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목, 묵직한 다리…교동도 터줏대감 흰죽지수리의 무기 윤순영의 시선

6년 관찰 어린 개체가 벌써 성체로
흰꼬리수리 무리와 까치 텃세 이기고
예성강과 교동 평야 날아든 기러기 노려
평야를 조망하던 지정석 나무에서 날아오르는 흰죽지수리. 토시처럼 깃털로 덮인 두툼한 다리와 굵은 목을 지닌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의 맹금류이다.
평야를 조망하던 지정석 나무에서 날아오르는 흰죽지수리. 토시처럼 깃털로 덮인 두툼한 다리와 굵은 목을 지닌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의 맹금류이다.

2017년 강화도 교동도 수정산에서 어린 흰죽지수리를 처음 만난 지 올해로 6년째를 맞았다. 이 멋진 새를 관찰하려고 교동도를 구석구석 찾아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 살을 에는 추위와의 싸움도 힘들었지만 사람들의 교란 행위가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강화 북서부의 교동도는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양사면과 내가면이 있고, 남쪽으로는 삼산면 석모도가 있다. 북쪽으로 불과 2∼3㎞ 바다 너머에는 황해도 연백군이 있다. 따라서 섬 북부에서는 황해도 땅을 쉽게 바라볼 수 있으며, 좀 높은 곳에서는 예성강 하구가, 맑은 날에는 개성 송악산까지 보인다.

2020년 관찰한 흰죽지수리. 아직 어리지만 몸매는 당당하다.
2020년 관찰한 흰죽지수리. 아직 어리지만 몸매는 당당하다.

논에 내려앉은 어린 흰죽지수리.
논에 내려앉은 어린 흰죽지수리.

발목까지 내려와 덮은 흰죽지수리의 깃털.
발목까지 내려와 덮은 흰죽지수리의 깃털.

화개산(260m)이 교동도의 주산을 이루는 가장 높은 산이며, 봉황산(75m)·밤머리산(89m)·고양이산(35m)·선월산(73)·수정산(75m) 등은 모두 100m 이하의 낮은 구릉이다. 교동면 전체 면적은 47.14㎢이고 논이 절반 가까운 25.89㎢이고 밭 2.57㎡, 임야가 11.45㎢이다.

교동도 무학리 들머리에서 바라본 선월산. 흰죽지수리의 터전이다.
교동도 무학리 들머리에서 바라본 선월산. 흰죽지수리의 터전이다.

선월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 흰죽지수리의 지정석이다.
선월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 흰죽지수리의 지정석이다.

교동도 평야는 해안과 인접해서인지 아지랑이와 해무로 인해 유난히 사진의 선명도가 떨어진다. 아지랑이는 봄철에 날씨가 맑은 날이나 여름철 햇볕이 강하게 내리쬘 때 도로, 모래사장, 초원 등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곳 교동도 평야에서 겨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까닭을 알 수가 없다. 그나마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고 세찬 바람이 불면 선명한 사진을 얻을 수 있지만 기회가 많지 않다. 눈이 내린 날에도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현상을 보았다.

흰죽지수리는 자리에서 박차고 나갈 때 하강하듯 날며 고도를 잡는다.
흰죽지수리는 자리에서 박차고 나갈 때 하강하듯 날며 고도를 잡는다.

사냥터로 향하는 흰죽지수리.
사냥터로 향하는 흰죽지수리.

생태교란이 일어나면 관찰도 촬영도 어려워진다. 올해도 그간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뻔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았던 11월 초부터 꾸준히 관찰을 시작하여 다행이었다. 12월 20일부터는 흰죽지수리가 그동안 필자가 관찰했던 동선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근접해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 독수리 무리 속으로 날아드는 어린 흰죽지수리. 몸집이 몇 배나 크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용맹스럽고 과감하게 먹이 쟁탈전에 나선다.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 독수리 무리 속으로 날아드는 어린 흰죽지수리. 몸집이 몇 배나 크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용맹스럽고 과감하게 먹이 쟁탈전에 나선다.

올해는 매서운 강추위에 기러기들이 남하해 개체 수가 크게 줄었다. 마을 주변 농경지에서만 보일 정도다. 맹금류들에게도 사냥감이 줄어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냥감을 따라 이동하다가는 처음 만난 월동지 환경에 적응하면서 사냥 전략을 짜는 일이 쉽지 않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맹금류가 최적화된 영역을 벗어나지 않고 해마다 찾는 월동지를 굳건히 지키는 이유다.

