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길목, 배초향에 취한 호랑나비의 향연 윤순영의 시선

꽃꿀로 배를 채운 오후 암컷이 하늘로 치솟으면 떼지은 수컷 짝짓기 경쟁
배초향의 향기에 끌려 날아온 호랑나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면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비의 하나다.
배초향의 향기에 끌려 날아온 호랑나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면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비의 하나다.

가을꽃이 짙은 향기를 피운다. 곤충들의 마지막 향연이 벌어지는 때다. 경기도 광주시 이석리 마을은 검단산 자락에 자리 잡았다. 이곳에 사는 지인의 집은 울타리 삼아 배초향을 심었다. 향유, 꽃향유와 함께 짙은 향기를 내는 꿀풀과 자생식물이다. 오죽 향기가 진하면 ‘다른 풀꽃을 밀어내는 향기’란 이름을 얻었을까. 우리나라 산지나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관상용, 식용, 약용으로 고루 쓰이며 목욕탕의 향료로도 쓰인다. 방아풀로도 부르며 추어탕 등에 넣어 먹는다.

배초향 담장에는 아침 해가 뜰 무렵 가장 먼저 다양한 벌들이 부지런히 찾아오고 박각시나방도 슬그머니 나타난다. 호랑나비는 오전 9시께 한두 마리씩 보이다 11시면 무리를 이루고 오후 1시께부터 왕성한 활동을 보인다.

빠른 날갯짓으로 정지비행을 하는 황나꼬리박각시나방.
빠른 날갯짓으로 정지비행을 하는 황나꼬리박각시나방.

꼬리가 잘록한 호리병벌. 많은 말벌 종류가 꽃에 모여 가루받이를 한다.
꼬리가 잘록한 호리병벌. 많은 말벌 종류가 꽃에 모여 가루받이를 한다.

꿀벌과의 루리알락꽃벌도 배초향을 찾았다.
꿀벌과의 루리알락꽃벌도 배초향을 찾았다.

호랑나비는 꿀을 찾는 동안은 짝짓기를 하지 않고 오후 2시께부터 경쟁하듯 짝을 찾는다. 그러다 오후 6시가 되면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진다. 날개 무늬가 녹아들어가는 마른 나뭇잎이나 마른 가지 등이 있는 안전한 곳으로 거처를 옮겨 다음날을 기약한다. 벌과 박각시나방은 오후 늦게까지 남아 활동한다.

먹이원인 꽃꿀을 놓고 경쟁하는 호랑나비들.
먹이원인 꽃꿀을 놓고 경쟁하는 호랑나비들.

호랑나비는 하루종일 꿀을 먹는 일에 열중한다.
호랑나비는 하루종일 꿀을 먹는 일에 열중한다.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호랑나비 촬영은 쉽지 않다. 자동 초점렌즈 대신 수동 렌즈(135㎜)를 사용하였다. 수동으로 초점을 잡아 촬영하는 것이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5일간 호랑나비를 관찰하고 추적하다 보니 손에 쥐가 날 정도다.

나비가 없는 꽃엔 향기가 없다. 나비는 꽃과 꽃의 사랑을 맺어준다. 예로부터 나비가 떼를 지어 날아가는 꿈을 꾸면 집안에 경사가 생기고 나비와 함께 하늘을 나는 꿈을 꾸면 기쁨과 승리, 소원 성취를 한다고 하였다.

긴꼬리제비나비가 드물게 찾아왔다.
긴꼬리제비나비가 드물게 찾아왔다.

은점표범나비도 배초향을 지나칠 리 없다.
은점표범나비도 배초향을 지나칠 리 없다.

몸에 꽃가루를 흠뻑 묻힌 제비나비도 함께한다.
몸에 꽃가루를 흠뻑 묻힌 제비나비도 함께한다.

나비는 비가 오기 전 바람이 불거나 날씨가 흐리면 감쪽같이 사라져 나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농민들이 나비 행동을 보고 날씨를 예측하기도 했다. 아침부터 텃밭에서 호랑나비가 춤을 추면 그날은 맑은 날이다. 기상예보관인 셈이다. 호랑나비 털은 유난히 민감하여 기온, 습도, 기압 등을 정확히 감지한다. 호랑나비는 사람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나비로 사랑받지만 동시에 우리 문화 속에 친숙하게 자리 잡았다.

배초향 꽃밭은 호랑나비의 잔칫상이다.
배초향 꽃밭은 호랑나비의 잔칫상이다.

호랑나비는 끊임없이 움직여서 이런 단정한 모습은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다.
호랑나비는 끊임없이 움직여서 이런 단정한 모습은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다.

