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독방에서 자결한 모사드 요원의 진실은

죄수명 X의 진실: 독방에서 목숨을 끊은 모사드 요원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나

2010년 12월, 24시간 감시되는 이스라엘의 감옥에서 한 사내가 목숨을 끊었다. 그의 이름도, 정체도, 죄목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이스라엘의 철저한 언론 통제로 ‘죄수명 X(Prisoner X)'사건은 2년이 넘도록 소문만 무성한 채로 묻혀 있었다. 그런데 지난 2월, 호주의 언론에서 그가 이스라엘과 호주의 이중국적을 지닌 모사드 요원이었다고 폭로했다. 모든 언론의 관심이 이 모사드 요원의 쓸쓸한 죽음에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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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 남동쪽에 위치한 람라에 위치한 아얄론 감옥. 여기에는 라빈 총리의 암살자 이갈 아미르를 가두기 위해 만들었던 독방이 있다. 이 독방은 다른 감옥과 격리되어 있어 오직 교도관들만이 드나들 수 있다. 당연히 가장 위험한 범죄자들만을 가두어 두는 곳이다.

자살한 수감자... 이름도 죄목도 몰라

2010년 12월 15일 오후 8시 19분, 이 독방에 갇혀 있던 한 사내가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그가 누구인지, 어떠한 이유로 이 독방에 갇혔는지, 그리고 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교도관들도 그가 누구인지 몰랐고, 심지어 그의 죽음에 대한 소식도 이스라엘의 한 언론사 웹사이트에 게시되었다가 몇 시간만에 삭제되었다. 보안상의 이유로 모든 언론에 보도 금지령이 내려졌다. 자살자가 모사드 요원이라는 소문도 있었고, 이란 혁명수비대의 고위급 장성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호주발 특종 “수감자는 모사드 요원”

의외의 돌파구가 나온 것은 호주였다. 호주의 국영방송인 ABC에서는 2013년 2월 12일, 방송을 통해 당시 자살한 수감자가 34세의 벤 지기어이며, 감옥에 갇히기 전에 모사드 요원으로 일했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관련 보도가 봇물치기 시작했다. 이미 해외 언론에서 보도가 나왔기 때문에 이스라엘 내의 보도 금지령도 별 효력이 없었다. 결국 2년 넘게 숨겨져 있던 '죄수명 X의 진실'이 하나씩 백일하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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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명 X' 벤 지기어의 일생

벤 지기어는 1976년 멜버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둘 다 호주의 유대인 사회에서 유력 인사였다. 호주에서 법학을 공부한 지기어는 90년대 중반 이스라엘로 건너가 군 복무를 마치고 이스라엘 시민권을 취득한다. 그는 2001년경 다시 호주로 돌아가 로펌에서 일한다. 그리고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이스라엘의 로펌인 헤어조그 폭스 앤 니먼(HFN)에서 일한다. 그가 정확히 언제부터 모사드에서 일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각종 보도 내용과 증언들을 짜맞추어 볼 때 2004년경으로 여겨진다.

그는 2006년에 이스라엘에서 결혼하여 두 명의 딸을 두었다. 그리고 2009년,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취득하기 위해 다시 호주로 돌아온다. 보도에 따르면 지기어는 이 기간 동안 이란과 사우디 출신의 친구들도 사귀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0년경 호주의 보안정보부(ASIO)가 지기어를 심문하면서 그의 운명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보안정보부는 그가 계속 이름을 바꾸어 가면서 여권을 새로 만든 것에 대해 추궁하면서 레바논과 이란을 방문한 것이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었는지 등을 물었다 한다.

정확한 시점은 알려진 바 없으나(2월경으로 추정된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기어는 체포되어 가명으로 아얄론 감옥에 갇힌다. 호주 당국은 ABC의 보도가 나오고 이틀 후, 2010년 2월 24일에 지기어의 체포 사실을 통보받았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텔아비브의 호주대사관에서는 자신들에게 그런 정보가 전해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는 해당 정보가 호주와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사이에서 오갔음을 암시한다. 2010년 3월, 지기어의 변호인이 감옥에서 지기어를 면회했다. 변호인은 "그가 자살을 시도할 것이란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이성적인 상태였고 가능한 법적 조치에 대해 고려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2월 15일, 그는 자살로 추정되는 방식으로 사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젖은 시트를 화장실의 창에 감고 목을 매달았다 한다. 의심을 자극하는 것은, 그가 갇혀 있던 곳이 24시간 감시되는 특수 시설이었다는 사실이다. 카메라가 설치되지 않은 화장실에서 자살을 기도했기 때문이라는 해명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일간지 <하레츠>의 보도에 따르면 독방에는 수감자의 호흡과 신체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장치가 달려 있다고 한다. 50초 동안 아무런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으면 경비실에 경고 신호를 보내고 10초 후에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으면 알람이 작동한다. 사람들의 의심은 끊일 줄 몰랐다.