어린 흰죽지수리.
어린 흰죽지수리.

흰죽지수리는 선호하는 사냥터와 사냥감의 동정을 살펴보는 평야의 전봇대를 오가며 생활한다. 주변 환경을 치밀하게 파악하여 계획에 따라 이동한다. 동선을 따라 이동하는 이런 습성을 모르고 사진 촬영을 하려는 사람들이 교란하는 바람에 흰죽지수리는 계획된 동선은 어그러지기 일쑤다.

도를 넘는 사람의 간섭은 맹금류의 월동 생활을 어렵게 한다. 새들이 앉고 날고 사냥하는 곳은 우연이 아니라 새들이 이어온 생활 터전이자 양식이다. 새들에게 예의를 지키고 새를 수평적 관계로 바라보는 것이 기본적인 소통 방법이다. 진정한 탐조의 즐거움, 사진 촬영의 기쁨은 기다림이다. 새와 쫓고 쫓기는 싸움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사냥감을 포식하는 어린 흰죽지수리.
사냥감을 포식하는 어린 흰죽지수리.

어린 흰죽지수리는 얼핏 보면 어린 흰꼬리수리와 비슷해서 잘 구분이 안 된다. 어릴 때 구분하는 방법은 흰죽지수리의 꼬리 끝은 네모 모양이고 끝부분이 검은색이며 다리 깃털은 토시를 한 듯 발목까지 덮여 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밝은 갈색을 띤다. 흰꼬리수리의 꼬리는 둥근 모양이고 흰색을 띠며 흰 반점의 깃털이 등과 가슴과 배에 산재해 있다. 어른이 되면 흰죽지수리의 머리와 뒷목이 밝은 갈색의 금빛을 띠고 몸 전체가 흑갈색, 양쪽 어깻죽지에는 흰색이 완연해 흰꼬리수리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흰죽지수리(오른쪽)가 흰꼬리수리와 공중전을 펼치고 있다.
흰죽지수리(오른쪽)가 흰꼬리수리와 공중전을 펼치고 있다.

흰죽지수리는 교동도 평야에서 흰꼬리수리 10여 마리와 잠자리와 사냥터를 공유하면서도 결코 주눅 들지 않는다. 당당하고 용맹스럽다. 공중에서 사냥감을 사냥하는 자신만의 기술도 있으며 성장하면서는 흰꼬리수리보다 신중해 경계심이 많고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흰꼬리수리와 자주 공중전을 펼치는데 영역경쟁과 자존심 대결이 아닐까 싶다. 흰죽지수리가 지정석으로 삼은 나무에 흰꼬리수리가 날아들거나 다른 새들이 접근하면 목을 하늘로 치켜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소리를 낸다.

흰죽지수리의 멱과 배가 어른 깃털로 변했다. 이제 윗날개깃털과 아랫날개깃털이 검은 갈색으로 변할 일만 남았다.
흰죽지수리의 멱과 배가 어른 깃털로 변했다. 이제 윗날개깃털과 아랫날개깃털이 검은 갈색으로 변할 일만 남았다.

흰죽지수리에 다가와 끊임없이 텃세를 부리는 까마귀들.
흰죽지수리에 다가와 끊임없이 텃세를 부리는 까마귀들.

흰죽지수리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텃세가 심한 까치와 까마귀에게 시달려 왔고 10여 마리가 넘는 흰꼬리수리와도 대적하다 결국 무학리 선월산의 가장 높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북두칠성의 2번째 별을 의미하는 ‘아름다운 옥 선(璇)’ 자와 ‘달 월(月)’ 자를 사용하는 선월산. 의미 있는 산을 차지한 셈이다.

2020년의 흰죽지수리.
2020년의 흰죽지수리.

2022년의 흰죽지수리.
2022년의 흰죽지수리.

선월산은 잿빛개구리매, 큰말똥가리, 새매, 참매, 매, 참수리, 흰꼬리수리, 독수리 등 다양한 맹금류에게 안식처 노릇을 톡톡히 한다. 해발 73m의 낮은 산이지만 전망이 매우 좋아 앞쪽에는 교동 평야가 한눈에 들어오고 뒤편으로는 황해로 흘러드는 예성강 하구가 보이니 사냥감을 탐색하기에 제격이다. 흰죽지수리는 이곳에서 수정산과 밤머리산을 오고 가는데 이는 흰꼬리수리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부터 해마다 이곳에 홀로 찾아와 월동하며 역경을 딛고 자라나는 모습이 정말 대견스럽다.

