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서 시댁 이야기 그만하라고요? 공지사항

04553622_P_0.JPG » 한겨레 자료.

명절이 끝나면 여성들이 찾는 커뮤니티나 인터넷 카페에서는 단골로 올라오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시-월드’에 관한 이야기다. 며느리 앞에서 아들 자랑만 늘어놓는 시부모님, 계속 경제적 도움만 바라는 시댁 식구들, 차례상 준비부터 음식 만들기, 설거지에 청소까지 각종 가사 노동을 너무 당연하게 며느리에게만 시키는 시댁 분위기, 왜 같은 자식으로 태어났는데 시댁 먼저 가고 친정은 그 다음 순서인지에 대한 여성들의 울분까지 여성들이 온라인에 쏟아놓는 이야기들은 정말 다양하다. 
 
해마다 이런 일들은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언론에서는 어떻게 명절 문화를 새롭게 바꿀지, 명절 때 가족끼리 서로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은 무엇인지, 또 새로운 명절 문화로 행복해진 가정들을 소개하는 기사들을 쏟아낸다. 

여느 때처럼 관련 기사들을 읽고 있는데, 한 기사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한 포털에서 20만 명 이상이 읽은 기사이고, 댓글이 많이 달린 기사여서 더욱 눈에 띄었다. 바로 <한국일보> 10월1일자 28면에 소개된 ‘시댁 욕하실 분? 끼리끼리만 공감하는 사회’라는 제목의 기사다. 
 
기사의 앞머리를 잠깐 보자. 
 
추석 연휴가 끝난 30일. 20, 30대 여성들이 주로 찾는 한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는 시댁 식구와 명절을 보낸 며느리들의 경험담이 400여개나 올라왔다. 시어머니나 시누이와 다툰 이야기, 자신 편을 들어 주지 않는 남편을 성토하는 글이 게재되면 어김없이 맞장구를 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한 회원은 아예 ‘저랑 채팅으로 시댁 욕하실 분’이라는 제목을 올리고 시댁을 흉볼 사람을 찾기도 했다. 해당 카페를 즐겨 찾는 A(37)씨는 “남편과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말 꺼내기를 포기했다”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하소연하고 그들의 위로에 위안을 받는다”고 말했다. 
 
비슷한 지위에 있거나 이해관계가 맞는 무리 안에서만 이뤄지는 ‘끼리끼리’ 공감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측은지심(惻隱之心)’같은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보편적 공감은 이제 옛말이다. 공감도 맘에 맞는 사람끼리만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가뜩이나 세대, 계층, 지역, 이념으로 쪼개진 한국 사회의 분절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 같은 배타적이고 선별적인 공감 세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자이자 소수자로 분류되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하 생략) 

기자가 기사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 요지는“세대, 계층, 지역, 이념으로 쪼개진 한국 사회의 분절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고,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미디어의 발달로 공감의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끼리끼리만 공감하고 사회가 분절화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담은 기사다. 기자의 문제 의식에 어느정도 나도 동의한다. 지역, 계층, 성별, 인종, 세대 등으로 나뉘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만 대화를 나누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배척하는 문화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최근 각종 미디어 발달로 이런 현상이 심화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사를 읽으며 나는 상당히 불편했다. 기사 내용에 전적으로 공감되거나 동의할 수 없었다. 이 기사에서는 결혼한 여성의 삶에 대한 이해 부족이 확연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사는 외국인이나 여성, 남성들을 혐오하는 글을 올리고 끼리끼리 모여 자신들의 잘못된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사람들과 시댁에 관한 불만을 이야기하는 여성들을 동일한 그룹으로 취급한다. 지역, 계층, 성별 등을 이유로 타인을 차별하는 행위와 가부장제라는 이데올로기가 여전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시댁에서의 경험을 온라인을 통해 공유하는 행위는 분명이 결이 다르다. 

전자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하고 사회의 구습과 악습을 성찰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강자의 ‘끼리끼리 공감 문화’라면, 후자는 불합리한 사회 구조 속에서 약자인 여성들이 ‘측은지심(惻隱之心)같은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보편적 공감’을 얻으려는 행위이다. 여성들이 온라인에서 시댁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몸부림이지 시댁이나 남편을 무조건 배척하려는 게 아니다. 끼리끼리가 아니라, 시어머니나 남편들이 어떤 목소리로든 동참해 서로의 인식과 처지에 대해 이해하고 더 나은 방안을 찾을 수 있다면, 아마도 여성들은 얼마든지 공간을 열어놓고 환영할 것이다. 
  
