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지 않는 행복, 지금 꼭 안아줄 것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 <한겨레> 육아웹진 `베이비트리' 생생육아 코너는 필자가 아이를 키우면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생생하게 쓰는 육아일기 코너입니다. 베이비트리(http://babytree.hani.co.kr)에는 기자, 파워블로거 등 다양한 이들의 다채로운 육아기가 연재됩니다.

 

연말 부모들이 읽어볼만한 책

 

엄마의키스.jpg » 지금 많이 안아주자. 부모의 체온이 아이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올해 내가 읽은 책 가운데 최고야. 선아 너도 한번 읽어봐. 분명 네가 좋아할거야.”
내가 힘들 때마다 고민을 들어주는 한 선배가 한 권의 책을 내밀었다. 선배가 권해준 책마다 재밌었기에 지난 주말부터 책을 펼쳤다. 사실은 똑같은 책을 한참 전에도 또다른 선배가 권했다. “선아 네가 읽으면 베이비트리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그 책 저자 베이비트리 필자로도 좋을 것 같은데?”

일 때문에 읽어야할 책들과 당장 해치워야 할 일들 때문에 그땐 그 책을 읽지 못했다. 그런데 같은 책을 지인에게 두 번 권유받자 이 책은 기어코 나와 만날 운명인 것처럼 느껴졌다. 책을 펼친 지 얼마 안 돼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코를 팡팡 풀며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이 됐다. 마지막 책장까지 넘긴 뒤 내게도 이 책이 ‘올해 읽은 책 가운데 가장 감동깊은 책’이 됐다. 이 책은 연말연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읽기에 딱 좋은 책이라,베이비트리 독자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다. 그 책은 바로 강남구 전 OBS 기자가 쓴 <지금 꼭 안아줄 것>이다. 
 
이름도 특이해 절대 잊혀지지 않는 강남구씨. 그는 세상에서 바쁘기로 치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사회부 방송 기자였다. 그는 재생불량성 빈혈 중증 진단을 받은 아내와 2008년 태어난 아들과 함께 살았다. 혈액의 기능이 점점 떨어지는 병을 앓던 아내는 3년 전 삼성서울병원에서 제대혈(태아탯줄혈액) 이식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갑작스레 사망했다. 의사에게 아내의 사망 가능성에 대해 예고받지 못했던 그는 준비없이 아내와 이별해야했고, 5살 아들과 덩그러니 세상에 남겨졌다.
 
그는 책에서 아내가 살아있었을 때 수없이 놓친 행복의 순간들을 기록한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그는 행복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아이 음식을 만들기 위해 앞치마를 두르고 소파에 앉아 빨래를 개던 아내,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안녕”하고 반겨주던 아내의 인사말, 불만이 있으면 힘주어 “남편!”하고 말하던 아내, 색색 소리를 내며 아이와 함께 잠자던 아내의 모습까지... 너무나 당연시하고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던 그 일상 속에 자신이 바라던 행복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뒤늦게 깨닫는다. 그는 책에서 자신의 시계가 항상 미래를 향해 있었다고 고백한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모두 미래를 위한 것이었다. 집과 자동차, 아이 교육, 그리고 노년 준비”였다고. 또 “성취를 한다는 건 뒤돌아보니, 보이지 않는 값비싼 상표들을 하나씩 내 이름에 덧붙이는 과정이었다”고. 

 

wall-845707_960_720.jpg » 미래를 위해 바쁘게 달려가는 우리, 행복을 유예하는 삶을 살고 있다.

