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딸아, 겁부터 가르쳐야하는 엄마가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2010.07.23 07:24 양선아 Edit
» 아동 성폭력 사건들로 자녀 안전에 대한 우려감이 높아지면서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를 마친 아이들과 함께 귀가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자고나면 성폭력 성희롱, 처벌도 턱없이 관대
아는 사람 더 조심하고 운동장도 위험한 세상
어렸을 때 난 골목길에서 동네 친구들과 소꿉놀이, 숨바꼭질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땐 방과 후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족구, 피구, 오자미 놀이(헝겊 주머니에 콩을 넣고 봉해 공 모양으로 만들어 던지며 노는 놀이), 고무줄 놀이를 하며 실컷 놀았다. 골목길 하면 내겐 동심으로 돌아가는 향수를 불러일으켜주고, 학교 운동장은 ‘초딩’ 친구들과의 즐거운 추억이 있는 장소다.
그런데 골목길과 운동장에 대한 나의 심상은 언젠가부터‘따뜻함’에서 ‘무서움’으로 바뀌었다. 골목길이나 운동장이 더이상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친근한 공간이 아닌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공간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조두순 사건 이후 올해 김길태 사건과 김수철 사건 등 충격적인 아동 성범죄가 계속 일어나면서부터다. 어리고 힘없는 아이들이 등하굣길에서 또는 혼자 집에서 있다 잔인한 범죄의 대상이 됐다. 초등학생 부모들은 이제 아이들의 등하굣길 안전을 우려하며 학교에 바래다주고 데려와야 하는 상황이 되버렸다. 특히 안전에 대한 우려는 딸을 키우는 부모라면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3살배기 딸을 둔 나는 현재 걱정은 덜하지만, 앞으로 학교를 보낼 때 아이의 안전을 어떻게 책임질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자연스럽게 앞으로 딸에게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일러줘야 할테고, 딸이 좀 더 크면 늦은 시간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도 제한하게 될테니 참 서글프다. 내가 어렸을 때 느꼈던 즐거움과 자유를 내 아이는 만끽하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말이다.
지난 15일 한겨레 여기자회는 한겨레신문 6층 대회의실에서 ‘최근 아동 성폭력 범죄 실태와 대응방안’이라는 주제로 10년째 아동 성폭력 사건을 맡아온 검사와 간담회를 열었다. 만약 내가 딸을 낳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이날 간담회에 굳이 참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딸을 키우는 나는 최근에 아동 성폭력 사건 보도를 접한 뒤의 공포때문에 참석했다. 이날 간담회엔 딸 키우는 나같은 부모, 사회부 기자, 아동 성폭력에 관심 있는 사내 구성원들이 참석했다. 간담회에서 검사는 아동 성폭력 실태, 우리나라 아동 성폭력 사건 조사 시스템에 대해 설명해줬다.
모르던 사실이 많았다. 일단 우리나라 법원이 아동 성폭력에 대해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게 관대한지 몰랐다. 그에 따르면, 2006~2007년까지 2년동안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로 유죄판결이 확정된 3684명 중 실형선고는 22.6%에 그쳤단다. 나머지 31.6%는 집행유예를, 45.8%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13살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죄로 실형선고를 받더라도 5년 이상의 유기징역형이 선고된 자는 16명(14.3%)에 불과했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12살 미만자를 추행하면 무기 또는 최하 25년의 유기형과 평생 전자발찌 착용을 부과시키거나(제시카법) 12세 미만자를 강간한 경우 사형 또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 엄중처벌하도록 되어 있다고(플로리다 형법) 하니 우리가 얼마나 아동 성범죄에 관대한지 알 수 있다. 법원에서 아동 성범죄의 심각성에 대해 깨닫는다면 좀 더 엄중하게 처벌을 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또 아동을 상대로 한 성범죄는 우발적 범죄보다는 가까운 지인들에 의한 성범죄가 많다고 한다. 따라서 성적 괴롭힘과 애정 표현을 구분할 능력이 부족한 어린이나 아동을 신체적·정서적·성적 학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영아기 때부터 발달 수준에 적합한 내용과 방법으로 체계적인 성폭력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고 한다. 오늘 보도된 충남 공주에서 마을 주민 9명이 지적 장애 여학생을 성폭행해 무더기로 구속된 사건을 보면, 지적 장애로 인해 아이가 반항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용해 가까운 지인들이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성폭력 예방교육에 대해 참고할 만한 사이트는 해바라기센터다. (http://www.child1375.or.kr/about/education.asp) 해바라기센터는 13살 미만 아동의 성폭력 신고 및 접수, 응급진료 및 치료, 법적지원 뿐만 아니라 성폭력 예방 및 교육 관련 일을 맡고 있다. 나 역시 이날 간담회 참석 뒤 이 사이트를 알게 됐고, 사이트를 방문해 좋은 자료를 얻었다. 앞으로 딸에게 어떻게 성교육을 시킬지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됐다.