여성들이 이렇게 온라인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쏟아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00178946_P_0.JPG » 대나무숲. 한겨레 자료 사진.

온라인에 시댁과 남편에 대한 불만을 썼던 ㄱ씨는 “공감을 받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ㄱ씨는 남편에게 시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호소해도 제대로 공감받아본 적이 없다고  전한다. 심지어 ㄱ씨 남편은 명절에 각종 노동으로 힘든 아내의 심정은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는 고향이 멀지 않아 좋은 것 아니냐”는 말을 해 부부 싸움을 한 적도 있다. ㄱ씨는 또 “한 번은 친한 친구에게 시댁과 남편 관련 불만을 잔뜩 얘기했는데, 나중에 친한 친구랑 남편이 함께 만났을 때 곤란한 일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며 “그 이후로는 친한 친구에게도 시댁이나 남편 관련 얘기는 안하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에 내 가슴 속 얘기를 털어놓게 됐다”고 말했다. 

남성과 동일한 교육을 받고 성별에 따라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란 30~40대 여성들의 경우 명절 때 시댁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의 폭은 어쩌면 어머니 세대보다 더 클지 모른다. 인터넷 사용과 에스엔에스 사용에 익숙한 세대인 이들은 각종 미디어를 이용해 결혼 전에는 미처 몰랐던 이 불합리한 세상에 대해 하소연할 수밖에 없다. 온라인에서는 지역, 지위, 성별에 상관없이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끼리 공감하고 소통한다. 그런 과정속에서 여성들은 ‘내가 느끼는 이 분노의 감정이 틀리지 않았구나’‘나만 혼자 이런 고생을 하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사실도 확인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받으면서 정서적 어려움도 헤쳐나가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문제 상황에 대처했는지에 대한 정보도 얻는다. 
  
물론 온라인에서 어떤 문제에 대해 하소연하고 불만을 제기한다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어떤 이들은 우리 사회의 가부장제를 타파해야하는데 여성들이 그저 온라인에서 한번 푸닥거리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버려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 않은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를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들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들에 대해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녀 평등 문화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꾸준한 실천 하나하나가 쌓여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내가 감명깊게 읽은 책인 <타임 푸어>에 소개된 미국의 직장문화와 가족정책을 바꾸는 새로운 문화운동인 ‘엄마 권리선언’도 참고해보자. 이 책에 따르면, 미국에는 회원이 100만 명에 달하는 ‘맘스라이징’이라는 단체가 있다. 미국 최대 진보성향 정치 사이트인 무브온의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인 조앤 블레이즈와 또 다른 공동 설립자인 로-핑크라이너가 이 단체를 만들었다. 이들은 온라인을 이용한 새로운 문화 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맘스라이징 지도자들은 인터넷을 활용해 분노하고, 좌절하고, 힘겨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한다. 블레이즈는 “우리 사이트에 올라온 이야기들은 회원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해줍니다. 기자들도 우리 사이트를 보면 딱딱한 통계가 아닌 진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가장 중요한 건 국회의원들에게 그들이 미처 생각지 못하는 실질적인 문제에 관해 알려주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맘스라이징 지도자들은 시간에 쫓기고 심신이 피로한 회원들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항의 방식을 제안한다. 그들은 잠깐 시간을 내 국회의원에게 짤막한 이메일을 보내고, 트위터에 링크를 클릭하거나, 웹사이트 이야기 은행에 댓글을 달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올리는 방식으로 새로운 문화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아예 여성들의 경험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구체적 정책 변화로까지 도모하고 있다니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성폭력 피해 여성들, 마을공동체 청년들, 시민활동단체 활동가들을 위한 글쓰기 강좌를 열고 최근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는 책을 펴낸 은유씨는 책에서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자는 누구나 약자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의 고통, 성폭력 피해의 고통을 남성의 언어로 설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피해자의 언어가 필요하다. 자기 언어가 없으면 삶의 지분도 줄어든다”고 말한다. 
 
성폭력 피해 여성들은 물론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여전히 힘든 나날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남녀 평등 시대가 온 것처럼 떠들어대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명절 때마다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임신·출산·육아라는 이유 때문에 해고당할 위기에 처해 있고, 믿고 맡길 만한 보육기관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른다. 따라서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삶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언어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온라인에서 시댁 이야기 그만 좀 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묻자. 당신은 왜 아직도 시댁에서 저런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 있느냐고, 또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이냐고 말이다. 온라인에서 여성들이 “명절이라 즐거워요”“명절이라 행복해요”라는 경험담들이 쏟아지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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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