다. 하지만 숱한 동물과 식물의 희생이 뒤따랐다. 최근 발표된 한 연구 결과는 문명 탄생 이후 야생 포유류의 83%, 식물의 절반이 절멸했다는 추정치를 내놓았다.

evol.jpg » 인간문명은 짧은 기간 안에 인간의 신체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픽사베이

 

퇴화되는 것과 망가지는 것의 차이는

 

문명은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 인간의 감각기관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감각기관은 인간이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수단이다. 인간이 정착생활을 하면서 가장 먼저 후각기관이 퇴화했다. 야생시절에 비해 후각의 역할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인류 유전자 중 후각을 담담하는 것은 1400여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절반이 훨씬 넘는 900여개 유전자가 현재 작동을 멈춘 상태라고 한다. 사냥을 할 필요가 줄어들고, 음식을 익혀 먹게 되면서 돌출했던 주둥이와 턱도 퇴화했다.
그러나 쓸 일이 줄어들어 퇴화되는 것도 있지만 혹사 당해서 망가지는 감각기관도 있다. 문명은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것들을 누리고 경험할 수 있게 해줬다. 그로 인해 가장 고달파진 감각기관이 바로 시각과 청각이다. 시각은 우리가 얻는 외부 정보의 80% 이상을 책임지는  감각기관이다. 그 다음 10% 정도는 청각을 통해 얻는 정보들이다. 나머지 10%가 후각 미각 촉각 등 다른 감각기관의 몫이라고 한다. 그만큼 시각과 청각은 삶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영장류의 특징이기도 하다. 학습을 할 때 시청각 자료를 중시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 최근 미 듀크대 연구진이 600여종의 동물 시력을 비교 분석해 과학저널 <생태와 진화 트렌드>(Trends in Ecology & Evolution)에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인간의 시력은 일부 독수리를 빼고는 최상위 그룹에 속한다. 개나 고양이의 4~7배, 쥐나 초파리의 100배에 이른다. 그러나 과도하게 사용하다 보면 그것이 무엇이든 망가지는 법이다.

 

aid7.jpg » 도시 문명이 시각과 청각 기관을 혹사시키고 있다. 픽사베이

 

도시 소음에 전세계 6%가 청력 장애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현재 청력 장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은 4억6600만명에 이른다. 전세계 인구의 6%다. 그런데 2050년엔 두 배로 늘어 약 10억명이 청력 장애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0명 중 1명꼴이다. 원인이 뭘까? 우선은 인구 증가와 고령화를 들 수 있다. 인구와 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청력이 퇴화되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65세 이상 노인의 3분의 1은 어느 정도 청력 장애를 겪고 있다. 귓병 같은 질환이 원인인 것들은 개개인의 차원에서 위생보건조처들로 예방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인간 문명 때문에 기능이 마비되거나 파괴되는 것이다. 도시의 생활 소음, 작업 소음, 지나친 음악 청취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12~35세의 젊은이 11억명이 여가생활에서 과도한 소음노출 청력 장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경고한다. 요즘 크게 늘어나고 있는 이명 증세의 한 원인도 잦은 소음 노출이다. 이명이란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없는데도 소리가 들린다고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r9.jpg » 시력검사를 하고 있는 중국 어린이들. 브라이언홀든시력연구소

 

30년후엔 10명에 1명꼴로 실명 위험 닥칠 것

 

시각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컴퓨터,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 제품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20세기 후반 이후 전세계적으로 근시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브라이언홀든시력연구소는 145개 연구논문을 분석한 것을 토대로,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50년 전세계 인구 10명 가운데 1명이 실명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놨다.
연구소에 따르면 근시는 2000년 전세계 인구의 23%인 14억명에서 2050년 48억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30년 후엔 전체 인구의 절반이 근시가 된다는 얘기다. 실명 위험이 높은 고도근시자의 증가세는 더 가파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다. 같은 기간 1억6300만명(전세계 인구의 2.7%)에서 9억3800만명(9.8%)로 6배나 늘어난다는 것이다.