 

 

한없는 회한이 담긴 그의 처절한 고백을 읽으며 내 생활을 돌아봤다. 나는 비교적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삶’을 추구하는 편이라고 자신했는데, 나의 시계 역시 항상 미래를 향해 있었다. 아니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그런 삶을 산다. 집과 자동차, 아이 교육, 그리고 더 많은 성취와 노년 준비 등을 위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내게 현재를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전셋값이 폭등하면서 내게도 빨리 내 집을 장만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좀 더 높은 성취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한 불만도 항상 있다. 내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고민들은 내 머릿속 일정 부분을 차지하며 내 행복을 갈취하고 있다. 아이에 대한 욕심들도 점점 커지고 있는 중이었고, 막연하게 정체모를 미래에 대한 불안도 있었다. 책을 읽으며 실컷 울고 나니 가슴이 후련했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는 스트레스가 많았었나보다. 책을 다 읽으니 손에 꽉 움켜쥐고 있던 그 많은 욕심들을 ‘탁’ 내려놓는 기분이었다.
 
결국 이것저것 다 버리고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을 따져보면 삶과 죽음만 남는다.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던 법정 스님의 말씀도 떠올랐다. 이 책 제목처럼 내 곁의 아이들과 남편, 또 부모님, 친구와 동료들 등 내게 의미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안아주고 행복한 시간들을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어제와 같은 오늘도 없고, 오늘과 같은 내일도 없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겨넣었다. 내 주변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책에서는 또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엄마를 잃어버린 아들이 엄마의 죽음을 애도하고 서서히 받아들이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또 강씨가 아내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나라 병원이 죽음을 대하는 방식과 의료분쟁조정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가족.jpg » 가족이란 슬픈 일이 있으면 슬프다고 맘껏 말하고,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엄마의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한 5살 아이의 상실감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강씨는 엄마의 죽음을 아이에게 전달할 지 말 지부터 고민한다. 아내와 이별한 지 열흘째 되던 날, 그는 후배의 추천을 받아 영유아아동상담센터에 가 아이의 심리 상태에 대한 상담을 한다. 심리 검사 결과 아들 민호는 갑자기 연락이 두절된 엄마로 인해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또 남은 가족들도  그렇게 갑자기 자신을 떠나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 불안감은 공공장소에서 가족이 바로 옆에 있지 않으면 울음을 터뜨린다거나 항상 아빠 손가락 하나를 붙잡고 있는 등의 행동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민호는 엄마가 보고 싶어도 절대 입밖으로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엄마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는 강씨에게 상담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민호는 아빠가 슬퍼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엄마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는 걸 스스로 느끼고 있어요. 아이들은 느낌에 강해요. 아이들은 대화를 언어로 하지 않아요. 바로 느낌으로 하지요. 집안 분위기, 사람들 표정, 이런 걸 느끼면서 상황을 받아들여요.”
 
