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파이터, 오스트리아 정계 뇌물 스캔들

EADS가 오스트리아에 유로파이터를 판매하면서 거액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오스트리아와 독일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혐의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다. 뇌물은 당시 계약을 지지한 오스트리아의 보수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혐의가 입증될 경우, EADS가 십여 년 전에 체결한 유로파이터 판매 계약이 파기될 수 있다. EADS는 이미지에 심각한 손상을 입을 것이며, 현재 진행 중인 우리나라의 차기전투기(FX) 사업 수주에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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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공군의 유로파이터 ⓒ Austrian Armed Forces Photograph/Markus Zinnner

오스트리아가 유로파이터의 구매를 결정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3년이었다. 당시 EADS는 오스트리아 정부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대응구매를 약속했다. 그 금액은 유로파이터 계약 금액의 두 배에 달하는 약 35억 유로(한화 5조 원)로 워낙 예외적인 계약 조건이 많은 방위산업 분야에서도 극히 이례적이다. 수사 당국이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는 것은 이 대응구매가 실제로는 '검은돈'의 흐름을 감추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았는가의 여부이다. 실제로 이 대응구매에 연루된 회사들은 상당수가 그 실체가 의심스러운 '유령회사'로 밝혀졌다.

계약서에는 배임 행위가 있을 경우 계약의 취소가 가능하다는 조항이 명기되어 있다. 오스트리아 내의 여론은 이 문제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이라 실제로 계약이 취소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그렇게 될 경우 계약금을 반환해야 하며 그 부담은 앞으로 판매될 유로파이터의 가격에 그대로 반영될 것이다. 단가가 올라가고 회사의 이미지가 실추되면 향후 유로파이터의 판매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2003년 도입 결정 이후에도 잡음 끊이지 않아


EADS는 2003년, 오스트리아와 유로파이터 18대를 약 20억 유로(한화 2조 8천억 원)에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오스트리아의 전투기 사업은 시작 당시부터 잡음이 많았다. 오스트리아는 그렇게 많은 전투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반대 때문이었다. 오스트리아 사민당(SPO)을 비롯한 좌파 정당들은 심지어 2006년 총선에서 유로파이터 도입 취소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사민당이 원내 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하면서 실제로 도입 계약 취소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계약이 체결되었기 때문에 이미 전투기를 생산하고 있었던 유로파이터 컨소시엄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당시 유로파이터 측은 계약 취소에 대해 12억 유로를 요구하였다고 한다. 한편 사민당은 연정을 구성하기 위해서 원내 제2정당이었던 인민당(OVP)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인민당은 이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는 달리 기독교 우파 정당으로 당시 유로파이터 도입에 찬성했던 정당이다. 협상 끝에 오스트리아 정부는 결국 16.3억 유로에 15대까지만 도입을 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오스트리아의 유로파이터 도입 사업은 2009년에 마지막 15번째 전투기가 인도되면서 일단락되었다.

보수 정치인 수뢰 의혹… 최근 새로운 정황 포착


유로파이터 도입에 찬성한 보수 정치인들에 대한 의심은 예전부터 있었다. 의혹의 핵심에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오스트리아 자유당(FPO)의 외르크 하이더와 카를하인츠 그라서가 있다. 하이더(2008년 교통사고로 사망)는 히틀러에 대한 공공연한 찬양으로 과거 우리 언론에서도 종종 소개된 바 있는 정치인이며 그라서는 스와로브스키의 상속녀와 염문 끝에 결혼한 것으로 더 잘 알려진 전직 재무장관이다. 이 둘은 오랫동안 유로파이터 도입에 반대해오다가 갑자기 입장을 바꾸어 찬성표를 던져 많은 의심을 받았다. 특히 많은 돈이 들어간 하이더의 총선 캠페인에 EADS가 제공한 자금이 흘러 들어갔으리라는 의심이 짙었다.

