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파'와 `반트피라'를 아느냐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04742895_P_0.jpg » 한겨레 자료사진 “선아야, 나 요즘 베이비트리 끊었다.안봐!”

“네? 왜요? 왜 끊어요?”

“베이비트리 보고 있으면 화가 나. 세상 사람 다 행복한데 나만 불행한 것처럼 느껴져. 도저히 화가 나서 계속 볼 수가 없어. 베이비트리에 육아기 쓰는 사람들 보면 왜 그렇게 행복한 거니? 세상 사람 대부분은 남편한테 불만투성이고, 아기 키우기 힘들어 죽겠고, 시댁은 미워 죽겠고, 사회에 불만이라고! 그런데 베이비트리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남편들은 어쩌면 그렇게 잘하고, 시댁하고도 원만하고, 아이들하고도 그렇게 잘 지내? 육아기 쓰는 남자들은 심지어 그렇게 착하냐고! 너무 현실과 괴리감이 느껴진다고~ 너 그거 알아? 우리 사내에 트리파와 반트피가 있는거? 난 반트리파야!”

(다른 후배 나타나 합석) “크크크. 선배 또 그 얘기 하고 계세요? 트리파와 반트리파. 선배 저도 반트리파예요. 그리고 선배 베이비트리 말고도 페이스북도 하면 안돼요. 거기에도 트리파 많아요. 페이스북 보고 있어도 열폭하잖아요. 다들 어쩌면 그렇게 행복해. 쳇. 나 페이스북 안보잖아요. 오늘 00가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렸는데, 남편이 요리를 했더라고요. 00이도 트리파야. 그 사진 보는 순간 화가 울컥 났다니까요.”

(또 다른 선배) “어머, 어머. 나도 완전 동감이야. 나처럼 애 없는 사람은 아이 이야기만 나와도 짜증나. 나는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알고 말도 못했는데 완전 동감이야. 와, 이거 치유다. 완전 치유.”

“야! 긍정의 힘도 중요하지만 말야. 분노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아? 긍정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 10%라면, 분노의 힘으로는 90%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베이비트리에는 긍정의 힘이 너무 많아~ ”
 
지난주 금요일 밤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러 회사 앞 맥주집에 앉아 한 선배를 붙잡고 홀짝대고 있었다. 우연히 마주친 선·후배들을 술자리에 끌어와 앉혔는데, 앉자마자 한 선배가 내게 이런 말들을 쏟아냈다. 아!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이라고 할까.

 

 <한겨레> 육아웹진 베이비트리는 2010년 4월 문을 열었다. 나는 2010년 둘째를 출산해 1년 육아휴직을 했고 2011년 11월부터 지금까지 2년여동안 베이비트리를 맡고 있다. 베이비트리에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소아정신과 전문의, 한의사, 상담가, 교육학자, 놀이 전문가 등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아이를 키울 때 부모들이 알아두면 좋을 좋은 정보들을 올려준다. 담당 기자인 나는 육아 관련 기획 기사와 육아서 및 교육서에 대한 서평, 육아기 등을 지면과 웹진에 쓴다. 나는 또 베이비트리에 좋은 글을 써줄 필자들을 물색하고, 필자들에게 원고를 써달라 부탁한다. 웹진 관련 전체 방향에 대해 기획운영팀과 함께 모색한다. 또 육아 파워블로거와 <한겨레> 기자들이 베이비트리에 올려주는 생생한 육아기는 인기 만점이다. 속닥속닥 게시판에는 일반 독자들이 다양한 일상 얘기를 올려주고, ‘책 읽는 부모’를 모집해 육아서와 교육서를 읽고 서평도 함께 공유한다. <반갑다 친구야>라는 기부 활동을 하는 엄마 모임과 함께 ‘먼지 쌓인 가방을 지구촌 아이들에게’라는 공익캠페인도 진행했다. 베이비트리와 인연이 있는 전문가들을 모시고 ‘부모특강’을 열기도 했다. 지난 5월 창간 기념 지면 개편이 되면서 아예 신문에 베이비트리 면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지난 2년여 동안 정신없이 달려왔기 때문일까. 요즘 나는 에너지가 바닥 난 느낌이다. 베이비트리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지만 내 기대만큼 무럭무럭 자라지 않아 조바심이 난다. 나 역시 부모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기사를 쓰고 있는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기사를 쓰고 있는지 스스로 반문하고 있던 차였다. 그렇게 고민도 많고 생각도 많은 내게 선배는 직설적으로 베이비트리의 단점에 대해 얘기해준 것이다.
 
