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도 도시 농부!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물주기.jpg » 씨앗을 심은 뒤 물을 충분히 주고 있다. @양선아

 

 

집에서 버스로 세 정류장만 가면 시에서 운영하는 청소년수련관이 있다. 시설도 깨끗하고 괜찮은 프로그램도 많다. 딸이 초등학생이 되면서 친구와 함께 인라인 스케이트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한달 수강료 2만6천원에 인라인 스케이트 수강권을 끊었다. 토요일 오전 이불 속에서 더 뒹굴고 싶은 몸을 이끌고 오전 9시 반 아이 손을 붙잡고 그 곳에 간다. 갈 때는 힘들지만 막상 수련관에 가면 기분이 좋다. 공원이 가까워 수업 뒤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고, 수련관에서 각종 의미있는 행사도 많이 열려 무료로 즐길 수 있다. ‘공공 기관의 진가’를 맛본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나는 청소년수련관 게시판에 붙어 있는 포스터도 항상 주의깊게 본다. 괜찮은 프로그램은 없나, 또 좋은 행사는 없나 꼼꼼히 보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옥상 텃밭에 참가할 가족을 모집한다는 포스터를 보았다. 청소년 수련관 옥상에서 작은 텃밭을 가꾸는 것인데,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 친환경적으로 식물을 키우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바로 이거다! 남편에게 바로 알려줘야지~’
 
남편은 식물을 사랑한다.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는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각종 허브부터 국화, 앵두나무 등등 많은 식물을 탐스럽게 가꾼다. 내가 물을 주거나 관리하면 금방 시들어버리는 식물들이 남편의 손에만 가면 살맛 난다는 듯이 생명력을 뿜어낸다. 그만큼 남편이 살아있는 것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지극하기 때문이다. 마치 자식 키우듯 진 자리 마른 자리 봐가며 식물을 가꾸고, 적기에 물을 주고 영양을 준다. 명절 때 지방에 가야해서 집을 비워야하거나 가족 여행을 떠나게 되면 식물들을 어떻게 할 지 걱정하며 챙긴다. 그런 남편이 언젠가 차로 동네 주민센터 근처를 지나다가 “도시 농부를 모집합니다”라는 펼침막을 보더니 관심을 보였다.
 
“우와~ 저것 괜찮다~ 주말 농장은 멀리 떨어져 있고 주말마다 시간을 따로 내 가야 하니까 힘든데, 이렇게 우리 집 가까운 곳에서 텃밭 가꾸기를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 도시 농부라는 말도 좋네. 우리도 해볼까?”

 

당근 싹.jpg » 당근 싹이 나와 자라고 있는 모습. @양선아

 

텃밭 전경.jpg » 옥상 텃밭 전경.

 

식물 키우기에 도통 자신이 없는 나이지만, 남편만 믿고 무조건 오케이를 부르짖었다. 아이들에게 식물들이 자라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어 좋고, 우리가 직접 재배한 채소를 먹으면 안전하고 보람도 느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 도시 텃밭 모집은 끝난 상태였고, 관리자는 우리에게 내년에 오라고 말했다. 많이 아쉬워하는 남편 모습에 나는 잊지 않고 주민센터든 동네 주변 소식에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마침 그날 옥상 텃밭 참가자 모집 공고가 내 눈에 쏙~ 들어온 것이다.
 
남편은 집에서 그렇게 가까운 곳에 우리 가족의 텃밭을 가질 수 있다고 하니 너무 좋아했다. 집에 있는 작은 화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모듈 박스에 충분한 흙을 담아 채소를 키우고, 한 달에 한 번 전문 강사가 와서 강연과 함께 텃밭 가꾸기를 도와준다고 했다. 각종 모종과 씨앗도 제공해준다. 옥상에서 하는 텃밭 축제에도 참가할 수 있다. 8월 하반기부터 11월 말까지 진행되는데 한 구좌당 4만원이었다. 한 구좌는 큰 모듈 박스 3개를 배정받는다. 남편이 두 구좌를 신청하라고 해서 가차없이 두 구좌를 신청했다.

