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흐름 역행하는 `출산주도성장' 발언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06014194_P_0.jpg »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5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출산주도성장이라니. 말이야, 똥이야? 여자가 무슨 경제 발전 도구야? 누가 돈 주면 무조건 애 낳아? 도대체 우리나라 정치인들 인식은 왜 저 모양인지 모르겠어.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취직하기는 얼마나 힘들어. 거기에 아이라도 한 명 낳아봐. 애 맡길 곳 없어 발 동동 구르는 게 보통 사람들 삶이잖아. 직장 다니다가도 아이 키우기 너무 힘들어서 경력 단절되는 여성들은 얼마나 많으냐고. 직장 다닌다고 해도 혼자 ‘독박 육아’하면서 서러워하는 여자들은 또 얼마나 많고. 그런데 한 달에 30만 원씩 돈 줄 테니 애 낳으라고? 진짜 아이를 안 키워봤으니까 저런 말이 나오는 거지. 저런 사람들이 국민을 대표한다고 앉아있으니 나라가 이 모양, 이 꼴 아니냐? 정말 열 받는다. 열 받아!”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최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면서 ‘출산주도성장’이라는 말을 꺼낸 뒤, 한 친구가 카카오톡 메신저로 분노를 쏟아냈다. 김성태 의원은 신생아 1인당 출산장려금 2000만 원과 향후 20년간 월 33만 원의 지원 수당을 통해 출산율을 제고하자며 이 같은 제안을 했다.
  
김성태 의원의 발언이 보도된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각종 기사 댓글과 카페에서 출산주도성장론에 대한 비판은 끊임없이 쏟아졌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성인 503명에게 조사해 10일 발표한 결과를 봐도, 자유한국당의 ‘출산주도정책’에 대해 국민 10명 중 6명은 반대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출산주도성장’에 대해 반대하고 분노하는 이유는 뭘까?

 

‘출산주도성장’이란 말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현재 저출생의 원인이 경제적 이유 때문이고, 돈을 준다면 국민이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보는 관점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아이 낳고 싶은 사회가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 고민 없이 단지 모든 것을 ‘돈’ 의 문제로 단순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삶이 그렇게 단순한가? 삶의 모든 것이 ‘돈’만 있으면 해결되는가? 돈 중요하다. 그런데 국가에서 한 아이 당 1억 준다고 아이 한 명을 쉽게 키울 수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나만 해도 그렇다. 친정 부모님과 시댁 모두 지방인 나는 육아휴직을 한 뒤 회사 복귀할 시점에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2009년 당시만 해도 우리 집 주변 민간 어린이집에서는 4살 이상 어린이들만 입소할 수 있었다. 국공립 어린이집을 알아보았지만 자리가 없었고, 아이가 5살이 됐을 때 어린이집에서 입소 여부를 묻는 전화가 왔다. 결국, 나는 육아 도우미를 고용해야 했는데, 한 달에 140만 원이라는 돈을 지불해야 했다. 그 돈은 해마다 오르기까지 했다. 도우미 비용에 한 달 생활비, 전세 기간 만료될 때마다 적게는 2천만 원에서 많게는 1억까지 전셋값을 올려달라는 집주인, 아이와 놀기 위해서도 키즈 카페 등에 돈을 써야 하는 현실 등까지를 감안하면 한 달 33만 원이라는 현금 지원만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집에서 가까우면서 보육의 질이 보장되는 국공립 어린이집, 안정된 집값, 일과 생활의 균형을 보장하는 양질의 일자리,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 문화, 각자도생 사회가 아니라 서로 돌보는 공동체성 회복 등 사회구조적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야 아이를 낳아 키울 만한 세상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돈’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단순한 논리에 화가 난다. 저출산이 사회 문제되면서, 정말 수많은 언론이 저출산 원인과 해법 등을 짚었다. ‘독박 육아’‘맘고리즘’이라는 말이 키워드로 부각됐고,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겪고 있는 비극과 부조리를 담은 <82년생 김지영>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엄마들 스스로 당사자 정치를 해야 한다며 ‘정치하는엄마들’이라는 단체가 생겼고, 이들은 여성 관련 노동 정책, 보육 및 교육 문제 등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흐름과 맞물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출산율 올리기를 목표로 한 과거 정책 방향이 잘못됐다고 보고, 출산율 수치 목표를 없앴다. 대신 ‘주거 복지’ ‘워라밸’ ‘차별 해소’ 등에 초점을 맞추고 개인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치겠다고 했다. 주 52시간 근무제라던가 최저임금 인상 등은 이러한 정책 기조와 맞물려 진행되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는 말을 야당의 원내대표라는 사람이 서슴없이 내뱉었다. 모든 것을 ‘돈’의 문제로 단순화시킨 그에게 성차별 철폐와 성평등 정책을 요구해온 여성들은 얼마나 불쾌감을 느끼는지 모른다. 출산주도성장에서 말하는 성장은 누구를 위한 성장이며, 그 성장 안에서 누가 차별받고 핍박받고 착취를 당하게 될 것인가는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김성태 의원은 저출산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국가가 나서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저출산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단지 그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비판하기 위해 출산주도성장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와 여당을 공격하느라 여념이 없다. 연애, 결혼조차도 주저하게 만드는 세상, 아이 낳는 것도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세상에 기득권인 그도 분명 책임이 있는데 반성은 커녕 정치적 공세를 위해 `저출산' 문제를 이용하는 그에게 분노가 치솟는다. 돈만 주면 해결된다는 그 생각 때문에 오히려 현실 문제가 더 악화됐다고 생각한다. 한 아이가 태어나 행복하게 성장하려면 돈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무수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한 대목이다. 김성태 의원이 진짜 저출산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82년생 김지영>도 읽고 <정치하는 엄마가 이긴다>를 읽기 바란다.  

자본주의가 판을 치고 여전히 가부장적 질서가 존재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돈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직시하기를 바란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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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