유로파이터 스캔들을 파헤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이는 오스트리아 녹색당의 페테르 필츠이다. 1986년부터 오스트리아 의회에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특히 정치권의 부패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는데 유로파이터 도입 비리를 조사하는 위원회에서도 큰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위원회는 EADS와 돈세탁 네트워크의 관계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는 데 실패하여 2007년 조사를 종결하였다.

수사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것은 지난 11월경이었다. 오스트리아의 유로파이터 판매와는 아무런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이탈리아에서였다. 작년 봄, 이탈리아 경찰은 피라미드형 금융사기로 투자자들의 돈을 횡령한 투자 브로커 지안프랑코 란데를 체포했다. 란데가 굴린 돈의 상당 부분은 마피아의 자금으로 알려져 있다. 감히 마피아를 팔아넘길 엄두는 내지 못했던 란데는 그 대신 검사에게 다른 정보를 제공했다. 자신이 독일의 어느 대기업의 돈세탁을 위해 여러 개의 유령 회사들로 복잡하게 구성된 네트워크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시인한 것이다. 이 네트워크의 한가운데에는 런던 소재의 벡터 에어로스페이스가 있었다. 2005년 EADS 독일 지사와의 합작으로 세워진 이 회사는 이후의 수사에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하게 된다.

란데는 그밖에도 여기에 연루된 EADS 관계자들과 오스트리아의 에이전트들의 이름도 검사 측에 제공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검사들은 이러한 정보를 딱히 사용할 방도가 없었다. 오스트리아 유로파이터 건은 어디까지나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검사들이 조사하고 있던 사안이었다. 그래서 란데의 진술 내용은 한동안 그렇게 문서에만 머물러 있었다 한다. 그러나 우연한 계기로 녹색당의 필츠가 이 진술 내용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수사는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오스트리아 당국 “뇌물 의심 정황 충분”


이윽고 빈의 수사당국은 "EADS 도이칠란트(독일 지사)가 관계자들에게 뇌물을 공여할 의도로 국외 회사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를 사용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다"는 결론을 내린 보고서를 공개했다. 벡터 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얽혀있는 수많은 유령회사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직원도 없이 가진 것이라곤 우편물 주소 하나 뿐이었다. 앞서 말했듯, 벡터 에어로스페이스는 유로파이터 계약으로 인해 오스트리아의 회사들과 대응구매 협정을 맺었다. 수사당국은 이 유령회사들이 실제 돈의 흐름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유령회사들끼리의 거래를 통해 그 출처를 알기 어렵게 ‘세탁’된 돈은 사업 추진 당시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었던 유로파이터의 손을 들어준 오스트리아의 정치인들에게 대가로 돌아간 것으로 수사당국은 보고 있다. 극우 자유당의 총수 하이더는 자신이 주지사이던 때에 자신의 지역에서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추진했다. 하이더는 이후 선거 캠페인에서 이를 자신의 주요 치적으로 한껏 강조했었다. 이 사업에 연관된 사업가 또한 벡터 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하는 돈세탁 네트워크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조사를 받았다. 이 인프라 사업에 EADS의 돈이 흘러 들어갔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EADS의 대응구매로 막대한 금액을 받은 회사들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유령회사라는 점은 이러한 의심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빈의 검사는 이 대응구매 협정과 관련한 문서들을 조사하여 여러 가지로 의심스러운 사항들을 밝혀냈다. EADS의 대응구매는 오스트리아의 하이테크 산업을 발전시킨다는 명목으로 추진되었으나, EADS 직원들에 대한 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 같은, 하이테크 산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계약이나 EADS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업까지도 대응구매 사업으로 포함하는 등의 의심스러운 사항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독일의 유명 트럭 제조업체인 MAN의 군용 수송차량 사업이 그 일례이다. 6,500대의 수송차량을 영국군에 판매하는 이 사업은 전체 대응구매 금액의 20% 정도에 해당하는 약 7억 유로 어치의 대형사업이다. 이 수송차량의 제작을 모두 빈에서 제조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골자인데, 사실 이는 이미 MAN이 자체적으로 계약을 한 사항이며 EADS는 이러한 사항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필츠는 자유당뿐만 아니라 다른 정당들도 EADS의 뇌물을 받았을지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오스트리아의 보수 정치인들과 긴밀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무기 로비스트 알폰스 멘스도르프-포일리 백작이 EADS로부터 2,200만 유로를 받았다 한다. 이 또한 란데가 구축한 유령회사의 네트워크를 통해 대응구매 방식으로 지불되었다고 필츠는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백작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유로파이터 도입 결정을 내린 2003년 당시 여당이었던 인민당은 백작을 통하여 뇌물을 받았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소수 정당인 자유당에 이어 인민당까지 뇌물 수수에 연루되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파문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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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공군의 유로파이터 ⓒ Austrian Armed Forces Photograph/Markus Zinnner