 

04300990_P_0.JPG » 지하철 안의 풍경.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다. 류우종 한겨레신문 기자

 

실내/IT 기기 생활이 눈을 망가뜨린다

 

지난 수십년 동안 일어난 생활 양태의 변화가 근시 인구를 크게 늘린 요인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과거에 비해 야외활동시간이 크게 줄었다. 급격한 도시화의 결과다. 한국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경우 야외활동 시간 고작 30~40분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전문가들이 권하는 하루 야외활동 2시간의 4분의 1 수준이다. 시력과 관련해 더욱 심각한 것은 책상 위의 피시나 손안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다는 것. 십수센티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 눈의 초점을 계속 맞추다보면 눈의 근육이 그 거리에 고정돼 버려 근시를 유발하게 된다. 도시화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돼 2050년엔 3명 중 2명이 도시에 거주할 전망이다.
진학경쟁이 치열하고 정보화 인프라가 잘 돼 있는 동아시아 지역의 도시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 싱가포르 중국 대만 홍콩 일본 한국의 도시에 사는 10대 청소년들의 80% 이상이 근시다. 대한안과학회에 따르면 12~18살 청소년의 11.7%는 실명 위험을 걱정해야 하는 고도근시다. 2015년 과학저널 <네이처>에 보도된 한 연구에서는 19세 서울 시민 중 96.5%가 근시였다. 1950년대만 하더라도 이들 지역의 근시비율은 20~30%에 불과했다. 요즘 각광받는 후성유전학은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생활환경에서 얻어진 이런 특성들이 인간의 유전형질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김영준 연세대 교수(생화학과)는 그러나 이런 후천적 특성들이 후대에 어떤 방향의 형질로 발현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한다. 

 

BionicLens2.jpg » 오큐메틱스 테크놀로지의 바이오닉렌즈.

인간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감각기관 보조장치들

  

사실 감각 기능의 퇴화는 노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 문명은 이를 놔두지 않고 안경, 보청기 등 보완해주는 장치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보조장치들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가고 있다. 감각기관의 기능을 원상회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본래 상태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한 예로 캐나다의 오큐메틱스 테크놀로지 코퍼레이션(Ocumetics Technology Corporation)라는 회사가 2년후를 목표로 개발중인 바이오닉 렌즈(Bionic Lens)를 들어보자. 눈 안에 이식하는 이 렌즈는 일반적으로 가장 좋은 시력으로 알려진 시력 2.0보다 3배나 뛰어난 시력을 실현시켜준다. 심지어 눈 안에 스마트폰 화면을 확대해 보는 프로젝션 시스템이나 초점을 훨씬 명확하게 하는 시스템을 맞춤형으로 넣을 수도 있다. 보청기 역시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사람의 목소리와 주변 잡음을 구분해 들려주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스라엘 히브리대 연구진은 인공지능 기술로 특정인의 목소리만 증폭해 들려주는 시스템을 개발해 오는 8월 시그라프(SIGGRAPH) 회의에서 발표한다. 시각으로 파악한 특정인의 입 움직임과 청각으로 파악한 여러 소리들을 매칭시켜 골라내는 시스템이다. 현재로선 비디오 화면을 통해 구현한 기술이지만, 기술을 확보한 만큼 머지않아 웨어러블이나 이식형· 시청각 보조기기들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영국 런던 빅토리아앤알버트박물관(V&A뮤지엄)에서는 '미래는 여기서 시작된다'(The Future Starts Here)라는 이름의 전시회가 열렸다. 내일의 세상을 만들어줄 100가지 프로젝트라는 부제를 단 이 전시회에는 스마트폰 앱에서부터 위성, 인공지능에 이르는 다양한 기기들이 선을 보였다. 전시품 중에 미국의 세이스믹(Seismic)이라는 회사가 내놓은 '강화형 웨어러블 기기' 슈퍼플렉스(superflex)도 있다. 옷 안쪽에 착용하는 이 장치는 노인 등이 의자에서 일어나거나 계단을 오를 때 또는 장시간 서 있을 때 힘을 보태주는 도우미 장치다. 미국의 델타항공은 4시간 동안 힘들이지 않고 최대 40kg의 물건 하역 작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외골격장치(Sarcos Guardian XO)를 시범적으로 도입한다.

