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 선택권 주고 욕심 줄이고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t.jpg » 강화도 자연사박물관 앞에 있는 공룡 그림. 재밌는 기념 사진을 찍기에 좋다. 양선아 기자

 

* 생생육아는 필자가 아이를 키우면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생생하게 쓰는 육아일기 코너입니다. 

베이비트리(http://babytree.hani.co.kr)에는 기자, 파워블로거 등 다양한 이들의 다채로운 육아기가 연재됩니다.

 

지난 추석 연휴는 열흘씩이나 돼서 주변 사람들은 나들이 및 여행 계획을 세우며 들떠 있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별다른 나들이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다른 때 같으면 아마 나는 남편을 달달 볶았을 것이다. “남들은 해외여행 가고 그러는데 왜 우리는 황금연휴를 이렇게 보내야 하느냐?” “제발 집에 가만히 있지 말고 애들 경험 좀 시키게 밖에 나가자”라고 말하면서.
 
그런데 이번 연휴에는 다른 때와 달리 마음이 안달 나지 않았다. 여행을 가도 좋겠지만 그냥 집에서 뒹굴거리며 읽고 싶은 책 읽고 아이들과 얘기하고 가족끼리 맛있는 요리 해먹으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도 행복할 것만 같았다.
 
시댁과 친정을 다녀온 뒤 서울에 왔다. 여전히 쉴 수 있는 날이 있어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항상 명절이면 시골에 다녀와서 바로 명절이 끝났고, 명절 후유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온전히 쉴 수 있는 날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기분이 좋으니 평소에 잘 하지 않던 요리도 끼니마다 내가 먼저 나서 했다. 아이들도 원 없이 만화 영화를 보고 숙제 걱정 없이 놀았다. 남편도 방에서 야구도 보고, 그동안 미뤘던 작업들도 열심히 했다. 그렇게 온 가족이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연휴를 여유롭게 보냈다.
 
연휴가 끝나갈 무렵인 7일이었다. 이게 웬일인가. 평소 나들이 가자고 하면 “어디 못 돌아다녀 안달났냐”고 핀잔을 주던 남편이 먼저 나들이 제안을 했다. 그것도 선택지를 주면서 말이다.
 
“오늘은 집에서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갔다 올까? 내가 생각해봤는데 ’다시 태어나도 우리’라는 다큐 영화를 보고 영화관 근처에 들를 만한 곳에 들렀다 오는 게 있어. 이 영화는 전생을 기억하는 아홉 살 아이가 스승과 우정을 나누는 영화인데, 국제영화제에서 상도 많이 받고 본 사람들이 감동적이라고 하더라. 전체 관람가니까 아이들과 함께 봐도 좋을 것 같아. 두 번째로는 강화도 여행이야. 강화도 쪽에 갑곶 돈대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 둘러보고, 고인돌 보고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어. 아이들이랑 당신이 의견 모아서 선택해. 내일 나들이 다녀오자.”
 
기대하지 않았는데, 남편이 나들이 제안을 하니 나는 ‘이게 웬 떡이야’ 하며 덥석 받았다. 아이들에게 나들이 장소 두 군데를 주고 선택하게 하자, 둘 다 강화도 여행이 가고 싶다고 했다.  여행하나를 가더라도 이렇게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직접 선택하도록 하면 아이들이 훨씬 여행에 대해 능동적이 된다. 부모가 장소를 마음대로 선택해 무조건 따르라고 하는 것보다, 1~3개 정도 선택지를 주고 본인들이 원하는 곳으로 가자고 하는 편이 훨씬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20171008_145924.jpg » 강화도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지정 고인돌, 강화지석묘. 양선아 기자


 
다음날 느즈막히 일어나 밥을 맛있게 먹고 11시 반께 강화도를 향해 떠났다. 햇살은 맑고 투명하고, 가을바람은 살랑살랑 불었다. 강화도로 가는 길은 약간 막혔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은 모두 즐거웠다.
  
강화도에 들어가는 입구에는 ‘2018 올해의 관광도시 강화군’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올해의 관광도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매년 관광 잠재력이 있는 기초지자체를 선정해 3년간 최대 국비 25억 원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정책이다. 강화군이 2018년의 관광도시로 선정되어서일까, 가는 곳마다 관광 관련 팸플릿이 보였고, 그 팸플릿에는 반나절 코스, 하루 코스, 1박2일 코스, 2박3일 코스 등으로 관광 정보가 잘 정리돼 있었다. 또 쇼핑 정보와 맛집도 정리돼 있어 편리했다.
 
여행지에 도착하니 배꼽 시계가 따르릉 따르릉 울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맛집 한 군데 들러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배도 부르고 날씨도 좋으니 일단 고인돌을 먼저 보러 가기로 했다. 두 아이 모두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고인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는지 고인돌을 유심히 쳐다봤다. 마침 고인돌 앞에서 해설사가 고인돌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었다.
 