이스라엘 첩보작전에 호주 여권 악용 의심

호주의 보안정보부는 왜 지기어를 추궁했을까? 호주에서는 합법적으로 1년에 한 번 이름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지기어는 적어도 네 차례 이상 벤 알렌, 벤자민 버로우즈 등으로 이름을 바꾸며 여권을 새로 발급받았다. 그는 호주 당국이 의심하고 있던 이스라엘-호주 이중국적자 세 명 중 하나였다. 당국은 지기어가 이스라엘 첩보 작전에 호주 여권을 제공하기 위해 일부러 이름을 수 차례 바꾼 것으로 의심했다.

실제로 호주와 캐나다, 아일랜드, 뉴질랜드, 스위스, 그리고 노르웨이, 스웨덴 등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국가들의 여권은 첩보원들과 테러리스트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권이다. 이들 국가들은 정치적으로 중립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큰 의심을 받지 않는다. 가장 치열한 첩보전이 벌어지고 있는 중동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스라엘이나 미국의 여권을 들고 이란을 방문한다고 상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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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10년 1월 19일에 발생한 하마스 고위 관계자 마무드 알마부 암살 사건에서, 암살조 중 적어도 네 명 이상이 호주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사건에 지기어가 연루되어 있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증폭되었다. 총 26명으로 이루어진 모사드의 암살조는 두바이의 한 호텔방에서 마무드 알마부에게 약물을 주입한 후 질식시켜 살해했다. 호주, 영국, 아일랜드, 독일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고 암살 후 모두 현장에서 빠져나갔다.

사건 발생 후, 호주는 자국 여권의 악용에 대해 이스라엘에 강력하게 항의한 바 있다. 호주 정보기관의 추궁을 받고는 지기어가 모사드 작전에서 호주 여권이 어떻게 위조되어 사용되었는지를 실토하였고, 그로 인해 첩보작전에 제약을 받게 된 이스라엘이 지기어를 수감시킨 것이라는 추측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모사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전문가들은 가명으로 독방에 갇히는 것은 매우 심각한 경우라고 말한다. 호주의 정보기관에 지기어가 정보를 주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대체로 우호적인 이스라엘과 호주의 관계를 볼 때 이 정도로 대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기어가 호주의 이중첩자 노릇을 하고 있었으리라는 대담한 가설도 제기되었다.

‘죄수명 X’의 또다른 사례

이스라엘이 이름까지 숨긴 채로 독방에 가둔 사례는 지기어가 처음이 아니다. 가장 유명한 '죄수명 X'의 사례는 마커스 클링버그의 것을 들 수 있다. 클링버그는 폴란드 태생으로 가족을 홀로코스트로 모두 잃고 이스라엘로 온 화학무기 전문가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기밀 연구를 담당하는 이스라엘생물학연구소(IIBR)의 차장을 지냈다. 그러나 그는 소련의 스파이였다. 그는 대학 시절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여 2차 대전 중 소련군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이스라엘로 이주한 이후에는 이스라엘방위군에서 군의관으로 일하면서 중령까지 진급하였는데 1950년대부터 소련의 정보요원과 접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국외정보를 담당하는 모사드와 국내정보를 담당하는 신벳은 60년대부터 클링버그를 의심하였으나 특별한 혐의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클링버그는 심지어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도 통과하였다 한다. 그러나 1983년, 신벳은 클링버그를 납치하여 알려지지 않은 곳에 그를 가두고 심문을 시작했다. 열흘 후 클링버그는 사상적인 이유로 소련에 이스라엘의 정보를 넘겨주었음을 실토했다. 그는 20년형을 언도받고 텔아비브 남쪽에 위치한 아쉬켈론 감옥에 아브라함 그린버그라는 가명으로 수감되었다. 재판을 받을 당시에도 가짜 이름으로 재판을 받아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고 한다. 고령과 건강상의 문제로 가택 연금을 받게 되면서도 클링버그는 각종 감시와 도청에 시달려야 했다. 2003년, 형기를 마치고 석방된 그는 딸이 살고 있는 프랑스로 떠났다. 신벳에 의해 회유되어 이중첩자가 된 소련의 정보요원이 클링버그를 밀고했다는 사실이 재판 이후 알려졌으나 자세한 내용은 일절 공표되지 않았다.