배추 모종 심기.jpg » 배추 모종을 심고 있는 과정 @양선아

 

 
8월 하반기 어느 토요일, 첫 수업이 시작돼 온 가족은 수련관 강의실로 출동했다. 배추 모종을 심는 법, 상추와 당근, 각종 쌈채소 씨를 뿌리는 법, 물이나 퇴비 주는 법, 친환경 벌레퇴치제 만드는 법 등등 소강연이 진행됐다. 강사는 주입식으로 가르치지 않고 퀴즈식으로 문제를 내고 답을 주는 방식으로 강연을 이끌어갔다. 이쯤에서 깜짝 퀴즈~
 
1. 가을 농사의 꽃은 배추와 무! 8월 중순에서 9월 초 김장을 위한 배추와 무를 심는다. 배추 모종을 심을 때는 50cm 정도 땅을 판 뒤 물을 흠뻑 준 다음 모종을 심는다. 모종과 모종 사이는 몇 cm 간격으로 심으면 좋을까?
 
음....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얼음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어렸을 때 논밭에서 놀아봤다는 남편은 대충 손으로 짐작을 해보더니 “30cm”라고 대답했다. 정답! 강사는 배추가 잘 자라려면 모종과 모종 사이는 호미 길이 정도 30cm 정도는 떼어서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2. 무씨를 뿌릴 때는 점뿌리기를 해야 한다. 무 씨앗은 한 곳에 심을 때 몇 개를 심을까?
 
음.... 점뿌리기라는 말도 생소하고, 씨앗은 한 곳에 하나씩만 심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보다. 이번에도 나는 잘 몰라서 침묵으로 일관하는데, 남편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3개?”하고 답한다. 이번에도 정답! 강사는 남편에게 “처음이신데 제법 아시네요. 이전에 농사 지어보셨나요?”라고 물었다. 남편의 어깨는 으쓱해진다. 강사는 “씨앗 하나는 벌레를 위해, 씨앗 하나는 새를 위해, 또 하나는 사람을 위해 뿌린다는 말이 있어요. 발아율을 높이기 위해 한 곳에 3개 정도의 씨앗을 함께 뿌려줍니다”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소강연을 마친 뒤 옥상에 올라가 아이들과 함께 직접 당근과 각종 쌈채소 씨를 뿌리고, 배추 모종도 심었다. 무 씨도 선생님이 하라는대로 3개씩 심었다.
 
도시에서 자란 나는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다. 꽃을 사랑하거나 식물에 관심이 많았던 것도 아니다. 학교에서 생물 시간은 암기 시간이었다. 광합성이니 각종 식물 구조니 너무 재미없게 가르쳤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안전한 먹거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텃밭 농사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씨를 심으면서 그 조그마한 씨앗에서 그렇게 커다란 무와 당근이 나오고, 각종 채소로 변신한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아이를 처음 임신했을 때 초음파를 보면서 내 뱃속에 있던 ‘그 작은 씨앗’이 열달 뒤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게 느껴졌을 때처럼 말이다.

 

씨앗.jpg » 씨앗들. @양선아

 

 

딸은 아빠와 정말 열심히 씨앗을 심었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옥상에서 허리를 숙여 씨앗을 심는다는 일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남편과 딸은 땀을 뻘뻘 흘리며 씨앗을 심었고 물을 주었다. 나도 옆에서 조금 거들었다. 그런데 6살 아들은 식은 땀을 흘리며 힘들어했다. 여름에 태어난 아들은 여름이 힘든가보다. “엄마, 나 죽을 것 같아. 너무 힘들어. 나랑 아래 내려가서 쉬면 안 될까?”
 
힘들어하는 아들때문에 나는 아들을 데리고 물도 먹이고 시원한 체육관에서 아들과 한참을 보냈다. 아들은 시원한 실내에서 잠시 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달리고 뛰면서 놀았다. 1시간 정도 쉬고 올라갔더니 남편과 딸은 강한 햇볕 속에서 여전히 비지땀을 흘리며 작업 마무리를 하고 있다. 기분이 좋기만 하던 남편의 얼굴이 조금 찌푸러져있더니 기어코 내게 한소리를 한다. 
 