꽃에 앉은 암컷 호랑나비 한 마리에 여러 마리의 수컷 호랑나비가 달려드는 일이 다반사다. 수컷 호랑나비들은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이 치열하다. 날개를 하염없이 나풀거리면서 구애하는데 힘찬 날갯짓이 암컷을 유혹하는 관건이다. 정열적인 나비춤이 절정에 이를 때쯤 암컷 호랑나비는 하늘로 치솟는다. 이때 수컷 호랑나비들은 암컷을 따라 줄줄이 하늘 높이 올라간다. 사력을 다해 암컷을 따라가며 구애의 춤을 멈추지 않는 수컷이 암컷의 선택을 받는다. 그러나 나비의 짝짓기는 여간해선 보기 어렵다.

암컷 호랑나비 곁으로 달려드는 수컷 호랑나비들.
암컷 호랑나비 곁으로 달려드는 수컷 호랑나비들.

암컷 호랑나비가 하늘로 솟아오르자 수컷 호랑나비들이 놓칠세라 줄줄이 따라간다.
암컷 호랑나비가 하늘로 솟아오르자 수컷 호랑나비들이 놓칠세라 줄줄이 따라간다.

호랑나비는 호랑나비과 호랑나비속에 속하며 동아시아에 주로 분포한다. 열대에는 살지 않고 온난한 기후를 좋아한다. 한국 전역에 분포하며 봄에는 산길을 따라 능선부로 올라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여름에는 산지뿐만 아니라 숲 가장자리와 도시공원 꽃밭 등 다양한 곳에서 관찰된다. 호랑나비가 나비를 대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꽃은 꽃꿀을 주고 나비는 가루받이를 해 준다.
꽃은 꽃꿀을 주고 나비는 가루받이를 해 준다.

성충의 수명은 2주 정도다. 색상은 다양해 무지갯빛 검은색, 푸른색 또는 녹색 바탕에 노란색이나 주황·붉은색·녹색·청색 무늬를 지닌다. 유충은 전체적으로 녹색을 띠며 배옆으로 흰색에 줄무늬가 있다. 검정과 노랑의 눈 모양 무늬가 있어 뱀의 머리와 비슷해 보인다.

비켜! 먹이를 빼앗으려 머리를 들이미는 호랑나비. 못 이기는 척 물러선다. 꽃은 여기 말고도 많다.
비켜! 먹이를 빼앗으려 머리를 들이미는 호랑나비. 못 이기는 척 물러선다. 꽃은 여기 말고도 많다.

꿀을 찾아 쉼없이 날아다니는 호랑나비.
꿀을 찾아 쉼없이 날아다니는 호랑나비.

호랑나비는 봄형과 여름형으로 나뉜다. 4~5월 봄에 태어난 봄형 호랑나비는 여름형보다 조금 작고 무늬가 선명하다. 여름형 호랑나비는 6~10월 사이에 태어나고 수컷이 암컷보다 앞날개 끝이 더 돌출했다. 여름형 호랑나비 암컷은 수컷에 비해 날개의 노란빛이 더욱 선명하며 검은색 무늬는 수컷보다 연하다.

가을은 거미의 계절이기도 하다. 날개가 큰 호랑나비에게 거미줄은 치명적이다.
가을은 거미의 계절이기도 하다. 날개가 큰 호랑나비에게 거미줄은 치명적이다.

천적인 사마귀가 은밀하게 호랑나비에게 접근하고 있다.
천적인 사마귀가 은밀하게 호랑나비에게 접근하고 있다.

호랑나비는 포식자들이 맛이 없어 좋아하지 않는 다른 나비들의 색상과 무늬를 흉내 내며 환경에 적응한다. 애벌레는 새똥 흉내를 내고 방해를 받으면 악취가 나는 물질을 방출한다. 귤나무, 탱자나무, 산초나무, 황벽나무를 먹고 자란다. 성충의 대표적 천적은 거미와 사마귀다. 거미는 호랑나비가 거미줄에 걸리면 소화액을 주입하여 체액을 빨아먹는다. 사마귀는 나비가 모이는 꽃에서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가 사냥한다.

꽃꿀을 배불리 먹고 해가 좋은 오후 시간이 오면 짝을 찾는 일만 남았다.
꽃꿀을 배불리 먹고 해가 좋은 오후 시간이 오면 짝을 찾는 일만 남았다.

화려한 호랑나비의 뒷모습.
화려한 호랑나비의 뒷모습.

호랑나비는 엉겅퀴, 라일락, 누리장나무, 무궁화, 백일홍, 향유, 코스모스, 파리풀, 솔체꽃, 파 등 여러 꽃에서 꿀을 빨아먹는다. 여름을 뒤로하고 가을을 따라가는 호랑나비는 분주하다. 서둘러 번식해야 다음 세대가 번데기 상태로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 비로소 봄을 만날 수 있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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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윤순영 입니다. 어린 시절 한강하구와 홍도 평에서 뛰놀며 자연을 벗 삼아 자랐습니다. 보고 느낀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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