검사는 최근 언론에서 아동 성폭력 문제를 다룰 때 화학적 거세나 전자발찌 등 가해자 처벌에만 집중하는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아동 성범죄를 예방하려면 공부방이나 방과후 학교 등 사회안전망 확충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13살 미만 아동의 경우 저소득층 맞벌이 가정의 홀로 방치된 아이들, 또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범죄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공부방이나 방과후 학교에 대한 예산 지원, 정책적 배려 등에 대해 언론이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딸을 키우는 엄마는 아이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 외에도 일상적으로 분노할 사건들을 많이 접한다. 최근 이강수 고창 군수가 계약직 여직원에게 누드사진을 제의해 물의를 빚었고,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은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여대생에게 “다줄 생각을 해야하는 데 그래도 아나운서를 하겠냐”는 성희롱 발언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 의식을 갖추고 있다니 한심할 뿐이다. 누드사진 제안을 받은 계약직 여직원은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 것이며, 아나운서의 꿈을 갖고 있던 그 여대생은 얼마나 모욕감을 느꼈을까. 그 계약직 여직원과 아나운서 지망생 여대생이 내 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딸 키우는 부모로서 분노감은 더했다.
흔히들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21세기 국가발전의 원동력은 여성이고,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더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렇게 여성과 딸을 가진 엄마, 또 그들의 딸들이 걱정과 불안 속에서 살아야 하고, 분노하는 세상에서, 과연 그들이 얼마나 맘껏 자신의 꿈과 능력을 펼칠 수 있을까. 어떤 세상이 여성들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인지 우리 모두가 생각해볼 일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 아동 성범죄 관련 알아두면 좋은 것들
1. 아동전담검사(Prosecutor For Chiid, PFC) 제도 지난 2009년 10월14일부터 대검에서는 13살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유괴, 학대 등 아동에게 심대한 피해를 야기한 범죄를 ‘아동보호사건’이라 규정하고, 아동보호사건은 각 검찰청별로 경력이 풍부한 검사를 아동전담검사로 지정하도록 했다. 아동전담검사는 사건 초동 수사단계부터 공판, 형의 집행 단계에 이르기까지 전담하는 검사다. 2. 아동 성범죄의 공소시효와 처벌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폭력범죄의 공소시효는 아동이 성년이 된 날로부터 기산하고, 그 보호자가 형사고소한 경우 범죄행위 종료일로부터 공소시효가 경과했더라도 아동 본인이 성년이 되지 않았다면 아직 공소시효가 경과하지 않은 것이므로 유의해야 한다. 아동청소년에 대한 범죄 관련해 13살 미만인 경우 반의사불벌죄(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을 하지 않는 것)가 적용되지 않았으나, 13살 이상 18살 미만에 대한 범죄는 반의사불벌죄였다. 그러나 올해 4월부터 관련법이 바뀌어 13살 이상 18살 미만 청소년에 대한 성범죄도 반의사불벌죄가 없어졌다. 3. 사례를 통해 본 아동 성범죄 관련 부모가 알아둬야 할 것 4살짜리 솔이(가명)는 일주일에 3번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배웠다. 그런데 어느날 솔이 엄마는 아이가 팬티를 너무 자주 갈아입고 냄새가 난다고 느꼈다. 그래서 혼잣말로 “애가 왜 자꾸 팬티를 갈아입지... 내일은 병원에 데려가봐야겠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순간 솔이는 엄마가 물어보지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아이의 자발적 진술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관장 선생님이 자꾸 만지니까 그렇지”라고 말했다. 너무 놀란 엄마는 당장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침착하게 대응했다. 아이에게 전혀 티내지 않고 일단 아이를 재웠다. 그리고 엄마는 푹 자고 일어난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솔이야. 아까 엄마한테 말했던 게 뭐였지?” 그랬더니 솔이는 “응. 아까 관장님이 여기 만지니까 관장님 혼내줘야 한다고 했잖아”라고 말했다. 결국 혐의를 부인하던 수영 강사는 범죄 사실을 자백하고 반성을 했다. 그는 13살 미만 미성년자강제추행으로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사실 4살이라는 아이를 성추행하고 집행유예라는 가벼운 처벌을 받은 것은 우리 법원이 성범죄에 얼마나 관대한지를 보여준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이 동종전과가 없고 반성을 하고 있고, 피해자와 합의를 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피해자와 합의를 하더라도 강력하게 처벌을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 아들이라고 안전할까? 흔히들 아동 성범죄는 여아들만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아들도 안전한 것은 아니다. 남아를 대상으로 한 강제추행 등 성범죄도 심심치 읺게 일어나고 있고, 남아들 역시 성범죄에 노출될 경우 엄청난 후유증을 겪는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부모들은 항상 아이들의 행동이나 얼굴 표정, 감정 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 한다. 또 아이들에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올바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하며, 적절한 시기에 올바른 성교육을 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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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지적을 하자면. 한겨레 기자라면 '구속이 처벌이 아니고 증거 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있는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해서 수사를 제대로 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은 잘 아시지 않나요? 형사 소송법의 대원칙이 불구속 수사 (도주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면 충분히 큰 액수의 보석금을 걸게 하고서)라는 것도 잘 아시겠지요. 그런데, 마지막에 든 사례에서 '구속'이 마치 처벌인 것처럼 쓰셨군요. 그 수영 강사는 구속 후에 재판에서 어떤 형을 선고 받았는지 쓰셨어야지요. 결국 집행 유예나 벌금형으로 끝났는지 아니면 실형을 선고 받았는지 결말을 쓰셨어야지요.
우리 나라 신문들 (한겨레를 포함해서)이 중대 경제 법죄 (횡령, 배임 등)나 부정 부패(수뢰, 배임 등)를 한 정재계 거물들이 구속될 때는 요란하게 1면 머릿 기사로 올리면서 떠들다가 나중에 재판에서 '국민 경제에 공헌한 바가 크고...' 따위의 말도 안 되는 구실을 붙여서 집행 유예로 풀려 날 때에는 구석에 1단 기사로 처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면 좀 심한 얘기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