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 속에서 울며 어린이집을 찾아 헤매다 생생육아

  비가 오니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차가운 비를 그대로 맞으며 유모차를 끌고 아파트 단지를 헤매던... 아흑!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아이를 어디에서 키워야 할지, 맞벌이 부부는 우왕좌왕하다 때를 놓쳤다. 이제 1년동안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해야 할 시간은 한 달, 딱 한 달이 남았다. 한 달을 남기고 완전히 낯선, 남편 회사가 있는 동네로 이사를 했으니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우선 어린이집, 아이를 맡길 곳부터 알아봐야 했다.

 

 

  거듭 밝혔듯이 우리 부부는 둘이서 온전히 아이를 키우기로 했다. 양가의 도움도 입주 도우미도 구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 적어도 9~6시, 부부의 근무 시간에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야할 터였다. 2012년 2월생이니 보건복지부 기준으로 하면… 뜨헉, 0세반이렷다. 돌이 지났건만, ‘0세반’에 아이를 들이밀고는 저녁때 찾아와야 한다니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일은 괜찮은 어린이집을 찾는 일이었다. 이사 전인 4월 중순부터 공인중개사를 통해 우리가 살게될 1단지와 옆에 붙어있는 2단지 주변에 있는 어린이집 리스트를 확보해 전화를 돌렸다. 국공립은 당연히 자리 없다, 혹은 0세반이 아예 없다 등의 답을 했다. 가정형 어린이집들조차 전부 자리 없다, 대기 하라는 말을 했다.


 

 그 중 딱 한 곳이 “자리가 있다”고 했다. 반가워했는데 말끝을 흐린다. “이사가 언제시라고요?“ “네 보름 뒤에 합니다.” “저희는 지금 당장 들어올 아이가 필요한데요.” “네?” “그럼 이사는 보름 뒤에 하시더라도 등록은 지금 하시지요.” 보조금을 타기 위해 지금 당장, 롸잇 나우 등록을 하란 말이였다.


 

 울드라 초특급 ‘을’이 된 나는 “그냥 이사 가서부터 등록하면 안되냐”고 물었지만 소용없었다. 어린이집을 둘러보기도 할 겸 일단 방문을 했다. 아이를 안고 들어가는데도 원장이 아이 얼굴을 보지 않는다. 느낌이 쌔~하다. 보름 뒤 이사를 가서 아이와 함께 등원을 했는데 선생님들도 모두 내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 0세반은 아예 교실이 없다며 아이가 잠들자 거실의 미끄럼틀 아래 눕히란다. 자는 애 머리 위로 형아들이 휙휙 미끄럼틀을 타며 뛰어다녔다.

 


 __.JPG » 사흘 다닌 어린이집 풍경. 아기가 잠드니 미끄럼틀 아래 눕히라 했다. 0세반은 아예 교실이 없었다.

 

사흘간 등원을 하고서야 이 동네에서 왜 이 어린이집만 늘상 자리가 나는 지 비밀을 알게됐다. 뒤늦게 내가 기자란 사실을 확인한 뒤 원장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보름 먼저 등록하라고 한건 내가 뭘 착오해서”라며 아이사랑 카드를 돌려주었다. 아무리 급해도, 이런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수는 없었다. 0세반 담임이 원장이라는데 원장은 걸핏하면 자리를 비웠다. 교실도 없고, 선생님도 없는 거였다. 급기야 원장은 “제가 김치를 담아야 하니 아이들을 좀 봐달라”고 하기도 했다. 내게.


 그만 뒀다. 대안이 없었기에 눈물로 그만뒀다. 아무리 급해도 그런 어린이집에 아이를 9시간씩 맡기고 일터로 갈 순 없었다. 아무도 아이를 귀여워하지 않고 눈 맞춰 주지 않는 곳에 아이를 맡기고 눈물이 나서 어찌 일을 한단 말인가. 새 어린이집을 구해보리라. 그렇게 나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 집을 나섰다. 정처없는 길이었다.


 내가 사는 1단지만해도 1400세대 이상의 대단지다. 수십개 동을 돌며 1층에 있는 어린이집마다 문을 두드렸다. 없다, 없다, 자리가 없다. 대기해야 한다면서도 들어와 둘러보고 가라는 원장이 그나마 고마웠다. 그래, 주변 단지를 다 돌아보자. 그래서 나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뺑뺑이 도는 것은 ‘마와리’라 한다지. 1단지를 지나 3단지로, 4단지로 ‘마와리’를 돌았다.


 하늘도 무심하지, 아니 벌을 주는건가. 우르릉 쾅, 비가 내리가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 아기, 유모차에서 잘도 자고 있다. 재빨리 유모차 방수 커버의 지퍼를 채우고는 길을 재촉했다. 유모차를 밀어야 하니 우산은 쓸 수 없었다. 어차피 우산도 없었다. 5월의 비가 왜그렇게 차갑던지. 덜덜 떨며 계속 벨을 눌렀다. “아기 엄만데요, 여기 0세반 혹시 자리 있나요?”


 그렇게 한 시간을 넘게 돌다, 이제는 아기가 너무 추울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를 유모차에서 꺼내지도 못하고 현관에 선 채 아직 못가본 어린이집 중 한 곳에 전화를 걸었다. “자리 있나요?” “어머!” 수화기 너머 원장의 놀람이 심상치 않다. “바로 어제 한 아이가 그만 뒀어요. 안그래도 새로 들어올만한 아이를 찾아 연락하려던 참인데….” “저요, 저요, 제가 정말 사정이 급해요.” “어… 일단 와보시겠어요?”


 그렇게 우린 극적으로 어린이집을 구했다. 원장도 나도, 기막힌 인연이라며 운명이라 여기기로 했다. 그 어린이집은, 이전 어린이집과 똑같이 아파트 1층에 위치한 가정형 어린이집이건만 분위기가 이전 어린이집과 180도로 달랐다. 원장과 교사들은 물론 주방 선생님까지 모두 환하게 웃으며 아이를 맞이했다. 아이가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는 어느새 자기가 좋아하는 자동차 장난감을 만지고 있었다.


 이제 어린이집을 구했으니 적응을 해야한다. 한 달도 남지 않았으니 마음이 급해서 터질 것만 같다. 그런데 갑자기 나의 복직이 2주 앞당겨져 적응 할 날이 1주밖에 남지 않게 됐다. 청천벽력. 급기야 내 복직 시점에 남편의 해외 출장이 잡혔으니….(숨이 차올라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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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노키드 부부’로 살아가려던 가련한 영혼들이 갑자기 아기를 갖게되면서 겪게되는 좌충우돌 스토리를 나누고자 한다.
임지선 한겨레 기자 s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