흰꼬리수리 성조.
흰꼬리수리 성조.

흰죽지수리가 흰꼬리수리를 쫓고 있다. 올해도 변함없는 맞수다.
흰죽지수리가 흰꼬리수리를 쫓고 있다. 올해도 변함없는 맞수다.

2019년 어린 깃털이 났던 흰죽지수리는 사냥감에 대한 애착과 경쟁심, 사람의 접근에 경계심이 적었지만 이듬해엔 특징적인 깃털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올해는 멱과 가슴, 배가 검은 갈색으로 변해 완연한 성조의 모습에 가까워졌다. 날개 아랫덮깃과 윗덮깃까지 검은 갈색으로 변해 양쪽 어깻죽지에 흰색만 남게 되면 어엿한 흰죽지수리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예리한 눈으로 평야를 살피는 흰죽지수리.
예리한 눈으로 평야를 살피는 흰죽지수리.

선월산으로 날아드는 흰죽지수리. 제법 어른스러워졌다.
선월산으로 날아드는 흰죽지수리. 제법 어른스러워졌다.

흰죽지수리는 신체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맞이한 만큼 성장한 듯하다. 독수리나 흰꼬리수리와 평야에서 사냥감을 놓고 경쟁할 때도 함부로 덤벼들지 않는 신중함을 보인다. 독립성이 강해 홀로 움직이면서도 충동적이지 않은 성격을 지녀서 먼 곳에서 주변을 살핀다. 간섭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어 흰죽지수리 지정석에는 흰꼬리수리도 접근하지 못한다. 사람이 먼 거리에서 바라만 봐도 자리를 피하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지정석이 아닌 곳에 앉기도 하는 예민함을 보인다.

태어난 지 2년이 넘어 보이는 어린 흰죽지수리가 교동도 평야에 새롭게 등장했다.
태어난 지 2년이 넘어 보이는 어린 흰죽지수리가 교동도 평야에 새롭게 등장했다.

한 살을 갓 지난 것으로 보이는 흰죽지수리도 교동도 상공을 선회한다.
한 살을 갓 지난 것으로 보이는 흰죽지수리도 교동도 상공을 선회한다.

24일 교동도 하늘을 한참이나 오르내리며 선회하는 어린 흰죽지수리 2개체를 관찰했다. 낯선 교동도의 지형지물을 살피는 것 같았다. 이 어린 흰죽지수리가 교동도를 찾아와 함께하니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면 기존에 찾아오던 흰죽지수리는 어른이 되어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초원의 대표적 맹금류로 카자흐스탄 국기에 등장하는 초원수리가 24일 지난해에 이어 지정 소나무에 찾아왔다.
초원의 대표적 맹금류로 카자흐스탄 국기에 등장하는 초원수리가 24일 지난해에 이어 지정 소나무에 찾아왔다.

초원수리는 날 때 왼쪽 다리가 쳐지고 허벅지가 유난히 굵어 눈길을 끈다. 다리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앉고 날 때 큰 지장이 없는 것으로 보여 다행이다.
초원수리는 날 때 왼쪽 다리가 쳐지고 허벅지가 유난히 굵어 눈길을 끈다. 다리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앉고 날 때 큰 지장이 없는 것으로 보여 다행이다.

팔당에서 월동하던 참수리도 오른쪽 다리를 다쳐 날 때 다리가 쳐지고 허벅지가 유난히 굵었다.
팔당에서 월동하던 참수리도 오른쪽 다리를 다쳐 날 때 다리가 쳐지고 허벅지가 유난히 굵었다.

지난해 교동도를 찾았던 어린 초원수리도 돌아왔다. 그런데 날 때 왼쪽 다리를 완전히 접지 못해 처지는 모습이다. 다행히 날거나 앉을 때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허벅지가 유난히 굵게 보이는 어린 초원수리를 보고 있자니 몇 해 전부터 보이지 않는 남양주시 와부읍 팔당리 검단산의 산군, 참수리 ‘왕발이’가 떠오른다.

2022년 흰죽지수리의 모습.
2022년 흰죽지수리의 모습.

흰죽지수리가 어른스러운 깃털을 갖춰간다. 어른이 되면 밝게 보이는 양쪽 어깻죽지에 흰 점만 남게 된다. 흰죽지수리는 2년 후면 교동 평야의 지배자가 될 것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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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윤순영 입니다. 어린 시절 한강하구와 홍도 평에서 뛰놀며 자연을 벗 삼아 자랐습니다. 보고 느낀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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