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로켓 발사: 정보실패의 새롭고도 흔한 사례

모두를 깜놀하게 만든 북한의 로켓 발사. 우리나라의 대북 정보력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던 사실이니 그렇다치더라도, 정말 미국도 몰랐던 걸까? 그런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일본 언론에서는 미국이 발사 징후를 알고서도 일본에게만 알려주고 우리에게는 알려주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한겨레의 14일자 보도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팀이 그때 당시 파티 중이었다는 겁니다. 이 기사는 FP의 The Cable 13일자(미국시간) 보도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정말 몰랐다는 게 사실입니다.

한겨레가 The Cable 보도에서 인용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어떻게 정보판단에 실패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기사 후반부 내용입니다. 물론 정보기관에서 그런 이야기를 해줄 리 없지요. 대신 북한 전문 블로그 38 North의 실패를 다룹니다. 38 North는 존스홉킨스 대학의 고등국제학대학(SAIS) 부속 한미연구소(US-Korea Institute)의 방문 연구원으로 있는 조엘 위트Joel S. Wit가 운영하고 있는, 유명 북한 관련 블로그 중 하나이지요. 조엘 위트는 과거 KEDO의 핵심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로켓 발사를 준비하자 38 North는 민간 위성 사진을 바탕으로 꾸준히 분석을 제공해왔습니다. 문제의 발사 직전에 "적어도 21일까지는 발사를 못할 듯"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것도 이곳입니다. 북한이 로켓을, 그것도 성공적으로 발사하자 38 North에서는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FP의 The Cable에서는 이 글을 잘못 소개하고 있습니다: "충분한 정보가 없었다."

아닙니다. 정보는 충분했습니다. 38 North는 서두에서 월스테터의 유명한 저서를 인용합니다. "우리의 정보기관 등이 일본의 의도와 능력에 대한 정확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 실패한 것은 적절한 자료의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적에 대한 가장 완벽한 정보를 갖고 있었다." 

문제는 수집된 정보(information)를 해석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다시 월스테터를 빌려 "적의 행동에 대한 기대를 뒷받침해주는 신호에만 주의를 쏟는 매우 인간적인 경향"을 지적합니다. 이미 북한이 언제든 로켓을 발사할 수 있다는 징후를 수집된 정보들은 보여주고 있었지만, 북한의 발사 연기 발표 등으로 그릇되게 해석을 하였다는 겁니다. 동아일보에서도 38 North의 이 글을 인용하고 있는데 번역을 잘못 해놓아서 오해의 소지가 큽니다. (“사실을 말한다면 정보수집 결과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를 위한 모든 준비를 끝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엉뚱하게 인용하고 있는데 정확한 번역은 "우리는 북한이 매우 빨리 발사를 할 수도 있다고 가설을 세울 만한 정보를 이미 충분히 갖고 있었다"입니다.)

2차대전 때도 그랬지만 특히 첨단장비들이 둥둥 떠다니는 오늘날에는 정보실패가 정보의 부족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듯해요. 오히려 충분한 정보를 쌓아놓고도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을 해버리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고방식이 문제가 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북한 로켓 발사도 정보실패의 '새롭고도' '흔한' 사례가 되었습니다.

The Cable이나 38 North 모두 이것이 북한의 기만술인지의 여부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38 North에서는 "그럴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까지 말하고요. 과거에도 종종 그랬던 것처럼 미국이나 우리나라의 정보력을 떠보려는 술수였을 수도 있지만, VIP들 차량 움직임이나 그런 것들을 볼 때 이번 경우는 순전히 미국과 우리의 정보실패였던 것 같습니다.

위기관리론에서는 종종 '부정적 사고'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그에 맞추어 대비를 세워나가야 위기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는 <시크릿> 따위의 책을 읽으며 자기최면을 거는 데에는 좋을지 몰라도 국가 차원의 상황을 관리할 때에는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트로이전쟁에서 승리한 후 아가멤논은 예언의 능력을 지닌 카산드라의 경고를 거부하고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가 마누라의 정부(그게 또 아가멤논의 사촌이었다죠?)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그 딸이 바로 카산드라입니다.(수정: 카산드라가 아가멤논의 딸이라고 잘못 기억하고 있었어요)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공주인데 전쟁이 끝나고 아가멤논의 전리품이 됩니다. 예언의 능력을 받았는데 또한아무도 그의 말에 귀기울여주지 않는 저주 또한 받은 비운의 여인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어떻게 그렇게 예언을 잘 할 수 있느냐고 묻자 카산드라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해요. "전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생각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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