강씨는 “아이를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할까요?”를 묻는다. 슬픔의 파도가 그를 덮치고 있지만, 아빠인 그는 자신보다 아이를 어떻게 구할 지 묻는다. 가슴이 아리면서 따뜻해졌다. 상담 교수는 더 많이 안아주고, 아이와의 관계를 쌓으라는 처방을 준다. 민호는 큰 슬픔을 겪을 것이고, 그 다가오는 슬픔은 결국 민호 혼자서 견뎌내야 한다고 교수는 말해준다. 다만 그 과정에서 아빠와 가족들은 민호 곁을 든든하게 지키며 아이가 속에 있는 감정을 풀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했다. 슬프면 슬프다고 아빠 앞에서 울고, 기쁘면 아빠 앞에서 기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심리 전문가가 장난감 놀이 등을 통해 3개월동안 아이의 심리 상태를 보며 친밀감을 쌓은 뒤, 상담 교수는 드디어 아이에게 엄마의 죽음을 알리자고 한다. 강씨는 민호가 슬퍼할까봐, 또 주변에서 아들을 엄마 없는 아이라는 편견으로 대할까봐 가능하다면 아이에게 엄마의 죽음을 알리고 싶어하지않는다. 그때 교수는 아이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지 않을 경우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말해준다. 아이는 엄마가 없는 경우 생각이 두 가지 방향으로 흐르는데, 하나는 엄마가 나를 버렸다는 것으로, 다른 하나는 내가 말썽을 많이 피워 엄마가 떠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전자라면 엄마에 대한 기억이 나쁘게 남아 폭력성을 띌 수 있고, 후자라면 자신을 학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혼이든 사별이든 부모의 부재는 자칫 아이를 폭력적인 아이로, 아니면 반대로 자학하며 자존감이 없는 아이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이처럼 강씨가 내밀한 아이의 심리상담 과정과 그 과정마다 강씨가 경혐한 것들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각 단계마다 기록된 강씨의 심리 상태와 깨달음은 일상 생활속에서 우리가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사랑은 곧잘 나를 향한 사랑이었다. 어쩌면 민호가 받을 상처만큼이나, 사실을 전달할 때 내가 받을 상처를 감내할 수 없을 것 같은 공포 때문에 민호에게 사별 소식을 미뤘다. 사랑은 나로부터 시작해 상대에게서 끝나야 하지만 나로부터 시작해 나에게서 끝났다. 내가 슬픈 것이지 아이가 슬픈 것은 아니었는데, 내 감정이 아이와 똑같을 것이라고 아빠인 나는 착각했다. 내 감정에만 집중한 결과 아이에게 어떻게 행동하고 말을 해야 할 지 주저했다. 이기심은 나와 모든 사람의 감정이 동일한 것이란 착각 속에서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분명 아이에게 엄마 소식을 전하지 않았던 아빠는 이기적이었다. 민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 전해주는 일이었다.”
 
아이를 생각한다며 아이 엄마의 죽음을 감추고 싶어했던 아빠의 이 놀라운 성찰을 보라. 아이에게 진실을 전달할 때 자신이 받을 상처, 아이가 슬퍼하는 것을 보며 자기가 너무 슬퍼할 것 같아 두려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이기심을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아이에게 진실을 말하는 과정과 그 이후 극복하는 과정도 세세하게 기록한다.
 

heart-947440_960_720.jpg » 미루지 않는 행복, 지금 꼭 안아줄 것.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들을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많은 일들을 한다. 결국 따져보면 그 모든 일들은 자신을 위한 것인 경우가 많다. 아이를 위해 수십개의 학원을 보내지만 결국 그것은 아이를 자신의 성취의 도구로 삼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위한답시고 더 나은 유모차와 더 좋은 장난감을 사들이지만, 결국 그것은 자신의 만족감을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 아이나 남편 또는 타인때문에 짜증나고 힘들고 화가 난다고 말하지만, 짜증과 분노와 힘듦의 끝엔 자신의 상처나 욕망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상의 모든 일들이 나로부터 시작해 나로부터 끝나는 경우가 정말 많다. 그런데 그렇다는 사실을 우리는 아예 모르거나, 아니면 모르는 척 하거나, 부인한다. 나로부터 시작해 나로 끝나지 않고, 나로부터 시작해 상대방에서 끝날 수 있는 사람은 삶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른 삶을 선택하려면 먼저 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인식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나의 존재 방식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기회를 제공한다. 
 
강씨는 엄마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아이의 마음을 보듬는 과정 속에서 결국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육아 휴직을 하고 다른 업무를 하기도 했지만,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은 아이 곁을 지키는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의 블로그(http://blog.naver.com/areopagi)를 살펴보면 그는 지난 9월부터 전문 상담심리 전문가를 꿈꾸며 대학원에 입학해 심리상담을 공부하고 있다. 그의 블로그에는 ‘심리학으로 육아하기’‘심리학으로 일상’‘주부 아빠의 행복일기’등등의 코너가 있고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겪고 있다. 자신의 슬픔을 그런 방식으로 승화하고, 아이는 물론 다른 사람들의 마음까지 안아주고 싶다는 그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연말이다. 지난 한해를 뒤돌아보며 지인들과 술을 마시며 시끌벅적하게 보내는 것도 좋지만, 조용히 차 한 잔 마시며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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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