“이 고인돌의 덮게 무게가 얼마나 될까요? 53톤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장정 500~800명이 이 돌을 옮겨야 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이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족장의 무덤이고요.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서의 기능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고인돌은 북방식, 남방식이 있는데요. 북방식 고인돌은 이렇게 탁자 모양을 하고 있어요. 강화지석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고인돌이고요. 2000년 12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됐지요. 강화군의 내가면, 하점면에 걸쳐 고려산 능선을 중심으로 약 12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돼 있어요.”
 
해설사의 설명이 없었다면, 우리는 고인돌을 보며 “와~ 진짜 크다~”라고 감탄사만 지르고 왔을 텐데 구체적으로 무게가 어느 정도 되는지, 탁자식, 바둑식 고인돌이 어떻게 다른지도 알게 되니 흥미진진했다. 학교 다닐 때 역사 교과서에서 고인돌을 사진으로만 보고 배울 때와 이렇게 아이를 키우며 실제 고인돌이 있는 지역을 방문해서 보는 것과는 고인돌을 대하는 자세가 180도 다르다. 이래서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 역시 자란다고 하나보다. 역사가 암기 과목같고, 왜 선사시대 유적물인 고인돌을 내가 알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엄마가 돼 아이들과 함께 와 고인돌을 보니 당시 족장의 권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등등을 상상할 수 있어 재밌었다. 설명을 듣고 더 많은 고인돌을 보고 싶었는데, 아이들은 더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고인돌 하나 봤으면 됐지 계속 고인돌을 볼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20171008_145347.jpg » 고인돌 탐방길. 가을 하늘과 잘 어울린다. 양선아 기자.
 

여행을 하다 이런 순간이 오면, 잠시 마음이 고민한다. 아이들을 억지로라도 끌고 다니며 고인돌을 보여줄까, 아니면 아이들이 원하는 다른 곳을 둘러볼까.

마음 같아선 내 욕심대로 좀 더 고인돌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고 길을 더 걷고 싶었지만, 아이를 10년 키워본 두 아이의 엄마는 안다. 욕심을 부려야할 때와 부리지 말아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아이들과 하는 여행에서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욕심 줄이기’이다. 부모가 보는 세상과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다르다. 부모의 보폭과 아이의 보폭은 다르다. 다른 존재들이 만나서 함께 이루려면 어른인 부모가 아이의 보폭에 맞춰줘야 한다. 욕심이 났지만 욕심을 덜어내고 물었다.
 
“고인돌 더 안보고 싶으면 너희는 뭐 하고 싶어? 우리 옆에 있는 역사 박물관 둘러볼래?”
 
아이들은 박물관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아니 박물관이 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박물관 안에 있는 매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던 것 같다. 일단 아이스크림을 먹기 전에 근사하게 지어진 역사박물관부터 들어가서 둘러보자고 했다. 2010년 10월23일 개관했다는 강화역사박물관은 강화에서 출토된 유물을 중심으로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강화도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박물관에 들어오기 전에 고인돌을 봤는데, 각종 인형 모형 등으로 청동기 시대 때 고인돌을 제작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점이 좋았다. 또 아이들은 페루 등 다른 나라의 다양한 고인돌 모양을 보면서 신기해했다. 딸은 특히 조선 백자에 관심을 보였는데, 할아버지와 삼촌이 만든 도자기를 보았던 경험 때문인 것 같다.
 
“엄마는 어떤 도자기가 제일 예뻐?”
“응. 엄마는 저거”
“나는 이거”
 
도자기 하나하나를 살피고 고려 때 강화가 왜 수도가 됐는지 등을 알아가면서 딸과 나는 박물관을 둘러봤다. 딸과 내가 이렇게 꼼꼼하게 유물과 역사 설명 등을 읽는 동안, 남편과 아들은 둘이 손을 잡고 훅훅 놀이하듯 박물관 곳곳을 건너뛰며 둘러봤다. 아들은 특히 칼 등 무기류에 관심이 많았고, 전쟁사에 관심을 보였다. 아들과 딸을 보면서 남매이지만 어쩌면 이렇게 성향이 다를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역사적 사실이나 유물보다는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었던 아들은 어느새 아빠 손을 이끌고 매점에 가 있었다. 

 

s1.jpg » 수탉이 우는 모습에 즐거워하는 아이들. 양선아 기자


 
역사박물관을 둘러보고 출구로 나오니 자연사박물관 가는 길이 나왔다. 자연사박물관 앞에는 수탉, 양, 토끼, 염소 등이 있었다. 아이들은 바로 동물 우리 근처에 가 먹이를 주었다. 아이들이 앞에 가니 수탉이 ‘꼬끼오~’ 하고 울었는데, 닭이 목청 높여 우는 모습을 처음 본 아들은 너무 재밌어했다.
 