새로이 밝혀진 사실: 헤즈볼라에 정보원 누설

이스라엘은 호주 외교통상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벤 지기어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그러나 3월 24일, 독일의 <슈피겔>과 호주의 <페어팩스>의 공동 탐사보도로 지기어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졌다. 지기어가 모사드에서 주로 했던 일은 유럽 등지에서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국가(이란, 시리아 등)와 연관된 기업에 침투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결국 현장에서 물러나 텔아비브에서 모사드 내근직을 맡게 되었다. 다시 현장에서 뛰고 싶은 마음에 그는 헤즈볼라와 연관된 유럽 사람을 이중간첩으로 고용하고자 2008년말 만났다.

지기어가 자신을 증명하려고 그에게 이스라엘의 레바논 정보원 두 명의 이름을 제공하면서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정보원이었던 지아드 알홈시, 무스타파 알리 아와데는 모두 2009년 체포되어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지기어의 헤즈볼라 연락책은 도리어 그를 속인 것이었다. 2010년 초 이스라엘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을 때 지기어는 헤즈볼라 연락책에게 추가로 전달하려던 정보가 담긴 CD를 소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첩보 현장으로 무리한 복귀 시도... 결국 비극으로 이어져

"지기어는 그가 이루지 못했던 것을 성취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욱 프로페셔널한 자와 맞닥뜨렸다." 호주의 <시드니 모닝 헤럴드>가 인용한 이스라엘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지기어의 친구들에 따르면 지기어는 공공연히 자신이 모사드에서 일한다는 것을 자랑스레 말하곤 했다 한다. "어떤 때는 그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떤 스파이가 스스로를 스파이라고 밝히겠나? 오랫동안 이곳 저곳을 드나들곤 하니 정말 스파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선 원래 자주 여행하는 사람을 두고 농담으로 스파이라고 말하곤 한다." 지기어와 군 복무를 같이 했던 친구가 <맥클래치 뉴스페이퍼스>에 한 말이다.

자신의 군 복무 경험과 함부로 누설하면 안 되는 모사드 요원으로서의 신분을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던 지기어의 성격으로 볼 때, 현장에서 물러나게 된 것은 참기 힘든 굴욕이었을 것이다. 지기어는 모사드의 상관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면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혼자만의 첩보 작전을 꾸미고 실시했지만 결과는 참담한 비극이었다. 24시간 감시되고 있는 독방에서 '자살'했다는 이유로 아직까지도 이스라엘 당국이 지기어를 은밀하게 살해했으리라 의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지기어를 죽임으로서 이스라엘 당국이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자존심과 자기 과시욕이 강했던 지기어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목숨을 끊었다고 보는 편이 보다 그럴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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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 총리 “국가안보 고려해야”
NGO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

2월 12일, 호주발 최초 보도가 나오고 닷새가 지난 17일, 이스라엘의 총리 벤야민 네타냐후는 처음으로 해당 사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보안과 정보 활동에 대한 과도한 노출은 국가안보를 심각하게 위해할 수 있다. 어떠한 논의에 있어서도 결코 안보 이익을 가볍게 여기만 안 되는 이유이다. 이스라엘의 현 상황에서 이는 중심적인 이익임에 틀림없다. 안보전력이 조용히 일하여 우리가 이스라엘에서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해달라." 한편 이스라엘 시민권리 연합(ACRI)의 댄 야키르는 2010년 당시 법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민주국가에서 당국이 국민을 비밀리에 체포하고 공중(public)이 그러한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게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지게 만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호주와 이스라엘 정보기관 알력의 산물
두 국가에게 모두 버림받은 시민의 비극

2년 넘게 잠잠했던 이 사건이 다시 점화된 데에는 호주의 보안정보부의 역할이 컸다. 호주 ABC를 통해 이 사건의 전모를 최초로 밝힌 기자에게 정보를 준 것이 바로 호주의 보안정보부였기 때문이다. 분명 모사드와 보안정보부 사이의 갈등 때문일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것이 지기어의 사망과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로 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전직 모사드 요원인 마이클 로스(가명)는 <데일리 비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호주 보안정보부의 조치를 두고 "모사드의 작전능력에도, 호주의 유대인 공동체에게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기어의 가족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고 비판했다.

서로 마주친 적은 없으나 지기어와 같은 부대 소속으로 활동했다는 마이클 로스는 지기어에 대한 모사드의 무분별한 관리에도 일침을 가했다. 호주로 몇 차례 씩이나 보내어 이름을 바꾸고 여권을 새로 발급받게 하는 것은 신분을 노출시킬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그리고 결국 그렇게 되었다). 로스는 지기어가 공중에 어떠한 위협이 되는 인물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독방에 가둘 필요가 있었는지 반문하기도 했다.

벤 지기어의 죽음은 이스라엘과 호주의 정보기관 사이의 충돌과 자존심 세고 과시욕이 컸던 한 사내가 얽힌 복잡한 사건이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과 호주 양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어느 나라로부터도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했던 한 시민이 목숨을 내던진 하나의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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