“가족끼리 함께 텃밭하기로 해놓고 당신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놀아도 되는거야? 아무리 애가 힘들어한다고 해도 적당히 쉬고 와서 도와야지. 얼른 와서 물이나 줘~. 3일에 한번씩 와서 물줘야 하는데 그것도 내 담당 될 거 아냐? 그러면 처음에 심을 때라도 열심히 해야지. 이렇게 모든 걸 나한테 맡기냐~”
 
아들때문에 남편에게 또 한 번 혼쭐이 났다. 속으로는 ‘그래도 이 텃밭 알아보고 하자고 한 건 나라고’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도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한 남편에게 대꾸할 용기가 나지 않아 얼른 거드는 시늉을 했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텃밭에서 투닥거리며 가족 역사를 만들어간다. 모종과 씨앗을 심은 뒤 남편은 3일에 한번씩 가서 텃밭을 돌본다. 주말 다른 일들로 바빠 텃밭에 올라가보지 못한 나는 최근 3주만에 옥상 텃밭에 올라갔다.

 

쌈채소 자라다.jpg » 쑥쑥 자란 채소들. @양선아

 

수확 쌈채소.jpg » 수확 쌈채소. @양선아

 

배추벌레.jpg » 배추 벌레들. @양선아

 

‘와~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아무것도 없고 맨땅이었던 텃밭에서 어느새 쌈채소가 싱싱하게 나와서 자라고 있었고, 귀엽고 사랑스런 당근 싹들이 나왔다. 생명의 위대함과 신기함은 이런 것일게다.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기쁨이라고 해야할까. 배추도 탐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배추 벌레들도 제법 있어 아이들과 배추 벌레를 찾아 잡았다. 또 쌀뜨물에 계피를 탄 벌레퇴치제와 달걀 껍질과 식초를 타서 만든 난각칼슘액비를 열심히 배추잎 뒷면에 뿌려 주었다. 강사 선생님은 쌈채소는 많이 자라 수확해서 먹어도 괜찮겠다고 말씀하셔서 상추며 각종 쌈채소를 뜯었다. 
 
쌈채소를 뜯었으니 저녁 식사로 고기를 구워 함께 먹기로 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키운 쌈채소와 함께 먹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신나했다. 고기를 굽고 우리가 키운 쌈채소와 함께 밥을 먹는데, 그 맛이란! 싱싱한 채소를 갓 따서 먹는 맛과 마트에서 포장돼 시간이 지나 먹는 채소 맛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채소의 그 싱그러운 맛이 입안 곳곳에서 살아났다. 애초 두 번 나눠 먹으려던 쌈채소를 우리 가족은 한 번에 다 먹고 말았다.
 
이날 가장 큰 소득은 또 6살 여름이가 생채소를 먹기 시작했다는 것! 익힌 호박과 당근, 감자 정도만 먹어온 여름이는 생채소 먹는 것을 싫어했다. 오이도 먹지 않고 쌈채소는 입에 넣지도 않았다. 남편은 우리 텃밭에서 기른 것이니 한번만 먹어보고 먹지 말지 결정하자며 쌈채소에 고기를 넣어 아들 입에 넣어줬다. 처음에 아들은 인상을 찡그렸으나 몇 번 채소를 씹어보더니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진짜 맛있다! 나 더 먹을래~”
 
이렇게 놀라운 변화라니. 채소를 잘 먹지 않아 걱정이었는데, 옥상 텃밭에서 키운 채소를 먹더니 더 먹겠단다. 아이들의 입은 정직하다. 이전에 건강 기사를 쓰거나 아이 관련 기사를 쓸 때 많은 전문가들이 채소 먹지 않는 아이에 대한 대처 방법으로 텃밭 가꾸기를 제시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자신이 정성을 다해 키운 채소를 자식들이 먹는 모습을 보며 남편 또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도시 농부가 된 우리 가족, 건강·행복·여유로움을 모두 얻은 것 같아 웃음이 절로 나온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는 남편의 노동과 정성,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세상에는 공짜는 없으니까. 여러분도 도시 농부가 될 기회가 있다면 한번 도전해보길!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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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