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쌩쌩, 아기 안고 승차거부 당한 날 생생육아

 

 

  원래는 집 앞을 산책할 계획이었다. 아기띠에 아기를 넣어 앞으로 안고 날이 추우니 싸개를 두른 채 집을 나섰다. 집 근처 전철역까지 걸어갔을 즈음 아기가 잠들었다. 집에서는 한참을 보채더니 산책하자고 그랬구나, 이제 난 뭘 할까 하는데 때마침 나처럼 홀로 애를 보던 동생한테서 연락이 와 ‘벙개’를 하게 됐다. 벼락같이 택시를 타고 김포공항에 새로 들어섰다는 한 쇼핑몰로 향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하늘도 높고 단풍도 예뻤다.


  여기서 잠깐. 아기를 낳은 뒤 대개는 직접 운전을 해서 이동을 한다. 임신을 하고서 한동안은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었다. 그런데 배가 제법 불러와도 흔들리는 만원버스에서 누구도 자리 양보를 해주지 않았다. 다들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스 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임신부가 바로 옆에 배를 내밀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공연히 임산부 우대 표시가 붙어 있는 분홍색 의자 시트만 노려보고 다녔다. 7개월까지 버티다 사람들의 무관심을 넘어선 무배려에 치여 대중교통을 포기했다. 만삭에도, 아기 백일 때도 차, 내 차를 이용했다. 다행히 아기는 카시트에 잘 앉아 있어주었지만 내가 운전하는 동안 돌봐줄 이 없이 아기를 두는 것은 늘 불안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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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날 택시를 탔다. 그리고 사달이 났다. 쇼핑몰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낸 뒤(아기 낳고 나니 애 업고 갈 곳이 쇼핑몰밖에 없다, 이 이야기는 다음번에) 동생과 헤어졌다. 다시 택시를 타야 하는데 어디로 간다? 밖에 바람이 심한지라 야무지게 이동할 요량으로 쇼핑몰의 ‘안내’를 찾아갔다. 안내 직원은 내게 “공항의 국제선 쪽 택시 승강장을 이용하라”고 했다. 오잉? 공항 택시 승강장이라면 혹시, 승객의 목적지가 가까우면 생트집을 잡거나 아예 승차 거부를 해버리는 그곳? 다시 물었다. 쇼핑몰 쪽에는 택시를 탈 곳이 없느냐고. 없단다. 국제선이 최상이며 승차 거부는 없다고 했다.


  국제선 쪽 출구에 가자 칼바람이 불었다. 길을 건너니 수십 대의 택시가 즐비하다. 내가 있는 위치는 그 긴 줄의 끝쪽. 맨 앞까지 한참을 걸었다. 걸으며 불안해 중간중간 택시 기사들에게 “여기서 타면 ○○동 가느냐”고 물었다. 앞에 가서 이야기하란다. 오들오들 떨며 맨 앞에 가니 터줏대감인 듯한 아저씨 둘과 ‘교통질서’ 표시가 된 옷을 입은 청년이 어디를 갈 거냐고 묻는다. “○○동”이라니 인상을 구기고 맨 바깥쪽에 세워진 택시로 가더니 “여기 ○○동 좀 데려다주고 와” 한다. 택시 기사는 “뭐?” 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애도 안고 있는데 좀 가지 그래?” “싫다고~.” 난 아기를 꽉 끌어안고 김포공항, 그 황량한 길 한가운데 서서 바보처럼 덜덜 떨었다. 어디에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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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난 승차 거부를 당했다. “콜택시를 부르든지 하쇼.” 따질 새도 없이 바람을 피해 건물 안으로 뛰던 내 등 뒤로 한 아저씨가 툭 말했다. 그렇게 국제선 청사 안으로 들어가니 저 안쪽으로 기자실이 보였다. 1년 전만해도 난 공항 출입기자로서 저 기자실에서 노트북을 또닥이고 있었다. 지금은 애를 부둥켜 안고 승차거부를 당한채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우왕좌왕 하고있다. 헛웃음이 나왔다.

 

 

        허탈한 마음에 동생과 통화를 하니 그도 하소연이다. 전철을 타고 집에 가는 길, 아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는데 사람들이 밀치고 서로 먼저 타려 해 너무도 힘들었다고 한다. 유모차 때문에 행여 자기가 못탈까 싶어 몇몇은 유모차 앞으로 슬그머니 끼어들었단다. 내릴 때 역시 아무도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주지 않아 자신이 맨 마지막에 아기를 부둥켜안고 닫히는 문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내렸단다.

 

       그래, 모든 것은 내가 차를 안 갖고 외출한 것 때문이겠지. 아이를 업고 집 밖에 나온 엄마들 잘못이겠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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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노키드 부부’로 살아가려던 가련한 영혼들이 갑자기 아기를 갖게되면서 겪게되는 좌충우돌 스토리를 나누고자 한다.
임지선 한겨레 기자 sun21@hani.co.kr