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순환 고리 `엄마의 죄책감을 벗어던져라

“나 잠자기 싫어! 엄마랑 놀고 싶단 말야~ 엄마랑 스티커 붙일거야!”
5살 동빈이(가명)는 밤 11시에도 엄마와 놀겠다고 떼를 쓴다. 광고 기획자인 엄마 이시형(40·가명)씨는 몸이 녹초가 돼 집에 왔지만 아이와 놀아준다. 이씨는 “몸은 피곤하지만 하루종일 엄마를 기다린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 아이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준다”고 말했다. 아이랑 놀아주다보면 금세 밤 12시. 눈밑 다크써클이 짙어진 이씨는 다음날 회사에서도 아이가 걱정돼 안절부절이다. 무릎이 안좋은 시어머니가 동빈이와 잘 놀아줄지, 혹시 안전 사고는 생기지 않을지 걱정돼 계속 집에 전화를 한다. 이씨는 집에서 전화만 와도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된다. 이씨는 “회사 일도 집중이 안되고, 내가 아이에게 엄마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 항상 미안하다”고 말했다.
 
어떤 엄마가 죄책감이 더 높나


‘내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나?’ ‘혹시 내가 아이에게 잘못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등의 생각을 하며 양육 죄책감을 갖는 엄마들이 많다. 이씨도 그런 경우다. 흔히 엄마들의 이런 죄책감을 단순한 개인의 감정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양육 죄책감 관련 연구들을 살펴보면, 모든 엄마들의 죄책감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다. 엄마가 처한 환경, 성장 배경, 성격 등의 다양한 요인들에 따라 죄책감 수준은 달라진다. 엄마들 스스로 자신이 가진 죄책감을 좀 더 객관화하고, 죄책감의 원인을 따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연구 내용들을 종합하면,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모성 이데올로기가 강한 사람일수록 죄책감이 강하다. 이런 사람들은 대리 양육자가 아무리 아이를 잘 보살펴줘도 엄마가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또 양육맘보다는 직장맘일수록 죄책감을 더 많이 갖는다. 양육맘은 24시간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아이에게 질이 높은 양육을 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느끼지만, 직장맘은 “함께 하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에 죄책감을 갖는다.

세번째로 아버지의 양육 참여도에 따라 엄마의 죄책감이 유발하는 부정적 양육 태도의 정도가 달라진다. 죄책감을 많이 느끼는 엄마들의 경우, 아버지의 양육 참여도가 낮으면 아이들에게 통제나 거부의 태도를 갖는 부정적 양육행동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외에도 엄마가 완벽주의적 성격이 강할수록 엄마의 죄책감은 높고, 나이가 어린 엄마일수록, 여자 아이보다 남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일수록 죄책감을 많이 느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엄마의 죄책감, 그 후폭풍


이렇게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 엄마의 죄책감은 엄마 자신과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최명선 아동청소년상담센터 맑음 소장은 “죄책감이 높은 엄마들일수록 불안감도 많고 우울감도 높다. 이런 엄마들은 양육 효능감이 떨어져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양육 태도를 보인다. 엄마들의 부정적 양육 태도는 아이의 사회성이나 (감정, 인지, 행동) 조절 문제 등에 영향을 미쳐 악순환이 되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최 소장이 말하는 부정적 양육 태도란 △아이를 자꾸 통제하려는 태도 △아이를 과잉 보호하는 태도 △훈육해야 할 시기에 적절한 훈육을 못하고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태도를 말한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많은 엄마는 자신의 정서적, 체력적 한계를 넘어설 정도의 역할을 하다 스스로 지치게 되면 아이에게 짜증이나 폭발적인 화를 낸다. 이 과정에서 아이가 부적절한 행동을 하거나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을 하기라도 하면 강압적인 방법을 쓰거나 벌을 주기도 한다. 반면 과도한 죄책감에 자녀에게 물질적으로 과잉보상하기도 하고, 과잉애정을 쏟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적절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너무 부끄러움이 많거나 자기 혼자만 잘난 ‘왕’이 되거나 공격성이 많거나 외로움을 잘 타는 아이로 자라게 된다. 결국 아이의 사회적 유능감이 떨어지게 돼, 친구와의 관계 등에도 문제가 생기게 된다. 앞의 이씨의 사례에서도 밤 11시면 아이가 잠을 자야 하는 시간인데도, 엄마는 적절하게 훈육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계속 부모가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남과의 관계에서도 자기가 원하는 것만 쟁취하려 들 수 있다.

부모의 양육 태도가 부정적인데, 엄마의 죄책감까지 높다면 아이의 사회적 유능감 정도는 더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주영 동덕여대 아동학과 교수는 “엄마의 죄책감이 높으면 엄마가 잘할 수 있는 부분도 죄책감 때문에 더 못 발휘하게 된다. 아이 문제로 힘들어하는 부모들에게 바람직한 양육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엄마의 과도한 죄책감을 덜어주는 등 심리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의 죄책감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사회적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다문화정책센터장은 “직장맘들이 더 죄책감을 느끼는데 이것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사회적 제도가 부실한 탓이 크다”고 말했다. 홍 센터장은 “우리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양육맘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 초등학생 시기가 되면 엄마들의 심리적 갈등은 더 깊어진다. 이 시기에 과도한 죄책감으로 직장을 그만두는 엄마들이 많다. 수업 시간을 연장해 아이들이 학교에서 오후 3시까지 안정감 있게 생활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방과 후 돌봄서비스 강화나 기업의 장시간 노동 문화 개선의 필요성을 주문하면서 “보육 정책이 취업맘들이 제대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촘촘히 설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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