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때 아이와 가볼 만한 `레고 아트' 전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2.jpg » 레고로 만든 조형물을 두 아이가 보고 있다.

 

아들은 요즘 유행하는 장난감 팽이(베이 블레이드)에 푹 빠졌다. 지난해 하반기 내내 놀이터에서 형, 친구들과 함께 팽이를 돌리고 또 돌렸다. 다른 장난감에 비해 몸을 움직이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어 팽이 장난감에 대한 내 점수는 후한 편이었다.

 

팽이를 가지고 원 없이 놀아서일까. 최근 아들의 관심이 레고 쪽으로 옮겨졌다. 유아 시절에도 레고를 사줬지만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레고에 한 번 빠지게 되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조언을 해주었기 때문에, 나는 아이들에게 레고를 나서서 사주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들이 얼마 전 친구집에 놀러가서 친구와 함께 레고를 조합해 팽이를 만들며 놀아보더니, 레고를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자기도 자신만의 레고 팽이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마트에서 레고 코너에 가면 각 상자에는 연령과 테마가 있고 그에 맞는 레고 블록 묶음이 담겨 있다. 아이들이 유아였던 시절, 가끔 레고 장난감을 사준 적이 있다.  영화 <겨울왕국>이 인기였을 때 겨울왕국을 재현할 수 레고를 사주었는데, 아이가 혼자서 하지 못해 결국 내가 조립해야 했다. 작은 블록을 조립도를 봐가며 쭈그려 앉아 맞추는데 내게는 큰 고역이었다. 레고 조립을 하면서 결국 화를 터뜨리고 말았다.
 
“다시는 이런 거 안 사줄 거야. 아이들 장난감을 왜 엄마가 조립하고 있어야 해? 아이고, 허리 아파. 내가 레고 사주면 손에 장을 지진다!”
 
어른이 되어서도 레고를 좋아하는 어른도 있다던데, 당시 내게 레고는 놀이가 아니라 육아의 연장선상이었다. 특히 레고는 장난감 회사에서 만들어놓은 테마에 맞춰 블록을 맞춘다는 점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뭔가 남들이 정해놓은 것을 따라한다는 것이 영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아이 친구 엄마에게 레고 역시 ‘클래식’ 상자가 있어 다른 블록 놀이처럼 자유롭게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레고 부품의 종류는 매우 다양해서 팽이도 만들 수 있고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레고에 관심을 가지게 된 아이에게  `레고 클래식‘ 상자를 사주었고, 아들은 그 레고 블록으로 매일 무엇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중이다.

4.jpg » 끊임없이 레고 블럭을 갖고 조립하는 아들.

 

6.jpg » 레고로 팽이와 런처를 만들며 논다.

 
아이는 팽이와 팽이를 고정해 돌릴 수 있는 런처 등을 하나의 모양이 아니라 매우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서 엄마에게 자랑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진과 동영상으로 아이의 작품을 기록한다. 아이는 매우 뿌듯한 표정을 짓고 기록해놓기를 원한다. 아이는 또 유튜브를 검색해 레고고 만들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만들어본다. 어느 날은 레고로 자판기를 만들겠다고 조립을 시작하더니 장장 3시간에 걸쳐 완성하기도 했다.
 
레고 세상에 풍덩 빠진 아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몰입력에 깜짝 놀라곤 한다. 작은 블록들을 조립해서 뭔가 형체 있는 물건을 만들어내려면 한참을 쭈그려 앉아 있어야 한다. 나 같은 경우 그렇게 쭈그려 앉아 뭔가를 만들려면 목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눈도 아파서 계속 집중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제 고작 8살, 새해 9살이 되는 아들이 몇 시간이고 레고 조립을 하느라고 쭈그려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정말 재미있다고 느끼지 않으면 저렇게 몇 시간이고 몰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뇌 발달 전문가 김영훈 소아청소년과, 소아신경과 전문의는 레고와 같은 블록 장난감이 아이들의 소근육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김영훈 박사가 임신출산육아웹진 `베이비트리’(https://goo.gl/u2v6dS)에 쓴 글을 보면,  소근육을 이용하는 블록 놀이는 아이의 두뇌 발달에 도움을 준다고 설명한다. 블록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공간 감각을 향상시킬 수 있고, 수학적 문제해결력을 높일 수 있다. 또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  블록을 쌓는 것은 소뇌, 대뇌 피질, 시각 중추, 전정 기관 등이 복합적으로 연결돼야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기울기를 눈으로 체크하고, 이것을 다시 손가락 감각으로 확인하

면서 바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뇌의 신경 회로를 만들기에 최고의 자극이라고 김 전문의는 말한다.

 

1.jpg » 레고 아트전 <더 아트 오브 더 브릭>전에서 레고로 만든 조형물을 보고 있다.

 
전문가가 말하는 레고 장난감의 장점을 잘 알고 있었고, 이제는 아이가 레고 조립에 흥미를 느끼고 스스로 조립할 수 있게 됐다. 레고 놀이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할 적기라고 생각했다. 언제든지 아이가 느끼는 즐거움, 재미, 흥미를 좇아가는 것만큼 좋은 양육법은 없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레고에 푹 빠진 아이와 함께 레고를 조립하면서 앉아 있지는 않는다. 여전히 나는 작은 블록을 조립해 무언가를 만드는 데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엄마~ 엄마도 나랑 함께 레고 조립하자~응?”
아들은 무엇이든 엄마와 함께 즐기길 원하지만 나는 과감하게 이렇게 말한다.
 