혐의 입증될 경우 유로파이터 사업에 치명타


당시 오스트리아와 유로파이터 컨소시엄이 체결한 계약서에서는 뇌물 공여가 있었을 경우 (돈이 제삼자를 통해서 전해졌다 할지라도)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있다. 뇌물 공여가 입증될 경우 여론의 압박으로 실제로 계약이 파기될 공산이 적지 않다. 파기될 경우 EADS를 비롯한 컨소시엄 측에서는 수십억 유로를 내놓아야 한다.

지난 10월, BAE와의 합병 실패(본지 2012년 11월호 기사 'BAE+EADS, 세계 최대 방산그룹 탄생 좌절' 참조) 로 이미 쓴 맛을 본 EADS로서는 커다란 손실이 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미 독일 공군은 유로파이터 140대를 약 150억 유로에 구매할 계획을 갖고 있는데 EADS가 오스트리아 사업에서 수십억 유로의 손실을 입게 될 경우 유로파이터의 단가가 치솟을 수밖에 없다. 유로파이터의 단가 상승을 비롯하여, 판매 대상 국가의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공여했다는 사실은 향후 우리나라를 비롯한 장래 구매자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오스트리아의 유로파이터 스캔들이 차기전투기 사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여전히 협상이 진행 중이라 답하기 민감한 사안”이며 “혐의가 입증되면 두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한편 EADS측은 이번 수사 혐의에 대한 입장과 한국의 차기전투기 사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기자의 질의에 답변을 하지 않았다.

CEO 자리에 오르자마자 의욕적으로 BAE와의 합병을 추진했다가 실패하여 체면을 구긴 EADS의 CEO 톰 엔더스는 이번 일로 CEO직을 내놓아야 할 수도 있다. 오스트리아 계약 체결 당시 엔더스는 EADS의 방산 분야 책임자였기 때문에 뇌물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었을 수 있다. 메르켈 총리를 비롯한 독일의 정부 관계자들은 BAE 합병 문제를 논의하면서 엔더스의 태도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 공군의 유로파이터 도입 사업에 더 얹어질 수 있는 재정적 부담 외에도 독일 정부의 걱정은 크다. 독일 정부는 이미 EADS에 대한 각각의 보유 지분을 12%까지 늘리기로 프랑스와 합의한 상황이다. 국영은행(KfW)을 통해 EADS의 지분을 추가로 매입할 경우 수십억 유로의 재원이 필요한 시점에서 이러한 스캔들의 확산은 독일 정부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례적인 규모의 대응구매 계약, 수많은 유령회사들로 이루어진 복잡한 거래 내역, 의사 결정에 관련된 정치인들의 의심스러운 변심, 수사 과정에서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정황.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지만 EADS가 오스트리아 사업에서 뇌물을 공여했다는 혐의를 벗어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수사당국이 뇌물 혐의를 완전히 입증하느냐 ▲혐의가 입증될 경우 오스트리아가 정말로 유로파이터 계약을 취소할 것인가 ▲이 스캔들이 우리나라의 차기전투기(FX) 사업에 미칠 영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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