동물들과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자연사박물관으로 향했다. 자연사박물관 앞에는 벽을 뚫고 나오는 듯한 공룡 그림이 있는데, 이 그림 앞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20171008_162547.jpg » 다양한 포즈를 취한 아이들. 아이들은 어디든 재밌다. 양선아 기자.
 
자연사 박물관은 지구 탄생에서 현재까지의 자연사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는데, 서울에 있는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못지않게 구성이 잘 돼 있었다. 특별 전시로 아들이 좋아하는 곤충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역사 박물관은 지루해했던 아들이 이 곤충 전시회에서는 눈을 반짝반짝하며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각종 나비 등을 둘러보았다. 전시된 곤충들을 보면서 `어쩌면 이렇게 자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데 이렇게 아름다운 빛깔을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물론 기괴하고 징그러운 곤충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20171008_160238.jpg » 특별 곤충전시전에서 곤충을 보고 있는 아이들. 양선아 기자.

 

20171008_163230.jpg » 자연사박물관 옆에 있는 식물원. 양선아 기자.

 

자연사 박물관을 나오니 그 옆에는 식물원이 있었다. 고인돌 옆에 역사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식물원까지 한꺼번에 즐길 수 있으니 일석삼조였다. 식물원에는 다양한 모양의 선인장과 꽃이 있었고 마음껏 구경했다. 아들은 파리지옥을 기르고 싶어했고, 딸은 와송을 키우고 싶어했다. 여우 꼬리처럼 부드럽고 예쁘단다. 아이들이 원하는 식물을 사들고 갑곶 돈대로 이동했다.
 
갑곶 돈대는 강화에 가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이다. 우리는 여행을 마치면서 마지막 여행지로 이곳을 들렀는데, 오후 늦은 시각이라 사람들이 거의 없어 그곳을 우리 가족만이 즐길 수 있었다.
 
갑곶돈은 고려가 1232년부터 1270년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몽고와의 전쟁에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다. 대포 8문이 배치된 포대이며, 돈대는 작은 규모의 보루를 만들고 대포를 배치하여 지키는 곳이다.
 
갑곶돈대는 고려 고종 19년(1232)부터 원종 11년(1270)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긴 후 조선 인조 22년(1644)에 설치된 제물진(갑곶진)에 소속된 돈대로 숙종 5년(1679)에 축조되었다. 고종 3년(1866) 9월 병인양요 때 프랑스의 극동 함대가 6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상륙하여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했다. 그러나 10월에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은 양헌수 장군의 부대에 패하고 달아났다고 한다. 1977년에 옛터에 새로이 옛모습을 되살려 보수, 복원이 이루어졌다. 지금 돈대 안에 전시된 대포는 조선시대 것으로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왜적의 선박을 포격했던 것이다.
 
갑곶 돈대로 올라가는 길에서 바라본 가을 평야와 강은 너무 아름다웠다.

평화로움 그 자체를 느낄 수 있었다.

요즘처럼 날씨가 좋은 날에는 여행을 다니며 하늘과 구름만 봐도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돈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나눈 뒤 옆에 있는 전쟁 박물관으로 향했다.
전쟁박물관에는 강화에서 벌어진 전쟁을 주제로 전쟁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20171008_172334.jpg » 갑곶 돈대의 모습. 양선아 기자.

 

20171008_172448.jpg » 갑곶돈대에서 바라본 바다 전경. 양선아 기자.

 

20171008_172609.jpg » 갑곶돈대에서 바라본 바다 전경. 양선아 기자.

 

20171008_172708.jpg » 갑곶돈대에서 찍은 가족 사진. 양선아 기자.

 

20171008_180122.jpg » 집에 가는 길 만난 노을 지는 풍경. 양선아 기자.
 
느즈막히 출발해서인지 이렇게 두 곳만 보았는데도 벌써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더 돌아다니면서 강화도를 여행하고 싶었지만, 다음에 또 올 것을 약속하고 아쉬움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어렸을 때도, 대학 다닐 때도 나는 여행을 많이 다니지 못했다. 입사한 이후에도 역시 항상 일에 찌들어 있었고 주말이면 부족했던 잠을 보충하곤 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멀리 가는 여행을 자제했다. 가까이, 또 아이와 내가 너무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로만 여행하러 다녔다. 그랬던 나이기에 항상 여행에 대한 갈증이 있는 편이다. 더 자주, 더 많이 돌아다니며 보고 싶고 알고 싶고 느끼고 싶다.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라면 지나친 욕심은 금물이다. 나 혼자만의 욕심을 냈다간 아이들이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말테니 말이다.

5군데를 보고 싶어도 아이들의 컨디션이나 페이스에 따라 2군데, 3군데만 가도 만족할 줄 아는 여유로움을 가져야 한다.

 
여행을 다니며 항상 아이들도 여행자의 동반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끌려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아이 역시 여행의 동반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래야 아이들도 부모와 함께 하는 다음 여행이 기대되고 설렐테니까.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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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