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렵꾼들 도망치듯 떠난 자리, 산새 1000여마리 깃털만 남았다 윤순영의 시선

경기 남양주 야산서, 새 잡이 전문 밀렵꾼 소행 추정
구덩이에 1천여 마리 분량 꼬까참새, 멧새, 촉새, 방울새 깃털
그물에 걸린 쑥새. 겨울을 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는 대표적 멧새과 산새의 하나로 봄철에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한다.
그물에 걸린 쑥새. 겨울을 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는 대표적 멧새과 산새의 하나로 봄철에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한다.
















21일 사단법인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경기도 남양주시 지회에 대규모 밀렵현장을 발견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한강 변에 숲과 덤불이 우거진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 산 40번지 일대의 산에 새 그물과 새를 유인하기 위한 시설이 곳곳에 설치돼 있고, 산새를 잡아 벗겨낸 것으로 보이는 새털이 무더기로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밀렵현장. 숲의 바닥을 정리하고 나무에 유인용 새장과 그물을 설치한 얼개로 전문적인 밀렵꾼의 소행으로 보인다.
밀렵현장. 숲의 바닥을 정리하고 나무에 유인용 새장과 그물을 설치한 얼개로 전문적인 밀렵꾼의 소행으로 보인다.

현장은 숲에서 덤불과 떨기나무를 제거한 뒤 나뭇가지를 일렬로 세우고 그 위에 새들을 유인할 목적으로 보이는 새장을 걸어둔 모습이었다. 새장 앞에는 새그물이 설치됐다. 녹음기와 배터리도 있는 것으로 보아 새의 소리를 녹음해 틀어주어 여기에 이끌린 새떼가 그물에 걸리도록 한 장치인 것으로 보인다. 유인 새장이 50여 개에 이르고 녹음장치까지 동원한 것으로 보아 전문적인 밀렵꾼의 소행인 것으로 추정된다.

유인 새장 속 흰배멧새. 물과 먹이통이 놓여있고, 스프링을 이용해 접어 부피를 줄여 대량으로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유인 새장 속 흰배멧새. 물과 먹이통이 놓여있고, 스프링을 이용해 접어 부피를 줄여 대량으로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나무로 만든 또 다른 형태의 유인용 새장도 보인다. 그러나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유인용 새장 속의 노랑턱멧새.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멧새로 텃새이지만 현저하게 줄어드는 산새이기도 하다.
유인용 새장 속의 노랑턱멧새.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멧새로 텃새이지만 현저하게 줄어드는 산새이기도 하다.

목격자인 탐조인 조 아무개 씨가 현장에 관심을 보이고 촬영하자 밀렵꾼으로 추정되는 두 사람은 녹음기와 배터리, 유인 새장, 죽은 새를 담았을 것으로 보이는 피 묻은 스티로폼 운반 상자 등을 서둘러 챙겨 자동차를 타고 자리를 떠났다.

현장이 드러나자 서둘러 유인용 새장을 챙기고 있다.
현장이 드러나자 서둘러 유인용 새장을 챙기고 있다.

새들을 유인할 녹음기와 배터리.
새들을 유인할 녹음기와 배터리.

잡은 새를 옮기는 데 쓴 것으로 추정되는 피 묻은 스티로폼 용기.
잡은 새를 옮기는 데 쓴 것으로 추정되는 피 묻은 스티로폼 용기.

전문 밀렵꾼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현장에서 배터리를 서둘러 차로 옮기고 있다.
전문 밀렵꾼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현장에서 배터리를 서둘러 차로 옮기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 증거가 남았다. 밀렵꾼들이 잡은 새의 털을 뽑아 구덩이에 파묻은 곳을 발견했다. 남은 깃털을 살펴보니 포획된 새는 꼬까참새, 노랑눈썹멧새, 멧새, 촉새, 솔새, 쑥새, 방울새, 되새 등 다양한 산새들이었다.

구덩이를 파고 묻은 다양한 산새들의 깃털. 밀렵의 증거이다.
구덩이를 파고 묻은 다양한 산새들의 깃털. 밀렵의 증거이다.

구덩이를 판 삽과 그 속에 버린 산새들의 깃털. 왼쪽 스티로폼 상자는 털을 벗긴 새를 보관한 것으로 보인다. 새 한 마리의 무게가 10∼20g인데 비춰 얼마나 많은 새를 죽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구덩이를 판 삽과 그 속에 버린 산새들의 깃털. 왼쪽 스티로폼 상자는 털을 벗긴 새를 보관한 것으로 보인다. 새 한 마리의 무게가 10∼20g인데 비춰 얼마나 많은 새를 죽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새털 구덩이에 놓여있던 낫은 밀렵 장의 덤불과 관목을 제거하기 위해 쓰였을 것이다.
새털 구덩이에 놓여있던 낫은 밀렵 장의 덤불과 관목을 제거하기 위해 쓰였을 것이다.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새털을 뽑기 위해 표면이 거친 특수 장갑이 사용된 것 같다. 새털 ‘무덤’은 이곳 말고도 다른 곳에서도 발견됐다. 깃털의 양에 비춰 이곳에서 밀렵 된 새는 1000마리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물에 걸려 죽은 쑥새. 새는 연약해서 그물에 걸려 몸부림칠수록 옥죄어 5∼10분 만에 죽는다.
그물에 걸려 죽은 쑥새. 새는 연약해서 그물에 걸려 몸부림칠수록 옥죄어 5∼10분 만에 죽는다.

숲에서 아름다운 소리로 지저귀며 계절을 알리고 해충을 잡아먹어 생태계를 지키는 산새가 급속히 줄고 있음은 누구나 느낀다. 최 교수 등은 최근 지난 20여년 사이 남한에서 번식하는 가장 흔한 육상조류 52종 가운데 20종이 줄어든 것으로 밝힌 바 있다. 특히 우리나라 대표적 산새인 멧새류는 멧새와 노랑턱멧새 등 종의 절반이 감소추세다(▶‘침묵의 봄' 오나, 온갖 산새가 사라진다).

문제는 이런 감소의 원인이 중국과 동남아에서 나타나는 남획과 밀렵이 아닌 도시화로 인한 환경 악화로 짐작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도 밀렵과 남획은 예외가 아니다. 이번 밀렵현장에서도 깃털이 발견된 꼬까참새는 1960년대까지 태릉과 김포 등에 수천 마리가 무리 지어 찾아올 만큼 흔했지만 참새 구이용으로 대량 포획하고 농약 살포와 서식지 교란으로 요즘엔 보기도 힘들다.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분포해 1980년대까지 개체수가 1억 마리에 이르던 검은머리촉새가 현재 멸종위기종이 된 것도 밀렵 때문이다. 특히 중국에서 이 새를 '참새'로 부르며 대규모로 밀렵해 고급 요리 재료로 팔면서 치명타를 가했다(★촉새 정력제로 멸종위기…1억 마리서 95% 줄어).

윤순영/ (사)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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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윤순영 입니다. 어린 시절 한강하구와 홍도 평에서 뛰놀며 자연을 벗 삼아 자랐습니다. 보고 느낀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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