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고생길? `본전' 욕심 버리면 즐거운 행복길

영유아 자녀와 여행하기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들이 여행을 하겠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다들 뜯어말린다. “아이와 여행하면 개고생 한다” “아이와 여행갔더니 아이가 아프더라”며 “어릴 때 여행 다 소용없다. 어느 정도 컸을 때 여행하라”고 충고한다.

그런데 최근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영유아를 데리고 여행을 떠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국내 최대 여행 기업 하나투어가 올해 상반기 4~7살 고객을 집계해보니 총 1만3900명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만900명보다 27.5% 늘어, 전체 고객 증가율(21.4%)을 웃돌았다. 이 회사는 또 지난 2009년부터 만 3개월 이상 만 4살 미만 아이를 동반한 특허상품을 선보였는데, 최근 이 상품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 상품 이용고객은 올해 1분기에는 전년 대비 50% 이상, 2분기에는 35% 정도 늘었다. 송원선 하나투어 홍보팀 대리는 “이 상품은 젖병소독기, 방수 기저귀, 물놀이 세트 등 영유아 용품을 지원하고 외출시 육아 도우미가 함께 가서 아이를 돌봐준다. 아이 동반 여행 때의 불편한 점을 개선해주니 부모들이 고민을 덜하고 떠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서점가에는 ‘아이와 떠나는 여행’에 대한 책들이 연이어 출간되고, 여행 관련 누리집 카페에는 ‘아이와 떠나기에 좋은 여행지’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 짐 챙기기’에 대한 문의도 쏟아진다.  

그렇다면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들은 왜 “사서 고생”이라는 여행에 나설까? 6살 아이와 함께 한 달에 3~4번 정도 국내 여행을 하는 작가 홍미경(38)씨는 “여행 기자로 일하다 출산하면서 회사를 그만뒀다. 24시간 아이와 아파트라는 닫힌 공간에 있으니 점점 우울해지고 내가 우울하니 아이도 까칠해져 갔다. 아이가 4개월이 된 시점부터 함께 여행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여행을 좋아한 그 역시 ‘아이와의 여행’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단다.

그런데 여행의 치유 기능은 놀라웠다. 여행을 통해 엄마의 답답함이 해소되자 그제야 아이가 온전히 눈에 들어왔고, 엄마가 행복해지자 아이 역시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한 번 여행의 달콤함을 맛 본 사람은 다시 떠날 수밖에 없다고 그는 자신있게 말한다. 

3년 전 9살, 5살 아이를 데리고 제주도에서 한 달 동안 살았다는 전은주(42)씨는 “안 힘들 때를 기다려서 여행하려면 평생 여행 못 갈 것 같았다”고 말했다. ‘힘들지 않다’가 아니라 ‘힘들어도 좋은 부분이 많아’ 그는 여행을 떠난다. 최근 그는 두 아이와 함께 파리 여행을 다녀왔고, 지난해에는 뉴질랜드로 여행을 다녀왔다. 전씨의 경우 평소 규칙적이고 단조로운 생활을 하다 일 년에 한 번 장기간 여행을 떠난다.

아이와의 여행을 즐기는 부모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이는 최고의 여행 동반자”라고 말한다. 전씨는 “아이들의 시각은 아주 독특해서 여행지 자체를 새롭게 해석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남들은 사진 한 장 찍으면 끝나는 곳에서 아이들은 한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이 좋아할 줄 알았던 곳에선 언제 집에 가냐고 투덜거리기도 한다. 최근 전씨 가족이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아들은 그에게 “엄마, 왜 사람들은 다 같이 이 그림(모나리자)을 핸드폰으로 찍어요?”라고 물었다. 모나리자 그림에만 정신이 팔려있던 그는 그제야 그림 앞에 양떼처럼 몰려들어 핸드폰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들의 그 물음 때문에 전씨 가족들은 그림을 마음에 새기는 것과 핸드폰으로 찍어서 남기는 것의 장단점에 대해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아이들과 여행하면서 아이의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부모들에게는 또 하나의 재미다. 홍씨의 아들은 돌이 지나고 만 2살까지 공격성과 폭력성이 강했다. 그는 아들이 좋아하는 바다를 아들과 함께 자주 찾았다. 바다가 주는 해방감에 젖어 아들은 모래놀이를 즐겁게 했다. 홍씨는 “자연의 힘 때문인지 만 3살이 될 즈음 아들이 천진난만하고 순한 아이가 됐다”고 말했다. 낯가림이 심하던 전씨의 딸도 여행을 하면서 좀 더 밝고 적극적인 아이로 변했다. 모르는 사람에겐 말 한번 건네지 못하던 딸이 한라 수목원 산책로에서 만난 모르는 남자 아이에게 말을 건넬 때 전씨는 속으로 “어머, 어머”를 외치고 말았다.

아이와의 여행이 즐겁다는 두 엄마에게 아이와 행복하게 여행하는 자신만의 비결을 물었다. 신기하게도 둘 다 “본전 의식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첫 번째로 강조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것 이것은 보고 가야지’ ‘이것은 꼭 해봐야지’라는 욕심을 버려야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맘껏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전씨는 여행 계획을 철저하게 짠다. 실내 방문과 실외 체험을 번갈아 넣고, 실내 방문이 겹칠 땐 그 사이에 식사나 간식 시간을 넣는 등의 방법을 활용한다. 그러나 그것은 계획일 뿐이다. 계획대로 안돼도 괜찮다는 마음을 항상 먹고 있으면 아이와의 여행이 힘들지 않다. 홍씨는 “여행이란 아이와 부모에게 충만한 감성과 자유로움을 주고, 행복함을 주는 것이다. 자꾸 아이에게 뭔가 기억하게 하려 하고, 공부시키려 하면 아이에게 여행은 즐겁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와서 아이가 굳이 뭔가 기억해내지 못해도 억울한 감정 따윈 없다. 

 전씨는 “행복한 여행을 위해 남편을 사랑해야 한다”는 다소 ‘엉뚱한’ 처방을 내놨다. 그는 남편이 없는 여행에서는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아빠를 더 열심히 칭찬하고 그리워한다. 남편이 있는 여행에서는 부부싸움을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만큼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홍씨는 아이와의 여행에서 안전과 건강은 행복한 여행의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8개월 이전 아이와의 여행은 될 수 있으면 리조트 여행을, 두 돌 지난 아이와의 여행은 아이의 성향과 부모의 성향을 함께 고려한 여행을 권했다. 18개월 이전 아이들은 아무래도 면역력이 약하고 낮잠 시간이 길기 때문에 숙소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 비용이 들더라도 리조트 여행이 낫다는 것이다. 그는 또 영유아와 함께라면 “해열제, 밴드, 소독약 등 상비약은 필수이고, 비상시를 생각해서 응급의료전화번호(1339)를 핸드폰에 저장하라”고 했다.

시인이자 방송작가인 이병률씨는 그의 여행산문집 <바람이 좋다 당신이 좋다>에서 “여행은 시간을 벌어오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또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감히 시간을 사겠다는 모험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전씨와 홍씨 둘 다 이병률 시인처럼 여행을 통해 가족과 온전히 함께 있는 시간을 벌고, 그 시간에 몰입했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을까.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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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