“그냥 엄마는 네 옆에서 네가 조립하는 것 보면서 책 읽을게~”라고.
나는 내 한계를 명확히 알기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다만, 나는 아들이 자신만의 창의성을 발휘해 뭔가를 만들어내면 열렬히 환호해준다.
 
“우와~ 아들 멋있다.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수 있어?”
“우와~ 아들, 이 팽이보다 이 팽이가 더 멋지다~ ” 하면서 감탄해할 줄은 안다. 그리고 적어도 아들이 관심 있는 놀이에 엄마 역시 관심이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아들과 함께 레고 조립을 하지 않지만, 또 하나 아들을 위해 최근 한 일이 있다. 나는 참 좋은 엄마라는 자부심을 느낄 정도로. 바로 레고 아트전에 친구와 함께 데리고 간 것!  수많은 전시 중에서도 아들이 요즘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레고 전시전을 찾아 친구와 함께했다.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는 지난해 10월 5일부터 오는 2월4일까지 <디 아트 오브 더 브릭(The Art of the Brick)>이라는 레고 아트전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마지막 날, 나는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10.jpg » 다양한 예술작품을 레고로 표현했다.


<디 아트 오브 더 브릭>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고 예술가 `네이선 사와야‘의 대규모 조각품을 위주로 구성된 전시회다.  네이선 사와야(Nathan Sawaya)는 레고를 예술에 처음으로 접목한 세계 최초의 예술가이며, 두 권의 베스트셀러 도서를 저술한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회는 2007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랭커스터(Lancaster)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이후 북미, 호주, 아시아 및 중동, 유럽 등지에서 개최되며 전 세계에서 15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볼 정도로 유명한 전시회다. 2011년 CNN은 세계에서 꼭 관람해야 하는 10개의 전시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 전시회에서는 네이선 사와야의 작품 100여 점이 전시됐는데, 지구본, 전화기 등 아기자기한 생활 소품부터 인체의 다양한 동작들을 유려한 곡선으로 표현해낸 대형 작품까지 다양하다. 특히 구스타프 클림트의 ‘연인(키스)’,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등 유명 예술가들의 대표작들도 레고로 만들어 전시해놨는데 레고 작품이 조명과 절묘하게 결합해 유명 작품들의 색다른 맛을 볼 수 있다.
 
레고에 빠진 아들은 레고가 단순히 장난감이 아니라 예술 작품으로까지 승화된 모습을 보고 놀라워했다.  아들은 전시장 이곳 저곳을 친구와 손을 잡고 감상을 한 뒤, 맨 아래층에 마련된 레고 체험장에서 조립도 하면서 즐겁게 놀았다.

18.jpg » 작품 디비전

 
무엇보다도 아들과 아들 친구보다도 더 전시를 즐긴 것은 바로 나와 딸이다. 딸은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많은데, 작품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뜯어보며 놀라워했다. 나 역시 작은 블록들이 모여 놀라운 형상을 만들어낸 레고 작품이 너무 신기하고 그 황홀함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특히 지하 4층에 마련된 `디비전’ 이라는 작품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는데, 강렬한 빨간색과 레고로 만든 사람들이 실로 연결돼 날고 있는 모습이 형상화됐다.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이 돼 있다.
 
“이 작품은 인생에서 경험하는 가장 강력한 두 가지 정서인 희망과 절망에 대한 탐험을 나타냅니다. 사랑이 증오보다 강하듯, 희망 또한 절망보다 강합니다. 판도라가 상자를 열어 모든 악마와 혼돈을 이 세상에 퍼뜨렸을 때에도 희망은 존재했었습니다. 긴 터널 끝에 희망의 빛이 있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가장 깊은 절망에도 희망이 빛이 존재합니다. 두 손을 뻗어보세요. 그러면 여러분을 들어올릴 준비가 되어 있는 희망이 떠올라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라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일지라도 결국 밝은 새벽이 찾아올 거라고 말할 겁니다”
 
이 설명을 보고나서 작품을 보니 더욱더 희망이 느껴진다. 새해를 맞이하기 전날 이 작품을 보니 희망을 갖고 새해를 맞고 싶었다.

17.jpg » 카페에서 팽이 놀이를 하며 노는 아이들.

 
전시회에서 나와 주변 카페에 들러 엄마들은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먹었다. 운 좋게 들어간 카페에 사람들이 많지 않은데다 테이블 옆에 너른 공간이 있어 아이들은 각자 가져온 팽이로 신나게 팽이 놀이를 할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는 딸은 카페에 놓인 그림책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저녁까지 함께 먹고 싶어했다. 엄마들은 방학 맞이 만남이므로 점심에 이어 저녁까지 함께 먹기로 했다. 인사동 쌈지길도 구경하고 길거리에서 파는 각종 공예품도 구경했다. 또 궁중에서 임금이 간식으로 먹었다는 꿀타래 만드는 법도 구경하고,  똥 모양의 엽기적인 빵이 있어 실컷 웃으며 맛있게 먹어보기도 했다.

14.jpg » 인사동 길에서 똥 모양의 호떡을 팔고 있다.

 

13.jpg » 아이들이 똥아호떡을 맛있게 먹고 있다.

 
 
아들의 레고 사랑은 레고 아트전 이후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방학을 했기 때문에 시간도 많아서 본격적으로 레고에만 푹 빠져 살고 있다. 엄마가 퇴근하면 오늘 레고로 만든 팽이를 보여준 뒤 배틀을 한다. 무엇인가에 푹 빠져 즐거워하는 아들 모습이 좋다. 이 레고 사랑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아들 덕분에 엄마도 레고 아트의 세계도 알게 되고, 레고가 열어주는 새로운 세상의 재미도 알게 됐다.

 

 

양선아 기자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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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