600.jpg » 미국 드라마 '600만불의 사나이' 도입부 장면. 유튜브 갈무리

장치와 한몸이 된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인간의 망가진 기관을 보완해주는 장치들은 갈수록 더욱 정교하고 강력하게 인간과 결합해갈 것이다. 한 세대 전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 `600만불의 사나이'나 `소머즈'의 주인공들처럼 기계장치를 장착한 인간이 공상에서 현실로 넘어오고 있다. 미래의 인간은 단지 생물학적 존재만이 아니라 기술과 결합한 제3의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이들은 과학기술의 힘으로 지력과 근력, 수명 등에서 인간의 태생적 한계를 넘어설 것이다. 이는 인간의 진화일까? 이는 능력의 향상이란 점에서 보면 진보이지만, 기존 신체기관의 대체라는 점에서 보면 퇴보이기도 하다. 진보든 퇴보든 이것 역시 인간 진화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이를 추구하는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은 인간 진화의 과정에서 불가피한 것일까? 물론 인간에겐 원칙적으로 다른 선택지가 있다. 가능한 한 충분하고 쾌적한 야외활동을 할 수 있는 생활 환경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지금과 같은 도시 기술문명의 편의와 효율은 어느 정도 자제하거나 포기해야 한다. 지금의 인류 문화는 과연 그런 조절 능력을 갖고 있을까?

*한겨레 지면 기사

http://www.hani.co.kr/arti/science/future/849488.html

 출처

https://www.aaas.org/news/surroundings-and-evolution-shape-human-sight-smell-and-taste

강화의류
https://www.theguardian.com/technology/2018/may/06/no-death-and-an-enhanced-life-is-the-future-transhuman
https://techcrunch.com/2016/12/20/sri-spinoff-superflex-raises-9-6m-to-pursue-powered-clothing/
https://www.myseismic.com/
https://www.vam.ac.uk/exhibitions/the-future-starts-here
바이오닉렌즈
http://bigthink.com/design-for-good/a-bionic-lens-undergoing-clinical-trials-could-give-you-superhuman-abilities-in-two-years
근시연구자료
https://www.aaojournal.org/article/S0161-6420(16)00025-7/abstract
https://www.sciencealert.com/half-the-world-s-population-will-be-short-sighted-by-2050
https://www.brienholdenvision.org/news/item/54-half-the-world-short-sighted-by-2050.html

천년후의 인간
https://www.sciencealert.com/watch-this-is-what-humans-will-look-like-in-1-000-years?
인간진화의 다음단계
https://futurism.com/the-next-stage-of-evolution-how-will-the-human-species-evolve/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Cs1uud8HiCQ

청력 장애
http://www.who.int/deafness/world-hearing-day/2018-note-to-media/en/
http://www.who.int/mediacentre/factsheets/fs300/en/
https://www.voanews.com/a/world-health-organization-hearing-loss/4278903.html
https://www.deccanchronicle.com/lifestyle/health-and-wellbeing/050318/deafness-set-to-be-the-future-disease.html

시력 장애
http://www.dnaindia.com/health/report-one-billion-people-may-suffer-from-glaucoma-by-2030-aiims-2594549
http://www.theweek.co.uk/93139/why-do-so-many-children-need-glasses
인공눈
https://newatlas.com/harvard-artificial-muscle-eye/53585/

https://newatlas.com/soft-artificial-retina-human-tissue/49390/
https://futurism.com/the-bionic-lens-could-push-eyesight-beyond-2020-vision/
https://insal337.blog.me/220411587660
인간 진화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0767
외골격장치
https://www.cnbc.com/2018/03/23/delta-air-lines-may-outfit-some-employees-with-wearable-robotics.html
https://techxplore.com/news/2018-04-exoskeletal-technology-evolved-embrace-spirit.html

인간 얼굴의 미래

http://plug.hani.co.kr/futures/984563

인간과 동물 시력 비교

 https://www.sciencedaily.com/releases/2018/05/180530132940.htm

보청기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9023990&memberNo=9344132

http://science.ytn.co.kr/program/program_view.php?s_mcd=0082&s_hcd=&key=201711170416546711

인공지능의 소리 구분

https://www.sciencenews.org/article/new-ai-can-focus-one-voice-crowd?utm_source=email&utm_medium=email&utm_campaign=latest-newsletter-v2
소리를 영상보다 약간 늦게 보여줄 경우 이해력이 10% 정도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

https://www.sciencedaily.com/releases/2018/06/180611133517.htm

 

참고문헌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애덤 윌킨스, 을유문화사, 2018)
인류의 기원(이상희 윤신영, 사이언스북스, 2015)

 우리 몸 연대기(대니얼 리버먼, 웅진지식하우스, 2018)


곽노필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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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미래의 창을 여는 흥미롭고 유용한 정보 곳간. 오늘 속에서 미래의 씨앗을 찾고, 선호하는 미래를 생각해봅니다. 광고, 비속어, 욕설 등이 포함된 댓글 등은 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