머리가 상쾌해졌다. 고통스럽지만 뭔가 알아야 할 진실에 직면한 느낌이었다. 내 생각의 틀을 전환시키는 좋은 계기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동안 나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아빠들보다는 전문가들을 더 많이 만나고 연락했다. 엄마·아빠들을 만나도 자기 나름의 육아 원칙을 갖고 자신의 육아 방식을 구현해낸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그런 전문가들과 그런 부모들을 통해 육아에 있어 어떤 정답, 바람직한 방향, 어떤 영감을 제시하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런데 과연 육아에 정답이 있는 것일까? 부모들이 처한 상황은 저마다 다르고, 아이들마다 다른 기질과 특성을 지녔다. 일정 가이드라인이 있을 수 있지만,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는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모든 부모들은 정답을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 정답대로 살고 싶지만 아이들과 함께 그렇게 살아갈 조건과 환경이 안돼 더 힘들고 서글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베이비트리를 통해 ‘하우 투’(how to) ~’식의 육아 방법을 제시하려 했는데, 오히려 엄마·아빠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기사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울분, 그들의 불만, 그들이 어떤 것을 바라는지를 들어보고 그것을 지면과 웹진에 구현해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려면 육아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오히려 현실 속의 엄마, 아빠 얘기들을 더 많이 듣고, 그들을 더 많이 만나야 할 것 같다. 그래야 기사든 베이비트리 방향이든 답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새로운 이정표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아이를 오후 9시에 찾기로 했다는 그 선배는 내게 울분과 분노의 감정을 토한 뒤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선배가 잠깐 동안 해준 베이비트리에 관한 이야기는 내게 피가 되고 살이 되었을 것이다. 술을 적당히 마시고 밤 12시가 다 돼 회사에 돌아와 내 자리에 앉았다. 술 먹기 전 먹구름처럼 끼어 있었던 마음 속의 심난함이 조금 걷혔다. 그리고 베이비트리를 끊었다는 그 선배가 꼭 다시 베이비트리를 다시 보도록 만들게 하고 싶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 선배의 분노가 내게 동기부여가 됐다. 그리고 그 선배의 질책의 이면에서 나는 또 다른 희망을 끄집어냈다. 트리파와 반트리파로 나뉠 정도로 베이비트리가 사내 아이 키우는 사람들에게 존개감이 있구나 하는.... 아예 존재감이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안티도 어느정도 존재감이 있어야 가능한 거니까 말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이 글을 읽는 베이비트리 독자분에게도 부탁 드립니다.  베이비트리에서 어떤 기사를 만나고 싶고, 어떤 글을 만나고 싶고, 어떤 정보가 필요한 지 적극적으로 말씀해주세요. 앞으로 베이비트리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또 베이비트리에 익명으로라도 엄마로서의 불만, 아빠로서의 불만, 사회에 대한 불만, 시댁에 불만 등 분노의 목소리를 들려줄 만한 필자 있다면 적극적으로 베이비트리 속닥속닥 게시판에 글을 남겨주겨주세요. 이 시대의 엄마 아빠를 대신해 시원하게 결혼, 임신, 출산, 육아의 실태를 고발해줄 만한 필자 있다면 적극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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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